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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 산다는 것 - 마쓰모토 세이초 ㅡ북스피어 제아미 ㅡ노가면극 사루가쿠의 예인 ' 예술가가 자신의 세계를 가장 깊이 이해해주는 사람이나 보호자를 잃는 것은 때로는 일종의 자기상실 마저 일으킨다 . '(49 쪽) 센리큐 ㅡ 다도의 예인 ' 다다미 넉장 반의 공간이 허름한 초당이요, 각종 도구가 명마였던 것이다 . 누추한 방의 고귀한 명기 . 그 대조의 파격 속에 쓸쓸한 미를 만들었다 . 물론 소박한 옷을 입고 호화로운 정신을 품는다는 선종의 영향이었고 그런 자리에서는 필연적으로 마음이 일어났다 . ' (92 쪽) 운케이 ㅡ 조불의 예인 ' 어느 샌가 자신이 정색을하고 가이케이와 대립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 가이케이를 진심으로 경멸하는 이유는 , 사실 가이케이의 폭넓은 예술에 대한 열패감이 의식아래 숨어 있어서가 아닐까 . 그런 생각이 들자 운케이의 눈에 핏발이 섰다 .' (36 쪽) 예술가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단편 소설집 . 노년이 되어 인생 총체를 되돌아 보는 그들을 ... 아니, 그들의 마음이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작가의 짐작에서 출발했을지 모르겠다 . 이 예술가로 산다는 것에서 보여주는 것은 ... 머릿속에선 우리나라의 시대를 더듬으며 , 일본 문화의 꽃이 피었던 시기를 엿보는 중이다 . 소설이 아니었다면 이토록 생생하게 연관지어 볼 염도 내지 않았을 것이다 . 이래서 먼 나라의 어떤 과거를 아는데는 소설 , 특히 장르 소설의 읽기에서 그 호기심들의 출발점을 갖곤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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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무엇일까. 이 말을 해도 나도 잘 모르겠다. 예술 하면 그림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예술에는 보이는 것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들어갈 거다. 오래 남길 수 있는 것도 있고 남기지 못하는 것도 있다. 지금 생각하니 여기에는 보이는 것만 한 사람 이야기가 담긴 듯하다. 다도는 좀 다르구나. 다도는 정신, 마음과 상관있겠지. 그것도 작고 수수한 것보다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니 다도는 화려하지 않아야 할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금으로 다실을 짓고 그 안도 금색으로 채웠다. 그런 걸 센 리큐는 아주 싫어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리큐의 다도를 알아주었는데. 히데요시는 노부나가를 따라하려 했지만 달랐다. 히데요시는 다도를 좋아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리큐가 어두운 색 다완을 쓰고 다실도 아주 좁게 짓자 히데요시는 리큐가 무인이 아닌 상인이어서 그렇다 했다. 이런 마음을 바로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리큐는 죽어야 했다. 윗사람이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 하는 시절도 있었다.
와비사비라는 걸 만든 센 리큐 제자는 많았다. 후루타 오리베는 센 리큐를 이어 히데요시 다두가 된다. 오리베는 리큐와는 다른 다도를 하려 했다. 좀더 화려하고 무인에 가까운. 오리베가 다도를 했지만 무인이었다. 히데요시한테는 오리베 다도가 괜찮았지만 이에야스는 오리베가 자신을 배신하려 했다 여겼다. 오리베도 배를 가르고 죽는다. 리큐와 오리베에서 이어진 사람은 고보리 엔슈다. 본래 이름은 고보리 마사카즈다. 마사카즈는 오리베 제자로 리큐나 오리베처럼 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마사카즈는 다실, 정원, 다완, 다실 꽃 장식, 도예, 다구 감정, 시가나 문장 같은 여러 영역에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마사카즈는 무인이었다. 무인으로 공을 세우지 못했다. 그래선지 뜰을 만들 때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윗사람)이 바라는대로 했다. 그러면서도 보이지 않게 저항했다. 전국시대에는 무인이 많았다. 무인이라고 해서 모두 싸움을 잘하지는 않았겠지. 무인에는 싸움이 없을 때 뜰을 가꾸거나 다른 걸 한 사람도 있었을 거다.
지배자가 바뀌면 자기 뜻을 펼치지 못하기도 했다. 앞에서 말한 센 리큐도 그렇고 흉내내기극 사루가쿠를 한 제아미도 그랬다. 제아미가 하는 사루가쿠를 좋아하던 쇼군이 죽자 제아미는 사루가쿠를 하지 못하게 되고 사루가쿠를 하는 이야기만 썼다. 시간이 더 흐르고 또 쇼군이 바뀌었을 때는 먼 곳으로 쫓겨났다. 그런 일은 조선에도 많았다. 예술을 하는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힘들겠지. 본래 있던 것이 아닌 좀 다른 것을 하려는 사람도 있었다(여기 나온 사람은 거의 다 그랬다). 운케이는 불상을 조각했는데 그 시대 양식과는 다른 걸 하려고 했다. 불상은 그 시대 양식을 따르지 않으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옛날에 다르게 하려는 사람이 있어서 예술이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절에 불이 나고 불상이 사라지면 아쉽게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운케이는 그걸 더 좋게 여겼다. 그건 자신이 새로운 걸 만들 수 있어서였다. 예전 것뿐 아니라 새로운 것도 함께 있으면 괜찮을 텐데. 이렇게 생각하는 난 고집이 없는 걸까. 아니 나도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게 더 좋다.
여기 실린 사람은 일본 사람이고 내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이 사람들한테는 공통점이 있다. 그건 본래 있던 것이 아닌 다른 걸 하려 한 거다(앞에서도 말했구나). 도요 셋슈는 오랫동안 애써서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다. 이와사 마타베에는 그림을 잘 그렸지만 잘되지 않았다. 나이를 먹고 좀 살만 해지니 높은 사람이 마타베에를 불렀다. 그때 마타베에는 시골에 살았다. 지금은 교통이 발달해서 먼 곳에 쉽게 갈 수 있지만 옛날에는 힘들었다. 살던 곳을 떠나면 다시 돌아갈 수 없었겠지. 그래도 마타베에는 집을 떠났다. 고에쓰는 서예에 뛰어났는데 다른 것도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 했다. 예술이라는 건 하나가 아니고 이어져 있기는 하지만 고에쓰는 다른 건 그저 그랬다. 그런데 왜 여러 가지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 했을까. 우키요에 작가로 이름이 알려진 샤라쿠도 그림 그리기 쉽지 않았다. 샤라쿠는 먹고 살려고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리는 데 타협한다. 그렇게 해도 잘 팔린 건 아닌 듯하지만. 샤라쿠는 열달 정도 활동했다는데 지금도 이름이 남아 있다니 신기하다. 나도 이름 들어본 적 있다. 그림은 봤는지 못 봤는지 잘 모르겠다.
세이초가 옛날 예술가로 소설을 쓴 건 의뢰를 받아서였다. 처음에는 재미있을 것 같았지만 쓰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마지막에 실린 <조불사 도리>를 쓰려고 하는 소설가 이무라 이야기로 썼다. 이 소설에서 이무라는 세이초 분신이겠지. 도리는 백제에서 왜로 건너간 시바 닷토 손자였다. 이 말을 보니 도리를 잘 몰라도 그냥 반가웠다. 내가 한국사람이어서 그렇겠지. 그리고 내가 사는 곳이 옛날에는 백제였다. 세이초가 쓴 것과 여기 나온 사람이 같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이니 그건 괜찮지 않을까. 아니 아주 다르지는 않을 거다.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한 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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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 산다는 것 이 책에서는 리큐를 비롯해서 새 시대의 권력자의 모습을 불상으로 표현한 운케이, 오늘날 우키요에를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지만 당시에는 인기가 없었던 샤라쿠 등의 예술가들의 숨겨진 사연에 대해 밝혀보고자 하는 이유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듯이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의 세계가 있지만 시대적, 역사적, 정치적인 상황때문에 본인이 원하지도 않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생각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예술을 표현하기 위해 어떻게든 끝없는 노력을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늦게라도 큰 빛을 발하는 작품을 후세인 우리가 경험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예술의 혼을 온전히 쏟아부어도 만족할 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는 데 본인의 의사와는 반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했던 옛 시대의 예술가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겹고 목숨까지 잃는 험난한 작업이었다는 점에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분들의 창의적이고 독특한 예술의 혼을 쏟을 수 있는 시대와 환경이었다면 과연 얼마나 의미있고 감동적이고 훌륭한 작품들이 더 많이 남겨지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에 아쉬움마저 느껴집니다. 아직도 예술을 하기에는 힘든 현대지만 본인들의 예술성을 표현하고자 끊임없는 혼신의 힘을 쏟는 예술가분들을 정말 존경하게 되는 시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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