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단 내 얄팍한 눈으로는 이 영화를 비단 일본 문화의 총화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그리스 신화 전도사인 이윤기 아저씨의 말대로 이 영화 또한 수많은 유사신화의 보고이지 화려한 천국이니 말이다. 처음으로 치히로는 커다란 대문 앞에서 능글 맞게 웃고 우는 양면상을 만나고(야누스?) 두번째로는 소멸되기 직전에 하쿠의 도움으로 그 세상의 음식을 먹고 존재하게 되지 (그리스 신화에서 하데스의 아내가 된,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 헤르메스의 잔꾀로 석류 몇알을 먹고 그 알 수 만큼 저승에 머무는) 세번째로는 낮에는 평지였다가 밤이 돌아오면 물이 차올라서 강이 되어버리는 온천장 앞의 벌판 (말 그대로 강이 이승과 저스의 갈림길 임을 상징하는 상투적 은유다. 스튁스 강, 레테의 강, 요단강, 불교의 강 건너 언덕 피안......) 네번째로는 수많은 재물을 쌓아두는 온천장의 주인, 마녀 유바바 (저승의 왕 하데스의 별칭은 부유함과 풍요를 뜻하는 플루토라고 하지?) 다섯번째로는 이름을 가짐으로써 그 사람을 지배하는 유바바의 힘 (고대 로마인들로부터 교황들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힘을 저주로부터 지키기 위해 아무도 모르는 로마의 비밀이름을 숨겨뒀다는 이야기) 여섯번째로는 항상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감에의 끈질긴 인식. 이를테면 제니바를 만나러가는 센에게 어리버리하다고 했던 말을 취소한다고 외치던 린. (누구라도 스튁스 강에 맹세를 하면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는 류의 자신의 말에 대한 강한 의식) 일곱번째로는 어린 시절 치히로가 신발을 빠뜨렸던 강에 살던 용이 바로 하쿠였다는 기억을 떠올린 후에 치히로와 하쿠가 바다 위를 비행할 때 신발 한 짝이 바다 뒤로 떠내려가는 것이 보인다. 그 신발은 분명 치히로가 처음에 신었던 신발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미야자키 감독이 일부러 둘의 옛 인연을 강조하기 위해 삽입한 것이라고 봐야할 듯 (이윤기 아저씨가 그의 그리스 신화책 첫머리에서 운운했던 강에서 한 짝 신을 잃고 내려온 외짝신 사나이, 이아손과 같은 치히로와 하쿠의 인연. 결국은 신발 한 짝이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 운명으로 이끈 셈이다. 그것도 강에서 잃어버린 신발이 말이다. 적어도 이 장면만큼은 그리스 신화에서의 모티프가 상당히 농후하다고 해야할 듯.) 여덟번째로는 다시 돌아가는 치히로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라던 하쿠의 충고 (역시 상투적인 저승의 금기다. 성경에서 나오는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어느 여인의 이야기(저승은 아니었지만), 결국은 고개 한번 잘못 돌렸다가 아내를 도로 잃고 만 오르페우스과 에우리디케의 이야기 등......) 마지막으로는 치히로의 조력자 중 한명이었던 가마지기 할아범 (치히로나 하쿠가 그를 처음으로 만나서 그를 통해 온천장의 일원이 됐음을 생각한다면 머리와 손만 바꿔서 저승의 문지기 개, 머리 3개가 달린 케르베로스를 연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성격 괴팍하기로 유명한 저승의 뱃사공 카론이나. 물론 이 이야기는 내가 이 영화에 취해서 2번씩이나 본 나머지 내 머리속에 있던 온갖 잡동사니를 엮어낸 결과랍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전에 슈렉을 보면서도 여러가지 많은 생각이 있었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선량한 디즈니와 마야자키에 길들여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증거일까? 하지만 적어도 변함없는 이야기에는 그래야만하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유치한 미야자키가 바람의 계곡의 나우시카 같은 노골적인 자연보호 캠페인을 벌인 후에도 오늘의 우리는 그 쉬운 이야기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는 건 이제는 그 모든 메세지를 다양한 은유로 곱게 포장한 센과 치히로를 더이상 교훈적이라고 비난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더구나 이 영화는 그러한 교훈적이고 미야자키 개인의 원칙(?)과도 같은 몇몇 주제와 일본인 특유의 사상 외에도, 다양한 관점의 이동을 통한 여러가지 주제를 지니고 있다. 나이 60이 넘어 원숙미를 지니게 된 거장 미야자키의 여유로운 도량이 드러났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의 메세지만을 일방적으로 주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나나 안노 히데아키 같은 사람은 그런 도량이 없었던 과거의 미야자키를 싫어했었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이 작품이 강조한다는 일본 문화의 특수성마저도 결국은 판타지라는 하나의 포장에 불과할 뿐 중요한 알맹이는 우리가 각자 자신의 교훈을 찾아가는 가운데 있는 것이라고 해야할 것이며 내가 찾은 교훈은 한편의 에니메이션에 녹아들 수 있는 앞에 든 아홉개의 다양한 변용과 같은, 절대로 단순하지 않은 은유와 이야기 구조 전체에 충실히 흡수된 인문학적인 지식의 힘이었다. 이런 눈으로 바라본, 작년 이맘때 했던 슈렉은 분명 시의적절한 장면에 재기 넘치는 유머를 빚어낸 영화인 것은 사실이라해도, 그 영화의 메세지는 내가 센과 치히로에서 느낀 이 희한한 감상과는 달리 단 하나일 수 밖에 없다. 전통과 고정관념의 전복. 분명 단순하고 쉬운 주제는 아니지만 그 외의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왠지 결승점에 채 이르지 못한 달리기와 비슷했다고 말하고 싶다. 굳이 내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그렇게까지 엽기발랄하게 보여주지 않아도 이미 깨질만큼 깨진 디즈니의 환상이요, 아름다움에의 꿈인데 오히려 이젠 그 고정관념 파괴의식이 일종의 강박관념같아서 더 식상했다. 이건 물론 내가 싫어하는 이문열의 의견과도 상통한다는 점에서는 스스로도 불쾌하긴 하지만(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권선징악적 결말이라던가) 그럼 치히로는? 난 그 10살짜리 소녀에게 세상에는 결승점이 존재한다는 잔인한 사실까지 알려주고 싶지 않다. 그 아이는 온천장에서의 며칠 동안, 그아이는 결승점 따위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걷고 뛰고 할 수 있는 제 몫을 하는 인간이 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부러울 정도로.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서 처음에 배가 강에 도착하면서 온갖 신들이 배에서 내리던 장면과 치히로가 가마 할아범을 만나러 갈때 계단에서 뛰어내려가던 장면, 그리고 역시 치히로와 하쿠의 옛 인연이 밝혀지는 장면이 아주 맘에 들었다(사랑의 인연은 끊어질 수 없음을 보여줬으니까). p.s 이 영화의 또다른 백미는 역시 10살 짜리 소녀의 목소리를 훌륭하게 보여준 성우의 힘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난 이름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