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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크고 작은 뉴스들을 참 많이 접했고, 인면수심의 사건들도 끊이지 않았지만, 남의 일 같지 않게 안타까워하고 또 한숨을 쉬게 만드는 뉴스가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온다. 각종 사건 사고의 주인공으로 청소년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마치 내 자식 일인냥 가슴을 쓸어내리게도 만들고 눈물을 훔치게도 만드는 사건들을 보면서 느껴지는 답답함은 말로 표현이 안된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다들 부모에겐 소중한 자식들인데 어쩌다 저 지경에 이르렀을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책 제목, 선명하진 않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손 그림자, 그리고 가늘지만 더 강렬하게 눈에 들어오는 빨간색의 두 줄... 어느 것도 예사롭지 않은 책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식마인즈'('병든 마음'이라는 뜻으로 원래 이름인 '시파인즈'와 발음이 비슷해 붙여진 별명.)라 불리는 시설이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바로 청소년이라는 점이 보는 내내 긴장하게 만들고 안타깝게 만들었던 책이기도 했다.
자해를 해서 이곳에 오게 된 캘리가 자해, 식이장애, 약물중독 등의 문제를 갖고 있는 소녀들과 함께 치료를 받으면서 그동안 갇혀 있던 굴레에서 차츰 벗어나기 시작한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상담선생님 앞에선 물론이고 그 누구와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고, 낫고자 하는 의욕도 전혀 없어보였지만, 캘리의 마음을 먼저 살피며 진실된 걱정과 염려로 대해 준 도우미 루비와, 캘리의 마음 문을 열고자 인내심을 발휘하며 진심으로 대해 준 상담선생님, 함께 치료 받은 다른 소녀들과의 관계를 통해 드디어 말문에 터지고, 마음 문도 열리게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이 세상에는 상처 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얼마든지 있단다. 모든 것이 무기로 변할 수 있지. 그것들을 모두 모아 내게 가져다 준다고 해도, 항상 다른 무언가는 남아 있을 거야. 너도 알잖니? 난 너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없어. 그건 오직 너만이 할 수 있어."-p202- 식당에서 몰래 숨겨 온 금속 조각을 건네는 캘리에게 왜 자신에게 주려했는지 이유를 묻는 상담 선생님, 다시 자해를 안하려는 것 뿐이라는 말에 대한 선생님의 답이다. 모든 것이 무기로 변할 수 있지만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건 결국 자기의 의지라는 걸 말해준다. 차츰 마음의 문이 열려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상담선생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캘리의 극단적인 행동들이, 시설의 다른 아이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심한 천식을 앓고 있는 동생으로 인해 모든 생활 패턴이 동생 위주였고 캘리가 집안 일을 돌보거나 아픈 동생과 피곤한 엄마의 눈치를 보는 생활의 연속,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가 없던 집에서 동생이 아팠고 심한천식을 앓게 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죄책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캘리...
혼자 감당해야 했던 동생의 일도, 제각기 갖고 있을 다른 아이들의 문제들도 모두 어른들의 무관심과 방치로 인해 생긴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어린 소녀가 혼자서 아픈 동생을 돌봐야 했던 상황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라는 상담 선생님의 말에 캘리는 처음으로 깊이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죄책감 속에 사로잡혀 있던 자신을 끄집어 내며 드디어 캘리 자신이 간절히 바라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되는 순간 보고 있던 나도 함께 안도의 한숨이 쉬어지고, 책 읽는 내내 우울했던 기분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고통을 느끼면서까지 마음의 상처를 잊고 싶었던 아이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내 마음이 잠시 잠깐으로 그치지 않길 바랬다. 절대 멈추지 않을 것만 같은 우리 아이들의 질주를 멈추게 할 수 있는 건 어른들의 따뜻한 관심과 인내심,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사랑! 아이들 스스로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죄책감에서 벗어나 비로소 갇힌 굴레에서 해방 될 수 있었던 캘리처럼 아이들이 갇혀있는 여러 이름의 굴레들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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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을 하던 중이었다. 캘리는 열심히 달리다가 경로를 벗어난다. 집에서 그녀를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캘리는 자해를 한다. 무슨 고민이 있기에 그런 것일까? 소녀가, 갑자기 뾰족한 것으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게 된 이유는 도대체!?!?
시간이 흘러 캘리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는 많은 아이들이 치료를 받고 있는 곳이다. 캘리처럼 자해를 한 아이도 있고 거식증에 걸린 아이도 있고 못된 것에 중독돼 들어온 아이도 있다. 그곳의 아이들은 말을 하면서 치료를 받으려 하는데 캘리는 침묵한다. 엄마와 몸이 약한 동생이 직접 면회를 와도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또 다시 뾰족한 것을 찾으려고 하는 문제아. 캘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다시 말을 할 수라도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픈 소설인데, 그러면서도 참 따뜻한 소설이다. 캘리가 말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나 자해를 하게 된 것들을 알아가는 것이,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 감동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좋아, 좋아. 나는 이 소설이 아주 마음에 든다. 우리에게는 이런 소설이 필요하단 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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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막 사춘기에 접어 들었을때인가 보다. 그때 딸아이는 왜 그랬는지 자기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의 한마디가 그렇게 가슴이 아팠는지 눈물만 뚝뚝 흘리며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한마디 말도 없이... 그때 내가 딸아이에게 종종 하던 말이 바로 '너는 꿀을 먹었니? 왜 말이 없니? 좀 속시원히 말 좀 해봐라!' 였다. 아마도 모든 아이들의 엄마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아닐까? 책속의 주인공 켈리가 아무런 말도 없이 매일 매일을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답답하게 느껴져 '어서 말을 해!'라고 내가 다 소리치고 싶었다. 그런데 그아이, 무슨 맘속 깊은 상처가 있는지 자신의 팔을 그어 흐르는 붉은 피를 보는것으로 스스로를 다독거린다. 그것이, 자신을 그토록 아프게 하는 그것이, 그 어떤것보다도 견디기가 쉬운것일까? 그렇게 견디기 힘들게 만드는 그 어떤것은 또 무얼까? 이해 할 수 없다는듯 내 고개는 자꾸 갸웃갸웃거리지만 아이가 점 점 말문을 열고 그래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통해 조금씩 내 마음의 빗장도 스르르 풀리는듯하다. 그렇다. 이 아이는 우리가 흔히 겪는 또는 우리 아이들이 흔히 행하고 있는 착한아이 콤플렉스에 심하게 빠져있는듯하다. 자신이 돌봐야하는 천식이 심한 동생을 자신의 몫이라 여기고 항상 동생에게만 매달려 있는 부모님의 걱정이 자신이 잘 돌보지 못해서이기 때문이라 여기는 그런,,, 천식의 주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위험 요소나 먼지같은 것들에게서 벗어나야했던 행동들이 알게 모르게 켈리에게는 자신의 탓이라 여기게 되는 마음의 짐이 되어 버린것이다. 그것이 마음을 누르고 누르고 또 짓눌러 자신을 상채기 내는것으로 해방받고 싶은 그런 마음때문에 스스로의 팔을 긋기에 이르는... 이제 켈리는, 자신으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하고 자신이 말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그 죄의식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면서 정신병동을 탈출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의지를 보여주었으며 아버지를 만나 동생은 자신때문에 아픈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또한 온 가족이 동생을 사랑하고 걱정하는만큼 켈리 자신도 걱정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다시 병동으로 돌아가는것으로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그래, 딸아이도 그랬나보다. 무언가가 자꾸 자신에게 짐이 되어 말대신 눈물로 엄마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나보다. 그 소리 없는 말을 하나도 알아 듣지 못한 이 엄마는 지금 참 미안한 맘이 든다. 하지만 이제는 웃고 떠들고 즐거워 딸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으니 스스로 자신을 잘 다독거렸나보다 싶은 맘에 엄마는 아이에게 참 고마운 맘이다. 그렇다. 켈리의 경우는 좀 극단적인 지경에 이르게 된것일뿐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언저리 어디쯤에서 왔다갔다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잘 달래고 위로 할 수 있는 우리의 경우와는 달리 켈리에게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것일 뿐! '켈리, 답답하고 견디기 힘든 마음은 이제 그만 컷! 이젠 무엇이건 맘속에 담아 놓지 말고 속시원히 말해봐! 넌 혼자가 아니잖아! !' 강렬한 책 제목만큼 아주 색다른 주제와 배경을 가진 이 책은 어쨌든 청소년들에게 좋은 도우미책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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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와 울림이 있는 책이다. 읽는 동안 내면으로의 짧은 여행을 떠났다 온 느낌을 가졌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을 때, 그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난로불 켜진 따뜻한 방으로 돌아온 그런 느낌. 그러나 유령을 따라 여행한 사람이 마치 나인 듯한 그런 느낌이 되었다.
캘리는 열다섯 살이고 육상선수였던 아이고, 손목을 긋는 일로 seapines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곳에 갇힌 아이들은 그곳을 sickminds라 부른다. sick mind라.
우리 모두는 아픈 마음을 지니고 산다. 요행히 큰일 없이 인생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결국 슬픈 결말로 끝나는 인생도 있다. 대부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 주변에는 사람이 없다. 아니, 당사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끝내 도움을 요청하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은 그야말로 아플 것이다.
맨발로 병원을 뛰쳐나갔던 캘리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치료를 마치러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먼 옛날의 친정아버지가 떠올랐다. 무슨 일이었던가. 내가 상심하여 오후 내내 눈물 속에서 방문을 닫고 웅크리고 앉았던 날 밤, 아버지는 새벽까지 열다섯 번이나 화장실을 왔다갔다 하셨다. 그리고 그때마다 슬쩍 내 방문을 열며 이렇게 말하셨다. "오늘따라 소변이 자꾸 마렵네. 그런데 넌 안 자니?"
그런 것들이 아닐까? 사람을 버티게 하는 힘은? 모든 일의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고 여겨 손목을 긋고 침묵 속으로 잠겨 버린 캘리의 희망은 내게도 희망이 되었고, 무기력하게 울던 소녀가 아니라 아이 엄마로서 스스로를 다잡아주는 힘이 되어 주었다.
중2인 딸아이에게는 어쩐지 걱정되어 읽히기 저어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싶은 책이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같은 책. 이 세상 일 중에 누구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책. 그걸 많은 아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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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 이야기를 읽고 나서 느낀 건 ‘문제부모가 있을 뿐, 문제아는 없다’는 평범한 사실이었다. 캘리는 부모님이 집에 없을 때 천식으로 앓던 동생이 위급한 상황에 이르게 되는 일을 혼자 겪었다. 다행히 동생은 목숨은 건지지만, 켈리는 이 일이 자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주위 사람에게 자기의 괴로움을 터놓고 얘기를 못한 켈리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몸에 끔찍한 상처를 낸다. 켈리는 자해행위를 통해서 자기 죗값을 치를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작가는 캘리가 이런 행위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단번에 주지는 않았다. 켈리의 묵언과 몸짓을 통해 답답함을 느낄 정도로 아주 느리게 조금씩 힌트를 줄 뿐이었다. 켈리가 처했던 자세한 상황은 거의 말미에 가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작가의 계산된 문법이었겠지만 그때서야 비로소 캘리의 행동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대개 심성이 착한 아이들은 쉽게 상처를 받는다. 캘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미루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칼을 들이댄 캘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려온다. 어린 나이에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을 때 누구라도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살면서 우리는 늘 문제에 부딪히고, 또 어느 가정에나 문제는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그 해결 방식의 중심에는 항상 ‘사랑’이 있다고 믿는다. 캘리가 스스로 낫고 싶다고 느낀 것은 결국 가족의 진정한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 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음을, 작가는 캘리를 통해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