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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지인으로부터 마광수씨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 때만해도 누구길래 저렇게 논란의 대상이 될까 싶었다. 그리고 성씨가 특이하다는 생각을 한 정도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그의 책 <즐거운 사라>가 검열로 인해 출판 정지가 되었으며 그도 직장에서 퇴출되었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책을 접한 적도 관심있게 본적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참 무딘 것 같다. 논란의 대상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마광수씨의 책으로는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라는 이 책이 처음 보는 것이다. 문화 비평집이라 표지에 써있다. 어떤 문화를 비평했을까? 사랑에 관한 이야기겠지 정도의 미진한 상상력으로 책을 폈다.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은 본인의 견해가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할말이 많았나 보다.'라는 느낌도 들었다.
봉건시대의 잔재들, 그리고 예술과 문학에 대한 불명확한 제재에 대한 불합리성을 주로 말한다. 끊임 없이 물어본다. "도대체 예술과 외설의 차이가 무엇일까?" 예술과 외설에 대한 상투적인 구별법은 성을 아름답게 묘사한 것은 예술이고 추악하게 묘사한 것은 외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말한다. "외설이냐 예술이냐 하는 문제는 논쟁이나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 중세기적 흑백논리에 의한 단죄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예술과 외설의 잣대는 개인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사회의 공통된 공감대라는 것으로 그것을 재단하려 하지만 그 공감대의 기준점을 누가,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 왜 정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것에 대하여 저자도 의문을 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아마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겠지 싶다. 논란의 대상에 이제는 조금은 관심을 기울이며 나의 생각도 정립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인용했던 저자의 90년 초 글들을 썼던 당시의 시대와 지금은 또 달라진 면이 많다. 95년도에 '즐거운 사라'가 상고심에서 상고 기각 판결을 받음과 동시에 연세대에서 해직되고 시간 강사로 되었는데 그 뒤로 여러 권의 책이 나왔다. 운명, 불안, 성애론, 시학, 사랑의 슬픔,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자궁 속으로, 자유에의 용기, 인간,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문학과 성, 마광수 살리기,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광마잡담, 로라, 야하디 얄라숑, 삐딱하게 보기, 마광쉬즘, 빨가벗고 몸 하나로 뭉치자, 나는 헤픈 여자가 좋다, 이 시대는 개인주의자를 요구한다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책이 나온다.
여러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공간 마련은 있어야 한다. 억압하면 폭발하는 건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많은 책이 나온 만큼 억압되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케 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이런 저런 사람의 견해가 있었다'라고 총체적으로 기술될 수 있는 세기이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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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만났을때 이런 물음을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사랑과 불륜의 차이는 무엇인가? 라고 말이다. 이 두가지 단어의 차이란 어떤 것일까? 였는데..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사랑과 불륜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흔히들 결혼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나는 불륜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 마광수 님은 그런 시선으로 사랑과 불륜을 보지 않는다고 한다. 결혼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또한 사랑이고. 나쁜 시선으로 보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 인간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외국의 어떤 사람이 자신의 아내를 친구가 욕심을 내서 섹스를 하고 서로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남편은 이혼을 하면서 그 두사람을 환영해 주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는데, 마광수 작가는 그것을 좋은 시선으로 보았으며, 사랑은 시작과 동시에 이별이며, 한남자와 한 여자만 평생 사는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는 시선으로 이 책의 내용을 이끌어 가고 있다. 조금은 그런 마광수 작가의 표현이 한국의 인식에 박혀 잘못된 시선으로... 조금은 비난의 시선으로 보여지기도 하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만의 생각이 있는 것이겠거니.. 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사랑과 불륜에 대한 이야기 그것 뿐만이 아니라. 마광수 작가의 문화에 대한 비평집이다. 제목을 차라리 <마광수 문화비평집>이라고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마광수 작가의 정치에 대한 의견. 문학에 대한 그의 시선. 그리고 그 자신이 그동안 펴 낸 책들에 대해 심의가 들어온 것에 대한 그의 비난섞인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그리고 김용옥.안성기.이어령.노태우.중광.그의 제자였던 강리나 에 대한 그의 비평도 함께 실려있다.
누구의 시선도, 비난도 눈치 보지 않고 쓴 마광수 작가의 솔직한 책이었다. 나 같았다면 그렇게 속내를 다 보여주는 이런 책을 쓰지 못했으리라..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고. 어린 여자가 좋다. 라고 말하는 마광수 작가. 여성들의 비판이 쏠릴만도 하지만 솔직한 그의 고백에. 비평에. 박수를 쳐 주고 싶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라는 책이 생각났었다. 그 책또한 한 평생을 한여자와 한 남자가 사는것은 인간적이지 못하다고 했었는데 말이다.. 밤에는 의사의 아내로서 그리고 낮에는 매춘부로 일했던 <대낮의 미녀>속 세브린느 처럼 쾌락을 느낀 그녀는 잘못한 일이 아니라고... 성적 만족은 개인에게는 행복한 삶의 원동력이 되고 사회적으로는 굳건한 안정과 사회발전을 이룩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내게는 조금 충격적인 책이었다.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 모든 사랑에 변태도 없다. 모든 사랑에 퇴폐도 없다. 사랑은 '순간을 연소시키는 것'이다. 거기엔 아무런 조건도 규약도 제도도 개입하지 못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이를 먹으며 늙어갈수록, 그리고 뼈저린 고독과 소외감을 느끼게 될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지적 성숙'이 급속도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지'는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나 정신우월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신과 육체를 두루 꿰뚫는 사려깊은 통찰력에 가깝다. 노탐에 따른 속물적 출세주의나 성적 허기증에 따른 종교적 신비주의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사람은 누구나 '지적 성숙'을 이루어 낼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끊임없이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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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집.
나는 마광수라는 사람을 몰랐다. 이 책의 한 반쯤을 차지하고 있는 80년대의 정치상황이나 옛날 영화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을 제법 흥미롭게 읽은 것은 마. 광. 수. 라는 사람의 독특한 사고방식 때문이다.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이 있다. 세상은 넓고 그 세상을 천태만상의 사람들이 이루고 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 이 마광수라는 사람도 나름의 철학이 있는 것이다. 나는 작가가 싫다고 단정짓는 회색분자 중 하나일 것이다. 어중이떠중이처럼, 이 얘기도 옳고 저 얘기도 옳고 정작 내 얘기는 없고... 하지만 그가 말했듯, 문학이고 예술이고 학문조차도 이념이나 철학보다는 취향과 호불호에 좌우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내가 감히 나의 잣대를 당신의 책에 들이대보겠다는 거다.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거나- 뭐 아무튼 이 책은 참 흥미롭다.
BGM은 자우림의 카니발아무르가 어떨까.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어째서 단 한 사람만을 만나서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랑들 중에 한 가지 사랑만을 해야하나요" 어제의 사랑으론 행복하지 않다는데, 모두가 so cooool하게 질척이지 않고 산뜻하게 헤어질 수 있다는 건 그다지 나쁘게 들리지 않는다. 문제는 그게 참 어렵다는 거겠지. 간통죄와 행복추구권은 참 미묘하게 대립되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나도 유명무실한 간통죄는 폐지되어버리는게 낫다고 생각된다.(간통죄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니 이름만 있을 뿐, 정작 고소를 위해서는 간통보다 더 큰 정신적인 피해를 감수해야하고 실제로 그 시행률은 10%도 안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간통죄를 단 하나 남은 구원으로 여기며 의지하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작가는 너무 간통 혹은 불륜, 바람이라고 불리는 그 행위의 대상자들 간의 감정 즉 사랑에 초점을 맞출 뿐, 그 감정에 소모되는 수많은 것들을 너무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서른다섯까지 자유로운 연애를 하다가 늦게 한 결혼에 아이 없이 이혼한 사람이라 그런 것일까. 행복추구....... 사랑이 행복의 전부는 아닐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난 정말 회색인이다.ㅋ 작가가 질색하는 양다리 걸치기는 나의 주특기다. 어느 것 하나를 옳다고 말할 수가 없다. 모두 옳을 수도 있다는 거, 모두 틀릴 수도 있다는 거, 그리고 다른 선택지도 있을 거라는 걸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분별하고 색깔이 없고 주장이 없고 아는 것도 없고 우유부단하고 어중간한 이기주의적 평화주의자- 더 말해 무엇하겠나, 내가 바로 회색인인 것을.)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다. 내가 참 습관처럼 되뇌이는 말이기도 한데, 정말 그렇다. 마광수 씨의 이야기가 틀렸다고 맞다고도 할 수 없다. 정답은 없으니까. 식욕이 해결되면 성욕에 관심을 돌린다는 말도 분명 사실이고 사고방식이 야해질수록 개방적일수록 선진국이라는 말도 사실인 듯하다.(프랑스나 영국 등 소위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유럽국가들은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성에 대해 개방적이라는 점에서) 하지만 왠지 이 사람의 얘기를 옳다구나! 하고 맘껏 받아들이기가 께름칙한 것은 내가 이 보수적인 사회에 적응한 사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사람이 너무 자기 얘기가 만물의 진리인양 말하기 때문인 것일까. 사백쪽 조금 못되는 이 책 속에는 옳은 말도 있고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가당찮은 말도 있고 코웃음이 쳐지는 부분도 있다. 결국 내게는 이 사람의 자신만의 완전한 철학조차도 수많은 사람, 수많은 철학 중 하나로 남을 뿐이다.
1988년, 1991년 등 과거의 날짜들을 꼬리표로 달고 있는 글들이 제법 많아서 솔직히 좀 이상했다. 과거의 일을 무조건 흘려보내자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비평집이란 새로운 책을 낼 때는 현재의 문화를 비평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소심한 의문을 가져본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내가 이 책을 꽤 혹평하는 것 같다. 제법 흥미롭게 읽었으나 좋은 점을 늘어놓기보다는 싫은 점을 늘어놓게 돼서 그런가보다.
색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의 색다른 이야기. 흥미로웠으나 어딘가 께름칙하다- 는 것이 내 총평이다. 겉으로 기행을 부리는 사람을 싫어하는 진정한 기인의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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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라는 다소 선정적인 제목으로 눈길을 끈 이 책은 다름아닌 마광수교수의 문화비평집이다. 이 책을 덮고나서의 느낌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선정성과는 거리가 좀 멀어보인다. 문화비평집이라고 적혀있는 만큼 제목이 차라리 마광수 문화비평집이라고 했으면 좋았을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렇다. 이 책은 마광수교수의 비평글이 실려있는 책이다. 제목이야 호기심과 선정적인 걸 좋아하리라는 출판사측의 전략이라고 치자. 제목이 중요한게 아니라 마광수교수가 외치는 그 논조가 중요한 것이니까. 초반부의 내용은 정말 솔직하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섹스'에 대해서 말하기 조심스러워서인지도 모르겠다. 나조차도 혼전순결에 대해 지키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 정립도 되지 않아서이기도 할 것이다. 이로 인해 내가 회색분자는 아닌가라는 생각이 이 책의 초반부를 읽으면서 문득 떠올랐다.
안그래도 내가 회색분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1장을 읽으면서부터이다. 지식인의 말과 행동이 다름을 회색인으로 표현한 저자는 지식인의 말과 행동의 일치를 하라고 일침을 놓고 있다. 모름지기 지식인은 물론 인간이라면 말과 행동의 일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말뿐인 주장은 허무한 주장일 뿐이니까.
정치, 문화, 문학적인 면의 비판적인 글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90년대의 글이 대부분 포진되어 있어, 그 시대의 정치비판에 대해 엿볼 수 있는데, 돌려쓰지 않고 직선적이고 통쾌하게 풀어나가는 저자의 글을 느낄 수 있다. 정치인의 청교도적인 결벽증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주장을 풀어놓은 글은 읽으면서도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내가 생각할땐 좀 억지스러운 주장인거 같기도 하다.
즐거운 사라로 구속을 당한 저자이기에 검열에 대한 핏대솟은 글빨은 가히 논리정연해 무섭기까지 하다. 그 사전을 접하면서도 나는 창작적 자유를 업박하는 시대는 사라져야한다고 생각했다. 예술과 외설은 정말이지 주관적인 잣대이기 때문이다. 객관성을 지닐 수 없는 대상들을 객관성을 띄운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것은 각자의 가치관에서 판단할 문제이지, 단체에서 결정할 문제는 아닌듯 싶다. 아무튼 그 사건으로 인해 저자가 겪었을 고초를 생각해보면, 그의 야한 글을 욕할 수 없을것 같다.
사랑에 따라오는 '권태'란 누군가를 역겨워하는 감정이라기보다 피곤해하는 감정이다. 어떤 음식에 권태를 느끼게 되는 것은 그 음식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그 음식이 체질에 맞지 않거나 더이상 건강에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p351
사랑에 있어서 피곤함은 서로에게 힘든 일이다. 그 감정을 어떻게 잘 극복하는지가 두 사람의 사랑을 굳게 만드는지 깨지는지 결정하는 것이다. 사랑은 비 온 뒤에 땅이 굳기도 하며, 땅이 움푹 패여 웅덩이인 채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에 무엇으로 결정나는지는 서로의 감정이다. 결혼은 연애와는 달리 현실이라는 말에 결혼적령기에 들어선 나로서는 많은 생각을 해본다. 결혼이 현실이기에 연애가 더 신중한걸까. 계산적이 되는걸까.
이 책은 어찌보면 제목과는 그렇게 큰 연관성은 없다. 물론 그런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저자가 야한 글만 적는다는 선입견을 버린 책이었다. 그런 선입견을 지닌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이 책을 읽어보는게 좋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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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사라’를 비롯한 몇몇의 책에 대한 외설 여부로 언론매체에 소개 된 것을 계기로 작가 마광수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을 기회도 그리고 굳이 그의 책을 찾아서 읽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내게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언론매체에서 떠드는 것뿐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명문대 마교수라는 캐릭터로 활동하는 개그맨을 보고 잠깐 작가 마광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려는 책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를 읽어 볼 기회도 갖게 되었다. 사실 책을 읽기 전부터 책에 대한 관심은 매우 큰 편이었다. 우선은 논란거리의 중심에 있는 저자의 책이라는 점이 그 첫 번째 이유였고, 수 많은 논란 속에서 과연 그의 책을 직접 읽어 보고서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궁금증은 두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그 궁금함에는 논란 속의 사람들이 간과(看過)하고 있는 작가만의 가치가 있을 것 같은 기대치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책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에서 저자 마광수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바는 위선과 이중성에 대한 비판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뿌리 박힌 도덕주의적 관점으로 인해 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실을 개탄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결국 저자 자신은 금지된 것에 대한 끈임 없는 도전을 하는 사람이고 야한 것이 좋다고 당당히 밝히는 것 또한 그 연장선 상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어 가면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우리나라 문학은 지나치게 교양주의적인 지적이다. 내가 읽어 온 책의 자취만 봐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생기는 생각과 감정에 주목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작가의 가치관을 독자에게 이야기하는 책보다는 책을 읽어 나가는 것을 통해 내가 지적인 수준을 채워주는 느낌이 주는 책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은 ‘문화 비평집’이라는 점을 제목에 당당히 밝히고 있지만, 책의 많은 부분에서 직간접적으로 자신을 옹호(擁護)하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1990년을 전후에 쓴 글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2008년에 출판한 ‘문화 비평집’이라고 이야기하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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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마광수 교수의 구속 소식을 접했을때만해도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외설스런 책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대학 교수를 구속까지 했을까하는 의문이 끊이질 않았었다. 당시만해도 지식인들의 구속사유로 가장 흔했던 것이 국가보안법 이었기에 '외설스럽다'라는 표현 자체가 교수라는 신분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던 탓인지 아님 올바르지 못한 책은 읽지도 말아야한다는 식의 내 안의 보수성 탓인지 한 번도 마교수님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나도 모르게 무턱대고 마교수님이 밝히는 사람이고 심지어 TV에서 보여지는 그분의 외모조차도 외설스러워 보였음을 고백한다.
선입견이 있었던 작가의 책 치고는 공감가는 내용이 더러 보였다. 도대체 예술과 외설의 차이는 무엇일까? 라는 고민에서부터 표현의 자유라든지, 여전히 주먹구구식인 검열문제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실 문제있는(?) 영화가 개봉될때마다 외국에서는 무삭제 개봉인데 우리는... 이라며 시끄러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지금도 그런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가위질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인지 아님 무조건 잘라내야 본인의 업무에 충실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개개인의 사고를 제한하려 하지말고 그냥 보고 스스로 판단하도록 해야 옳은 것 아닐까.
반면에 '문화비평집'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주관적이며 부정적인 시각이어서 아쉬웠다. 그리고 성, 정치, 문학, 인물등 문화 전반적인 부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서술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성'이라는 안경을 쓰고 바라본듯한 정말 마광수스럽다고 해야할지... 예를들면 정치에 있어서 '야한 여성지도자'가 좋다고 주장한다든지, 문학에 있어서 외설은 없다라는 주장, 영화 배우라면 당당하게 벗을 줄 알아야 한다는 주장등이 꽤나 튄다. 역시 난 보수적인거야? ^ ^;;
하지만 정말 섭섭한 것은 이 책이 여러해에 걸쳐 씌여진 글을 모아서 출판했다는 것을 알겠는데 1989년도에 씌인 글도 보이고 1990년도에 씌인 글도 적지 않게 보여서 놀랬다. 물론 시대를 초월해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내용도 있긴 하지만 최근 고인이 되신 박경리 작가에 대한 애도가 아직도 끊이질 않은 상황에서 "요즘(1990년)의 우리나라 소설들은 그 길이가 너무 길다. 걸핏하면 대여섯 권짜리 대하소설이요. (중략) 작가들의 '물량주의' 선호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좀 그렇지 않나 싶다.
더구나 정치면에서는 듣고 싶지도 않은 두 김씨가 계속 등장하고, 영화배우 안성기씨에 대한 인물론에서는 "그의 노력이 '바닥'을 드러냈다." 라고 표현하며 노출증적 '끼'를 주문(1990년)하였지만 그후로도 작품성있는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하였고 수상 경력도 화려하며, 여전히 국민배우가 아닌가 말이다. '표현의 자유'나 '출판의 자유'도 좋지만 내용을 좀 수정하시든지... 성의가 좀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끝으로 마광수 교수의 생각에 공감하고를 떠나서 어쨌거나... 정치판에서처럼 줄서기, 갈아타기, 해쳐모여~ 를 잘 해야만 성공한다는 교수 사회에서 꿋꿋하게 '야함'을 주장해온 '뚝심' 하나만큼은 인정한다. 출간당시 큰 파장을 일으켰던 명작처럼 오랜 세월이 지나 이분의 책들이 인정받을 날이 올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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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들이 그 시대에 인정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시대를 앞서가는 생각과 사상들은 동시대 사람들에겐 언제나 '씨알도 안멕히는 허튼소리'로 들렸을테고, 현실에 적을 두지못하는 몽환가로 치부되기 일수였다.
생각컨데, 마광수는 선지자는 아니다. 그러나, 몽환가도 아니다. 외소하고 소심해 보이는 그의 외모에서 느낄 수 있 듯, 그의 언어는 얇고 가늘고 예민해서 , 깊고 어둡고 굳건한 바리케이트의 벽으로 막혀 있는 곳일 수록 더 집요하게 다가가는 걸 느낀다.
책으로 인해 마광수 만큼 많이 질책을 받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사회적 이슈를 낳은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런 그를 보고 있으면.. (욕..)주면 먹고,(비평..)때리면 맞는다. 그렇지만,(지동설을 주장해 재판에 회부되고, 교황청의 고문에 못이겨 억지로 천동설을 시인했던 갈릴레오처럼..) 지구는 돈다!!라고 혼자 나즈막히 읊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모든사랑에 불륜은 없다..이 책을 읽으며 좀 오래된 글들이긴 하지만, 파격적이고 난해한 그의 생각에 "이사람은 정말 선지자이거나, 몽환가 이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사람들의 정서와 윤리관으로 보면 돌 맞기에 딱 좋을 사상의 모럴 헤저드에 빨간 불이 깜빡거리는 위기감을 느낀다. 정말 그는 이런 사회를 원하고 있는 것인지, 이런 사회가 (원하지 않든, 원하든) 온다고 믿고 싶은 것인지..헛갈리기 조차 한다. 작가가 개인적인 성향을 자유스럽게 표현하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것이 사회 분위기에 맞건, 역행하건 누가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나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성문화에 대해 왈가왈부하기에 앞서 그는 어쩌면 조금 화가 나 있고, 선지자의 선견지명을 허튼소리로 치부하는 어리석을 현 시대의 대다수에게 삐져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이 그리 돌을 맞을 만큼 더럽진 않다..도덕을 팔아먹고 사는 너보다야 당당히 불륜을 즐기는 내가 낫지 않냐? 다른 의견들에 대해 수렴의 의지보다는 신경질적이고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고립을 자초하는 듯 하다.
시대에 따라 형평성과 잣대가 틀려 그의 문학은 검열대 오르는 횟수가 많았고, 그도 어이없이 구속되기도 해 그의입장에서 보면 할말이 태산이고, 억울함이 강을 이루겠지만, 최근 제자의 글을 표절한 것은 그의 문학 사활을 결정지을 수 있는 큰 사건이라 글을쓰는 사람의 양심에 비춰 변명의 여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꾸 나는 억울하다를 반복하는 것 같아..안타깝고 안스럽다.
그러나, 그의 글들은 터부시되어있는 금기의 벽들을 향해 앞으로 돌진!!을 외치며 외로이 싸우는 동키호테처럼 느껴져, 싸워 이길 수없는 적일지라도 싸우다보면 어느새 그의 예민하고 긴 촉수를 가진 언어는 그 성벽을 파고 들어 균열과 틈을 낼 수 있으리라믿는다. 예술적인 줄타기 공연을 하고 있는데 바지가 내려갔다고 해서 바로 외설이라고 욕을 할 수 있느냐..고 말하는 그에게 바지를 좀 더 예술적으로 내려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지난날의 글들을 모아 맥과 흐름이 일맥상통하지 않는 짜집기식 책 말고, 좀 더 마광수 다운 화려하고 싱싱한 색기가 흐르는 화끈한 그의 책을 보고싶다. 최근 인터뷰기사에서 본 그의 초췌해지고 의기소침해진 모습에도 좀 더 살이 붙고 윤기가 흐르길 바란다. 나는 야한 생각으로 야하지 않은 척 내숭까는 사람들에게 어퍼컷을 날리는 그의 발가벗은 글들 또한 세상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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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광수 작가의 문화비평집으로 내가 마광수 작가를 접하는 처음 만남이였다. 그러나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역시~~ 하는 생각으로 읽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마광수 작가의 아주 일부분이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비록 그의 글을 조금씩 모아둔 글이라 때는 좀 지났으나 한번도 접한 적 없고 작가에 대한 뚜렷한 주관없이 읽어 가기에 상당히 놀라운 부분들이 많았고 실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글을 쓰는 그가 부럽기마저 했다. 그리고 그의 당당함과 솔직함을 책 속에서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일찍이 마광수 작가를 알고 있고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면 어쩌면 식상하거나 많이 들은 이야기 일 수도 있겠지만 완전 초면인 나로서는 참으로 신선하고도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단순히 부끄럽게만 여겼던 성이 당당하게 여겨졌고 이런식으로도 해석이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읽는 내내 무엇인가를 발견한 사람처럼 "아~" 하는 말을 연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 또한 제목이 제목인지라 어디 들고 나가서 읽기에는 약간 부끄러움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책상에서만 읽었다. 그리고 실로 성에 다룬 작품들이 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양한 책들을 접하려고 했건만 역시나 닫힌 책읽기에 급급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은 짤막한 글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좀 더 길게 그의 생각을 표현 했다면 맥이 끊기는 듯한 느낌이 덜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작가에 대한 관심과 그의 전작 즐거운 사라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동안 잘 모르면서 그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했던 것이 오히려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역시 보수적인 나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불륜은 싫다. 바람도 싫다. 사랑은 자유롭기 이전에 하나의 약속이 아닐까? 한때의 감정 그 이상의 무엇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성 그 자체 뿐만이 아니라 사랑 전반적인 모든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저 비슷하고 하나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시원 시원한 그의 생각에 어쩌면 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성 뿐만이 아니라 그의 전반적인 생각도 들어있다. 그리고 특히 사랑에 쏟는 시간과 애정만큼 이별에도 애정을 가지고 뜸들이기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을 했다. 얼마 전 내 친구와 돌연히 연락을 하고 있던 남자와 이별 아닌 이별을 했다. 딱히 사귄 것도 아니지만 딱히 헤어질 이유도 없었다. 그들은 서로 관심을 가지고 만남을 해 왔지만 늘 여자쪽에서 튕기기만 하다보니 남자가 지쳐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끊자고 해버린 것이다. 내 친구는 아주 황당해 했고 화를 내기도 하고 심지어 이렇게 되고 나서 보니 좋아했던 것 같다고 하기까지 했다. 그 남자는 헤어지기를 문자 한통으로 통보했다. 3개월간의 사랑의 뜸들이기했던 그는 헤어짐의 방법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면 서로에게 얼마나 큰 허무감과 함께 상실감을 안겨다 주겠는가 특히 그것을 통보받는 입장에서는 말이다. 이별에는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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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를 몰고 다니는 저자를 나는 대학교때 만났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책을 통해서 처음 만나게된 것 같다. 그리고 즐거운 사라를 접하게 되었고, 그는 즐거운 사라가 외설이라는 이윯 감옥소에 잡혀들어가게 까지 되었지만 제자들의 꾸준한 명예회복운동과 복직운동으로 지금은 다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라는 책은 자신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을 때에 과정들이 들어있다.
제자들이 저자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마광수는 옳다라는 책을 썼기도 했다는 말을 듣고 그의 삶이 굴곡은 있었지만 행복한 사람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번에도 제목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과연 그럴까?
저자의 논리는 아주 단순하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 생각하고 있던 말들을 거침없이 하고 있고, 그렇듯 저자는 처벌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사랑에 불륜은 없다는 도덕에 대한 저항의 기록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은 금지된 것에 대한 끝없는 도전이라고 강조하면서 앞서 가는 사람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우리나라 문학현실에 반기를 들고, 작가의 창작의 동기는 금지된 것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의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날카로운 비평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부분을 위선과 이중성의 이름으로 고발하고 있는지 말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인문학적인 교양이 드러나는 문화비평과 우리의 문화적 관습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말하고 있고, 불륜을 우리들의 행복을 무차별하게 짓밟는 주범이라고 생각했고 두 사람이 서로 합의하여 사랑한다면 제삼자가 그것에 대해 불륜이니, 어쩌니 하고 단죄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틀을 벗어던지고 과감하게 이야기한다. 어찌보면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남들 의식하지 않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그만의 색깔이 아닌가 한다.
사람들은 정말 노동자의 삶을 예찬하면서도 스스로가 노동자가 되지 못하고, 지식인의 부르주아적 삶을 비난하면서도 스스로는 오히려 부르주아적 삶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자기모순이 그들의 외침을 더욱더 공허하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역사발전의 계기는 언제나 일정한 명분에 의해서 이루어졌지만, 그 발전을 지속시키는 것은 개인의 행복욕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따라서 정신적 행복과 육체적 행복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사랑은 순간을 연소시키는 것이므로 거기에 아무런 조건도 규약도 제도도 개입돼서는 안된다고 하며, 섹스는 이제 쾌락이나 번식의 문제이기 이전에 인권의 문제요, 행복추구권의 문제라고 한다.
사랑이 언제나 뜨거울 수는 없다라고 하며 사랑의 기술을 강조하면서 또한 이별의 기술도 이야기하며 사랑에도 회자정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사랑의 심리는 음식에 물리듯 사랑에도 물리는게 바로 권태라고 한다. 사랑하게 되면 영원히 사랑할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이별하게 되면 서로 원수가 되는 것에 대해서 현명하게 사랑하는 비결은 미리부터 이별을 전제하고서 사랑을 나누라고 한다. 그것을 음식에 비유하면서 음식에 권태를 느끼게 되는 것이 그 음식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 음식이 체질에 맞지 않거나 더 이상 건강에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별 뒤에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는 애정풍토에서 벗어나 사랑이 식은 애정을 우정으로 바꾼다면 인연은 유지된다고 하면서 모든 만남에도 절차가 있듯이 이별에도 이런 절차가 필요하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