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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없는 감정은 팽팽한 압력이 된다. 감당할 수 없는 큰 슬픔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수분의 압력이 되는 것처럼 커다란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는 열기의 압력이 된다. 그러므로 감당할 수 없이 큰 기쁨이나 슬픔, 분노나 그리움 등은 오롯이 감정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차라리 질병에 가깝다. 밖으로 분출되거나 스스로 용해되지 않은 감정은 자신의 몸 곳곳으로 고스란히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감정에 가장 솔직한 이는 시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인은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몸에 오롯이 받아 한 줄 시를 통해 분출한다. 한 시인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한 줄 '시(詩)'로 읊지 못한다면 이 서러운 세상을 어찌 건널 수 있으랴. 나는 이따금 시에서 분출하는 시인의 슬픔을, 분노를, 차마 담지 못한 그리움을, 웃음기마저 지워버린 기쁨을 시인을 대신하여 갈무리한다. 이렇게 나누는 감정의 품앗이가 없었다면 뉜들 세상살이가 그저 쉽기만 할까.
감기
당신이 들여다보는 흑백 사진 속에 내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마주 보았다
당신의 사진 속은 늘 추웠다 기침나무들이 강을 따라 콜록거리며 서 있었다
눈을 뜨면 언제나 설산 오르는 길이었다
간신히 모퉁이를 돌아서도 희디흰 눈발 날카로운 절벽 아래로 툭 떨어지는 가없는 벼랑이었다
얼어붙은 하늘처럼 크게 뜬 당신의 눈을 내다보는 저녁
동네에 열병을 옮기는 귀신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지고 굴뚝마다 연기들이 우왕좌왕 몸을 떨었다
당신은 내 몸에 없는 거야 내가 다 내쫓았거든
내 가슴에 눈사태가 나서 한 시간 이상 떨었다
기침나무들이 몸을 부르르 떨며 눈 뭉치를 떨구자 벌어진 계곡에서 날 선 얼음들이 튕겨져 나왔다
맨얼굴로 바람을 맞으며, 입술을 떨며 나는 얼어붙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당신이 들여다보는 여기에서 나가고 싶었다
김혜순 시인의 시집 <당신의 첫>을 읽었다. 시집을 읽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어서 폐부를 찌르는 시인의 감정이 때로는 나의 심장을 겨누기도 하고, 노을을 바라보던 시인의 시선은 줄곧 빈 허공을 맴돌기도 하였다. 김 시인에게 '시란 불행을 더 불행답게, 슬픔을 더 슬픔답게, 파괴를 더 파괴답게 하는 존재'라고는 하지만 이따금 등장하는 젊은 여자와 늙은(혹은 나이 든) 여자가 사는 이곳은, 발가벗고, 때리고, 엉키고, 뒹굴던 메아리나라. '내가 풍경을 바라보는 줄 알았는데/풍경이 날 째려보고 있었다는 걸 안 순간 질겁했습니다'라고 했던 당신의 고백.
시를 읽는다는 건 허공에 걸린 자신의 조각상을 향해 칼을 겨누는 일이다. 차갑게 식은 그 몸뚱어리에서 뜨거운 피가 솟구칠 리는 없지만 한나절 그렇게 난자하다 보면 어느새 내 눈물이 붉은 피로 변해 흐르고, 내 이웃이 흘린 눈물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삶의 시간들이 뜨거운 숨결의 연속이어야 한다는 것을 시구 한 자 한 자를 되짚으며 깨닫게 된다.
태풍 송다가 비껴가는 일요일 오후. 옷이 비에 젖어 후줄근할지라도 마음만은 언제나 뽀송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손에 잡았던 김혜순 시인의 시집. 장마철인데 나는 마치 황폐한 사막에 다다른 듯 모래바람이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
![]() Photo by 푸른노을
때론 힘들고 때론 우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게 차한잔의 여유와 좋은 사람들이 있어 아직도 서툴기만한 인생에 빛이 되어주는것 같다.
가끔은 퇴근후에 읽는 한권의 시집이 이가을의 나의 벗이 되어준다.
김혜순 시인의 시가 좋은것은 요즘 간드러 지고 미사여구로 치장한 시들이 많아져서(그런시가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님)식상한 면이 많은데 비해서 오히려 때론 공격적 언어구사에 그녀만의 서정적인 표현력이 나를 감탄하게 만들곤한다.
공격적이고 서정적이기도 한 시인의 언어구사는 그녀만의 세상바라보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욕조에 담긴 식은물이 말한다.
나는 대머리지 머리털이 없지 그래서 냄새도 없지 그러나 이제 당신냄새로 이렇게 썩어가지
음악이 말한다.
나는 손이없지 팔도없지 당신 땀구멍까지 다 껴안아줄수는 있어도 당신을 잡을수는 없지
욕조에 담긴 물처럼 당신때문에 내가 썩는다 오디오에 감긴 음악처럼 당신을 감돌고 나온 내가 죽는다.
당신이 나를 다잊어서 내가 죽는다.
본문에서 미쳐서 썩지않아 中 -------------------------------------------------------
일상적이되 결코 그렇지 않은 저런 언어구사를 나도 할수있을까 ? 결론은 그렇지 않다.
내가 가진 감성과 다른 감성이기에 오히려 더 끌리는 지도 모르겠다.
"저도 당신께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시가 나를 깨우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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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사당역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고 에스컬레이터에 실려 올라가서 뒤돌아보다 마주친 저 수많은 얼굴들 모두 붉은 흙 가면 같다 얼마나 많은 불가마들이 저 얼굴들을 구워 냈을까
무표정한 저 얼굴 속 어디에 아침마다 두 눈을 번쩍 뜨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밖에서는 기척도 들리지 않을 이 깊은 땅속을 밀물져 가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하늘 한구석 별자리마다 쪼그리고 앉아 별들을 가마에서 구워 내는 분 계시겠지만 그분이 점지하는 운명의 별빛 지상에 내리겠지만 물이 쏟아진 듯 몰려가는 땅속은 너무나 깊어 그 별빛 여기까지 닿기나 할는지
수많은 저 사람들 몸속마다에는 밖에선 볼 수 없는 뜨거움이 일렁거리나 보다 저마다 진흙으로 돌아가려는 몸을 일으켜 세우는 불가마 하나씩 깃들어 있나 보다
저렇듯 십 년 이십 년 오십 년 얼굴을 구워 내고 있었으니 모든 얼굴은 뜨거운 심장이 굽는 붉은 흙 가면인가 보다 - 김혜순, 「별을 굽다」
지하철역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지하철역을 거쳐 바쁘게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저마다 갈 길이 있고, 저마다 그곳에서 할 일이 있다. 시인은 지하철역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친다. 사람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런 속에서도 시인은 그들 모두 붉은 흙 가면을 쓰고 있음을 알아챈다. “얼마나 많은 불가마들이 저 얼굴들을 구워냈을까”라고 시인은 묻고 있다. 사람들 수만큼 불가마들이 있을 것이다. 불가마에 불을 지핀다고 얼굴이 구워지는 것은 아니다. 온도가 맞지 않으면 제대로 된 얼굴이 구워지지 않는다. 시인은 겉으로는 한없이 무표정해 보이는 저 얼굴들 속에서 “아침마다 두 눈을 번쩍 뜨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라고 다시 묻는다. 붉은 흙 가면을 쓰고 어딘가로 가는 저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지하철역 밖에서는 이 깊은 땅속에서 울리는 사람들의 기척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길을 따라 발을 옮긴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고, 길이 엇갈리는 사람들도 있다. 어딘가를 향해 묵묵히 길을 걷는 사람들을 보며 시인은 저들을 “밀물져 가게 하는 힘”을 거듭 묻고 있다. 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밖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안에서 오는 것일까? 시인은 가마에서 별들을 구워내는 분이 있을 거라고 상상한다. “그분이 점지하는 운명의 별빛”이 지상에 내려와 저리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만들어낸 것일까? 그럴 듯한 이야기지만, 시인은 또 다시 “땅속은 너무나 깊어/ 그 별빛 여기까지 닿기나 할는지”라고 묻는다. 운명의 별빛이 땅속 깊이 닿으리라는 법은 없다. 운명대로 살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그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이 저리 바쁘게 움직이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생명은 시간을 산다. 어떤 경우에도 시간은 멈추는 법이 없으므로 생명 또한 죽음으로 가는 길 위에서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이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앞에 놓인 길을 묵묵하게 걷고 있다. 시인은 “수많은 저 사람들 몸속마다에는/ 밖에선 볼 수 없는 뜨거움이 일렁거리나 보다”라고 쓰고 있다. 그분이 가마에서 구워낸 별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몸속에서 뜨겁게 일렁거린다. 밖에서는 볼 수 없는 이 뜨거운 힘으로 사람들은 “저마다 진흙으로 돌아가려는 몸을 일으켜” 세운다. 진흙은 “붉은 흙 가면”이 만들어지는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진흙이 없이 붉은 흙 가면은 만들어질 수 없다.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욕망은 죽음을 향한 욕망과 다르지 않다. 시간을 사는 삶이란 종국에는 죽음과 이어져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죽음을 넘어 다시 생으로 돌아가려는 애타는 열망 또한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셈이다.
저마다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속에 불가마 하나씩을 지니고 있다. 불가마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그럼 어디서 오는 것일까? “모든 얼굴은 뜨거운 심장이 굽는 붉은 흙 가면인가 보다”에 이 질문에 대답하는 단서가 나와 있다. 뜨거운 심장이 진흙으로 붉은 흙 가면을 굽는다. 심장이 멈추면 생명 또한 멈춘다. 심장이 뛴다는 건 곧 생명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쉼 없이 뛰는 심장이 불가마를 뜨겁게 한다. 십 년을 뛴 심장은 십 년을 산 얼굴을 만들어내고, 오십 년을 뛴 심장은 오십 년을 산 얼굴을 만들어낸다. 지하철역을 오가는 무표정한 얼굴 속에 드리워진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가. 사람들은 뜨거운 심장이 내뿜는 이 열기로 운명의 별빛이 닿지 않는 땅속에서도 물이 쏟아진 듯 어딘가를 향해 몰려간다.
이 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운명의 별빛이 미치지 않는 장소에서 생명 스스로 얼굴을 구워내고 있다는 대목이다. 인간은 타고난 운명을 거부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운명에 철저하게 매인 삶을 사는 존재는 아니라는 말이다. 십 년을 살아도 오십 년을 산 얼굴을 한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오십 년을 살아도 십 년을 산 얼굴을 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뜨거운 심장이 불가마에 불어넣는 기운이 어떤가에 따라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한없이 달라진다. 시인은 모든 사람들이 지닌 붉은 흙 가면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얼굴’에 주목한다. 붉은 흙 가면이 표현할 수 없는 자리에 뜨거운 심장이 만들어낸 얼굴이 숨어 있다. “그분이 점지하는 운명의 별빛”이란 어찌 보면, 겉으로는 쉬이 드러나지 않는 이 얼굴을 가리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같으면서도 다른 붉은 흙 가면이 보여주는 이 얼굴이 참으로 이채롭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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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의 시는 처음 읽는다. 기억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표제작 '첫'을 어디서 읽어봤는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속의 시와 시집 안에 있는 시가 같은 시인지는 잘 모르겠다. 기억 속의 그 시 '첫'을 떠올리며 그리고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영화 카피를 떠올리며 '당신의 첫'을 들었다.
"첫처럼 매정한 것이 또 있을까. 첫은 항상 잘라버린다. 첫은 항상 죽는다. 첫이라고 부르는 순간 죽는다. 첫이 끊고 달아난 당신의 입술 한 점. 첫. 첫. 첫. 첫."
'첫'의 일부
처음이라는 건은 매우 순간적이고 상징적인 것이다. 첫이라는 그 시간이 지난 이후로는 첫이 아닌 과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과 함께 사라져 마는 것이 아니라 첫이라는 것으로 표구되어 잊혀지지 않을 상징으로 남는다. 시인은 첫이 가지는 의미의 강렬함과 반드시 소멸하고 마는 순간을 노래한다. 첫, 첫, 첫, 첫 하는 터지는 듯한 음성으로.
"욕조에 담긴 물처럼 당신 때문에 내가 썩는다 오디오에 담긴 음악처럼 당신을 감돌고 나온 내가 죽는다
당신이 나를 다 잊어서 내가 죽는다
목까지 찬 냄새나는 물이 썩는다
그래 여기선 결국 시궁창의 승리! 시의 궁창이요! 만만세여! 발 아래 터널이여!"
'미쳐서 썩지 않아' 일부
비유가 간결하여 매력있게 느껴졌다. '욕조에 담긴 물, 음악처럼 당신을 감돌고 나오는' 이란 표현이 눈에 띈다. 거기에 시인의 말 부분에 있었던 표현 시궁창, 시의 궁창이라는 말놀이가 재미있다. 이런 표현은 뒷부분에서도 또 나오는데 물끄러미라는 말을 물 꾸러미로 다시 표현하는 등이 인상깊다.
"감기
당신이 들여다보는 흑백 사진 속에 내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마주 보았다
당신의 사진 속은 늘 추웠다 기침나무들이 강을 따라 콜록거리며 서 있었다
눈을 뜨면 언제나 설산 오르는 길이었다
간신히 모퉁이를 돌아서도 희디흰 눈밭 날카로운 절벽 아래로 툭 떨어지는 가없는 벼랑이었다
얼어붙은 하늘처럼 크게 뜬 당신의 눈을 내다보는 저녁
동네에 열병을 옮기는 귀신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지고
굴뚝마다 연기들이 우왕좌왕 몸을 떨었다
당신은 내 몸에 없는 거야 내가 다 내쫓았거든
내 가슴에 눈사태가 나서 한 시간 이상 떨었다
기침나무들이 몸을 부르르 떨며 눈 뭉치를 떨구자 벌어진 계속에서 날 선 얼음들이 튕겨져 나왔다
맨얼굴로 바람을 맞으며, 입술을 떨며 나는 얼어붙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당신이 들여다보는 여기에서 나가고 싶었다."
당신이 들여다보는 사진 안에 내가 있고 사진 안의 내가 당신을 응시하는 마주 봄을 이야기한다. 세계가 이원적으로 표현되는 점이 좋았다. 사진 안에 담겨진 세계가 그 순간을 응고시켜 놓은 한 장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실제로 사진 한 장에는 그 순간이 아니라 그 날부터 시작되는 기억의 필름이 이어지고 있다. 당신이 들여다보는 여기에서 나가고 싶다는 마지막 행은 기억이나 추억이 아닌 실제의 인물로 존재하고 싶다는 뜻으로 느껴진다. 재미있다.
"간이역도 말을 한다는 거 열이 나서 땀 흘리며 잠에서 깬다는 거 깊은 밤 철교 위로 산책도 한다는 거 어두운 나무 밑에 스러져 울기도 한다는 거 술집 구석 자리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척한다는 거 전화를 해도 받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거"
'트레인스포팅' 일부
간이역과 같은 사람들, 존재하나 잊혀진 사람들, 빛났으나 스러진 사람들, 오롯하지 못한 사람들, 곧 스쳐지나칠 사람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것은 나일수도 있고, 내가 아는 누군가일 수도 있고, 알지만 기억나지 않는, 어쩌면 모든 이들이 그러할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내면에 간이역같은 우수를 간직하고 있다. 아주 서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읽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우리에게는 때로 인간이라서 느끼는 소외가 있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 슬픈 노래를 부르면 컵의 물도 슬퍼지고 변기의 물도 슬퍼지고 꽃대궁 속으로 쿨럭거리며 올라가던 꽃병의 물도 슬퍼지고 입속에 물을 가득 품은 채 참고 있는 수도꼭지 속의 물도 슬퍼지고
창밖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보고 날아오른다고 하지 마라 그건 내가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한없이 떨어지고만 있는 것이니 天空 滿空에 떨어질 줄밖에 모르는 대지를 타고 가는 것이니"
'당신 눈동자 속의 물' 일부
시인의 시 대부분이 썩 마음에 닿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는 시작부터 좋았다. 내가 슬픈 노래를 부르면 내 주변의 모든 물들도 함께 슬퍼진다. 그들은 슬프지 않을지 몰라도 내가 슬프면 세상 모든 것이 슬프게 느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내 슬픔에 주위를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일을 표현한 것 같다.
이어지는 연도 날아오르는 것은 사실 내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내 본위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눈을 일깨우는 것 같은 부분이다. 내 눈으로 세상의 흐름을 훑어 바라보나 기실 세상의 눈으로 내 모습을 좇아야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이다. 뒤로도 좋은 느낌으로 읽혔으나 마지막 연에서 시가 주던 아름다움이 다소 덜해진 것 같아 아쉬웠다.
"갓 결혼한 제자 둘이 남편들을 데리고 나타나서는 한 사람은 제 남편을 오빠라 하고, 한 사람은 제 남편을 아빠라 부르니, 나는 그만 징그러워. 얘들아 촌수 시끄러워 나 먼저 간다, 할 수밖에 없었어."
'쌍비읍 징그러워' 일부
이 시는 꽤 재미있다. 쌍비읍이 있는 아빠, 오빠, 예뻐, 기뻐, 빨래도 싫다고 한다. 읽다보면 투정같기도 하고 마치 이야기같기도 한 서사적 느낌이 난다. 쌍비읍이 싫다고 하면서도 표현마다 쌍비읍이 들어가 있는 점도 말놀이 느낌도 난다. 거기에 화상 입은 상처에 검은 깨 뿌린 것보다 더 징그러운 쌍비읍이라는 부분은 현실적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거기에 예전 어떤 노인이 지나가는 투로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던 아줌마가 있기에 오빠랑 결혼했냐고 물으며 세상에 남편을 오빠나 아빠라고 부르는 법은 없는 것이라 재우쳐 주었단 얘기를 들은 것이 기억났다. 시인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남편이면 남편이지 아빠나 오빠라니 징그럽고 촌수 시끄러워 자리를 피했다니. 전엔 그런가보다 넘어갔는데 두 번 들으니 정말 안될 말 같게도 느껴진다. 이 아리송함.
대부분의 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시를 읽을때 호불호를 가르는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너무나 상징적이고 은유적이어서 그런 이유가 있고 비슷한 이미지가 반복되어 나타나서 그렇기도 하며 약간 80년대 식의 소녀스러움이 느껴지는 문체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어가 주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는 시어들이 가끔 있었다는 점도 그렇다.
시를 읽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마치 소설처럼 그림을 그려나가는 일을 하는데 장면이나 구성이 없는 추상적인 생각의 흐름을 담아놓은 것 같은 시들이 많아 다소 난해했다. 거기에 쥐나 자궁, 출산 등의 시어가 여러 시에서 나타나는데 이런 시어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난 것도 난해함과 더불어 왠지 모를 섬뜩함이 느껴졌다.
또 하나는 가위처럼 걷는 여자, 그 가위로 아이를 끊어내는 여자에 대한 표현을 보면서 가위가 갖는 특성, 서로 맞물려 닿으면서 단절을 일으키는, 연결되며 잘라내는 독특함을 아름답게 표현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다. 그 점을 재미있게 생각하는데. 더불어 ~까요 등으로 끝맺는 각 행을 접할 때면 일상적이지 않은 느낌이 든다. 80년대 느낌이라는 편견일 수도 있는데 그런 느낌이 든다. 좀 더 담백한 느낌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좋았던 시의 전문.
"은밀한 익사체
그가 모는 자동차는 자궁 속 같아 자궁 속에서 햄버거를 먹고 맥주를 마시는 맛! 침을 흘리며 잠들다 후루룩 라디오 소리 들이마시며 잠에서 깨어나는 맛! 레이스 이불처럼 들쭉날쭉한 풍경을 끌어다 덮고 돌아눕는 맛!
라디오에선 작은 방송국에서 편집한 고래의 신음이 흘러나오고 길 위의 자동차들은 모두 각기 다른 전파를 수신중이지 저 고래는 바다에서 그 막대한 물을 어떻게 견디고 있었을까 잠수함의 음파에 맞은 희디흰 고래 한 마리 해안으로 떠밀려오는 듯
먼 옛날 나의 시간이 시작되기 전 그 옛날 엄마의 뱃속은 참 시끄러웠지 교통의 요지였다니까 창자속으로 살수차들이 미끄러져 가고 나면 핏줄 위로 출근 전차가 지나가고 콸콸콸 흐르는 오줌 강물 위로 유람선이 부웅 기적을 울렸지
내 선잠 너무 아득한 대평원에 두 마리 코끼리 서로 멀리 떨어져 교신하듯 우리는 소리 내지 않아야 들을 수 있는 저주파 목소리로 말하지 말아야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런 맘 나누고 가네 마치 눈 내리는 밤 트럭 운전수들의 무선 교신처럼 우리는 다른 행성을 운행 중인 사람에게 말하듯 그렇게 입 다물고 말하네
그가 모는 자동자는 자궁 속 같아 자니? 하고 물으면 안 자! 하고 탯줄을 더듬으며 뒤척이다가 운전대를 잡은 그의 손을 엄마! 엄마! 속으로 부르며 깨물어 먹다가 발치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양수의 파도에 떠밀려 나 혼자 저 멀리 멀어지는 맛!
그의 몸을 도는 진한 피에 실려서 어두운 태중에 둥둥 눈 감고 가는 맛! 다른 세상으로 서로 멀어져가며 두 마리 코끼리처럼 교신을 나누는 맛! 세상 밖으로 큰 눈 뜨고 운전해 가는 한 시간짜리 새엄마의 뱃속에 둥둥 떠가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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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차마 맺지 못하는 말이 있다.
누군가의 마음에 아주 작은 빗방울 무늬 남기고 싶어 조심스레 입을 떼는 말.
'관심'의 '과'에서 아주 긴 사이를 두고 자음 'ㄴ'을 겨우 붙인 다음 '심'자는 오늘이 지나 내일이 되어도 잇지 못한다. '좋아해'는 '조'에서 혀는 머물고, 다음 음절로 넘어가는 것을 주저한다. '사랑해'는 이미 흔한 말이라 입에 익숙하지만 그 대상을 밝히지 못할 때가 있다.
『당신의 첫』은 내 안의 맺지 못한 말이 생각나는 그런 시집이다. 제목이 주는 느낌 때문일 수도 있다. 당신의 첫, 그 다음에 이어질 것이 불러일으키는 무한한 상상 때문에.
모든 시를 연애시로 읽어버리는 우를 범하는 나의 오독이 이 책에서는 쉽게 적용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내 안의 맺지 못한 말이 연애나 사랑에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의 첫>이 전하는 정서는, 어딘지 모르게 상처와 죄의식을 건드리는 면이 있다. 어딘가 잔혹하게 사람을 몰아부쳐서 꼼짝 못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누가 쪼개놓았나 윗눈꺼풀과 아랫눈꺼풀 사이 바깥의 광활과 안의 광활로 내 몸이 갈라진 흔적 그 사이에서 눈물이 솟구치는 저녁
- <지평선> 중 일부
지평선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시. 이 시가 단지 비유만 택한 것은 아니다. 지평선이라는 객체가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윗눈꺼풀과 아랫눈꺼풀, 또 내 몸이 갈라진 흔적 덕분이다. 갈라졌다니, 지평선이, 세상에! 그렇게 내 몸을 가르고 들어오는 지평선에서 나는 붉은 살점 같은 오래된 상처 하나 살짝 본다.
그리고 그때 당신의 첫은 끝, 꽃, 꺼억. 죽었다.주 긋 다. 주깄다. 그렇게 말해줄까요? - <첫> 중 일부
화자는 의문문의 형태로 자신의 뜻을 전해버린다. 당신의 첫이 죽었다, 고 말해 줄까 하고선. 상실이다. 상실이 아닌 것처럼 슬쩍 말하지만 이미 상실이다. 시인의 이런 화법은 읽는 사람을 (문학적으로) 당황하게 만든다.
우리는 자라서 아버지를 길렀다 당연히 빗자루로 쓰려고 (...)
그리고 나는 따뜻한 아궁이 속에다 아버지를 길렀다 당연히 잡아먹으려고 -<Delicatessen> 중 일부
죄의식이다. 낳아주고 길러준 것들에 대한 죄의식. 관계에 내재한 잔혹함을 너무 솔직하게 밝혀버렸다. 아닌 척했던 나는 잠시 휘청인다. 이 언어들의 공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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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서정성이 좋아 시를 읽는다. 그 서정성을 잘 살리는 구절도 있다.
땅이 아파 나는 못 걷겠네 하늘이 아파 나는 숨도 못 쉬겠네 몸속을 도는 피가 아파 나는 못 살겠네 - <붉은 노을> 중 일부
햇빛이 몇억 년 고았다는 열쇠 같은 저 초승달이나 쳐다보자 - <연금술> 중 일부
내 몸은 밤으로 누수되어 들어온 대낮 아니면 꿈보다 더한 불면 - <비명생명> 중 일부
시를 읽다 이렇게 만나는 구절들. 못 살겠는 그 마음에 운율을 부여해 살고 싶게 만들고 초승달을 보며 햇빛을 더불어 떠올리고 내 몸이 겪는 불면의 고난에서 환한 낮의 그림자를 본다.
시에 담긴 정서는 "말하지 말아야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런 맘" 그러니 말을 줄인다.
현대시의 한 경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작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