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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와 후안 데 파레하의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다룬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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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분야에 특히나 문외한인 내게 예술가의 이야기는 어려울 것만 같았다. 전혀 들어보지 못한 후안 데 파레하와 그의 스승 벨라스케스 그들의 이야기는 미술가나 그들의 작품에 대한 사전지식도 필요한 내용이 아니었으며 그저 그들의 삶의 발자취에 빠져 들면 되었다. 작가는 놀라운 상상력으로 스승과 제자의 신분을 초월한 우정과 예술이야기를 그려냈으며 그들의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놀라운 에피소드를 보게 된다.
17세기 초 노예로 태어난 후안 데 파레하, 어린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주인마님의 시동으로 들어가는것으로 그의 인생은 시작되었다. 주인마님으로 부터 글을 배우게 되고 조금씩 인정받게 될 즈음 돌림병으로 인해 주인마님의 온 가족은 죽음에 이르고 그는 주인마님의 조카인 벨라스케스에게 보내지고 그는 새로운 주인을 맞아들인다.
새로운 주인 곁에서 그림 그리는 준비를 도와주면서 후안 데 파레하는 자신의 내면속에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욕망을 발견하나 스승은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유는 바로 나라에서 노예는 특히나 그림그리는 것은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궁에 들어가 예술 활동을 하면 온갖 어려움과 시련을 겪게 되는 가운데 그들은 주인과 종이 아니라 때로는 친구, 동반자임을 느끼게 된다. 몰래 그린 그림을 황제가 보도록 숨겨 숨겨 그것을 발견한 황제는 난감한 상황에 이르고 죄를 물으려 하자 후안 데 파레하에게 주인은 쪽지를 건네는 데 그것은 바로 노예해방문서였다. 그렇게 그는 노예에서 진정한 스승과의 동반자로 인정을 받는다.
17세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많은 예술가들이 활동 하던 시기였으며, 당시의 노예제도는 그저 일상의 제도였으며 어느 누가 잘못된 제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었으며 부르주아의 권력과 예술이 번성한 시기였다고 한다. 작가는 노예였던 후안 데 파레하와 그의 스승 벨라스케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내었고 그들의 에피소드를 벨라스케스와 데파레하의 작품의 이해를 하도록 도운다.
책을 읽으면서 예술가에 대한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였고, 아직까지 세계곳곳에 남아있는 노예제도가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인간은 주종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평등한 동료이며 친구의 관계임을 다시 한번 말하고 있으며 그들의 진한 우정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은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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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대한 문외한으로서 신분차이를 넘어선 사제간의 우정을 통한 이야기라는 점에 더 관심이 갔던 작품이다.
평소 그림을 관심있게 보지 않은 나에게도 많이 본듯한 그림인 [궁정의 시녀들]의 작가인 벨라스케스와 그의 노예인 후안 데 파레하의 이야기 이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시절 스페인에선 노예에게는 그림을 그릴 자격이 없지만 숨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던 후안데 파레하와 궁정화가인 벨라스케스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책이다. 그의 곁에서 시중을 들기도 하고 누구보다 더 가까운 친구가 되어 자신의 몸보다 더 아끼고 돌봤던 주인 벨라스케스 그들은 신분 차이가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친구였다. 서로의 작품을 인정하고 한단계 발전할수 있도록 보이지 않은 도움을 서로 주고 받았던 그들의 이야기는 그시절 그림을 그리던 시대적 배경과 함께 화가들의 모습들을 후아니크의 입을 빌려 자서전 형식으로 일대기를 자세히 알아본다.
명화가 탄생하게 된 이야기를 저자의 상상을 통해 살이 붙여 만나보지만 그들의 삶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열정이나 그들의 생활태도까지 자신의 신분을 무시하고 열정을 불태우고 노력하던 후아니크의 모습과 그림에 대해 끈임없이 노력하고 새로운 시도를 연구하는 벨라스케스의 모습들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많은 배움을 준다.
처음 책을 만나면서 보게된 명화들을 통해 후안 데 파레하의 모습을 볼수 있다. 그의 초상화가 최고가로 낙찰될정도로 작품성이 위대하다고 한다, 후아니크의 일생을 만나면서 그의 초상화를 통해 간접적인 그의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정말 좋았다. 명화들을 잘 모르는 나에게도 벨라스케스와 후아니크의 작품을 이야기 할수 있는 좋은 기회와 그들의 소중한 우정을 아이들과 이야기 해 볼수 있었던 좋은 기호였던것 같다.
그들의 열정을 되세기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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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후안 데 파레하 라는 이름은 생소했다. 비단 그것은 나뿐만의 문제는 아닐듯 미술에 아주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라면 나와 비숫했을것이다. 요즘 한참 서양미술술서적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를 자극하던 궁정화가와 노예의 평생에 걸친 우정이야기라는 소개글은 읽고싶다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충분했다.
책을 다 읽고난 지금 난 여전히 후안 데 파레하 보단 그의 주인이자 스승이었던 벨라스케스에 더 관심이 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예술분야 초보생으로서 몇권의 책을 접하며 가지게된 지식들과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보았다는 큰소득으로 뿌듯해져온다.
밸라스케스는 예술과 과학분야에 뛰어난 인물이 많았던 17세기 스페인왕실 펠리페4세의 궁정화가로 내가 서양미술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궁정의 시녀들을 그린 화가였다. 또하나의 그의 역작으로 1970년 당시 미술품 경매사상 550억이라는 최고가로 낙찰된 후안 데 파레하라는 초상화를 그린 화기이기도 하며 그 초상화속 주인공과 함게 평생에 걸친 인생을 따라가보는것이 이 책의 내용이었다.
후안데 파레하 그는 세비야의 주인집에서 태어난 노예였다. 아버지는 누구인지조차도모르고 어머니는 5살에 여윈 불쌍한 소년 하지만 친절한 마님의 시동으로 글씨로 배우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며 나름 편안한 삶을 살아가지만 어느날 마을을 덮친 흑사병으로 모든 사람들이 죽고 그 또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어렵사리 살아난다
그렇게 살아난 그에게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건 마드리드에 살고있는 괴팍한 성격의 화가조카에게 자신이 상속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결정된 자신의 운명을 거슬릴수 없는 노예였던 그가 또한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만난 주인이 바로 17세기 스폐인 최고의 화가였던 디에고 벨라스케스이다
하늘같은 주인으로 다정한 손길로 대해주는 은인으로 그렇게 평생의 동지인 두사람의 인연은 시작되고 가족보다 더 가까운 벨라스케스의 노예이자 조수로 평생 그의 옆을 지켜오면서 보고 느껴던 세세한 일상들을 아주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그냥 유명한 화가였다가 궁정화가가되고 그의 가족들의 모습이 변화하고 명성을 쌓아가는 평생에 걸친 이야기들을 만나며 궁정화가가 무슨일을 했었는지 사회저변에 깔려있던 예술적 소양까지 당시 시대상을 소상히 만날수 있어 기존의 다른 미술서적을 만나며 느꼇던 아쉬움들을 털어낼수 있었다.
서양 미술사를 보면 유난히 왕의 초상화가 눈에 많이 뜨이고 왕실가의 사람들이 자주등장한다. 궁정의 시녀들 역시 프랑스에 있는 공주의 약혼자에게 장래 자신의 신부감을 보여주기 위해 그렸던 그림인만큼 왕실의 모습은 그림속에 자주등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그림들이 그려진 배경을 알아간다는것은 참 기분좋은 일이었다
그림을 마주하며 그 그림속 이야기를 찾아가는 이야기에선 만날수 없었던 생생한 삶속에서 만난 예술 이야기는 거꾸로 그들이 추구했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데 더 큰 역활이 되어주어 알고자 하는 욕심을 따라갈수 없었던 어려워 이해할수 없던 서양 미술의 역사를 좀더 재미있고 쉽게 만날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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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깊은 우정, 예술과 신분을 뛰어넘는 그림 이야기]
후안 데 파레하. 아프리카인들의 혈통을 이어받은 유명한 화가 벨라스케스의 종이다. 벨라스케스는 유명한 화가로 많은 그림들을 남겼다. 노예인 후안 데 파레하와 뛰어난 재능을 가진 화가 벨라스케스의 평생을 갈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가 재구성된다.
이 후안 데 파레하와 화가 벨라스케스의 관계같은 이야기는 잘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본래 노예는 계속 노예의 신분으로써 온갖 차별을 받고 입을 것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사실에 무척 감동적이었다.
후안 데 파레하는 과연 하나님이 정해주신 운명의 인물인 것 같다. 그는 다른 사람들 모두가 흑사병에 걸려서 죽었을 때 우연히 살아남아서 화가 벨라스케스에게 상속되었다. 장난감같은 그였지만 이제 진정한 동반자가 되어서 화가의 기질을 떨치는 것이다. 그는 비록 노예로 태어났지만 많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서 그들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가 남겼던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랬다. 순전히 독학으로 공부해서 그린 그림이 너무나 생생하고 멋져서 마치 사진을 찍었던 것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벨라스케스 화가의 그림도 엄청난 것 같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오히려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나는 앞페이지에 실린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설명과 함께 다시 감상하며 읽었다. 교황의 초상화는 세계 최고의 초상화로 칭송받고 있으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그림도 단순하지만 너무도 슬프고 간결하지만 웅장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그림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고통이 온 몸 그대로 전해지는 듯 했다.
후안 데 파레하. 그의 흔적이 구석 구석에 남아있는 듯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노예가 있던 그 시절 차별에 대하여 좀 더 많은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아무도 그를 노예라고하여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천하다고 마구 때리지 않았으며 항상 그를 보살피고 아껴주었다. 반면 그 시기의 다른 노예들은 그런 안락한 삶을 살지 못하고 매번 고통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기도를 할 시간조차도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노예 다루다니 내가 노예로 태어났다면 삶자체가 얼마나 끔찍했을까 싶었다. 노예제도는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인권에 위배되는 제도라는 사실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노예들이 힘들었던 그 시절 어찌보면 후안 데 파레하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행운아였던 것이다.
나중에 후안의 주인 벨로스케스가 죽었을 때에는 큰 슬픔을 느꼈다. 그가 죽었을 때 나라의 왕조차도 크게 슬퍼하며 그에게 직접 붉은 십자가를 하사한 것을 보고서 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예술이란 사람을 울고 웃게 만든다.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의 멋진 추억을 되살리는 그림을 보면 자연히 자신이 그 그림속으로 빠져들고, 슬픈 기억이 담긴 그림을 보면 울게 되고 아름다운 그림을 보면 자연히 웃게 된다. 예술은 연제 생겨났는지 모르지만 사람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후안 데 파레하가 앞으로도 계속 잘 살게 될 모습을 기대하면서 이 책을 즐겁게 끝마칠 수가 있었다. 누구도 그런 평화로운 생활을 누리기 힘들 것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으며 일생의 친구를 만났고 세상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전해주었던 인물, 후안 데 파레하. 앞으로도 그의 능력을 높이 사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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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며칠 전 서양미술의 기초를 다룬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참이다. 그런데 또 화가에 대한 책을 읽다니 이런 걸 바로 우연이라고 하는 걸까. 비록 완전한 인물에 대한 책도 아니고 예술에 관한 책도 아니지만 한 인물과 주변 인물들에 대해 유추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책이다.
흔히 명화집에서 보았던 한 폭의 그림. 그러나 미술에 관심이 있거나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닌 다음에 벨라스케스라는 이름이 그다지 낯익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처음엔 이름을 들었을 때는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대표작인 [궁정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을 보자 그제서야 많이 봤던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을 정도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나 같지는 않을 테지만.
그러나 여기서는 벨라스케스가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은 바로 후안 데 파레하로 벨라스케스의 노예다. 실존 인물이라 해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인물에 대해 그리려니 작가의 상상력이 많이 가미되었겠지만 마치 자서전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후안 데 파레하의 서술로 전개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예라는 신분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 보다는 주로 주인인 벨라스케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파레하의 첫 번째 주인이 모두 죽어서 친척에게 상속되었는데 그것이 파레하에게는 행운인 셈이다. 두 번째 주인이 바로 벨라스케스였으니까. 언제나 조용하고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하고자 하는 주인 덕분에 파레하는 비록 신분은 노예였으나 여타의 노예들과는 다른 대우를 받는다. 그리고 결국 나중에는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기까지 한다. 그리고 가장 큰 행운은 바로 파레하도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일 게다. 노예라서 그림을 배울 수도 없었고 주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수도 없었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만은 아무도 막지 못했던 것이다.
많은 부분은 작가가 상상해서 만들어진 것이란다. 벨라스케스가 후안을 상속받은 것, 나중에는 자유를 주었다는 것, 벨라스케스가 파레하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것, 무리요가 벨라스케스에게 그림을 배웠다는 것 정도는 사실이나 그 밖의 것들은 그림을 보고 또는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보고 작가가 어느 정도 가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후안 데 파레하의 그림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를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것도 큰 소득이다. 물론 벨라스케스의 여러 작품을 보는 것도 소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명의 이야기를 읽었지만 책을 덮고 나면 마치 두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듯한 기분이다. 또한 주인과 노예라는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니 '신분을 초월한 사제지간의 우정과 예술이야기'라는 부제가 딱 맞는다. 1960년대에 씌어진 책이라지만 언제나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야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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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에 대해 접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실제로 존재했던 그의 노예였던 후안 데 파레하의 관계에 대해서도 들었던 적이 있었던 터라 더 호감이 갔던 책이다. 초상화에 그려진 느낌으로 당시 시대상과 배경들을 총 망라하여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지 놀랍다. 한 가지 사물을 바라볼 때 단순하게 여겼던 색상이 화가들에 의해 따로 나뉘어 분리되어 다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눈에 의해 색채가 섞여진다는 비밀이 있었을 줄이야...보는 것도 작업이라는 벨라스케스의 말이 마음에 박힌다. 후안 데 파레하는 노예의 신분으로 태어나 역시나 노예였던 그의 엄마가 후안이 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나며 벨라스케스의 삼촌인 주인댁에서 키워진다. 마님의 보살핌과 사랑을 받으며 컸던 도시의 아이였던 후안은 흑사병이 돌며 주인집 식구들과 하인들이 모두 죽는 가운데 신부 이시드로의 도움으로 용케 살아난다. 자신을 노예가 아닌 똑같은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 대해주는 신부의 옆에 있기를 소원했지만 후안은 간악한 집시와 함께 그가 상속되어진 마드리드에 있는 벨라스케스의 집까지 가게 된다. 집시와 함께 여행을 하며 후안은 혼자 구걸도 하며 어렵게 음식도 얻는 법을 알게 되고 집시를 떠나 혼자 여행을 하려다 잡혀 죽도록 얻어맞고 정신을 잃고 벨라스케스의 집까지 온다. 그는 자유란 참으로 커다란 대가를 필요로 하는 것과 약한 자는 강한 자의 희생물이 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벨라스케스의 밑에서 물감을 가는 일부터 시작하여 붓을 씻는 일과 나무틀에 캔버스 씌우는 것들을 배워가며 그림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지만 노예는 예술에 종사할 수 없다는 스페인의 법 때문에 그 배우고 싶은 욕망을 억제한다. 예술은 진실이고 예술을 섬기려고 절대 속임수를 쓰지 않겠다는 예술가적 마음을 간직한 점잖고 고위하며 완전한 기사인 벨라스케스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그의 모든 것에 익숙하게 된다. 궁정에 들어가며 왕의 초상화도 그리고 궁정 화가가 되어 긴 여행을 할 때에도 항상 후안을 대동한다. 벨르사케스가 후안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실을 알게 된 후안은 마음에 평화와 기쁨을 느끼고 그의 가슴을 따스하게 만든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고 좋은 주인을 만나 자신이 노예지만 불평하지 않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전심으로 감사하고 성실하게 생활을 하는 후안에게 벨라스케스의 가족들은 모두가 한 식구로 느낀다. 벨라스케스는 궁정의 여러 사람들의 모습도 화폭에 담는데 그 그림들은 후안이 처음엔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사실적인 진실을 담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그림 속에서 벨라스케스가 그리려 했던 불구의 몸속에 갇혀있는 영혼을 발견하게 된다. 혼자만이 간직했던 그림에 대한 열정과 그림들을 왕이 사랑했던 개들의 그림으로 고백하게 되며 후안은 벨라스케스로부터 자유인의 신분을 얻는다. 사랑하는 여인도 아내로 얻게 되지만 벨라스케스의 딸인 파키타가 아이를 낳다 죽게 되고 벨라스케스의 부인도 세상을 떠나며 후안은 사랑하던 주인의 식구들이 죽는 어려운 시련을 겪는다. 실의에 빠져 있던 벨라스케스는 왕이 명령한 왕의 누이인 마리아 테레사의 결혼식 정자 준비에 다시 제 자리로 잠시나마 돌아오지만 결국 후안 부부의 극진한 간호 속에서 그의 주인이요, 스승이었던 벨라스케를 떠나보낸다. 왕이 주는 십자가 훈장을 그가 나오는 딱 한 개의 그림 속에 후안은 그려 넣고 고향인 세비야로 돌아온다. 그리운 고향에는 노예였던 때부터 그를 진정한 친구로 대해줬던 바톨로매가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진리를 사랑하고 진실을 그리는 것을 사랑했던 벨라스케스에게 후안 데 파레하는 좋은 친구이자 의지할 수 있는 인생의 동반자이었다. 그 당시 노예 제도에 익숙해있던 사회에서 그러한 관계를 생각하고 노예를 인간적인 동료로 여기기가 쉽진 않았을텐데 벨라스케스와 그의 주위의 모든 이들은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자신의 친척으로부터 상속 받았던 노예인 후안을 자유를 주어 자신의 조수로 받아들였던 벨라스케스와 후안은 서로가 깊은 신뢰와 애정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작가의 상상으로 보태어진 나, 후안 데 파레하를 통해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며 고귀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된다. 세상이 이들 관계처럼 아름답고 애정 어린 이상적인 관계들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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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후안 데 파레하>를 읽고
서점에 가면 맨 처음 찾는 곳이 '신간코너'다. 그 곳에는 언제나 신선함이 넘쳐난다. 나는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체크해 놓았던 책을 우선 찾는다. 그 때마다 왠지 읽고 싶은 책이 눈에 띌 때가 있다.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이미 외국 소설 내지 청소년 동화 중에 꽤 좋은 작품을 낸 <다른>출판사가 낸 책이라 좀 더 관심이 갔는지도 모른다. 첫 페이지를 넘기면 그림이 나온다. 벨리스케스의 <궁정의 시녀들> <사냥복 차림의 펠리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라는 작품이어서 의아했다. 벨리스케스와 이 책의 제목으로 나오는 후안데 파레하가 무슨 상관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배고픈 아이처럼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번역을 고려대 김우창 교수님이 했다는 부분도 참 마음에 들었다.)
한 마디로 벨리스케스 화가의 노예가 후안 데 파레하였다. 그것도 얼굴이 검은, 전형적인 모습을 한 노예 말이다. 후안은 노예들의 삶이 대개 그렇듯 많은 역경을 거쳐 벨리스케스를 만나게 된다. 후안은 그를 주인이라 부른다. 주인은 말이 없는 화가였다. 하지만 마음 깊이 후안을 사랑했다. 후안 역시 주인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섬겼다. 후안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노예가 예술에 종사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았다. 후안은 내면의 열정을 감추지 못하고 주인 몰래 그림을 그렸다. 때로는 주인님의 그림을 베끼기도 하고 수없이 데생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제법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럴수록 마음은 불안했다. 법을 어겼을 뿐 아니라 주인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에. 벨리스케스 화가는 나라의 인정을 받아 궁정으로 들어 가 그림을 그리게 된다. 왕의 자화상을 그리기도 하고 왕의 사냥하는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후안은 시간이 날 때마다 왕의 충성스런 개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왕에게 그림이 눈에 띄게 된다. 그 때 후안은 무릎을 꿇고 빌었다. 왕은 후안의 그림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법을 어긴 노예를 어찌해야 할지 망설이며....후안의 주인인 벨리스케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벨리스케스는 잠시 왕에게 양해를 구하고 무엇인가 쓰기 시작한다.
<나는 오늘을 기하여 나의 종 후안 데 파레하에게 자유를 준다. 그는 이제 자유인으로서의 모든 권리와 명예를 누릴 수 있다. 또한 나는 그를 나의 조수로 임명하며 그에 해당하는 의무와 보수를 그에게 줄 것을 약속한다.>
얼마나 멋진 서약서인가. 자유를 얻은 후안은 지금까지는 가슴을 졸이며 그림을 그렸지만, 진정한 마스터(스승)인 벨리스케스의 화풍을 따라 진정한 예술의 길을 걷는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예술이란 무엇일까. 예술가의 삶은 어떤 것일까. 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벨리스케스에게는 진정한 예술은 말이 아니라 행위라는 점을 배웠고, 후안에게서는 열정을 배웠다.
이 책은 사전 지식 (화가에 대해)을 갖고 읽으면 더욱 흥미가 있을 것 같다. 아무런 정보 없이 책을 읽다보면, 앞 부분이 다소 지루할 듯 싶긴 하다. 하지만 첫 부분만 인내를 갖고 읽다보면, 점점 더 사제지간의 끈끈한 정에 매료될 것이다. 책을 덮는 순간 '관계'의 소중함에 대해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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