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의 제시
지난 몇 개월 동안 배낭여행 경험담을 들으면서 사진첩 몇 권으로 남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들은 특히나 사진에 대한 집착이 강했는데 사진에 찍힌 곳이 어떤 곳인지 모조리 외우고 있었다. 그들은 관광지에 도착하기까지 어떤 험난한(?) 길이 있었는지를 장황하게 늘어놓고 관광지에 가는 길이거나 부근에 어떤 음식점, 쇼핑점에 대해 자세하게 늘어놓았다. 물가의 비교가 이어지고 관광지에 대해 간단한 감상으로 그들의 여행이 진실이었다고 항변했다! 그들이 찍어온 사진은 현지의 건축물과 건축물 앞에 자신이 서 있는 내용이 전부였다. 과연 이들은 여행을 제대로 하고 온 것인가?
그들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스스로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었으며 경제적 자생력, 경쟁력, 분별력 등의 중요성을 깨닫고 온 사람도 있었다. 유럽과 백인에 대한 컴플렉스만을 키워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분히 감상적인 태도의 사람도 보았으며 낭만적인 꿈만 부풀린 사람도 보았다. 변화된 것이 무엇이든 분명히 그들에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다.
최소한의 변화는 언제나 보장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공간과 시간을 벗어나 전혀 의지할 곳이 없는 곳에서 불안한 며칠을 보내는 일은 분명 존재 전체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낯선 것에 대해 느낄 수 있는 놀라움, 즐거움부터 발이 허공에서 허우적대는 불안감, 두려움까지 경험해 볼 것이다.
아마도 여행에 대한 자세가 어떤 것인지 최소한 여행 선배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분명히 해 주어야 한다. 어떤 마음에서 출발하여 어떤 마음으로 돌아왔는지를 말해주어야 한다. 여행책자도 이 점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선배 여행자가 썼기 때문에, 특히 경험한 내용을 글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점은 분명해야 한다.
아마도 여행 책자는 이제는 정보를 제시하는 가이드북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숙박, 음식, 교통, 쇼핑 정보는 오히려 인터넷이 더욱 따끈하고 양도 많다. 여행을 대하는 마인드는 결국 개개인의 인생관, 세계관이다. 어떤 여행을 다녀왔는가는 지금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와 동어반복이다. 여행지에서 안심하고 따를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에 다채로운 경험과 지식이 녹아들어 있는 책자가 필요하지 않을까?
아직 섣부른 감이 있지만 이 책 ‘유럽아이’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아직은 기존의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지만 곳곳에 감초처럼 숨어 있는 깊이 있는 내용들은 다른 책들과 분명 달랐다. 저자들이 직접 느꼈을 여행지에 대한 감상과 함께, 문화에 대한 접속까지 시도한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대학에 입학하면서 갑작스레 주어진 자유가 당신을 편케 하지는 못했다. 탈출구를 찾아서 주정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가슴 한 구석을 짓누르는 답답함은 도무지 가시지 않는다. 2달 가까이 주어진 방학조차도 당신은 어떻게 보낼지 모른다.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다 넓은 세계가 주어진 것은 확실한데 딛고 있는 토대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당신은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 것이다. 떠나라, 가능한 신속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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