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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회원 리뷰에도 불구하고 이책이 왜 과거에 절판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책을 60p 가량 읽었을때 풀리기 시작한다.(이책은 400p 정도 분량임) 두사람의 대화는 신화라는 주제에 무지한 독자에게는 난해하고 지루하다. 아마도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모를까 재미나 교훈을 얻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수많은 삽화는 페이지를 채우기 위한 방편처럼 보인다. 30p를 읽었을때 책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페이지의 소설류도 8,000원 이내면 구입이 가능하다. 왜이리 재미없는 책을 1만원(정상가 1만3천원)씩이나 하는가 말이다. 책을 잘못고른 나의 실수이다. 회원 리뷰 중 책값이 너무싸다는 리뷰는 도저히 이해가 않된다.(내 돈 돌리도ㅠ.ㅠ) 지금 이책을 얼마나 더 읽어야 하나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이제는 읽을때 발생하는 지루함(이해되는 문장이 20% 이내임)과 눈의 피로(이해가 않되는 부분을 반복해서 읽고 집중해야 하니 눈이...), 시간의 아까움(다른 책을 읽는다거나 잠을 잤다면 더 나았을 것을 하고 느끼는 기회비용)을 느낀다. |
| 1) 첫번째 이야기 신화는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적 이야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현재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을 따라가기도 벅찬 상황에서 그것들에 눈 돌릴 여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평소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책이 다소 어렵게 느껴졌던 탓에 일주일 동안 미처 반밖에 읽지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 지금 난 신화에 대한 나의 무지함을 조금씩 깨우치고 있는 중이다. 조셉 캠벨이라는 학자는 신화에 대한 일반인의 무지와 오해와 편견을 매우 다양한 사례를 인용해가며 지적하고 있는데, 그 기본 틀을 이루는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신화는 사물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깡그리 부수는데, 그러한 신화는 이미 원형적으로(세계 각국의 여러 신화들도 결국은 그 태생이 같다는 캠벨의 해석에 약간의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우리 안에 내포되어 있던 것이며, 신화는, 우리가 메시지를 전하는 대상으로서의 세상을 이해하고 그러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세계 속에 있기도 하고 우리 속에 있기도 한 신의 실재를, 우리가 곧 세계의 중심이며 이 중심은 도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의 과정은, 이성의 범주를 뛰어넘는 것이고, 육체적인 지각의 과정 없이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관념적인 내용의 흐름 속에서 갈피를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들의 대담은 이러한 신화적 자각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내가 이 책에서 구할 수 있었던 대답은 근간의 나의 생각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영원이라는 것은 뒤에 오는 것이 아니에요. 영원이 그리 긴 시간도 아닙니다. 아니, 영원이라는 것은 시간과 아무 상관도 없는 것입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세속적인 생각을 끊는 바로 지금의 이 자리입니다. 천국이라는 개념의 문제는 거기에서 지복을 누리면서는 영원이라는 것을 생각에도 두지 않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영원과는 아무 상관 없이 지복직관에서 끝없는 복락을 누린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선악의 분별이 없이 지금 이 자리에서 만물의 영원을 경험하면 어떻습니까? 인생에는 이런 기능이 있어요." 그렇다, 신화를 통해, 인간의 이성으로 만들어낸 언어의 벽을 부수고 그 개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우리가 애초부터 품고 있었으며 만물을 창조해내었던 바로 그 힘이, 바로 자기 자신의 현현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며, 캠벨의 말마따나 내 안에서 지금 이 순간 지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 일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일 테다, 어쨌든 세상은 이렇게 되어 있고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당당히 시합에 참가하기. 이러한 마음이 들게 만드는 것이 '바로 신화의 힘'인 것이다. 재미없는 얘기 길어지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만물을 긍정하라는 삶을 향한 그의 태도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태인으로서 죽음을 넘나드는 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빅터 프랭클의 그것과도 상당 부분 일치하고 있는 듯하다. 2) 두번째 이야기(4.희생과 천복) 비교 신화학자로서의 조셉 캠벨은 기독교도 여지없이 하나의 신화일 뿐이라 얘기한다. 나는 너를 죽임으로써 너는 나를 살리고, 또 너는 나를 죽임으로써 나는 너를 살린다,는 신화의 원형적 틀은 얼핏 들으면 그 말 자체로도 잘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고 그것이 자라 다시 나무가 된다는 순환성을 상기해보자. 이것을 그리스도의 얘기에 대입해보면, 그리스도는 '성 십자가'에서 세상을 떠나는데, 이 '성 십자가'는 나무이고, 따라서 그리스도 자신이 그 나무의 열매가 되는 셈이란다. 즉,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또 다른(본질적으론 같은) 나무를 자라게 하는 영원한 삶의 열매라는 해석을 통해, 기독교도 신화의 하나일 뿐이라 역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해석은 신화에서 죽음이 갖는 위치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려준다. 삶에서 승리한 자만이 제물이 될 수 있다, 이게 바로 희생과 관련된 옛날의 관념인 것이다. 죽음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죽음이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신은 내 마음 속에도 있고 네 마음 속에도 있지만, 그 두 신은 결코 다르지 않다.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여럿이면서 하나이다. 결국 신화의 원형적 틀이란 이런 것이다. 전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메시지는 같다. 그는 비단 신화로서의 기독교를 역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기독교를 비판하고 있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원죄'라고 하는 개념을 그 바탕으로 한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도 결국 하나님의 뜻일 뿐인데, 인류가 영원토록 원죄를 속죄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게 과연 말이 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난, 이 대목에서의 캠벨의 해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통쾌하기까지 하였다. 그의 말인즉, 우리가 순종하지 않아야 하느님에게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풀 수 있는 자비 말이다. 이러한 그의 말을 읽고 있노라면, 기독교는 자기 스스로가 '내 안의 신'을 믿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의심의 발로인가, 하는 생각을 품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기독교도 하나의 신화로서 해석 가능하며, 신화가 이 세상의 물질에 멀어 버린 인간의 눈을 열어 삶의 황홀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던, 공적인 꿈으로서의 신화의 의의와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 책에 대한 리뷰에서 누군가가 지적했듯이, 캠벨이 정작 신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 읽으면 읽을수록 굉장한 책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인생의 지침서로 삼아 두고두고 읽어 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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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씨가 어느 인터뷰에서 왜 그리스.로마신화를 번역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서구인들이 일상적인 대화수준에서 조금만 더 깊은 대화를 하게 되면 서구의 신화를 모르고는 그들의 이야기를 거의 이해하기 힘들다고 한 기억이 난다. 하기는 우리도 서양인들이 우리말을 배울때 힘들어한다는 사자성어를 많이 사용하고 하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부지불식간에도 우리 생각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근원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노력이기도 할 것이다. 이윤기씨 번역서를 찾다가 발견한 이 책은 한마디로 거대한 지적인 폭풍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한 고대로부터의 신화의 비교분석은 자신의 문화권안에서만 살면서 그저 무심히 지나쳤던 수많은 사실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깊히 사색하게 하는 동시에 우리 인류 전반에 대한 놀랍고도 거대한 시각을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해주고 있다. 캠벨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사소하고 그저 흥미로운 것처럼 들리는 이야기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나열한 것처럼 들리더니, 점점 그 심오한 통찰속에 빠져들게 한다. 이 책을 읽는 경험은 복잡하고 매력적인 퍼즐조각 맞추기에 열중하며 즐겁고도 한편으로는 새삼스러운 자각의 고통마저 느끼게 한다. 그동안 가슴 한구석에 품어왔지만, 삶에 쫓기며 덮어두었던 수많은 질문들에 대하여 무궁무진한 응답들은 쏟아내는 캠벨의 이야기는 즐거운 혼란이며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이제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무의식적이며 습관적인 질문대신 삶의 경이에 대한 경험이라는 해답을 찾게 된 것은 커다란 선물이다. 단 하나의 흠을 억지로 잡아내자면, 캠벨의 배경이 그러했지만 저 바다건너의 땅에서 비교적 너무 평탄한 삶은 살아왔던 탓인지 지구의 반대편에서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삶의 어두움과 고통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본다는 느낌이 든 것은 작은 아쉬움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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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에 대하여 전념하지 않는다(34)_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아무 생각없이 첫 번째 직업을 선택했기에 진짜 나를 먹여살려줄 천복을 찾아내려는 탐색을 다시 시작해야 했던 것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상황은 의미가 있던지..아니면 없던지 둘 중 하나다. 답은 내가 찾아내야 한다. 정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읽어내는 것이다. 담담히 읽어내자!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받아들기 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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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신화의 바다에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신들과 영웅들의 SF같은 활극담에.... 그후 신화와 관련된 여러 책들을 접하면서 신화는 인류원형에 대한 꿈이라는 사실과 문화와 풍습이 달라 전혀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지역에서조차 유사한 신화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놀라웠다. 또한 신화의 꿈을 회복하는 것은 이 시대의 구원이라는 메시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산만하게 나열된 신화속에서 무엇으로 근원적인 메시지를 접해야 하는지는 미노타우르스의 미로처럼 난해한 문제였다. 캠벨은 우리에게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신화의 미로를 풀어가는 길잡이 역활을 자청한다. 책을 읽는 행위가 내내 축복이었던 것은 신화의 이해를 통한 지적충격 혹은 만족이외에도 인간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늘 유지하는 켐벨의 마음탓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예수와 석가, 마호메트같은 성인(聖人)들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 석가의 역사적인 실재에 대한 사실성보다는 그 위에 덧씌어진 신화의 의미를 정확하게 읽어냄으로써 기록된 성인들의 행적들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주려고 했던가?를 바로 깨닫는 것이다. 윤색되는 세월을 통해서 신화가 후세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은 인류에 대한 사랑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성인들의 역사적 실재성에만 매달리는 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만 보고 있지 달 자체를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과 같다. 더군다나 고대신화를 살펴보면 우리는 그 사랑이 오직 같은 인간에게 뿐만아니라 다른 짐승, 곡물 심지어 무생물에게까지 확장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단지 우매한 미신에 사로잡힌 원시인으로만 바라보아선 안된다. 오히려 자연과 교감할 수 없이 되어버린 현대인이 회복해야 할 신성에 대한 가치, 예의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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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생의 책한권이라는 메뉴는 저랑 잘맞는것 같습니다.
뭐 그렇다고 제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지만
자라나면서 시기시기마다 생각나는 책이 있다는것을 일깨워주는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물론 저뿐만 아니라 다른분들도 생각해보시면 그런책들이 기억나실것 같군요.
그런 기억속에 책을 한권씩 꺼내서 같이 이야기하기에는 정말 좋은 메뉴인것 같습니다.
오늘 내인생의 책한권에 이야기하고 싶은 책은 조셉캠벨과 빌모이어스의 [신화의 힘]입니다.
이 책은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한 1995년 3월 신학기 교양수업에 교수님이 추천해주신책이죠.반 강제로 레포트를 내주셔서 억지로 읽는책이었습니다 .^^:
숙제로 읽기 시작한 책이 생각보다 두꺼웠음에도 불구하고 손을 뗄수 없도록 만들더군요.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생활과 연관되는 여러가지 이야기들, 특히 스타워즈에 녹아있는 신화의 메타포에 관한 이야기들은 참 알기쉽고 와 닿았다고 기억이 됩니다.
인생에 대한 성찰과 지식에 대한 열망. 뭐랄까요.
그시기에 다른사람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알아가고 있다는 특별함을 느끼게 해준책으로 기억되네요. 뒷이야기를 더 해드린다면 그 수업은 A+를 교수님이 주셨죠.
혹시나 해서 찾아봤더니 예전하고 좀 다른 표지더군요. 그래서 하단에 설명을 봤더니 절판되었다가 재출간 되었더군요. 하긴 그만큼 시간이 흘렀네요. 벌써 10년이 넘었으니까요. 예전에 절판된 도서가 시골에 있는데 나중에 책사진을 찍어서 같이 이 게시물에 올려놓겠습니다.
무언가 다른 세계를 접해보시고 싶으신분, 특히 스타워즈 팬이라면
꼭한번 읽어봐야되는 책 [신화의 힘] 추천해드립니다.
제 정신없던 젊은날에 기억이 남는 책, 내인생의 책한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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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값이 13500원밖에 안한다.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가능한가? 단돈 13500원으로 이렇게 대단히 큰 이익을 내는 일이 정말로 가능한가 말이다. 지식이 돈이 된다는 지식경제사회에서 조셉 캠벨은 미친 복지사업가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미친 가격에 어울리지 않는 수준의 책이다.
한 때 내가 '동화'를 열심히 탐독할 때에 이를 우습게 본 학우가 있었다. 그는 판타지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이었다. 마치 나의 뇌수준이 유아정도밖에 안되냐는듯 흘겨보는 눈초리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 느낌이 생생하다. 그러는 너는 판타지 소설을 읽지 않느냐고 나 역시 나의 잣대로 그를 비웃었지만 그의 내면의 잣대는 동화보다 판타지 소설이 더 우위였나 보다. 내 비웃음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신화나 전래 동화, 즉 사람들 사이에서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 온' 이야기들은 많은 인간을 거치며 '완벽한 구성'을 지니게 된다. 이보다 더 멋진 이야기는 있을 수가 없다. 한 사람의 머리에서만 나온 판타지 소설 따위는 단 한명의 보통사람이 전세계 인류의 역사에 끼친 영향력만큼이나 보잘것 없다. 내 입장에서 보면 할 일 없이 시간때우기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책일 뿐인데 그런 사람이 내가 읽는 책을 비웃는다니, 당시의 상대의 무지에 대한 답답함과 그런 사람으로부터 받는 모멸감은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의 인간성을 욕하고자 하는 뜻으로 적은 글은 아니니 오해 마시길;)
그런데 그런 신화들을 모아 분석해놓은 사람의 책이 있었다.
앞으로 내가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내 인생의 시간을 투자하여야 하는 방대한 양의 작업이었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덜어주는 말 그대로 한 시름 놓게 해주는 멋진 책이 있다는데 당연히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 오후, 나는 이 책을 쥐어든 순간부터 가슴이 뛰었다. 저녁에 돌아와 일상 생활을 마감하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할 때 부터 심장의 펌프질이 더 심해져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팔까지 진정을 찾을 수 없을만큼 떨려왔다.
나는 언제나 모든 것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나 자신이 '인간'이란 것을 항시 지각하지 못한 채로.
나는 말버릇같이 하는 말이 있다.
'난 이 세상에 너무 늦게 태어났다.'
내가 가슴으로 품어 진정 새로이 발견한 것들은 이미 이전에 태어났던 누군가가 그 의미를 밝히고 난 뒤인 것이다. 더이상 인간의 존재함과 함께 세상에 살아있는 그들의 '의미'라는 것은 새로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인간에게 있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의미'는 인식의 의식상태 아래에 침잠한 채로 이미 발견되어 있다.
내가 영화를 하고싶어 한 이유는 '진짜 살아있는' 느낌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있으면서도 살아있음을 생동감 넘치게 전율하며 느끼며 살고 있지 못한 까닭이다.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수많은 영화책의 얼굴을 보았지만 내 손에 집혀 들어오는 책은 없었다. 계중에 '히트의 재구성'이라는 책을 최초로 읽긴 하였으나 말 그대로 히트하는 영화를 만드는 테크닉에 지나지 않았다.
전세계로부터 뛰어난 이야기꾼이라 칭송받는 조지루카스가 어느 한 사람의 이름을 거론했다. 그는 영화 스타워즈를 만들기에 앞서 '조셉 캠벨'이란 사람에게 많은 빚을 졌다고 입을 떼며 스타워즈 메이킹필름에 출연한다.
'전 세계의 신화의 공통분모를 찾으려는 사람'이 그의 수식어였다.
이거다. 씨익.
떨리는 손으로 그의 책을 집어들었고 내 가슴은 이 책에 대한 확신이 분명했으며 그것은 정말 기대이상이다!!
이제 겨우 33페이지까지 읽었는데 나의 분석 모티브가 되어줄 글문은 연습장을 벌써 가득 메워가고 있다.
미치겠다. 지금껏 내가 읽었던 그 어떤 철학책보다도 더 정연한 논리로 내 가슴을 온통 따뜻한 온기로 가득 메워 간다.
(난 신앙인도 아니고 그가 아직 살아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 고귀한 자료를 땅에 남겨준 조셉 캠벨에게 은총이 있기를.
상당 수준있는 문화인의 의식세계를 담은 책이고 번역책이라 글문이 조금 어렵다. 그치만 그게 무슨 대수! 그의 의식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데에 최적의 단어들일 것이다. 그것을 국어사전 찾아가며 내 나름의 의미로 맞추어내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은가!
22년 살면서 정말 '제대로 된 좋은 책'을 찾아냈다. 역시 명인은 명인을 알아본다고 하더니 조지 루카스가 알아낸 대단한 사람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3일이 채 되기 전에 다 읽어버릴 것만 같다.
조셉캠벨의 나머지 책, 내가 전부 다 읽어버릴 거다.
지식경제사회의 최대이익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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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셉 캠벨은 자신이 신화에 흥미를 가지게 된 배경으로 로마 카톨릭에서 자라 신화를 삶의 적용시킬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기독교 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이전의 세계관이나 가치관과 다른 또 다른 삶의 기준들에 혼란에 어지러웠다. 중요성을 두지 않았던 가치들이나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들의 가치 순위가 뒤집어 지면서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혼란이 생겼었다. 그러던 중 처음 접한 조셉 캠벨의 ‘신화의 세계’는 적지 않은 충격과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 주었다. 그 후 많은 기대로 접하게 된 조셉 캠벨의 미국에서 방영되었던 조셉 캠벨과 빌 모이어스의 대담을 옮겨놓은 신화의 힘이라는 책이었다. 그가 말하고 있는 신화는 단순히 신들의 이야기가 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신화를 통해 현실을 재해석하고 인류의 삶을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길잡이였다. 그는 신이나 예술과 종교, 현실을 신화의 이미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신화는 그가 세상을 보고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이며 경험이다. 오늘날의 신화의 역할로 신비적인 측면이나 우주적인 측면, 사회적인 측면이 아니라 교육적인 측면에서 가치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화에서 중요한 것은 메시지다. 신화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삶의 유효한 메시지이다.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들을 풍요로운 신화 속의 메시지를 통해 알아내는 것이다. 그 안에 신화의 가치도 찾을 수 있다. 결혼이나 영화 종교 등의 현실의 문제들도 신화의 메시지를 통해 해석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신화로 해석되는 현실 속의 문제의 시발은 의례의 기능과 에토스의 부제에서 찾을 수 있다. 현실에 대체할 의례의 기능과 에토스의 중요성을 찾으므로 현실의 문제의 해결책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인류의 앞으로의 방향은 우파니샤드를 인용하며 좀 더 넓은 인식을 가질 것으로 인류의 새로운 시각을 요구한다. 이전의 우리 안의 신화가 아닌 인류의 신화가 필요한 것을 말한다. 동시에 밖에서만 인류의 앞날을 걸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발견을 통해 궁극적인 발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는 삶 속에 고통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결국 이런 생각은 삶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고 그 안에서 좀 더 넓은 차원의 높은 차원의 마음으로 통하는 길이 있음을 알려준다. 그럼으로 인생이 모순점을 이해하고 더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게 된다. 하인리히 침머는 “최선의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차선의 것은 오해된다."다고 말했다. 신화를 통해서도, 현자나 성인의 남김을 통해서도 그 것 자체가 진리는 아닐 테다. 하지만 조셉캠벨은 종교나 신화등을 통해 최선의 것으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빌 모리이서의 서문을 보면 조셉 캠벨이 “조이스와 이그쥬가르쥬크가 모닥불 앞에 앉아 긴긴 밤을 함께 보내는 것을 상상해 보시오. 나도 한자리에 끼고 싶구먼.”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을 보고 난 후에 나는 캠벨의 소개로 그들의 자리에 참관할 기회를 얻은 것 같았다. 또 다른 책들과 경험에 의해야 하겠지만 그들의 밤에 참관할 날이 있기를 바란다. |
| 그동안 이런 책이 절판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 너무 아쉬웠는데 이제 비로소 재출간되니 상당히 기쁘다. 이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 신화에 대해 자세하면서 신화의 의미를 가장 명확하게 파악할 수있게끔 쉽게 표현한 책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제목그대로 신화의 힘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신이라고 평가절하되었고 무의식 안에서 남아있는 신화체계의 존재를 비로소 의식할 수있게 된다. 그저 세계 곳곳의 여러 신화이야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고 좀더 나아가 한평생 신화만을 연구했던 저자의 인생을 통해 살아있는 교훈을 배울 수도 있다. 그래서 단지 신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있는 책이다.한번쯤 바쁜 일상사에서 벗어나 이런 책을 읽어본다면 읽은 후의 삶이 조금은 여유로워진 것을 느낄 수있을 것이다. |
| 대담의 주인공은 신화를 통해 영적 삶의 각성을 추구하고있는 것 같다. 아니 분명 그는 그것을 향해나가고 있었다. 그에게 신화는 우리가 잃어버린 어떠한 그것을 찾게 해주는 표지판이며 우리의 내면의 자각을 일깨우는 촉매제이다. 다소 내 사견과 불일치하는 면이 있고 불교에 대한 이해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지만-그는 학자일뿐이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의 신화 해설은 그의 말마따나 성소를 성지를 잃어버리고 대신 시시껄렁한 패거리나 만드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삶이 어디서 오며 어떻게 가는지따라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 지를 친절하게 안내한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말이다. - 우리가 나아가야할 영적 진화라는 관념은 실은 매우 위험하다- 나와 사회 우주 이 삶과의 끊어진 '고리'를 말이다. 너무 오래전에 일어나서 그리고 너무나 변화무쌍한 사회에 놓여있어서 잊어버린 이야기. 신화는 그이야기를 들려주면 고리를 끊임없이 우리에게 환기 시켜주고있다. 헌데 신화는 계속될것이다. 현재도 오늘의 신화가 계속 일어나고 있듯이 말이다. 그 불멸성과 영원성 현재성을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니다. 좀 다른 얘길 할까한다. 신화는 왜 계속되는가. 5000년전에 꺼내든 신의 표상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리고 아직도 재생산 되고있다. 신화는 거대한 꿈이다. 이러한 꿈. 그런데 꿈꾸지 않는 자도 있다. - 도와 일치한 자에게 도를 물으면 아무 대답도 없다 했다. 붓다는 가만히 서서 시를 짓거나 가르침을 펼치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제자를 변용시킬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