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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든 생각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끊임없이 떠오르는 의문이었는데, 서양 학생들은 신화를 어떻게 배우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배우기는 하는지, 어떤 과목으로 개설되어 있는지, 그냥 독서의 한 분야로 읽고 익히는지, 언제 배우는지, 어떤 내용을 배우는지, 보통 교육을 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어느 정도는 읽고 이해하게 되는 것인지.... 전혀 모르지만, 어쩐지 그들은 배우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것도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그래야만 신화가, 신화의 내용이 보편적 정서나 상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게 아닌가.
신화의 근원에 종교가 있는 줄 알았는데, 종교보다는 과학이라고 봐야 하겠다. 종교는 신화의 일부 정도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고. 신화와 종교가 전혀 반대 방향에 서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근원이 같다는 확인은 내게 상당히 새로운 발견이다.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완전히 거짓말도 아니었고, 최근에 알게 된 과학의 진리인 줄 알았는데 이미 오래 전부터 전해온 신화였던 것도 있고, 내 앎의 바탕이 이렇게 얇았다니.
내가 읽은 이야기들, 떠도는 이야기들, 이제 막 작가들의 머리 속에서 떠오르고 있는 이야기들, 그 모든 이야기들이 다름아닌 바로 이곳, 이 책 안에 다 들어있는 것만 같다. 더 이상의 이야기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찾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모든 이야기의 원형들. 시대와 공간과 민족 따위는 가리지 않고 인류라는 종족이 이 땅위에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말과 글이 생기고 전해진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 모든 이야기들이.
신화에 대한 글을 읽으면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내 시선이 좀 달라질 줄 알았는데, 그 부분에서는 별 차이를 못 느끼겠다. 나는 여전히 삐딱하게 읽었으며 이미 가진 편견을 바꾸지 못했다.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불교까지도 내게는 신화의 일부분, 이야기의 일부로만 읽힌다. 역시 개인의 경험에 따라 믿고 싶은 만큼만 믿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하찮게 여겨지는 인간의 생명 혹은 삶.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참으로 위대하고 거룩한 것이 인간의 흔적들이다. 나 자신이 하찮은 생명체의 하나인지, 위대한 삶의 주인공인지를 구별하는 것, 그 역시 당사자 개인의 그릇에 달린 판단에 따르는 일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 어마어마했다가 그만 부질없어졌다가 시간의 변화만큼이나 빠르게 바뀌고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일부는 먼 훗날 돌아보았을 때 신화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역사일지 과학일지 신화일지, 굳이 구별하자는 것은 구별하려는 사람들의 몫일 것이고, 전해오는 모든 것은 모두 나름대로의 진실을 담고 있는 것임을 알겠다. 그것 때문이었던 것이다. 전하고자 하는 바로 그 진실, 살아 있었다는 증거로서의 진실, 우리 삶이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라는 믿음. 그러니 이 책들을 본 내 마음이 어찌 벅차지 않겠는가.
도대체 조지프 캠벨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신이었을까.
12 개인은 그 나름의 경험을 한다. 질서의 경험일 수도 있고, 공포의 경험일 수도 있고, 아름다움의 경험일 수도 있고, 심지어 단순한 환희일 수도 있다. 개인은 이것을 기호를 통하여 전달하려고 한다. 만일 그의 깨달음이 어떤 깊이와 의미를 가진 것이라면, 그가 전달하는 것은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신화로서 가치와 힘을 가지게 된다.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강제 없이,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반응한다.
13 신화의 첫 번째 기능은 깨어 있는 의식을 이 있는 그대로의 우주의 외경스럽고 매혹적인 신비와 화해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 기능은 그 신비에 대한 해석적인 전체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 세 번째 기능은 도덕 질서의 강화이다.
14 메시지는 뇌를 설득하지 못하면 통과할 수 없고,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15 신화의 네 번째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기능은 개인이 완결성 안에 중심을 잡고 전개해나가도록 돕는 것이다.
44 만일 자연이 간단한 두 개의 손가락도 똑같이 만들지 못한다면, 두 개의 뇌를 똑같이 만든다는 것은 더욱 더 불가능한 일이다. 뇌의 조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의 기능, 적성, 경향, 본능적 기호에는 일정한 균형이 있다. 그러나 이런 균형이 똑같은 두 아이는 없다. 그리고 각각의 뇌는 서로 다른 경험의 물결에 대처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삶의 궁극적 실재들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의견이 다르다는 데는 놀라지 않는다. 내가 놀라는 것은 타고난 본성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상당한 정도의 합의에 이른다는 점이다.
52-53 개인의 문명이 동터오르는 이 시대의 창조적 대가들 각각을 절대적으로 독특한 사람으로, 각각을 그 자체로 독특한 종으로 간주하자는 것이다. 창조적 대가는 이런저런 때에 이런저런 장소에 도착하여, 그의 시대와 장소의 조건에서 자신의 본성의 자율성을 펼쳐나갔다. 이들은 젊은 시절에는 서양의 종교적 유산 가운데 권위를 가진 낙인을 받아들였지만, 해체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눈으로 살피고, 자신의 마음의 나침반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따라서 이 새로운 시대의 진정으로 위대한 인물의 작품들은 추종자들이 신봉할 만한 통일된 전통으로 묶이지 않고 묶일 수 없다. 그 작품들은 개별적이고 다양하다. 그것은 개인의 작품이며, 그러한 것으로서 다른 개인들을 위한 모범이 된다. 강제적인 모범이 아니라 감동적인 모범이 된다. ... 창조적 신화란 주체의 대상에 대한 예측 불가능하고 전례 없는 깨달음의 경험, 그리고 그런 깨달음을 전달하려는 노력에서 솟아나온다.
54 [니체는 말한다] '위대한 인간'이 나타나서 당신들 사이에 다시, 또 다시, 그리고 또 다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당신이 여기 이 땅에서 기울이는 모든 노력의 의미이다. 당신을 당신의 높이로 들어 올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되풀이해서 나타난다는 것, 그것이 당신이 받으려고 노력해야 할 상이다. 이따금씩 그런 인간이 드러나는 것을 통해서만 당신의 존재가 정당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당신 자신이 위대한 예외가 아니라면, 그래, 그렇다면 작은 예외라도 되어라! 그러면 당신은 천재가 일으키는 거룩한 불을 이 땅에서 보살필 수 있을 것이다.
105 가장 좋은 것은 말로 할 수 없으며, 두 번째로 좋은 것은 오해받는다. 그 뒤에 교양 있는 대화가 온다. 그 뒤에 대중적 가르침이 온다. 그 뒤에 문화간 교류가 온다. 이렇게 해서 전달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말하자면 자신의 진실과 깊이를 다른 사람의 깊이와 진실에 개방함으로써 존재의 진정한 공동체를 확립하는 문제이다.
187 원시, 동양, 서양의 신화 전체에 걸쳐 뱀의 신화와 제의들은 빈번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두드러지게 일관된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자연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으로, 따라서 본디 신성한 것으로 숭배받으면, 뱀도 신성한 삶의 상징으로 숭배받았다. 따라서 뱀이 저주를 받는 창세기에서는 모든 자연이 평가절하되며, 그 생명의 힘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되었다. 물론 여기서도 자연은 스스로 움직이고, 또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자연보다 우월한 존재인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생명에 의해서만 가능하였다.
189 이 모든 세계에 깔린 기본적인 생각은 악의 기원이 창조의 행위 자체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 뱀의 두 번째 하강은 자발적으로 내려온 것이다. 갇혀 있는 영적 힘들을 풀어주려고 내려온 것이다.
770 구할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는, "저 바깥" 어딘가, 초월한 곳, 어딘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자기 내부에서 그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만이 아니라, 만물, 모든 사건에서 인식해야 한다. 모든 개인 내부에서, 모든 개인은 조악하든, 훌륭하든, 아주 훌륭하든 다 신의 가면이니 말이다.
798 예술에서, 신화에서, 의식에서, 우리는 깨어 있는 상태에서 꿈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꿈의 이미지가 한 수준에서는 지역적이고, 개인적이고, 역사적이지만 바닥에서는 본능에 뿌리를 내리고 있듯이, 신화와 상징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위력을 지닌 살아 있는 신화의 메시지는 깊은 무의식의 희열의 영역으로 전달되는데, 이 메시지는 그곳에서 에너지들을 건드리고, 깨우고, 불러낸다. 따라서 그 수준에서 작용하는 상징들은 에너지를 방출하고 또 그 통로 역할을 하는 자극들이다. 그것이 '깊은 잠'의 수준에서 그들의 기능-그들의 '의미'-이다. 반면 '깨어 있는 의식'의 수준에서는 똑같은 상징들이 영감을 주고, 정보를 주고, 입문에 관여하고, 건드려진 본능들과 관련하여 깨달음의 느낌을 부여한다. 즉 자연의 의식 밑의 질서-자연의 안쪽과 바깥쪽-에 관여하는 것으로, 여기에서는 건드려진 본능이 곧 생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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