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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교수가 월간 인물과사상을 창간한 지 10년이 되어간다. 만명 독자를 꿈꿨지만 실패(?)한 것 같으나 정기구독자는 계속해서 매년 연장을 하고 그가 매년 발간하는 단행본도 구독하는 층이 꽤 있을 것 같다. (나를 비롯해) 하지만 워낙 다작을 하다보니 여기 저기 중복투고도 많고 깊이가 없어지는 느낌을 받는 이도 많아서 곧잘 비판을 받곤 한다. 그럼에도 그는 또 이 책을 편집해서 내놓았다. 사실 제목을 워낙 잘 짓는 저자이다보니 새로운 것이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사긴 하지만 이런 일간지에 매주 실은 칼럼 등은 시류성을 잃으면 옛 일기장과 같은 거라서 단행본으로서 장수하는 그의 다른 저작들에 비해 구독자도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그가 투고하는 일간지나 주간지를 모두 보는 것이 아닌 층을 향한 목표마케팅관점에서 보면 그와 인물과사상사가 취하는 정책을 나무랄 수는 없다. 제목이 말하는 의미는 조금 멋적다. XX공화국이라 명명한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 지 잘 아는 강교수는 튀는 단어를 선택했다. 하지만 별로 내용과의 관련성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그의 살아 있는 필력에 공감하던 시절을 기대하며 응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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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2005년부터 2008년초까지 여러 신문에 게재했던 글을 모아 발행한 것이다.
다른 것 안보고 순전히 '강준만'이란 이름 하나 때문에 선택하여 읽은 책, 역시나 그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영향력 있는 지식인의 세상읽기는 어떤 지 훔쳐보고팠는데 그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어준 것 같다.
강준만이 김대중과 호남을 발판으로 선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꽤 있던데, 아!! 그런 것들 다 차치하고 '논객'으로서의 강준만에게 관심이 있다면 거리낌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일 테다.
"각개약진" 지형이나 지물 따위를 이용하여 병사들이 '개별적으로' 적진을 향하여 돌진한다는 말 (네이버 국어사전 참조 ㅋ)
저자는 대한민국 사회가 '공인과 타인'에 대한 불신에 물들어 모든 문제를 '개인과 가족' 단위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짙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이처럼 '개인과 가족' 단위로 움직이다 보니 살벌한 경쟁 사회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개인과 가족' 단위로 움직인다니.. 월드컵 응원, 그리고 최근의 촛불시위만 보아도 우리 민족이 꽤나 잘 뭉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집단 행동을 '각개약진'이란 삶의 방식에 지친 한국인들이 심신을 달래기 위해 벌이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하, 좀 억지스럽긴 해도 어찌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컴퓨터 앞에 '홀로' 앉아 가면을 쓰고 키보드를 두드리던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본떼를 보여주자는 생각에 '우르르' 몰려드는 걸 보면.. ??
각개약진 공화국... 이 곳, 살만 한 곳일까?
2008년 5월에 썼던 리뷰이다. 책에 대한 설명이나 나의 느낌이나.. 모든 면에서 상당히 급하게 쓴 리뷰인 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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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들에게 애국심이란 무엇일까? 애국심이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말하는데, 이것은 국가가 국민에 헌신하고 국민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상호작용이 일어나서 발현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한국민들은 국가를 사랑할까? 전쟁이 일어나면 국가를 위해서 기꺼이 싸우겠냐고 묻는 설문에 '예' 응답한 청소년의 비율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보수주의자들은 한탄하며 걱정을 한다. 그러다가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가 대항의 행사에서 보여주는 애국심과 열정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하게 된다. 그 뿐인가 자신들은 마치 대단한 애국심이 있는 것 처럼 거창하게 설교하는 보수주의자들의 행태와 언행을 보면 과연 그들이 매국노와 무엇이 다른지 의심하게 된다.
중국의 소설가 한 샤오궁은 "매국노의 공통된 특징, 즉 미제, 프랑스제, 호주제, 일제, 독일제, 러시아제 매국노의 공통성은 바로 권세와 이재에 밝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 한마디를 해도 목적이 분명하다. 높은 연봉, 구미행 여권, 최소한 한 끼의 정찬. 결코 학술적 양심이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여 자기에게 득 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건달 짓을 해도 실속을 챙기는 그들이 권력자의 상식적 실수 하나를 바로잡기 위해 용감하게 손을 드는 일은 결코 없다."라고 했다. 뉴라이트라는 집단을 중심으로 한 이들의 행태는 매국노 그 자체다. 그들의 목적은 권세와 이재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국가의 발전과 선진화를 위해서라고. 거기에 어리숙한 국민들은 속는다. 그들은 권력자에 빌붙어서 자신들의 권세와 이재를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제거해간다. 그리고 그것이 애국심의 발로라고 말한다.
거기에 애국심과 마케팅이 융합하면서 쇼비니즘을 만들어내면서 애국심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키기까지 하고 있지만, 현재 한국민들은 마음 속에는 애국심이 차지하는 가치는 반공교육으로 만들었던 애국심과 별 차이가 없다. 지금도 여전히 반공이데올로기와 빨간색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한 유아적 사고는 한국민 대다수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다. 거기에 부와 돈에 대한 욕망이 가세하면서 국가경제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더해지면서 정치꾼들이 애국심을 이용해서 국민을 기만하고 속이기에는 더 쉬워진 세상이 되었다.
경제꾼들은 이런 정치꾼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잇속을 철저하게 챙기고 있다. 범죄를 저질러도 법은 그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다. 이유는 국가 경제 발전에 공헌했다는 것이다. 그 솜방망이 처벌도 오래가지 않는다. 권세와 이재를 유지하고 키우기 위한 정치꾼들의 욕망을 채워주면서 정치꾼들은 형이 제대로 집행되기 이전에 사면이라는 성은을 받는다. 그 이유는 국가 경제 발전에 공헌해 달라는 것이다. 거기에 우미몽매한 국민들은 애국심의 발로와 경제발전에 대한 과대한 망상으로 이러한 행위를 선한 것으로 믿어버린다. 아니 믿으려 한다.
이러한 행위는 언제나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지고 국민들은 그렇게 믿는다. 개인의 삶이 너무나 고달프고 힘겨워도 국가와 국민이라는 애국심 앞에서 불평 불만을 토로하지 못한다. 그것은 애국심이 없다는 소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은 혼자서 현실을 열심히 살아간다. 땀 흘린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해도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무능함부터 탓한다. 사회와 국가는 애국심으로 보호해야 될 대상이라는 것이다. 국가라는 존재가 각 각의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존재 그 자체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애국심이라는 이름은 개인에게 커다란 짐이 된지가 오래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애국심은 가슴을 띄게 만들고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만들어 자신의 행위와 현실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어 버렸다. 강준만 교수는 이런 한국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 "각개약진은 한국적 삶의 기본 패턴이다. 공적 영역과 공인에 대한 불신이 워낙 강해 사회적 문제조차 혼자 또는 가족 단위로 돌파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공적 영역과 공인에 대한 불신이 워낙 강하다"고 지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애국심이라는 것은 이런 불신을 언제나 뛰어넘어 버린다.
이와 같은 각개약진의 삶이 만들어 낸 것은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단단한 연결고리다. 개인보다는 조그만 조직의 방패막을 필요에 대한 욕구로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병폐의 탄생 이유를 단번에 설명해버린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단지 각개약진의 삶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한 번에 단정하는 힘든 것이겠지만, 인위적으로 인맥 만들기에 열을 올리는 현대인들의 삶과 그 모습의 이유는 각개약진의 삶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삶의 패턴은 변할 가능성도 변할 이유도 없다. 세계화와 시장만능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국가경제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애국심 하나면 자신의 삶이 고달파도, 힘들어도 상관없다고 생각 할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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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국사시간에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있다. '역사는 현재를 비춰주는 거울'. 솔직히 역사 공부를 깊게 해보지 않은 나는 이 말이 정말 맞는지 알 수 없었다. 시험에 나온다니깐 그냥 외웠을 뿐이다.
그런데 요즘 이 말을 조금이나마 실감하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6월 10일 촛불집회. 6·10 항쟁을 생각나게 했던, 그날의 촛불집회. 6·10 항쟁이 일어났던 때에도, 그리고 지금도 사안은 다를지 몰라도 분명히 국민이 들고 일어나야 했을 만큼 정부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는 건 확실한 듯싶다. 그리고 그 촛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것도.
<각개약진 공화국>, 노 전 대통령 정권에 대한 따가운 시선
사실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가 그가 썼던 칼럼들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펴낸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구체적인 주제를 잡기 힘들기도 하다. 그저 '한국인은 각개약진 중'이라는 것과 '각개약진 때문에 많은 부딪힘이 있다' 이런 정도로만 요약될 수 있을 뿐이다.
사실 이 책이 지금 나온 것은 조금 늦은 감이 있다. 현 정권이 아닌 이전 정권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그 시기에 썼던 칼럼들을 모아서 만든 책이니깐 이 사실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은 너무 빨리 나오기도 했다. 현 정권에 대한 얘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2008년 3월에 쓴 '이명박 정부의 37번째 쇼'라는 제목의 칼럼이 전부이다.
조금만 책이 더 늦게 나왔으면 의료보험 민영화나 쇠고기 협상, 대운하 등의 현 정부가 안고 가려 하는 굵직한 문제들도 다루었을 텐데.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
<각개약진 공화국>, 이전 정권을 통해 현 시대를 비판하게 하다
하지만 앞에서 책과 전혀 관련없는 '역사는 현재를 비춰주는 거울'이란 말을 끌어다 쓴 데는 이유가 있다. 너무 늦게, 혹은 너무 빨리 나온 이 책에서 우리는 분명 우리 사회 단편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이 책에서 예를 들자면, 자신이 속한 회사를 내부 고발한 것 때문에 오히려 살기 어려워졌던, 그러나 진실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은 것에 더 마음 아파하던 현준희씨에 대해 쓴 '현준희 : 내부 고발을 억압하는 사회'와 비슷한 내용이 '내가 꿈꾸는 세상'에서 나온다.
또 지역발전에 대한 문제를 '지역발전 전략? 지역황폐화 전략!'과 '지역균형발전, 말로만?' 등에서 다루고 있다.
이런 예로부터 책에 실린 칼럼이 최근에 쓰인 것부터 시간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 사회 속에 나타난 문제들 중 분명히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아직 남아있는 것이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 책에 있는 내용들이 현 시대를 넘어 계속해서 우리 사회에 나타날 수 있으리란 생각도 할 수 있다.
물론 특정 지식인이 보는 사회는 모두가 인식하는 사회의 일부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헌법 제1조에 나온 것처럼 "대한민국이 민주 공화국"이라면, 비록 그가 주장한 것이 사회의 일부만 반영하더라도,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한 번씩은 귀담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책에 있는 내용 중 KBS 감사와 MBC 민영화 등으로 언론사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에 알맞는 말이 있어 옮겨본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방송의 민영화 부분을 언급하면서 '방송의회'를 제안한다.
행여 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방송의회를 구성하는 방송의원은 교통비조차 받지 않는 완전 무보수 명예직이다. 방송의원들은 방송위원회 위원 및 방송사 사장 등을 선출하는 투표권만 행사하면 된다. 선출 후 중대사안에 국한하여 결정을 내리는 추가 투표도 있을 수 있겠다. 방송의원 규모는 사회 각계를 대표하고 외부 압력과 로비를 거의 무의미한 수주으로 만들 수 있게끔 수천 명으로 하자. 선출도 완전 자유경쟁 공모제로 하자. 후보자들도 수천 명의 방송의원 앞에서 자신의 비전과 소견을 역설해 본격적인 검증을 받도록 하자. 공정성 안전장치도 그런 검증 과정을 통해 마련하도록 하자. 방송계를 눈만 뜨면 싸움질하기에 바쁜 정치권의 대리전쟁터로 만들거나 볼모로 잡아두는 건 우리 모두의 자학이다. - 책 29~30p. '언제까지 방송을 전리품 삼을 건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