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능한 Bow Street runner인 남주인공 그랜트는, 어느날 익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합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아직 죽지 않은 그 여자는, 바로 사교계에 여러 남자의 정부로 알려진 비비안 뒤발이죠. 그녀는 목에 졸린 자국이 있고, 기억을 상실한 채 남주인공 그랜트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그녀가 어떤 여자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랜트는 마음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예전의 그 여자와는 너무나도 다른 순수한 모습에 그만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그리하여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 하면서, 그녀가 처녀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그녀는 비비안 뒤발이 아니었던 거지요. 실제 비비안 뒤발은 아이를 가진 후 신변의 위험을 느껴 도피중이었고, 쌍동이 자매인 빅토리아(여주인공의 진짜 이름)가 비비안으로 오인당해 죽을 고비까지 넘겼던 것입니다. 기억상실증과 쌍둥이, 둘다 상당히 이런저런 이야기에서 많이 써먹는 소재입니다. 작가가 이 두 가지 도구를 꽤 잘 조합한 이야기...라고 생각되네요. 여주인공은 기억상실증으로 기억을 잃었지만, 남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여러 남자들의 정부였던 여자, 비비안으로요. 그러므로 남주인공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려 애를 무진장 쓰지만... 결국 그 모든 흠을 포용할 만큼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요. 즉, 쌍둥이와 기억상실증이라는 도구 덕에,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의 정체를 착각해서, 그녀를 사랑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실컷 하게 하면서, 동시에 독자들로부터 반발을 살 수도 있는 조건인, 여주인공의 과거(여러 남자의 정부였던)를 오해였다고 손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죠. 이렇게 써놓고 보니 재미없게 읽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냥, 작가가 영리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만 저 두 가지 장치는 좀 너무 흔하게 써먹는 소재가 아니었나. 하는 느낌은 조금. 어쨌든 저 두 가지를 저렇게 연결한 작품은 처음 보았으니, 거기에 좀 점수를 줄 수 있겠군요. 여주인공의 쌍동이 자매인 진짜 비비안 뒤발에 대한 제 기분은 복잡합니다. 순수한 여주인공과 달리, 자신과 잔 남자들을 협박하기 위해 기록까지 하고, 나중에는 자기 아이마저 여주인공에게 떠맡겨 버리는, '나쁜 여자'이지만... 뭐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길로 들어섰다'라는 식의 구차한 변명 따위가 붙어 있지 않은 데서 오는 통쾌함(?) 비슷한 감정도 조금은 있습니다. 그리고 '착한 동생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고 개과천선'하지도 않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