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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진, 「자전거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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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이 지은 「자전거 도둑」은 세 가지 이야기가 하나로 묶여 있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인 <자전거 도둑>을 사이에 두고, 두 인물(김승호와 서미혜)의 과거와 현재가 맞물려 있다. 영화 <자전거 도둑>은 이차대전이 끝나고 폐허로 변한 로마를 배경으로 한다. 오랫동안 직장이 없던 주인공 안토니오 리치는 길거리에 포스터를 붙이는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이 일을 하려면 자전거가 필요하다. 그는 아내와 상의해 헌 옷가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받은 돈으로 자전거를 산다. 안토니에게 자전거는 생명줄이다. 그러던 어느 날 모퉁이에 잠시 자전거를 세워 논 사이 누가 자전거를 타고 달아난다. 아들 부르노와 함께 자전거를 찾아 나선 안토니오는 우여곡절 끝에 빈민가에 사는 도둑을 발견하지만, 그가 사는 허름한 집을 보고는 이내 절망에 빠져버린다. 안토니오만큼이나 가난한 저 도둑에게도 자전거는 생명줄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안토니오를 본 도둑은 충격을 받았는지 간질을 일으키며 길가에 나뒹굴었다.
아들인 부르노는 제 것도 챙기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불만을 털어놓고는 이내 사라진다. 아들은 다친 데 없이 돌아왔지만, 아버지 체면이 깎인 안토니오는 아들 앞에 서는 게 부끄럽기만 하다. 그러다가 그는 축구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 밖에 즐비하게 세워놓은 자전거들을 보게 된다. 아들 부르노에게 먼저 집에 가 있으라고 말한 후 안토니오는 자전거 한 대를 잽싸게 훔쳐 달아나지만 곧 주인에게 붙잡힌다. 아들 앞에서 봉변을 당하는 안토니오의 처지가 불쌍해 자전거 주인은 선처를 베푼다. 간신히 철창신세를 면한 안토니오는 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석양의 거리를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걸어간다. 그 뒤를 부르노가 무표정한 얼굴로 뒤따른다. 영화 <자전거 도둑>에는 아들에게 아버지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난한 아버지의 비애가 잘 나타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김승호(‘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외로움을 느낀다. 아버지의 권위를 깡그리 무시당한 안토니오도 그렇지만, 김승호는 무엇보다 권위가 무너진 아버지를 목격한 아들 부르노의 상처 입은 마음에 공감을 한다.
김승호는 자신을 “또 다른 부르노”라고 표현한다. 부르노가 겪은 일은 김승호 또한 똑같이 겪었다는 의미겠다. 어린 시절 김승호의 아버지는 한 평도 채 안 되는 구멍가게를 운영했다. 중풍으로 쓰러져 마음대로 몸을 부리지 못하는 아버지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짧은 밑천으로 가게를 꾸리는 아버지는 혹부리영감이 운영하는 수도상회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그럴 때면 꼭 승호를 데려갔다. 허름한 정부미 포대를 손에 쥐고 아버지 뒤를 따르는 게 승호는 무척이나 싫었지만, 중풍에 걸린 아버지가 이 일을 혼자서 처리하긴 힘들었다. 어느 날, 수도상회에서 떼 온 물건을 확인하던 아버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진로소주 스무 병에 해당되는 돈을 지불하고도, 두 병이 모자란 열여덟 병을 가져온 것이었다. 열여덟 병을 팔아봐야 본전치기였다. 아버지는 혹부리영감을 찾아가 사정을 말했지만, 혹부리영감은 아버지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자꾸만 우기면 거래를 끊겠다는 말로 영감은 아버지를 향해 윽박질렀다.
진로소주 두 병을 가져오지 못한 아버지는 가게로 돌아와 승호가 보는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소주 두 병 때문에 우는 아버지를 승호는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아버지는 가만있지 않았다. 닷새 후 아버지는 진로소주 두 병을 은밀히 자루에 더 넣어두었다. 무사히 성공한다면 이전 손해 본 것을 벌충하는 셈이었다. 셈을 치르고 문턱을 가까스로 넘어서려는 순간 혹부리영감이 아버지를 불러세웠다. 셈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겁에 질린 송아지처럼 눈에 흰자위가 유난히 많아진 아버지의 눈동자를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라고 작가는 쓰고 있다. 겁에 질린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린 아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루를 확인한 혹부리영감은 소주 두 병이 더 들어간 걸 발견하고는 즉각 아버지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겁에 질려 한 마디도 못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승호가 나섰다. 저번에 빠진 두 병을 이번에 가져가는 거라는 승호의 말을 혹부리영감이 받아들일 리 없다. 혹부리영감은 고향이 함경도로 아버지와 동향 사람이었다. 그는 어설픈 미소를 짓고 있는 아버지에게 아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라고 말했다. 함경도 식으로 교육을 시키라는 것이다.
짐짓 호령을 하는 아버지의 손이 부들부들 떨며 허공 높이 허우적거렸다. 단 한 대에 내 뺨은 무섭게 부풀어 오르며 감각을 잃어버렸다. 길티…… 그게 바로 진짜 교육이야. 혹부리영감의 격려를 받은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그에게 굽신거린 다음 또 한 차례 내 뺨을 기세좋게 올려붙였다. 그러나 이 지독한 연극을 지켜보면서 나는 아픔을 거의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머릿속에서 뭔가가 맑아지는 느낌뿐이었다. 그리곤 투시해버리고 말았다.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의 눈 속에 흐르지도 못하고 괴어 있는 눈물을. 차라리 죽는 한이 있어도 애비라는 존재는 되지 말자. 아마도 나는 그때 그런 끔찍한 다짐을 했는지도 모른다.
혹부리영감이 말하는 함경도 식 진짜 교육은 아이를 매로 다스리는 것이다. 수도상회에서 물건을 떼지 못하면 아버지는 가게를 운영할 수 없다. 다른 도매상으로 갈 수 있지만, 그러면 물건 값을 더 지불해야 했다. 소매가격 구매자보다 더 많은 물건을 떼어가지 않는 아버지에게 동향인 혹부리영감 말고 누가 도매 값으로 물건을 주겠는가. 아버지는 짐짓 호령을 하며 승호의 뺨을 후려쳤다. “그게 바로 진짜 교육이야.”라고 외치는 혹부리영감의 소리에 맞추어 아버지는 다시 한 번 승호의 뺨을 기세 좋게 올려붙였다. 승호는 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벌이는 “이 지독한 연극”을 보면서 세상살이란 게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승호를 때리는 아버지의 눈 속에는 흐리지도 못한 눈물이 괴어 있었다. 아버지는 먹고 살기 위해 혹부리영감을 상대로 지독한 연극을 공연하고 있다. 승호는 “차라리 죽는 한이 있어도 애비라는 존재는 되지 말자.”라고 다짐한다. 참으로 서글픈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자전거 도둑>에 나오는 부르노가 아버지의 서글픈 삶을 확인하는 데 그치고 있다면, 승호는 당차게도 혹부리영감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들이댄다. 복수는 혹부리영감이 애지중지하는 수도상회를 분탕질 내는 일로 실현된다. 수도상회에 있는 목탄창고 밑으로 하수도 맨홀이 지나간다는 걸 승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숱한 연습을 거쳐 승호는 사오십 보 정도인 하수구를 통과하여 수도상회로 들어섰다. 진로소주와 양주를 진열장 위아래 가릴 것 없이 부어댔다. 상회에 있는 물건 대부분이 상했지만, 승호는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았다. 혹부리영감이 아끼는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작살내고 싶었다. 승호 눈에 혹부리영감이 보물단지처럼 아끼는 돈궤가 들어왔다. 돈궤는 텅텅 비어 있었다. 그는 궤 쪽으로 다가가 굵직한 대변을 그 위에 질펀하게 싸질렀다. 몹시 구린 냄새가 진동했다. 복수를 완수한 것이다.
열흘 남짓 문을 닫은 수도상회가 다시 문을 열었지만, 가게에서 걸걸한 혹부리영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중풍이 심해진 혹부리영감이 시름시름 앓다 돌아간 후 수도상회는 아예 문을 닫았다. 승호는 성인이 되어서도 이 일을 잊지 못한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벌인 일이지만, 승호가 벌인 일이 혹부리영감의 죽음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어른이 된 승호는 이 일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까? 승호는 (서)미혜에게 자신이 어렸을 적에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이 있다고 고백한다. 혹부리영감 얘기다. 혹부리영감이 좀 더 이해심이 깊은 사람이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자전거 도둑>이라는 영화를 볼 때마다 승호는 그때 일을 떠올린다. 그때 일의 핵심은 권위가 무너진 아버지를 두 눈으로 확인한 아들의 트라우마에 맞춰져 있다. 승호는 혹부리영감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기 나름인데……”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그는 당연히 자신의 깊은 상처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김승호가 부르노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면, 서미혜는 간질병 환자인 자전거 도둑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승호는 부르노에게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의 자신을 본다. 이에 비해 서미혜는 자전거 도둑을 죽은 오빠와 동일시한다. 같은 영화를 보았는데도 공감을 느끼는 대상이 다르다. 간질병에 걸린 미혜 오빠는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했다. 어머니는 발작을 일으키는 오빠가 남부끄럽다며 다락 속에 몰아넣어 키웠다. 미혜는 자라면서 가위에 많이 눌렸다. 벽장 속에서 온몸에 털이 난 짐승이 기어 나와 목을 조르는 꿈을 꿀 때면 그녀는 어김없이 가위에 눌렸다. 스무 살이 넘어도 오빠의 병은 전혀 진전이 없었다. 어느 날 잠을 자던 미혜는 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정신과 상관없이 몸은 또 몸대로 성장하는 것인가 보다. 그리고 일이 벌어진다. 엄마가 친정일로 고향에 가면서 미혜에게 오빠 밥을 잘 차려주라고 신신당부했다. 미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나는 밥 때뿐만 아니라 한번도 다락문을 열어주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친구를 불러 와서 전 게 아니라 내가 아예 친구네 집에 가서 일주일을 보냈거든요. 민석오빠는 하루에 한 번쯤은 마당에 나가 햇볕을 쬐야지만 살 수가 있는데…… 일주일 뒤에 돌아온 엄마가 다락문을 열어보니 걸레처럼 축 늘어진 민석오빠가 뒹굴어져 나왔어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지만 며칠 못 갔어요. 내가 죽인 거나 다름이 없죠 뭐. 다락 벽지 안쪽이 손톱에 긁혀 남김없이 거덜나 있었어요.
승호가 부르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았다면, 미혜는 누구의 시선으로 이 세상을 보았을까? 민석오빠의 시선일까? 민석오빠는 가족들의 무관심 속에 생을 마감했다. 꼭이 미혜의 잘못만도 아니다. 일주일이나 집을 비운 엄마는 그 사이에 한 번도 상황을 확인하지 않았으니까. 오빠가 죽은 후 미혜는 집에 있는 걸 견딜 수가 없어 가출을 감행한다. ‘간질병’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랬겠지만, 미혜는 영화 <자전거 도둑>에 나오는 자전거 도둑에 주목한다. 간질병 환자인 자전거 도둑은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그 누가 챙겨주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오빠와 자전거 도둑은 어찌 보면 하나로 연결되는지도 모른다. 미혜 또한 자전거 도둑이 되어 그들이 산 삶을 간접적으로라도 느끼려고 한다. 승호가 피해자의 시선으로 과거를 들여다본다면, 미혜는 가해자의 시선으로 과거를 들여다본다. 당연히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방식 역시 다르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아픔을 딛고 산다는 말로 이 소설을 정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누구나의 마음속에 담긴 아픔과 대면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같은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래서 서로 다른 인물에 자신의 삶을 대입한다. 주인공을 혹부리영감으로 바꾸어 이야기를 전개시키면 어떻게 될까? 시선이 바뀌면 상황도 바뀐다. 승호에게 과거를 고백한 미혜는 이내 승호를 떠난다. 승호는 다른 자전거를 타는 미혜를 보며 “그렇지! 다른 자전거를 훔치는 도중이군.”이라고 생각한다. 민석오빠는 미혜와 자전거를 타는 도중 처음으로 간질병이 발작했다. 자전거는 민석오빠와 미혜를 연결하는 매개체라는 얘기다. 영화 <자전거 도둑>에 등장하는 자전거 도둑이 미혜의 눈길을 끈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며 미혜는 끔찍한 과거와 대면한다. 이런 미혜를 통해 승호는 자기 시선에 갇히면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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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님 께 안녕하세요 저는 중학생 입니다. 이번에 이책을 읽는게 2번째 인데 하나도 질리지 않고 재미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처음에 읽을 때 찾지 못한것도 찾으며 읽을 수 있어 두 번째 읽을 때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또 이책은 80~90년대를 상상하게 해주는 요소가 많아서 훨씬더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약간 고전적 개그나 말투 등 이 있어 이해가 안갈때도 있지만 그런 것을 가끔 찾아낼 때 재미는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질문: 마지막에 주인공이 미혜에게 말을 걸라 했는데 미혜는 왜 주인공을 봤으면서도 무시하고 자신의 길을 갔나요 바라는 점 : 책 내용이 재미있고 흥미가 넘치지만 캐릭터들이 너무 불상합니다 어두운 면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쫌더 밝은 분위기에 글을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 더 재미있는 책을 더 많이 내주세요~ -진영 올림- |
| 사람은 누구나 한가지 이상 상처를 갖고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 부모에게 받은 상처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 등. 그리고 사람들은 그 상처들을 잊고 살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상처를 치유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치유되지 않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있다. 김소진의 소설 『자전거 도둑』에서 주인공 '나'와 '미혜'의 상처가 그러하다. 보통 소설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것과는 다르게 전후 로마의 비극적 삶을 묘사한 「자전거 도둑」이라는 영화가 모티브가 된다. 여기서 작가가 활용한 것은 가난한 가계의 무력한 아버지, 아들 앞에서 봉변 당하는 아버지, 자전거를 훔치는 도둑, 간질 발작하는 청년 정도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아들 브루노가 아버지 안토니오의 손을 잡으면서 부끄러운 아버지를 이해하고 인간적인 이해와 화해로 상처가 치유된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소설속의 인물들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가난했던 시절 아버지는 구멍가게를 하셨고 그것은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어느 날 혹부리영감이 운영하는 수도상회에 물건을 하러간 아버지는 소주 두 병을 훔치지만 혹부리영감은 눈치채고 해명을 요구한다. 아버지의 애처로운 눈빛에 나는 내가 했노라고 거짓말을 한다. 혹부리영감은 그냥 넘어가는 대신 아들을 호되게 가르치라고 요구하고 나는 아버지에게 뺨을 맞는다. 아버지의 눈 속에 흐르지 못하고 괴어 있는 눈물을 보며 차라리 죽는 한이 있어도 애비라는 존재는 되지 말자고 끔찍한 다짐을 한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증오할 순 없다. 증오를 넘어 아버지를 불쌍한 인생, 가련한 인간으로 가여워할 뿐이다. 아버지에 대한 연민은 혹부리영감에 대한 분노로 발전하여 급기야 영감의 가게에 잠입하여 분탕질하게 되었고 그 일로 혹부리영감은 화병을 얻어 앓다가 죽는다. 한 사람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했다는 죄의식, 소주 두 병의 수치, 아버지의 연극은 오래오래 드러내기 힘든 상처로 깊이 각인된다. 이런 죄의식과 가족사가 준 상처는 서미혜가 나의 주인공을 훔쳐 타면서 그녀의 죄의식과 만나게 된다. 미혜의 오빠는 자신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 최초의 간질발작을 일으켰다. 그 후 그녀의 오빠와 행복한 시절은 끝나고 간질 증세가 악화된 오빠는 그녀에게 증오의 대상일 뿐이다. 미혜는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오빠를 방치하면서 그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다. 그리고 오빠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했다는 죄의식은 그녀의 내면에 깊은 상처가 된다. 미혜와 나, 둘 다 부끄러운 가족사와 죄의식이라는 뿌리깊고 치유가 어려운 동질의 상처를 갖고 있다. 그러고 이들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노력한다. 먼저 미혜는 자전거 훔쳐 타기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려 한다. 오빠와 함께 탔던 자전거는 어린시절 행복한 기억의 표상인 동시에 현재에 행복을 가져다 줄 매개로 작용한다. 그리고 타인의 자전거 훔쳐 타면서 타인과의 관계로 오빠의 부재에 의한 상처를 치유하려는 것이다. '나'는 「자전거 도둑」이라는 영화를 본다. 혹부리영감 가게에서는 아버지의 눈물을 감싸지 못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나는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다. 자신의 상처를 잊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자신의 컨트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스스로 노력을 하고 또 서로에게 고백을 하면서 뿌리깊은 상흔들을 드러내며 치유되기를 바라지만 치유하지도 치유 받지도 못하고 헤어진다. 그 상처가 여전히 생생하기 때문에, 서로 아직도 자신만의 상처와 죄의식으로 휘청거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상처가 치유되지 못하리라는 불안감에 서미혜의 접근을, 상처를 드러내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함정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결국 서미혜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또 다른 자전거를 훔쳐 탄다. 그런데 어린 내가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은 조금 특이하다. 혹부리영감에게 분노를 느끼고 복수를 하는데 있어서 너무 즉자적이며 아이답지 않다. 아무리 아버지의 눈물과 복수심이 깊은 상처로 자리잡았다 하더라도 사오십보나 되는 하수구 밑을 통과하여 가게를 분탕칠 용기를 가진 아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작가는 이렇게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문제해결을 통해 세상과 화해하는 온전한 길을 보여주지 않고 세계와 '화해'할 수 있는 통로를 슬그머니 감추고 있는 것이다. 즉, 아버지의 발목을 집요하게 잡고 늘어지는 그 세계와 주인공 자신이 얼마나 화해하기 힘든지, 그리고 그런 비극적 삶의 한 단면을 드러냄으로써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미혜도 또 다른 사람의 자전거를 훔쳐 탐으로써 상처를 치유하려 하지만 전의 경험으로 봐서 그것이 불가능 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 이 소설은 화해와 불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치유될 수 없는 내면의 상처라는 것이 존재함을 말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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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 책을 잡은 것은 10년도 넘었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강에서 나온 책이었는데, 2011년 정초 겨울밤, <소진의 기억>을 읽으면서 다시 <자전거 도둑>을 잡았다. 12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많이 회자되는 '자전거도둑'과 '아버지의 자리'를 먼저 읽었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난 무엇보다 외로움을 느꼈다. 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깡그리 무시당한 안토니오의 무너진 등이 견딜 수 없어 콧등이 시큰해졌고, 그보다는 무너져내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목격해야 하는, 그럼으로써 평생 씻을 수 없는 내면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갈 어린 아들 브루노 때문에 나는 혀를 깨물어야했다. 왜? 왜냐고? 그건...... 빌어먹을, 내가 바로 또다른 브루노였으니깐.....'p.150
'자전거도둑'은 이탈리아의 명화를 바탕으로 자식 앞에서 무너지는 아버지의 인상이 나온다. 김소진의 체험담일지도 모를 이 소설은 매일 자전거를 훔쳐타는 윗층에 사는 에어로빅 강사와 연결되면서 어린시절 죽음을 부추긴 경험담을 서로 공유한다. 구멍가게 아버지와의 불평등한 거래와 여자동창 앞에서 무너지는 자존심을 되갚기 위한 아들의 복수, 간질환자 오빠를 방치하는 여동생. 결코 따뜻하지만은 않은 이 소설 한 편이 주는 엄연한 현실들, 그 때문에 오늘은 더욱 김소진의 글이 그리워진다.
아버지를 부정한 자신과 자신을 부정하는 딸, 아버지가 되어서야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었던 정말 따뜻한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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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문학소설로 자전거 도둑을 보게 되었다. 그냥 그 유명하다고 한 자전거 도둑을 우리 한국 현실에 맞게 재구성해 쓴 책이라고 생각하고 보게 되었다. 그런데 영화의 장면장면이 짧게나마 스치면서 주인공의 삶을 보여주는 구성 자체가 신선하고 조금은 색다른게 다가왔다. 뭐랄까 뭔가의 해답을 줄 것 같으면서도 아리송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거 같았다. 아마도 내 삶에서 그 정답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아니 아마 작가 자신도 우리들에게 던지는 메세지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후 바로 전집을 사서 다른 소설들도 읽게 되었는데 우리의 삶에서 뭔가를 가슴아프게 보여 주고 있는것 같았다. 소설속에서 이런 삶의 여운을 주는 것도 흔치 않았는데 이렇게 여러편을 소설 속에 우리 삶속에서 해답을 찾아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얼마나 사는 것에 정답을 알고 있는며 아마 아직도 그 정답은 일부만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닐까.... 70년대를 살아 보지는 못했지만 가슴이 찡한 70년대의 삶이 내 머리속에 멤도는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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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단편소설 읽기에 푹 빠졌다. 김소진 전집중 구입한 책은 2권인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이나 그에 앞서 3권 [자전거 도둑]을 ebook으로 하루 두 세 작품을 읽었다. 여러 단편소설 중 달개비꽃, 자전거 도둑, 길, 경복여관에서 꿈꾸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무겁지 않은 주제로 유년시절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멋스럽진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감동을 주며 아련한 향수를 일으키게 한다. 또한 어렵지 않고 쉽게 읽혀 글읽기에 대한 부담감 또한 적어 다른 책들과 같이 조금씩 아껴가며 읽을 수 있었다. 최근 읽은 소설 중 유일하게, 평점을 주고 하긴 그렇지만 별 다섯 개를 주게 되었다.
[책 중에서]
혹부리 영감은 아버지한테 무슨 큰 특혜를 내려주듯이 거래를 터준다고 허락을 놓았었다. 같은 함경도 동향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하긴 혹부리영감한테는 매번 소주 열 병 안짝에다 새우깡 열 봉지, 껌 대여섯 개, 빵 예닐곱 개 등 일반 소매가격 구매자보다 더 많은 물건을 떼어가지도 않으면서 부득부득 도매값으로 해 달라고 통사정을 해쌓는 아버지 같은 사람 하나쯤 거래를 끊어도 장부상 거의 표가 나지 않을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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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소장하고 싶은 김소진의 단편집중 하나입니다. 걸출한 여러 단편들 중에서도 묘하게 제 가슴을 자극해대는 건 역시 96년에 발표된 '길'이네요. 누추한 여인숙과 소박한 목로주점이 주는 따뜻한 이미지, 그 속에서 녹아나는 서민들의 애절한 일상이 생생히 담겨져 있답니다. 갈 곳을 찾아 헤매는 나를 받아주는 건 역시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살아온 우리네 이웃들 뿐입니다. 길의 한중간에서 서성이던 나는 어느새 그들의 테두리 안에 점점 속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조금은 덜 외로울 것도 같습니다. 짧지만 굵진한 생을 살아온 작가 김소진을 기리기 위해 꼭 읽어봐야할 작품집이라고 생각되네요. 그를 기억하기 위해, 아니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상깊은구절] 길을 보면 왠지 위로가 된다. 널찍한 도로나 반듯한 길거리보다는 걷다가 언제든지 걸터앉아 다리쉼을 할 수 있는 뒷골목의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면 더욱 그렇다. 길이 있는 한 삶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가야 할 길보다 무작정 걷는 길이 더 좋았다. 왜냐하면 그런 길의 끄트머리에는 반드시 고달픈 한 몸쯤은 누일 만한 집이 나타나는 법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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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긴 시간 조금씩 이 단편집을 읽었다. 많은 단편이 있는데, 주제를 한 마디로 끌어내기는 어렵다. 크게 못 살았던 과거 시절, 특히 사회인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운동권에서 지냈던 대학 시절. 이제는 생활인이 되었지만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과거의 아버지와 같은 경제적으로 비루한 주인공이 되겠다. 일단 짧게 쓴 내용의 요약문이다.
늪이 있는 마을
"마을버스 이 마빡에는 방죽마을로 표시돼 있었다." 이 마빡이라는 표현이 재미 있어 인용해 본다. 저수지 혹은 늪이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는 설정과, 동네 사람들의 우울한 이야기. 마지막 반전은 식상하지만, 동네 사람들의 우울한 이야기는 결국 큰 흐름은 625 한국 전쟁에서의 이데올로기 갈등과 이후 김일성 사망으로 이어지는 흐름 정도이고, 그 사이에 슬픈 사연이 흐른다. 김일성 사망으로 과거 625의 사건을 다시 생각해보려는 작품이다.
세월의 무늬
현재는 소설가가 된 작가. 우연히 고등학교 시절의 선생을 문학교실에서 만나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에 프랑스의 대문호가 방문한 강연회를 가고 싶었으나, 담임 선생님과 이 선생님의 간섭으로 가지 못하게 된다. 어머니의 이야기와 본인의 이야기, 그리고 며느리 참 주제없이 시간이 지나간다. 연극 장군의 코털은 어디서 본 것 같다.
자전거 도둑
세편 혹은 네 편의 소설로 이루어졌다. 첫번째는 네오리얼리즘 자전거 도둑 - 아버지의 비루함을 자식에게 들킨다. 두번째는 주인공의 자전거 도둑 - 아버지에게 비루함을 느끼지만, 나름대로의 복수를 멋있게 한다. 세번째는 현재 자전거 도둑의 과거 자전거 도둑 이야기 - 현실을 탈피하지 못하고 도피함으로 오빠를 죽여 버린다. 마지막 현실 - 기자와 요가 강사는 결국 진실을 마무리한다.
원래 영화인 자전거 도둑을 몰랐고, 그리고 이 소설이 교과서에 나오는 지도 몰랐다. 너무 유명하고 해석도 표준으로 정해져였다. 하지만 나는 좀 다르게 영화속의 아버지가 기자의 아버지이고 요가강사의 오빠이다. 하지만 현재의 자전거 도둑은 전혀 비루하지 않다.
첫눈
장석조네 사람들의 한 편이 아닐까? "첫눈" 마을의 말썽꾼이자 석조공인 이봉학씨가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돌아온다. 이웃 소년 병호의 따뜻한 시선으로 보았다. 봉학씨가 말썽꾼이긴 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져 약한 이웃들을 도와주었다. 어느 날 송탄에서 부인을 데려오는데 송탄댁이다. 주인공은 이봉학과 송탄댁이고 잠시 갈등으로 헤어졌다는 다시 잘 만난다는 해피엔딩이다. 따뜻한 에피소드이다.
아버지의 자리
어렸을 때의 아버지는 술집 작부에 빠져서 주인공의 중학교 등록금을 홈쳐 중학교에 1년 늦게 가게 만든다. 현재의 나는 출판사에서 퇴직하여 백수로 지낸다. 딸이 유치원을 배웅 온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여 부정한다. 아버지의 역할이 가장의 역할이 돈을 벌어서 경제적으로 가족을 유지하는 것이 크다고 작가는 보는 것 같다.
달개비꽃
퀴어문학? 흑인 인종 멸시 비판. 1995년의 작품인데, 이미 외국인이 주요 공장에 중요한 일꾼으로 자리잡고 있다. 제사 공장(실 뽑기) 공장장인 기태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과거는 작은댁인 어머니를 떠나 큰어머니 댁에 어렵게 살았다. 주변에 미군기지가 있었는데, 흑인 병사에게 성폭력을 당한다. 현재는 외국인을 중심으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때 아지드라는 흑인 청년이 등장하는데, 내용의 일부는 흑인 노동자가 여러 과정을 통해서 무시당하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연정이 표현되고 있다. 아주 가볍게 다루고 있다.
문산행 기차
1995년 완행 열차(소위 이등칸)의 스케치
탁 - 주제의식 없는 출판사에 다니며, 운동권 출신이지만 현재 별볼일 없이 사는 과정
짧은 머리 - 사라져가는 기지촌의 마지막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억척 또순이
떠돌아 살아가는 삶
길
문산행 열차의 후속 같은 작품이지만 주인공의 직업은 다르다. 주인공은 장석조네 사람들의 일원이다. 역시 아버지는 비루하다. 주인공의 현재는 부도난 회사에서 대리직. 내부자 정보를 이용하여 불우한 주변 이웃을 구해준다. 큰 사건은 아니지만 현재는 도피중. 주인공의 과거 안 좋을 때, 가정은 뿔뿔이 헤어지고, 주인공도 어떤 가정에 위탁 받았다. 그때의 기억에 다마네기(양파)가 등장한다. 현재 목로주점 주인도 양파를 잘 먹는다.
경복여관에서 꿈꾸기
후일담 소설 학생 운동을 하였지만 이제는 소설가 번역가 기획자로 살아가고 있다. 의사 부인인 출판사 사장과의 대화 - Golden Ass에 대한 번역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장에게 너무 지적인 이야기를 했다. 맞은편 부인 - 직업을 알 수 없으나 분위기가 섹시하다. 선배는 이제 돈을 버는 학원강사가 되어 있고, 예술은 거저 고통의 약간의 피난처이다. 다시 학창시절을 돌아본다. 가난한 가족과의 불화. 단지 치유가 있었다면 군대 직전의 경복여관의 짧은 체류이다. 다시 현실로, 공처가 남편은 현실로 돌아온다.
양파
후일담 중편 소설 - 현재 기준으로는 경장편으로 단행권도 가능함 학생운동을 한 사람의 대표주자인 함승익의 정치적인 변절을 그리고 있다. 세대가 386세대보다 앞선 유신 세대의 운동권 세력인데, 크게 386세대 초반으로 봐도 무방하다. 지금 읽으면 민망할 정도로 정형적이다. 90년대에 읽으면 좋았을 것 같다.
이 작품 중에 제일 좋았던 것은 “경복여관에서의 꿈꾸기”이다. 불우했던 대학 시절의 군대가기 직전의 치유가 있었다. 그것이 경복여관에서의 꿈꾸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소설도 쓰다니”에서 놀란 것이 달개비꽃이다. 갈등없이 따뜻하기로는 “첫눈”이 최고인 것 같다.
전체적으로 이 소설들이 벌써 20년이 지난 과거의 소설이 되었다. 이제는 누구도 50,60년대의 가난함과, 혹은 70,80년대의 군부독재와 학생운동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과거는 아득하고 미화된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 역시 생활의 비루함을 느낄 것이다. 양파 같은 매우면서 아삭아삭한 상쾌함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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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둑을 통하여서 인간은 상황에 따라서 충분히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모든 땅이 황폐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사람들은 허무한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자신이 먹고 살 형편 형편 또한 허락되지 않게 되면서 자연스레 도둑질을 하게된 것이다. 이처럼 경제가 어려울 수록 서로 돕고 배려하는 사회가 진정한 인간사회가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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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적 박완서님의 작품인 자전거도둑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기억은 잘 안나는데 그랬다 여튼. 그런데 학교도서관에서 뭘 읽을까 고민하던 중 내 눈을 사로잡은 이 책. 나는 과거에 읽었던 박완서의 작품인 줄 알고 그 때의 향수를 돌이킬 겸 책을 집어들었다. 그런데 결국 다른 작가의 작품이었고 내용도 달랐다. 박완서의 작품은 아이들을 겨냥한 반면 이 자전거 도둑의 독자층은 중장년층이될듯한 이 야리꾸리 미묘한 기분...............?
ㅋ다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