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대문운동장에서 종로 6가 쪽으로 가기 위해 지하도 층계를 오르다 보면 한 쪽 팔이 싹둑 잘린 사람이 한쪽에 위태롭게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때는 불편한 자세로 누워 있기도 하고 어느 때는 한 손을 내밀고 텅 빈 눈빛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어느 때는 염불을 외우듯 중얼거리기도 하고 어느 때는 생기가 도는 낯빛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내왕이 잦아 생기가 도는 낯빛을 자주 볼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불황이 계속되다 보니 사람들이 그이를 제대로 보지 못한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하도 층계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온전히 보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반면 소중한 것을 보는 이도 있습니다. 『지하도에서 만난 토째비』의 순미가 그렇습니다. 순미는 환경 미화원이신 아버지 생신 선물을 사기 위해 시장을 몇 바퀴 돌다 지하도 층계 중간에 꿇어 엎드린 아이를 만납니다. 아이는 부처님께 절을 하듯 무릎을 꿇고 몸을 바닥에 엎드린 채 손바닥을 하늘로 벌리고 있습니다. 지나가던 어떤 아저씨가 아이 손바닥에 동전 한 닢을 놓아주자 파란 빛덩이 하나가 아저씨 등에 따라붙어 매달려 갑니다. 엎드린 아이의 가슴에서 파란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어요. 파란 전구를 가슴에 품고 있는 것 같았어요. 마침 어떤 언니가 자기 엄마랑 지나가면서 아이 손바닥에 동전을 넣어 주었어요. 그러자 아이 가슴에서 파란빛이 한 덩이 떨어져 나와 그 언니 등에 따라붙어 매달려 갔어요. 틀림없었어요. 민달팽이처럼 몸을 엎드린 채, 아이는 사람들이 동전을 줄 때마다 품안의 빛을 한 덩이씩 나누어 주고 있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몰랐어요. (27 - 28쪽) 사람들이 거름더미 피하듯 아이를 피하지만 실상 아이는 사람들에게 품안의 빛을 한 덩이씩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아이에게서 어떤 빛의 기운을 감지하고 동전 한 닢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조차 아이에게서 나오는 빛을 온전히 볼 수는 없습니다. 그 빛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온전하게 하는 성스러운 빛일 텐데 말입니다. 그렇지만 성스러운 파란 빛을 가슴에 품기 위해 꼭 돈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하루에 한 가지씩』의 조거미처럼 말입니다. 조거미는 ‘조재희’라는 본명보다 ‘조거미’라는 별명이 더 알려진 도둑이었습니다. 조거미는 밧줄 하나만 있으면 아무리 높은 아파트라도 타고 내려가서 창문을 뚫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집 창문으로 들어가려다 그만 땅으로 떨어집니다. 예정보다 빨리 저승에 간 조거미는 염라대왕에게 이승에서 하루에 한 가지씩 착한 일을 해야 한다는 죄 닦음의 기회를 얻습니다. 죄 닦음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쓰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날마다 보는 이웃들에게 먼저 인사도 합니다. 고개를 낮추고 하찮은 은혜라도 진정으로 고마워합니다. 여러 방법으로 성스러운 빛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밝은 눈으로 볼 때 눈이 시리게 파란 빛덩이를 주는 존재는 세상 곳곳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너는 누구세요?”라는 철학이 담긴 질문을 하며 역 앞을 떠도는 아이(『당신은 누구세요』), 주홍부전나비 애벌레에게 기꺼이 자신의 몸 일부를 맡긴 소루쟁이(『소루쟁이 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바동거리는 꽃들 속에서 자신을 지키며 모든 목숨의 가치는 같음을 역설하는 씀바귀(『순교자 씀바귀』), 전봇대 위에 살며 해받이 마을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까치 부부(『까치와 총각』) 같은 존재가 그렇습니다. 또한 시장 한쪽 외진 곳에 자리를 잡고 푸성귀를 팔며 여러 성씨의 아이들에게 같은 성씨라며 사랑을 전하는 할머니(『종씨 할머니』),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목숨을 잃은 성복이 아버지(『황금 잉어』)도 그런 존재입니다. 빛나는 존재들을 죄밑(죄로 말미암은 속마음의 불안), 뇌꼴스럽다(보기에 아니꼽고 못마땅하다), 간종그리다(가닥가닥 골라서 가지런하게 하다), 뱌빚거리다(비비적거리다의 작은 말), 떠세(젠 체하며 억지를 쓰는 짓), 뼛성(갑자기 일어나는 짜증) 따위 재미있는 말과 깨끗한 문장으로 만나는 시간은 내내 즐겁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