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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신이 바로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라는 걸 기억해 줘.
"우리 자신이 바로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라는 걸 기억해 줘." 내용보기
세월호 유가족 인터뷰들 중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한 아버지의 것이었다. 그는 세월호가 침몰할 때, 살아있는 아들과 통화할 수 있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말하는 아들에게 그가 한 말은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시키는 대로 잘 따라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참사 뒤, 계속 마라톤에 참석했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을 벌주기 위해서였
"우리 자신이 바로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라는 걸 기억해 줘." 내용보기

 세월호 유가족 인터뷰들 중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한 아버지의 것이었다. 그는 세월호가 침몰할 때, 살아있는 아들과 통화할 수 있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말하는 아들에게 그가 한 말은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시키는 대로 잘 따라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참사 뒤, 계속 마라톤에 참석했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을 벌주기 위해서였다. "그 때, 빨리 피하라고 말만 했어도 아들은 살 수 있었을텐데. 제가 그랬어요. 시키는 대로 따르라고. 그렇게 말한 절 용서할 수가 없어요." 마라톤 현장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울면서 뒷 말을 반복했다.




 이 아버지가 생각났던 것은, 우리들에겐 이미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라는 소설로 잘 알려진 지넷 윈터슨의 '시간의 틈'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버지니아 울프와 그의 남편 레너드 울프가 1917년 설립한 영국 호가스 출판사에서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여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바로 세계의 유명한 작가들에게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각색하여 쓰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이름하여 '호가스 셰익스피어 프로젝트'로, 이 계획에 따라 벌써 집필이 결정된 작가만 해도 그 면면이 꽤나 화려한데, '영국 남자의 문제'로 맨 부커상을 탄 하워드 제이컵슨, '시녀 이야기'로 SF계의 전설이 된 '매거릿 애트우드', '진주 귀걸이 소녀'의 트레이시 슈발리에, '우연한 여행자'의 앤 타일러 그리고 스릴러 팬이라면 더욱 눈이 커질, 요 네스뵈와 길리언 플린까지 여기에 포진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요 네스뵈와 길리언 플린의 셰익스피어가 가장 기대되는데, 지넷 윈터슨의 '시간의 틈'은 바로 그 프로젝트'의 시작을 여는 작품이다.




 셰익스피어 말년의 로맨스 '겨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세 명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과 리오 그리고 지노다. 지넷 윈터스는 소설 마지막에서 셰익스피어에게 있어 결말은 세 가지 밖에 없다고 말한다. 바로 '복수. 비극. 용서(p. 395)'다. 공교롭게도, '시간의 틈'에 나오는 세 아버지가 다 여기에 해당된다. 복수는 리오, 비극은 지노 그리고 용서는 셉인 것이다.


 그런데 이 모두가 실은 다 과거에 대한 반작용이다.


 일단 리오는 아주 어릴 때, 어머니에게서 버림 받은 과거가 있다. 그것은 그가 처음으로 맞이한 세계의 붕괴였고,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었기에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사태를 납득하지 못한다. 그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이별, 상실을 두려워한다. 어릴 때, 지노와 연인이 됨으로써 그의 세계는 안정을 찾은 듯 보였으나 자전거 경주를 하다 뜻하지 않게 지노가 절벽 아래로 추락하자 그의 세계는 다시 불안 속에 빠져 든다. 때문에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정, 사랑 같은 추상적 가치를 믿지 않는다. 보이지 않기에 예고 없는 불행으로부터 확실히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돈과 지위만 쫓는다. 내 영역이 어디이고, 잘 지켜지고 있나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그래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의 상처는 계속해서 그를 괴롭힌다. 그런 그가 꿈꾸는 것은 단 하나다. 리처드 도너의 영화 '슈퍼맨'의 마지막 장면. 거기서 슈퍼맨은 이미 죽어버린 로이스 레인을 살리기 위해 빛의 속도를 초월하여 지구를 거꾸로 돈다. 현재의 상실을 없던 것으로 하기 위하여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슈퍼맨은 다시 찾은 과거에서 로이스 레인을 살린다. 리오도 그것을 원한다. 상실의 시간으로 돌아가 상실을 소거할 수 있게 되기를. 인터뷰의 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가 얼른 달아나라고 외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리오는 계속 그 상처를 짊어지고 가야 한다.


 어떤 여자가 말하고 있었다. "항상 겨울이 떠나지 않고 폭풍이 몰아치는 황량한 산꼭대기에서 벌거벗은 채 주린 배를 움켜쥐고 천 번을 무릎 꿇고 만 년을 살아도 신들의 눈길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p. 342)


 그에게 남은 것은 다시 또 그것을 겪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뿐이다. 그러나 비극은 예고가 없다.


 과거란 던지면 폭발하는 수류탄이다.(p. 365)


 그래서 그는 버림받기 전에 버린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했던가? 그는 있지도 않은 지노와 아내 미미의 불륜을 의심하고 고집하여,  지노를 죽이려들고 이제 막 태어난 딸 퍼디타마저 버린다.


 지노 역시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추락을 경험했다. 어릴 때 리오 때문에 절벽에서 추락한 것이다. 죽을 뻔한 일이었는데도, 그것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그 역시 리오와 똑같이 그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지노는 리오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두려움에 대응했다. 리오는 자신의 성채를 보다 더 크고 단단하게 구축하는 것으로 두려움에 대응했지만, 지노는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포기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는 자신의 영역을 없앴다.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누구든 품었고 자신의 말과 이익을 고집하기 보다는 타인의 말을 더 많이 듣고 타인을 배려하길 원했다. 그러나 그의 두려움을 씻어주진 못했다. 그의 납득이 낳은 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절벽에서의 추락이 있었던 과거를 납득할 수 없었다. 거기서 그가 절실하게 경험한 것은 인간 이란 존재의 너무도 연약한 삶이었다. 잠자리 날개만큼이나 바스라지기 쉬운 삶. 지노는 무엇을 해도 그 삶에서 달아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왜 구태여 나의 성채를 쌓을 것인가? 어차피 추락은 필연적인데. 지노는 원해서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는 미미가 말해준 프랑스의 시인 네르발이 꾸었던 꿈의 추락 천사가 자신이라고 여긴다. 그 천사는 날개를 접은 바람에 집 사이에 추락한다. 그가 다시 날기 위해 날개를 펼치면 자신을 둘러싼 건물들이 무너질 것이다. 


 "천사가 날개를 펴고 벗어나려고 하면 건물이 무너젔을 거야. 하지만 날개를 펴지 않으면 천사가 죽겠지."

  (...)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어?" 미미가 말했다. "주변 모든 것을 파괴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p. 104)


 지노는 죽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무위(無爲)는 그의 신념이다.


 리오가 멕베스에 가깝다면, 지노는 햄릿에 가깝다. 자유롭기 위해 주변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린 리오, 주변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죽기로 결심한 지노. 하지만 이런 삶을 지노 역시 납득할 수 없다. 이런 삶이라도, 이런 삶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그는 알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만든 건 항상 자리를 비우는 신이 아니라 추락자, 루시퍼 같은 인물이라는 거지. 일종의 흑천사야. 우리는 죄를 짓거나 지위를 잃는 게 아니야. 우리 잘못이 아니었지. 우리는 이렇게 태어났어. 우리가 무얼 하든 그건 결국 추락이야. 걷는 것조차 일종의 잘 통제된 추락이지. 하지만 실패와는 달라. 우리가 이걸 안다면-영지, 그러니까 안다는 거야- 고통을 견디는 게 더 쉬울 거야."

  "사랑의 고통 말이야?"

  "그것 말고 뭐가 있어? 사랑, 사랑의 결핍, 사랑의 상실. 나는 지위와 권력이-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그렇고-별개의 동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 우리가 서 있는 곳, 혹은 추락이 시작되는 곳은 바로 사랑이야.(p. 108)


 그 바람을 담아 그는 열의를 다해 게임을 만든다. 게임의 제목은 '시간의 틈'. 게임에서 사람들은 세상의 존재 이유를 밝혀주는 존재를 찾아 다닌다. 그 존재는 아기다. 예수가 태어난다는 예언을 들은 헤롯왕은 나라의 모든 아기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어쩌면 예수란 그렇게 헤롯왕에게 자식을 잃었던 부모들이 자신이 당한 비극의 이유를 찾던 끝에 태어난 존재일 지도 모른다. 비극을 당한 자는, 자신이 당한 비극의 이유를 알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그 이유를 아는 것, 그것의 납득이 그에겐 구원이나 다름없다. 인터뷰에 나온 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다. 그의 계속된 마라톤은 자학 외에도 그 이유에 대한 갈구의 몸부림일 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난 '시간의 틈'을 읽으면서 그 아버지를 떠올렸던 것 같다.


 리오와 지노, 그들 모두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리오는 욕망으로, 지노는 자학에 가까운 포기로 과거를 잠시 봉인해두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라고 다를 것인가? 리오와 지노의 모습은 과거의 상처를 지닌 자라면 누구나 닮을 수 있는 모습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그렇다면 과거를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마지막 아버지 셉의 등장을 본다.


 셉은 소설에서 가장 먼저 나온다. 리오와 지노는 백인이지만, 그는 흑인이다. 그리고 병든 아내를 목졸라 죽였다. 지넷 윈터슨은 셉과 리오를 앞과 뒤로 나란히 배열한다. 둘 다 아버지고 돈독하게 지내는 아들 하나가 있다. 닮은 점 때문에 지넷이 마치 둘을 비교해 보여주는 것 같다. 셉과 리오, 둘 다 아내를 죽였다. 셉은 육신의 아내를 죽였고, 리오는 영혼의 아내를 죽였다. 미미는 리오의 만행으로 인해 결국 조각 같은 존재가 된다. 살아 숨쉬는 것은 다만 육체 뿐, 영혼은 마치 식물 인간과도 같이 어디로든 움직일 수 없다.


 폭포수처럼 사라지는 현재. 너무나 천천히 또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시간의 맹렬한 흐름.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그녀는 가만히 서 있지 않으려고 걷는다. 시간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있다는 듯이. 과거를 원래 속한 곳에 두고 떠날 수 있다는 듯이. 하지만 그것은 항상 거기, 그녀의 바로 앞에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과거는 그녀 바로 앞에 놓여 있고 매일 그녀는 그것을 향해 걸어가 부딪친다. 과거는 반대쪽에서 들어오려는 미래를 막는 문 같다.(p. 323)


 미미는 과거의 비극과 현재의 불행 사이에 단단히 끼여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그렇게 셉과 리오, 둘 다 아내를 죽였으나 동기는 달랐다. 리오는 자신을 위해 죽였으나, 셉은 아내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죽였다. 하지만 그조차 행여 진실은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 죽인 것이 아닐까 의심한다. 그는 '슬픔이 여기에 없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뜻이라는 걸 깨닫는다(p. 36)'. 셉도 과거에 붙들려 있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을 위해서 죽음을 살아 낼 수 있다면 난 그렇게 할 거야."(p. 37)

 죽음을 산다? 모순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사랑으로,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은 그의 죽음도 사는 것이 된다. 그 혹은 그녀가 목숨을 바쳤던 대상을 통해 그와 더불어 삶을 영위할 테니 말이다. 부재(不在)는 무(無)가 아니다. 다만 우리의 편협한 시야가 그렇게 보게 할 뿐. 그런 아내 때문일까? 셉의 대응은 다르다. 그는 과거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상실을 사라짐이 아니라 다만 장소를 옮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에게 부재는 내재(內在) 혹은 타재(他在)다. 내재(內在)는 셉이 어머니의 자리에 서는 것으로 나타난다. 셉은 어머니가 되어(셉은 퍼디타의 양육을 위해 아내의 보험금으로 가게를 마련한다. 가게는 리오가 남긴 돈과 아내의 보험금을 정확히 절반씩 사용하여 마련했는데, 여기서 셉이 리오와의 관계에 있어, 어머니의 위치에서 퍼디타를 양육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더우기 셉은 피아노 연주자로 음악에 종사하는데, 그것인 퍼디타의 어머니인 미미의 직업과 동일하다. 이렇게 셉은 미미를 이어 받는다.), 자신의 아이가 아닌 퍼디타를 자신의 아이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아낌없이 사랑하고 양육하려 한다. 아내에게 못다한 사랑을 퍼디타에게 베푸는 것이다. 사랑이 장소를 옮긴다. 이렇게 부재(不在)는 타재(他在)가 된다. 


 리오와 셉의 대비는  셉이 가지는 차이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셉은 리오처럼 과거를 되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지노처럼 '시간의 틈'을 구태여 찾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과거의 매몰도 현실 도피도 그에겐 없다. 있는 것은 다만 타인에 대한 무한 책임 뿐이다. 그래서일까? 지넷 윈스턴은 리오와 지노가 그토록 찾았던 것이 셉에겐 이미 와 있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문득 드러낸다. 셉이 아기 퍼디타를 안고 가다 어느 순간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장면이다.


 나는 아기를 안고 길을 걷다가 어떤 시간과 다른 시간이 같은 시간이 되는 시간의 틈에 빠졌다. 내 몸이 곧게 펴지고 보폭이 넓어졌다. 나는 청년이었고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했는데 갑자기 우리는 부모가 되었다.(p. 34 ~ 35)


 리오와 지노가 염원한 구원이, 자신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아이를 책임지기로 한 순간 셉에게 문득 도래하는 것이다. 


 "난 퍼디타가 내 아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리오가 말했다. "지노의 아이라고 생각했지요."

 "난 내 애가 아니라는 걸 알았지요." 셉이 말했다. "하지만 이 아이를 사랑했습니다."(p. 366)


 이로써, 우리는 알 수 있다. 마지막 아버지 셉이 바로 지넷 윈터슨이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에게 제안하는 구원의 여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소설에서 셉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다. 셉이 표상하는 여정의 대부분은 미래 세대인 퍼디타에게서 구현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퍼디타가 있기 위해서는 셉이 있어야 했다. 아버지의 아집이 일으킨 비극은, 아버지의 환대로 치유되어야 했다.


 셉이 등장하는 순서는 원작 '겨울 이야기'와 다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아버지는 파멸의 원흉이자 리오의 원본인 '레온테스'다. 원작에서 세계는 붕괴로 시작한다. 그러나 지넷의 소설은 다르다. 셉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한 남자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분명 그와 연관 있어 보이는 퍼디타를 베이비박스에서 구하는 장면으로 여는 것이다. 소설의 세계는 재건으로 시작한다. 이 점을 고려하면 '물의 별'이라는 이 장의 제목이 의미심장해 보인다. 지넷 윈터슨은 혹시 이 장을 성경의 '창세기'처럼 쓴 것이 아닐까? 백인이 아니라 흑인인 신이 파멸과 죽음의 잔여라 할 수 있는 어린 생명을 구하는 이야기. 그것도 인종도 다르고, 자신과 아무런 관계마저 없는 자를.


 만일 셉의 첫 등장이 이 소설의 창세기라고 한다면, 이러한 셉의 모습은 창세기의 신과 얼마나 다른가? 창세기의 신은 순종을 원한다. 순종은 자신과 동일할 것에 대한 요구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타자가 되겠다는 표시이고, 그것이 드러난 순간, 신은 자신의 영역에서 배척한다. 조금의 배려도 없는 축출이라는 점에서 이런 신의 모습은 리오와 판박이다. 그러나 셉은 자신과 동일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과 전혀 다른 타자라 할지라도 기꺼이 환대한다. 인종도 다르지만, 행하는 것도 다르다. 리오와 셉의 대비는 어쩌면 성경의 신과 지넷 윈터슨이 꿈꾸는 신의 대비이기도 하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이런 생각을 또 하게 된다.

 '혹시 이 소설 저변에 흐르는 이야기는 나와 다른 타자에 대한 태도에 관한 것이 아닐까?'


 그 생각으로 이끌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야기 중심에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왜, 이 소설엔 각자 다른 경로를 걷는 아버지들이 등장할까? 그 의문 끝에 나는 프랑스의 한 철학자를 떠올렸다. 바로 레비나스다. 그는 타자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존재들이 서로 고유의 가치를 가지고 대등하게 공존하지 않고 어느 하나로 융합되어 동일자가 되는 것을 무엇보다 경계했는데, 그것은 물론 유태인으로 그가 경험한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초래한 전체주의 때문이었다. 그는 '나'라는 자아조차 하나가 되어서는 안되고, 나이면서 동시에 타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나와 하나이면서도 동시에 결코 나와 같을 수 없는 영원한 타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레비나스는 가능하다고 했고, 그 증거로 아버지란 존재를 들었다.


 어떻게 나는 너 안에 흡수되지 않고, 나를 잃지 않으면서, 너라는 타자 안에 나로 남아 있을 수 있는가? 어떻게 자아는, 나의 현재 속에 있는 자아가 아니면서, 다시 말해,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돌아온 자아가 아니면서, 너 안에서 나로 남아 있을 수 있는가? 어떻게 자아는 자신에게 타자가 될 수 있는가? 아버지가 되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아버지란 존재는 전적으로 타인이지만 동시에 나이기도 한 '낯선 이'인 것이다.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 p. 112)


 레비나스가 아버지란 존재를 이렇게 중요하게 취급하는 이유는 자식과의 관계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아이는 자신의 분신이지만 소유할 수 없다. 소유란 동일화를 뜻한다. 아들은 자신에게서 난 존재이지만 자식은 아버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자식에게서 나이면서 내가 아닌, 타자로서 '낯선 나'를 본다. 레비나스는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구원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타자로서의 낯선 나인 자식이 내가 미처 실현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실현시키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처럼 '걸어보지 못한 길'을 걸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식은 지금 고정된 나라는 존재의 영역을 넘어선다. 자식에 의해 아버지 자신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미래가 비로소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레비나스는 출산도, 자식도 모두 소중한 경험이요, 존재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미래가 그를 통해 도래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래란 단순히 시간적인 의미가 아니다. 레비나스에게 미래란 타자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가 없다. 미래는 우리의 모든 능력을 아득히 넘어선 무엇이다. 우리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바깥에 위치하는 존재가 '미래'다. 그래서 타자는 미래이고, 그 미래가 도래한다는 것은 현재에 고정된 나를 넘어서는 초월을 뜻한다. 아버지란 그 초월을 누려볼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바로 자식이란 미래를 통해서.


 지넷 윈터슨이 레비나스를 읽었는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미래 세대가 과거로 붕괴된 세계를 재건한다는 생각은 레비나스와 이처럼 많이 닮아있다. 어쩌면 이것은 지넷 윈터슨이 찾아낸, 지노에게 있어 '시간의 틈'과도 같은 자기 존재의 의미일 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지넷 윈터슨 또한 '입양아'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퍼디타'였다. 태어나자마자 버림 받았고 한 독실한 기독교인 가정에 입양되었다. 하지만 오순절교를 광신했던 양부모에 의해 지넷의 미래는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철저히 설계 되었다. 그녀는 그들이 원하는 것 이외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꿈꿀 수도 없었다. 지넷은 그들에게 소유되었고, 오렌지만이 과일이며 똑같이 신에게 순종하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가치라고 강요받으며 자라났다. 그런 경험을 쓴 책이 바로 지넷의 첫 소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였다.


 그런 그녀에게 진정한 미래가 열린 것은 사랑 때문이었다. 교회에서 우연히 만난 한 소녀와의 사랑이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퍼디타'가 셉의 사랑을 통해 과거로 인해 모든 붕괴된 세계를 재건할 수 있었듯이 말이다. 이런 그녀였기에, 지넷에게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는 각별했다. 자신과 똑같은 입양아가 나오고, 그 입양아를 통해 세계는 구원 받는다. 지넷은 '겨울 이야기'를 읽으면서 비로소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 스스로 고백 했듯, 30년이 넘도록 내내 '겨울 이야기'를 개인적인 이야기로 여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개작을 쓴 것은 30년이 넘도록 나에게는 이 희곡이 개인적인 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것이 없다면 내가 살아갈 수 없는, 글로 쓴 세상의 일부였다는 뜻이다.(p. 394)


 정녕 그 오랜 세월 동안 지넷에게 '겨울 이야기'는 지노의 '시간의 틈'이었다. 그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비극적 운명에 처해진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었다. 때문에 '시간의 틈'은 자신이 꼭 써야만 하는 이야기였고, 결국 그 모든 여정을 끝낸 지넷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비로소 자신의 과거와 그 모든 순간에 존재했던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고.


 어쩌면 그 때 나는 기억할 것이다, 역사는 스스로 반복되고 우리는 항상 추락하지만, 내 안에는 역사가 담겨 있고 내가 잠시 과거에 다녀와도 아무 흔적도 남지 않지만, 나는 알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을 알았었음을. 거칠고 존재할 것 같지 않고, 판에 박힌 모든 것을 거스르는 어떤 것을 알았었음을. 뒤집힌 배에 남아 있는 공기처럼.(p. 401)


 이렇게 지넷도 셉의 자리에 섰다. 과거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미미가 그랬던 것처럼, 과거로 꽉 막혔던 문이 열리고 미래가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넷이 독자인 우리도 자기처럼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그녀 개인의 경험과 깨달음일 뿐, 일반화시킬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물론 그녀가 소설에서 직접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가 소설의 코다를 통해 넌지시 암시받은 것일 뿐. 암시는 소설의 마지막이 다소 이상하게 끝난 것에서 다가왔다. 지넷이 소설로 그냥 끝내지 않고 자신의 고백으로 갑자기 전환시켰던 것이다. 단순히 소설로 끝났다면, 셉과 퍼디타의 여정이 그녀가 제안한 일반적인 대안이라 여겼을 테지만, 예기치 않게 지넷이 아주 개인적인 고백으로 개입하여 그렇게 보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지넷의 고백마저 셉과 퍼디타의 연장선상에 있었기에, 그 모든 것이 지넷이 찾은 개인적인 구원의 여정으로 보도록 이끌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내내 다양성의 포용과 나를 벗어나 타자로 끊임없이 지향할 것을 말해왔다. 바로 그 마음이 여기에도 투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대안이 정답처럼 복사될 지도 모르기에.


 그러나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소박한 제시 정도는 하고 있다. 그것은 유일하게 '겨울 이야기'의 이름 그대로 나오는 오톨리커스의 입을 통해 나타난다. 셉의 아들 클로를 집까지 태워주다, 오톨리커스는 오디이푸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오이디푸스도 입양아였다.


 오이디푸스는 노인이 자기 아버지인 줄 몰랐어. 입양아거든. 오이디푸스는 장차 부모를 죽이게 된다는 저주에 걸려 있었지. 그런데 오이디푸스는 부모님을 좋아했거든.(p. 208)


 그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말하면서 우회로가 좀 더 일찍 만들어졌다면 서구 문화 전체가 달라졌을 것이라 말한다. 우회로가 있었다면 오이디푸스와 그의 진짜 아버지가 서로 먼저 비켜나라고 갈등을 일으키기 전에 피해 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우회로가 바로 지넷의 소박한 제시다. 우회로가 없었기에, 오이디푸스는 지넷, 퍼디타와 같은 입양아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붕괴 시켰고 자신마저 나락에 빠뜨렸다. 여기서 오이디푸스는 '내 때는 아직 우회로가 발명되지 않았잖아?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할 지 모른다. 하지만 오톨리커스에 따르면 우회로는 존재의 문제가 아니다. 생각의 문제고, 시야의 문제다.


 우회로는 절대로 그렇게 심오하거나 시적이지 않아. 안 그래? 내 말은, 근엄한 표정으로 저는 인생의 우회로에 다다랐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아니지, 다들 갈림길이라고 한다니까.(p. 211)


 갈림길 밖에 못 보는 마음과 눈이 문제인 것이다. 살면서 우리는 자주 마치 갈림길에 선 것처럼, 양 극단에 치우친다. 이것 아니면 저것, 성공 아니면 실패, 남성 아니면 여성, 백인 아니면 흑인, 이성애자 아니면 동성애자 등등. 그리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은 아예 없거나 내 삶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리오가 그랬듯이, 모든 비극은 바로 거기서 파생되는 것이다. 갈림길밖에 없다는 생각, 혹은 그것밖에 보지 못하는 시야에게서.


  살인을 부른 여성 혐오도, 영국에게 브렉시트라는 자충수를 가져온 인종 혐오도 알고 보면 갈림길만 있다는 생각이 낳은 산물이었다. 그러나 셉과 퍼디타 그리고 지넷 자신이 보여주듯이, 우회로는 어디든 존재한다. 이것과 저것 사이엔 수많은 길이 스펙트럼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존재한다는 생각, 그것을 볼 수 있는 눈만 있으면 된다. 우회로는 바로 그럴 때 홀연히 등장한다. 고정된 상황과 굳어진 나에게서 벗어날 때 우회로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벗어남은 그대로 나와 나를 둘러싼 현실에 틈을 내는 것과 같다. 지노는 오해하고 있었다. 틈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었다. 퍼디타에 대한 책임을 떠 맡기로 작정했을 때, 셉이 문득 시간의 틈 사이로 들어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디든 우회로가 있다는 생각을 해라. 그것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나는 지넷의 소박한 제시라고 생각한다. 틈은 종결을 거부한다. 틈은 끝에서 오히려 시작을 열어젖힌다. 더 넓고, 다양한 세계가 그 틈으로 계속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넷이 소설의 마지막을 그렇게 처리한 것은 더없이 합당해 보인다. 제목이 '시간의 틈'이고 소설이 이런 말을 하는 이상, 이 소설에 코다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이런 세계엔 과거가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틈이 창출하는 세계에선 어디든 무한의 미래 뿐이다. 겨울의 이야기는 더이상 자리할 수 없다. 뒤집힌 배에는 언제나 에어 포켓이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l****1 2016.07.14.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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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세월은 그림자처럼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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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는 호가스 ‘셰익스피어 리톨드’ 시리즈. 기다렸던 책들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시리즈 첫 권은 『겨울 이야기』를 개작한 지넷 윈터슨의 『시간의 틈』이다. 셰익스피어의 후기 희비극으로 분류되는 이 작품은 사랑과 상실, 그리고 용서에 관한 이야기다. 셰익스피어 작품 읽기를 준비하는 동안 『겨울 이야기』에도 관심이 생겼는데, 그 이유는 아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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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는 호가스 ‘셰익스피어 리톨드’ 시리즈. 기다렸던 책들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시리즈 첫 권은 『겨울 이야기』를 개작한 지넷 윈터슨의 『시간의 틈』이다. 셰익스피어의 후기 희비극으로 분류되는 이 작품은 사랑과 상실, 그리고 용서에 관한 이야기다. 셰익스피어 작품 읽기를 준비하는 동안 『겨울 이야기』에도 관심이 생겼는데, 그 이유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질투가 『오셀로』와 유사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다는 점과 강력한 여성 캐릭터 파울리나가 등장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또 작품의 주인공인 페르디타와 작가 윈터슨의 개인사가 비슷하다니 『시간의 틈』에 더 관심이 갔다.

개작- 희곡을 소설로 옮기면서 얻는 효과는 시간과 배경의 제약이 사라지고, 동시에 논리적 설명이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레온테스가 폴릭세네스와 헤르미오네를 의심하는 이유가 실은 리오가 양성애자였기 때문이라거나, 안티고누스의 ‘곰에 쫓겨 퇴장한다’가 토니가 ‘베어 브릿지 아래서 사망’으로 대체되는 것들……. 소설이 시작되기 전, 희곡의 줄거리 요약을 삽입하고 있으니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지 않아도 이해에는 큰 무리가 없다. 각 장의 제목은 희곡의 대사에서 가져왔으며, 등장인물의 이름과 성격도 희곡의 이미지와 대응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런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실직한 리오는 시칠리아라는 헤지펀드를 운용하면서 자산을 쌓는다. 일에서의 성공과 달리 사생활은 평탄치 않다. 리오는 아내 미미와 죽마고우 지노의 관계, 그리고 복중태아까지도 의심한다. 리오는 아내의 침실에 설치한 웹캠을 보며 미미, 지오, 폴린 세 사람의 일상에 음탕한 프레임을 씌워 분노한다. 결국 질투에 눈이 먼 그가 미미와 지노를 죽이려 들고, 아내와 친구에게 상처를 주겠다는 일념 하에 벌어진 딸 퍼디타의 납치는 딸의 실종과 아들 마일로의 사망, 미미와의 이혼으로 끝난다. 16년 후, 뉴 보헤미아에서 솁과 클로의 보호아래 자란 퍼디타는 젤과 사랑에 빠진다. 젤의 아버지인 지노가 솁의 가게 플리스에 찾아오면서 출생의 비밀도 밝혀진다.

원작에서 레온테스는 뜬금없이 질투를 일으키는데 소설에서는 설명이 붙으면서 이야기가 아주 재밌어진다. 소년 시절 리오와 지노는 부모에 방치되었고, 자연스레 가까워진다. 어느 날 키스를 하고 얼마 후엔 몸을 겹치고 ‘특별한 사이’가 되지만- 리오의 실수로 지노가 절벽에서 떨어진 후 회복하는 동안 두 사람은 멀어진다. 서로를 원하면서도 모호한 우정으로 포장된 채 세월이 흐른다. 많은 사람들을 거쳤지만 두 사람 다 사랑에 빠지진 않았다. 그리고 미미의 등장. 특별한 미미, 그녀와 헤어진 1년. 사랑을 깨달은 리오는 지노에게 미미를 되찾아달라 부탁하고, 프랑스를 찾은 지노는 미미와 사랑에 빠진다. 지노는 호모섹슈얼이고, 미미는 가장 사랑하는 친구의 아내가 될 사람이다. 두 사람은 거기까지였고 리오와 미미는 결혼한다.

그렇다면 지노와 미미의 관계를 의심하고, 질투한 리오도 나름 합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리오의 열여섯, 지노를 잃을 뻔했던 공포. 그 트라우마가 미미를 잃을 수 없다는 광기로 발현된 것이다. 하지만 질투의 대상은 여전히 모호하다. 리오는 지노에게 질투한 것일까, 미미에게 질투한 것일까? 그렇게 세 사람의 관계는 16년 동안 동결된다. 리오와 미미의 사랑을 증거했던 아들 마일로가 사망하면서, 그리고 또 다른 증거인 딸 퍼디타가 사라지면서. 그리고 리오가 지노를 두 번째로 죽이려고 하면서……. 세 번째는 견딜 수 없다며 도망친 지노는 게임 개발에 매달린다. 언젠가 리오에게 이야기했던 꿈의 게임, 미미가 들려준 제라르 드 네르발의 꿈속에 나온 천사 이야기를 말이다. 사랑과 시간의 비행을 가능하게 할 천사의 깃털을 모으는 게임. 그렇게 ‘시간의 틈’을 메울 수 있는 게임.

두문불출하는 지오, 조각상이 된 미미, 괜찮은 듯 괜찮지 않은 리오. 게임 속에서 세 사람은 만나고 또 만나지 않는다. 소설의 전반부를 휘몰아친 상처가 치유되는 데에는 16년이 걸린다. 부모에게 버려졌지만 입양되어 사랑받은 퍼디타, 부모에게서 버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젤이 자라는 동안이다. 서로에게 반한 두 사람의 결합으로 이야기는 또 다른 구원의 계기를 얻는다. 원작과 다른 점은 지노가 폴릭세네스처럼 두 사람의 결합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업둥이 퍼디타의 운명은 작가 지넷 윈터슨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윈터슨 역시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져 독실한 오순절 교회파 부부에 입양된다. (퍼디타를 기른 솁이 오순절 교회파 신자다.) 지넷의 열여섯에 찾아온 첫사랑은 리오와 지노, 퍼디타와 젤이 경험한다.

현대사회의 특징인 다양성도 빼 놓을 수 없다. (윈터슨의 삶처럼)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은 리오와 지노, 이후 등장할 로레인의 삶이 보여준다. 인종적 다양성은 원작과 달리 솁과 클로가 흑인이라는 점에서 또 그들 고유의 문화를 향유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왕과 신하, 백성으로 나뉘어졌던 신분제는 현대에 와 경제적 차이로 구분되지만, 솁과 리오의 대화에서 인간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종교 아래 자라난 지넷 윈터슨, 그녀가 한 소녀와 사랑에 빠져 경험한 자각은 첫 소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윈터슨은 『겨울 이야기』를 개작함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들려준다.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작품 속에는 ‘떨어진다’는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영어로는 fall, 불어로는 tomber. 가을이기도 하고 추락이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는’ 것이기도 하고. ‘시간’ 역시 중요한 키워드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다 생각하지만 과거가 바로 뒤를 그림자처럼 쫓아오고 있다.’, ‘일어난 일을 되돌리는 것’. 지노가 과거를 돌려보겠다며 게임에 매달리는 것은 어떠한가. 과거에 박제돼버린 미미와 과거를 회상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리오는 어떠한가. 지넷 윈터슨은 퍼디타의 입을 빌려 말한다. 역사는 반복되고 추락(fall, tomber)하지만 용서와 구원의 씨앗, 사랑은 우리 안에 있다. 그러니까 (폴린이 말한 것처럼) ‘시간에게 시간을 주어라.’

분노도 고통도 사랑도 구원도 모두 우리 내면에 있다. 셰익스피어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도 로버트 그린의 『판도스토-시간의 승리』을 다시 썼고, 지넷 윈터슨도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를 다시 썼다. 윈터슨은 거기에 자신의 인생과 인생에서 얻은 깨달음도 함께 들려준다. 위대한 작가의 작품을 다시 쓰는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이야기의 힘, 그 영속성을 빛나게 하는- 이보다 더 적절한 ‘다시 쓰기’가 있을까?


e***a 2016.07.15.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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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틈 -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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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과 되찾은 것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 역사 전체가 거대한 분실물 센터인 듯이. 어쩌면 그것은 창백하고, 외롭고, 조심스럽고, 항상 존재하고, 수줍음 많고, 탁월한 달이 지구에서 떨어져 나갔을 때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구의 자폐증 쌍둥이.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를 지넷 윈터스가 다시 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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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과 되찾은 것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

역사 전체가 거대한 분실물 센터인 듯이.

어쩌면 그것은 창백하고, 외롭고, 조심스럽고, 항상 존재하고, 수줍음 많고, 탁월한 달이 지구에서 떨어져 나갔을 때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구의 자폐증 쌍둥이.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를 지넷 윈터스가 다시 쓴 시간의 틈은

질투와 오해가 삶을 망가뜨리고, 소중한 것을 잃게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잃어버린 그 소중함이 세월을 지나 그들 앞에 나타나서 서로를 용서하게 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너무 뻔해서 그래서 너무 와닿는 이야기다.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는 읽어 보지 못했다.

그래서 걱정이 됐다.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각색한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이야기가 시작하기 전 오래전 과거 그들의 인연이 결코 지금 새롭게 이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다. 원작이라는 이름으로.


 

 

리오와 지노는 기숙학교에서 만났다.

둘 다 집에서 관심 밖이었다. 그 공통점이 그 둘을 이어지게 했고, 그들은 서로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것은 우정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호기심이었을까? 그냥 한때의 열정이 퍼진 것일까?


 

성인이 된 리오는 남자 내음을 풍기는 어린애였고, 지노는 게이였다.

둘도 없는 친구 사이.

그러나 리오는 아내 미미와 지노 사이를 의심하게 된다.

의심은 걷잡을 수없이 자라나고 임신한 아내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지노의 아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옛 시칠리아의 왕 레온테스처럼 아내 헤르미오네와 폴릭세네스를 의심한다.


 

그들은 긴 세월을 통과해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을 바꿨을 뿐 아주 오래전 과거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미미가 낳은 아이는 리오의 손에 의해 납치된다.

지노에게 보내지기로 했던 아이는 결국 베이비 박스에 넣어기게 되었다.

운명은 그렇게 시간을 건너 뛰어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할 뿐이다.

더 복잡하고, 더 현란하고, 더 꼬이게.


 

 

이야기에는 항상 역사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거가 바로 뒤를 그림자처럼 쫓아오고 있다.



 

세월이 흐른다.

솁이라는 흑인 남자의 손에 자라게 된 리오와 미미의 딸 퍼디타.

그런 퍼디타를 사랑하는 지노의 아들 젤.


 

부모 세대의 과오가 자식세대로 이어지는 인연의 끈.

저자 지넷 윈터스는 자신이 업둥이였고, 자신이 동성애자이다.

지노와 퍼디타를 통해 자신을 덜어냈다.

멋지지 않은가.


 

 

 

 

 

 

 

 

지노가 만든 가상현실의 게임 속에서 지노와 미미와 리오는 만난다.

매일 같이 미미의 창가에서 그들은 만난다.

미미는 미동 없이 그대로다.


 

현실에서 그들은 마주치지 않는다.

리오와 미미는 이혼했고, 지노에겐 술이 있었다.

자신의 과오를 되돌리지 못한 리오가 있었고.

친구이자 한때 연인이었던 리오를 말리지 못한 지노가 있었고.

그들 사이에서 덧없어진 미미가 있었다.


 

세월은 퍼디타가 자라나는 동안 그들을 격리 시켰다.

상처는 곪아서 터져 나올 때까지는 계속해서 냄새를 풍기고 욱신거리고 열을 내게 만들 뿐이었다.

자라는 아이들 대신 자라지 못한 어른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질투의 씨앗이 어딘가에서 자라나 자신들을 찾아내기를.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되찾을 수는 있다. 그렇지 않은가?



 

사랑의 감정은

사람의 감정은

어쩌면 온전치 못한 감정인지도 모른다.

성숙한 사랑은 애초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지.


 

어쩜 리오는 지노와 미미 둘 다를 사랑했지만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둘을 연결하고 그 광기에 사로잡혀서 저지르면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행복한 결말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비극은 그 지난한 세월로 갈무리되었으니.


 

현실도 이렇게 행복한 결말만 남았으면 좋겠다.


 

의심이란 씨앗은 영양분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잘 자란다.

그러니 그 씨앗을 품에 품고 다니지 말자.

의심과 질투는 쌍둥이라 떨어져도 서로를 알아낸다.

그러니 마음에 심지 말자.


 

어린이 다운 어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건 책 속에만 있는 일이 아님을.

감정적 성숙을 키워내야 할 겨울이 왔다.

마음에도 따뜻한 코트를 입혀주자.

추울 때 의심과 질투는 활활 타오르는 법이니.

마른 장작처럼.

 

 

 

 

w******2 2019.12.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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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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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무인도에 가져갈 세 권의 책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으로 완성한 책이 있다.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프랑수아 아르마네, 문학수첩)이다. 작가는 메일을 보내면서 추신으로 성경과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제외해 달라고 요청한다. 많은 작가들이 추신을 무시하고 대답한다. "셰익스피어요!!" 작가들의 작가, 모든 시대의 작가, 이상적인 서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작가, 서거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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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무인도에 가져갈 세 권의 책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으로 완성한 책이 있다.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프랑수아 아르마네, 문학수첩)이다. 작가는 메일을 보내면서 추신으로 성경과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제외해 달라고 요청한다. 많은 작가들이 추신을 무시하고 대답한다. "셰익스피어요!!" 작가들의 작가, 모든 시대의 작가, 이상적인 서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작가, 서거 400주년에도 여전히 후대 작가들의 영감이 되는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기리기 위해 호가스 출판사가 기획하고 7명의 작가가 뭉쳐 글을 썼다. 시작은 지넷 윈터슨, 겨울 이야기를 다시 쓴 <시간의 틈>이다.

 

시칠리아의 왕 레온테스는 친우 보헤미아의 왕 폴렉세네스와 아내 헤르미오네의 불륜을 의심한다. 임신 중인 아내의 뱃속에 자신이 아닌 폴렉세네스의 아이가 있다는 생각은 그를 미치게 만든다. 폴렉세네스에 대한 독살 시도는 신하 카밀로의 경고로 좌절되고 폴렉세네스의 탈출은 레온테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다. 딸이 태어나자 아내의 부정을 더욱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레온테스. 급기야는 재판을 진행한다. 헤르미오네의 정숙한 성품을 알기에 온 왕궁의 사람들이 그를 말린다. 억울한 마음에 레온테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급기야는 아이를 내다버리는 지경에 이른다. 델피의 신탁이 도착했다. 헤르미오네 무죄! 폴릭세네스 무죄! 아이 역시 무죄! 죄인 레온테스는 들으라. 버린 아이를 되찾지 못하면 너는 후계자를 갖지 못할 것이다! 예언에 레온테스가 광분한다. 전령이 뛰어온다. 레온테스의 외아들 마밀리우스의 사망 소식. 헤르메오네가 실신하고 레온테스는 회개한다. 늦었다. 그러나 너무 늦어버렸다. 느님은 우리를 벌할 필요가 없다. 우리 스스로 벌할 수 있으니까.(p33)

 

<시간의 틈>의 기본 줄거리와 캐릭터는 원작과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보헤미아의 왕 폴렉세네스를 분한 현대인 지노가 동성애자이며 시칠리아의 왕 레온테스로 분한 리오와 십대 시절 연애를 한다는 것 정도일까? 그들은 연애가 아니라고 하지만 시간을 나누고 키스를 하고 몸을 섞고 서로를 위해 입을 다물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연애가 아니면 또 무얼까? 동성애자라기 보다 양성장애자라는 말이 더욱 적합할 수도 있겠다. 지노는 리오와 그의 아내 미미 모두를 사랑했으니까. 리오 또한 마찬가지다. 읽다 보면 리오가 질투하는 것이 소년 같은 아름다움을 가진 사랑하는 아내 미미인지, 말 그대로 소년인, 이었던, 회색 눈동자가 아름다운 남자 지노인지 알 수 없다. 미미로 태어난 헤르미오네 또한 남편의 부정을 의심한다. 미미를 처음 만난 날, 프랑스를 산책하며 창녀를 산 남자, 미미는 리오를 잘 안다. 안다고 믿었다. 어째 관능적이고 질퍽하고 타락한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전혀. 황사로 흐려진 하늘처럼 감추는 게 많고 텁텁한 관계. 그들이 서로를 오해하고 관계의 창을 닫은 것이 이해가 간다. 독을 쌓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무의식 중에라도. 때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 마음이 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p37)

 

이야기를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은 잃어버린 아이를 주운 남자와 그의 아들이다. 솁과 클로.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 퍼디타를 잃어버린 사랑의 설명서로 이해한 따뜻한 부자. 퍼디타는 그들 속에서 사랑과 음악으로 성장한다. 작가에 따르면 "하나의 이야기에 가능한 결말은 세 가지밖에 없다."(p395) 그래서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를 제외한다면 세 가지 가능한 결말은 이렇다. "복수, 비극, 용서." 셰익스피어의 인상적인 이야기들은 대체로 비극으로 끝나지만 겨울 이야기는 새로운 삶을 암시하며 낙천적으로 마무리 된다. 시간의 틈은? 작가는 그를 모르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뜬금없이 소설 속에서 튀어나와 고백한다. 나도 모르는 새 작가 후기를 펼쳤는가 싶어 감짝 놀랐다. "30년이 넘도록 나에게는 이 희곡이 개인적인 글이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 입양된 업둥이 그리고 동성애자, 그는 퍼디타였고 지노였고 리오였고 어쩌면 헤르미오네였을 수도 있겠다. 비극이 아니라 희극으로 마무리 된 글에 그래서 안심이 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만든 건 항상 자리를 비우는 신이 아니라 추락자, 루시퍼 같은 인물이라는 거지. 우리는 죄를 짓거나 지위를 잃은 게 아니야, 우리 잘못이 아니었지.우리는 이렇게 태어났어. 우리가 무얼 하든 그건 결국 추락이야.걷는 것조차 일종의 잘 통제된 추락이지." 우리가 이걸 안다면 고통을 견디는 게 더 쉬울 거야."(p107)

 

 

YES마니아 : 로얄 a********0 2019.11.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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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는 삶 ― 지넷 윈터슨, 『시간의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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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빛은 1초에 지구를 세 바퀴 돌아. 나도 그렇게 할 수 없을까?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때로 우리를 데려가 줘.[1] 지넷 윈터슨의 『시간의 틈』은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를 현대 소설로 각색한 것이다. 원작의 줄거리가 프롤로그처럼 삽입되어 있지만, 이 리뷰에서는 『시간의 틈』에 등장하는 리오와 지노, 미미의 삶을 중심으로 읽을 것이다. 바로 지난주에 같은 게시판
"용서받는 삶 ― 지넷 윈터슨, 『시간의 틈』" 내용보기

1.

 

빛은 1초에 지구를 세 바퀴 돌아. 나도 그렇게 할 수 없을까?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때로 우리를 데려가 줘.[1]

 

지넷 윈터슨의 『시간의 틈』은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를 현대 소설로 각색한 것이다. 원작의 줄거리가 프롤로그처럼 삽입되어 있지만, 이 리뷰에서는 『시간의 틈』에 등장하는 리오와 지노, 미미의 삶을 중심으로 읽을 것이다.

 

바로 지난주에 같은 게시판에 리뷰가 업로드된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이 세 사람의 이야기가 무츠키와 곤, 쇼코의 이야기와 닮아 있다고 설명하면 얼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중학교 도서실에서 읽었던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이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하고 상냥한, 따뜻한, 불가능한 동화 같은 이야기라면, 리오와 지노, 미미의 이야기는 그보다 신랄하다. 또는 모질다. 아주 끝에 가서는 그래도 용서를 받을 수 있어 다행이다.

 

어째서 이렇게 어긋나 버린 걸까. 인생에서 단서 또는 계기가 되는 순간들은 영화에서처럼 클로즈업되어서 눈에 잘 띄는 형식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단순히 싫다, 좋다, 끔찍하다, 같이 분명한 방향성으로 이야기할 수 없었던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들이 차곡차곡 모여서 폭탄처럼 터진 후에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우리는 슈퍼맨이 아니기 때문이다.

 

 

2.

 

『시간의 틈』에서 그렇듯 끔찍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리오이다. 그 잘못을 저지른 시점을 현재라 한다면 과거1, 과거2, 현재, 미래로 작품의 시간은 나뉜다.

 

과거1) 리오와 지노는 열세 살에 기숙학교에서 만났다. 둘은 한때 섹스하는 친구 사이였다. 지노가 ‘너, 나랑 할 때 여자 생각해?’라고 물었을 때, 리오가 그렇다고 거짓말을 했더라도, 지노는 자기가 게이일까 봐 걱정을 했더라도, 둘은 친구 사이였다. 어느 날 둘은 자전거를 타고 누가 절벽 가장자리 제일 가까이로 제일 빨리 갈 수 있는지 내기했다. 지노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리오는 꼬드겼기에 경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노가 떨어졌다. 지노는 절벽을 구르고 또 굴렀다. 지노는 남은 학기 내내 병원에서 지냈고, 리오는 제일 친한 친구를 죽일 뻔했다는 사실에 비현실적으로 울었다. 마치 영화에서 그러듯이.

 

과거2) 그 후로도 둘은 계속해서 친구였다. 스물다섯의 리오는 사업차 파리에 갔다가 미미라는 매혹적인 여자의 노래를 듣게 된다.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리오는 지노를 떠올린다. 그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도 떠올린다. 죽더라도 행복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느끼면서도, 리오는 지노와 자신 사이에 15미터 정도의 거리가 있음을 느낀다. 지노는 결코 리오를 탓하지 않았지만, 리오가 먼저 거리를 두었다. 아니, 리오는 거리가 거기에 있었고, 틈을 좁히는 방법을 몰라서 더 넓혔다고 변명한다.

 

“저 사람은 떨어지고 있나요? 아니면 사랑에 빠지고 있나요?”[2]

 

리오는 미미에게 청혼한다. 리오의 신랑 들러리는 지노이다. 리오는 지노가 ‘자신을 미미에게 넘겨주는 사람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식 전날 밤, 지노가 리오에게 한 키스는 너무 재빨랐기 때문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 같았다.

 

사실 미미는 리오의 청혼을 한 번 거절했다. 그래서 리오는 떠났고, 둘은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 즈음, 리오는 친구인 지노에게 미미를 찾아보라고, 자신이 쓴 쪽지를 들려 보낸다. 오랜 시간이 흘러 지노는 미미와 자신이 그 주말에 사랑에 빠졌었다고, 잃어버렸던 아이들에게 고백한다.

 

현재) 리오와 미미에게는 아들 마일로가 있고, 미미는 둘째 딸 퍼디타를 임신한 때다. 이때, 리오가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는 미미와 자신의 친구 지노가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한다. 미미가 임신한 아이는 지노의 아이라고.

 

리오는 그래서 자신의 집에 웹캠을 설치하고, 그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지노와 리오의 모습을 찍은 영상의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고 “이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러 번 반문하면서, 둘의 불륜을 확신한다. 그래서 지노의 차를 부수고, 미미를 폭행하고, 아이를 납치해 어떻게든 지노에게로 떠나 보낼 계획을 세운다. 리오의 동업자인 폴린은 묻는다. “지노한테 질투하는 거야, 미미한테 질투하는 거야?”[3]

 

그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로 미미와 리오의 아들 마일로는 죽고, 아이를 맡아 지노가 있는 뉴보헤미아로 데려온 리오의 정원사 토니는 부재중인 지노를 만나지 못하고 불량배들에게 살해당한다. 토니가 베이비박스에 미리 놓아둔 아이, 리오와 지노와 미미의 잃어버린 아이 퍼디타는 토니의 죽음을 목격한 솁과 그 아들 클로에게 발견된다. 병상에 누워 있던 자신의 아내를 제 손으로 죽이고 우울에 시달리던 솁은 자신이 빼앗은 아내의 생명 대신 새 생명이 온 것 같다고 느낀다. 이것이 그에게는 용서처럼 느껴진다.

 

미래) 어여쁜 소녀 퍼디타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는 남자 젤과 데이트를 시작한다. 그런데 솁의 생일 파티에 젤이 초대된 날, 젤의 아버지가 나타나 솁의 비밀을 밝힌다. 젤은 지노의 아들이다. 미래 시점에 지노는, 리오는, 미미는, 그들이 아이를 잃어버린 시점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세 사람은 뿔뿔이 흩어져 만나지 않고, 다만 지노가 만든 게임 <시간의 틈>을 지노와 리오는 계속해서 플레이하고 있다. 지노는 토니가 자신의 집을 방문한 날 사실 집에 있었다고 한다.

 

게임 <시간의 틈>은 미미의 노래 Dark Angel의 영감이 되기도 한 프랑스 시인 제라르 드 네르발이 꾸었다는, 하늘에서 천사가 추락하여 좁은 뜰에 갇히는 꿈을 모티프로 한다. 이 천사는 어둠의 천사이고, 가장 중요한 게 없어진 세상에서 저항군인 인간들은 가장 중요한 것,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야만 한다. 공교롭게도 리오는 이 게임에서 어둠의 대천사를 플레이한다. 이 게임을 개발 중이던 현재에 지노는 천사가 뱀파이어처럼,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미미와 지노는 각자 두문불출하고, 리오는 회사 경영에만 정신을 쏟는 나날이 계속되지만, 마침내 지노에게 사정을 전해 들은 리오의 딸 퍼디타가 지노의 아들 젤과 함께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리오가 운영하는 회사 <시칠리아>를 방문하고, 솁과 클로는 여전히 실의에 빠져 집 안에 갇힌 지노를 데리고 또 같은 곳을 향한다. 퍼디타와 젤, 두 아이를 중심으로 미래의 시간은 돌아가고, 지노와 리오, 미미 세 사람도 드디어 재회한다.

 

 

3.

 

“잃어버린 모든 것은 되찾을 수 있어요.”[4]

 

복선처럼, 퍼디타를 잃어버리기 전 갓 태어난 퍼디타와 함께 입원중인 미미는 병원 간호사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지넷 윈터슨은 소설 말미에서 ‘하나의 이야기에 가능한 결말은 세 가지밖에 없다.’고 썼다. 복수. 비극. 용서. 리오가 용서받는 까닭은 그가 16년간 자신을 미워하며 진정하게 회개했기 때문이다. 즉, 시간이 그에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렇게 인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잘못을 곱씹으며 이미 지나간 현재, 과거가 되었어야 하는 현재에 붙들려 있던 세 사람은 잃어버린 아이를 찾음으로써 지금 있어야 하는 시간으로 돌아온다.

 

정말로 잃어버린 모든 것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모두가, 모든 잘못이, 용서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리오에게는 운이 좋게도, 퍼디타가 돌아온다. 리오는 용서받는다. 애초에 잘못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그러지 않아도 리오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잘못을 곱씹으며 살고 있는 지노가 꼭 같은 말을 한다.

 

“내가 그 일을 돌이킬 수만 있다면. 하지만 그러고 보면 내가 한 선택들은, 다른 선택을 할 내가 없었기 때문에 했던 선택이었다는 기억이 나. 우리를 가두는 순간의 힘보다 우리가 더 강해져야만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는 거야.”[5]

 

리오가 용서받는 까닭은 정말은 시간의 힘보다 더 강한 퍼디타와 젤, 미미가 용서를 그들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리오가 원하는 용서를 내릴 이들이 한계로부터 자유로워질 단 한 번의 기회를 붙잡은 때문일 것이다.

 

 

4.

 

앞서 리오와 지노, 미미의 이야기와 무츠키와 곤, 쇼코의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했던 것은 아주 대략적으로 보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리오는 무츠키가 아니고, 지노에게도 미미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겁쟁이다. 어쩌면 아름다운 삼각형을 그릴 수 있었던 시점에서, 리오는 겁에 질려 모든 것을 파괴해버린다. 상실이 두려운 사람의 선택 아닌 선택이다. 그 후에 그의 삶은 무기징역과 같다.

 

문학이 된 이야기는 모두 그렇지만, 이것은 꼭 리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언젠가, 자유의지로 선택다운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때는 단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용서할 수도 용서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라고 쓰면서 기한을 영영 유예하는 것은 여전히 너무 겁이 나기 때문이지만.

 

 

r**********m 2017.05.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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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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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희곡 『겨울 이야기』를 소설로 구성하면서 희곡의 부족한 개연성을 풍부한 서술로 채우려는 시도를 엿볼 수 있다.흔히 말하는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 어느정도는 맞는 구석이 있다.하지만 그것을 깨달은 후에 너무나 많은 시간이 지났고 곧 그것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사실을 뒤늦게서야 알게된다. 물론 그것이 용서와 화해로 끝난다면 그나마 해피엔딩일 것이지만.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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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희곡 『겨울 이야기』를 소설로 구성하면서 희곡의 부족한 개연성을 풍부한 서술로 채우려는 시도를 엿볼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 어느정도는 맞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깨달은 후에 너무나 많은 시간이 지났고 곧 그것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게된다. 물론 그것이 용서와 화해로 끝난다면 그나마 해피엔딩일 것이지만.

시간과 이별, 그리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시간의 틈. 그 시간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는 아둥바둥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시간은 계속된다. 시간자체가 연속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단절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큰 사건을 직면함에 있어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본 결과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인간이 느끼는 사랑과 슬픔, 그리고 질투의 감정을 이 책을 읽으면서 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매력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셰익스피어가 영면한지 400년이 되었지만 그의 작품이 이런 각색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생생하게 사유의 뜰을 제공하기에 그가 왜 대단한 문호라 칭송받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l*********7 2016.07.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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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틈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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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틈은 윌리엄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영국작가 지넷 윈터슨이 쓴것이다. 셰익스 피어의 겨울이야기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바꾸어 쓴책이다. 사랑받는 작가의 작품은 해마다 언급되고 다르게 해석된다. 셰익스피어는 많은 작품을 썼지만 겨울이야기는 희곡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다소 어려움을 느낄수 있다. 나 또한 그렇게 느껴서 겨울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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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틈은 윌리엄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영국작가 지넷 윈터슨이 쓴것이다. 셰익스 피어의 겨울이야기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바꾸어 쓴책이다. 사랑받는 작가의 작품은 해마다 언급되고 다르게 해석된다. 셰익스피어는 많은 작품을 썼지만 겨울이야기는 희곡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다소 어려움을 느낄수 있다. 나 또한 그렇게 느껴서 겨울이야기를 찾아본뒤 이책을 읽었다. 우선 겨울이야기는 희곡답지 않게 어둡고 16년간의 공백이란 시간이 나타난다. 또한 오해와 질투, 분노 등이 나타나는데 제목에 있듯이 시간의 틈을 타고 용서와 화해를 통한 행복한 결말을 보인다.

지넷 윈터슨이 쓴 시간의 틈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치유에 집중하여 읽을수 있다. 원작인 겨울이야기에서는 치유과정이 16년이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시간의 틈은 직접적으로 시간을 말하여 시간의 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원작과 비슷한 점을 닮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과거와 미래,현재를 잘 이어지는 것을 알수있다. 작품에서는 16년이란 시간을 알수 있지만 우리 현실에서도 이와같은 것을 느낄수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황에는 상관없이 시간은 흐르고 있고 현재와 미래 그리고 과거는 밀접하게 관련이 되는 것을 알수있다. 이런 점은 평생에 걸쳐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후회되는 과거이든 반복되는 현재이든 미래는 언제나 알수 없고 시간은 언제나 흘러가는 것을 느낄수 있다. 이런과정을 통해 가족간의 아픔과 갈등은 저절로 치유됨을 알수 있고 사랑과 슬픔 등 시간의 속성 아래에서 온전하게 느낄수 있다. 주인공들의 아픔은 특정적인 것에 대한 아픔이라 느낄수 있지만 인간은 누구나 아픔을 가지고 있고 품고 산다. 주인공들의 변화와 행동의 모습을 본다면 독자들 또한 희망과 긍정적인 기운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원작과 비교하여 읽는 것도 재미있고 부모세대에 초점을 둔 원작과 비교하여 자녀세대의 초점을 둔 시간의 틈은 다른 관점으로 보는것에 대해 흥미를 느낄수 있을것이다. 시적인언어와 은유적인 표현으로 겨울이야기를 다른 버전으로 보는 듯한 기분을 주어 새롭고 신선함을 느낄수 있다.

 

 

c*********0 2016.07.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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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후기 희곡 『겨울 이야기』는 오해와 질투, 분노, 파멸 끝에 긴 공백, 즉 시간의 틈을 사이에 두고 등장인물들이 용서와 화해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이야기이다.『겨울 이야기』에는 희곡에서는 흔치 않게 16년이라는 시간의 공백이 등장하며, 어둡고 비통한 격정과 목가적인 희극이 공존한다. 윈터슨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현대 무대의 소설로 옮기면서 원작의 서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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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후기 희곡 『겨울 이야기』는 오해와 질투, 분노, 파멸 끝에 긴 공백, 즉 시간의 틈을 사이에 두고 등장인물들이 용서와 화해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이야기이다.

『겨울 이야기』에는 희곡에서는 흔치 않게 16년이라는 시간의 공백이 등장하며, 어둡고 비통한 격정과 목가적인 희극이 공존한다. 윈터슨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현대 무대의 소설로 옮기면서 원작의 서사와 의미에 충실하되 살을 덧붙여 조금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빚어냈다.

상실과 후회, 사랑과 슬픔, 시간의 속성이라는 『겨울 이야기』의 주제를 때로는 저속하고 때로는 시적인 언어로 깔끔하게 담아낸다. 그녀의 첫 소설에서부터 돋보였던 경구처럼 간결하고 정확한 표현과 절대 넘치지 않는 영리한 유머는 400년 전에 쓰인 셰익스피어 희곡 다시 읽기에 더없이 어울린다.

 

세상은 기쁨이나 절망, 한 여인의 운명, 한 남자의 상실과 상관없이 흘러간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알 수 없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작은 부분들 외에는 우리의 삶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우리를 영원히 바꾸어 놓는 일은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일어난다. 쉬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야말로 마음이 부서지거나 치유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너무나 꾸준하게, 또 확실하게 흐르는 시간은 시계 밖에서 거칠게 흐른다. 일생은 너무나 짧은 시간에 바뀌지만, 그런 변화를 이해하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 

 

『시간의 틈』은 셰익스피어의 단어들로부터 보다 멀리, 확실하게 벗어나 있다. 때로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때로는 의뭉스럽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실제 삶으로 이끌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에 응답하고 있다.

 

w****6 2016.06.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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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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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되돌릴 수 있다.’지넷 윈터슨이 다시 쓰는 『겨울 이야기』,용서와 가능한 미래 세계를 잇는 시간에 관한 명상 『시간의 틈』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셰익스피어 시리즈뉴보헤미아. 미국. 슈퍼문이 내려오고 폭풍이 도시를 뒤흔든 그날 밤, 한 흑인 남자가 베이비박스에서 백인 아기를 발견한다. 그는 별처럼 가벼운 아기를 꺼내어 집으로 데려가기로 결심한다.런던.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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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되돌릴 수 있다.’

지넷 윈터슨이 다시 쓰는 『겨울 이야기』,
용서와 가능한 미래 세계를 잇는 시간에 관한 명상 『시간의 틈』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셰익스피어 시리즈


뉴보헤미아. 미국. 슈퍼문이 내려오고 폭풍이 도시를 뒤흔든 그날 밤, 한 흑인 남자가 베이비박스에서 백인 아기를 발견한다. 그는 별처럼 가벼운 아기를 꺼내어 집으로 데려가기로 결심한다.
런던. 영국. 세계 금융 위기 후의 도시를 살아가는 리오 카이저는 돈을 버는 법은 알지만, 가장 친한 친구와 아내를 향한 질투를 다스리는 법은 알지 못한다. 태어난 아이는 그의 자식인가?
17년 후. 소년과 소녀가 사랑에 빠지지만, 그들은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왔는지 모른다.

2016년 윌리엄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작가들이 그의 희곡들을 현대 소설로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의 첫 번째 주자는 휫브레드상 수상작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Oranges Are Not the Only Fruit』(1985)로 잘 알려진 지넷 윈터슨이다. 그녀는 한국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겨울 이야기The Winter’s Tale』(1610년 집필 완성, 1611년 초연)를 선택했는데, 이는 『겨울 이야기』가 동시대 작가 로버트 그린의 『판도스토―시간의 승리Pandosto: The Triumph of Time』(1588)를 다시 쓴 이야기라는 점에서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의 기획 의도와 이어지며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한 “누구나 품고 가야 할, 자신의 삶을 이끄는 불가사의한 텍스트가 있는 법이다. 나에게는 『겨울 이야기』가 그렇고, 오랜 세월 매번 다른 모습으로 『겨울 이야기』를 써 온 셈이다”라고 술회하는 윈터슨에게 바로 그 『겨울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다시 쓴 『시간의 틈The Gap of Time』(2015)은 작가 개인으로서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할 만하다.

셰익스피어의 후기 희곡 『겨울 이야기』는 오해와 질투, 분노, 파멸 끝에 긴 공백, 즉 시간의 틈을 사이에 두고 등장인물들이 용서와 화해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시칠리아의 왕 레온테스는 시칠리아에 머물고 있는 보헤미아의 왕 폴릭세네스와 자신의 아내 헤르미오네의 관계를 의심한다. 그는 질투에 눈멀어 죽마고우인 폴릭세네스를 독살하려 하고, 폴릭세네스가 달아나자 왕비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는 감옥에 가둔다. 그리고 갓 태어난 공주 페르디타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시칠리아 밖으로 추방한다. 소동의 와중에 시칠리아의 왕자 마밀리우스의 죽음이 전해지고 왕비는 충격에 쓰러져 죽고 만다. 한편 버려진 아기는 보헤미아의 해안에서 가난한 목동과 그의 멍청한 시골뜨기 아들에게 발견되어 그들의 손에 키워진다. 16년 후 아기는 아름답게 자라나 정체를 감춘 보헤미아의 왕자 플로리젤과 사랑에 빠진다. 폴릭세네스가 나타나 이들 어린 연인을 위협하고, 일련의 특별한 사건을 통해 아버지 레온테스와 딸 페르디타, 그리고 결국에는 죽었던 어머니 헤르미오네까지 다시 만나게 된다.
『겨울 이야기』에는 희곡에서는 흔치 않게 16년이라는 시간의 공백이 등장하며, 어둡고 비통한 격정과 목가적인 희극이 공존한다. 윈터슨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현대 무대의 소설로 옮기면서 원작의 서사와 의미에 충실하되 살을 덧붙여 조금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빚어냈다.

『시간의 틈』은 현대의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 그리고 미국 뉴올리언스가 연상되는 가상의 도시 뉴보헤미아를 무대로 전개되는데, 이미지[像]들은 『겨울 이야기』와 쌍둥이 혹은 거울처럼 존재한다. ‘하나-막간-둘-막간-셋’이라는 구성으로 복잡하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의 틈』에서 각 장의 제목은 모두 『겨울 이야기』에서 따온 구절이며, 윈터슨은 원작의 플롯에서부터 등장인물들의 이름 각색까지 구석구석 셰익스피어적인 디테일을 세심하게 되살렸다.

시칠리아의 왕 레온테스Leontes는 돈과 지위를 이용하여 세계를 자신이 가는 길에 굴복시키려고 하는 오만한 헤지펀드 매니저 리오 카이저Leo Kaiser가 된다. 물론 이 헤지펀드 회사의 이름은 시칠리아이다. 헤르미오네Hermione는 ‘미소를 짓고 있었고 행복했으며 만삭’인 샹송 가수 미미(허마이어니 들라네Hermione Delannet)로 변신한다. 보헤미아의 왕 폴릭세네스Polixenes는 돈키호테형 보헤미안인 컴퓨터 게임 개발자 지노Xeno이며, 양성애자라는 그의 성적 취향은 그들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는 데 있어 보다 강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요컨대 원작에서는 단순히 죽마고우로 표현되었던 리오와 지노가 개작에서는 학창 시절에 동성애 관계였다는 설정을 추가함으로써 돌연한 레온테스/리오의 질투가 힘을 얻는 식이다. 원작에서 왕비의 무고를 주장하며 끝까지 왕에게 반발했던 파울리나Paulina는 리오의 동료이자 유능하며 정 많은 유대인 폴린Pauline으로, 파울리나의 남편이자 추방된 공주와 동행한 신하 안티고누스Antigonus는 리오의 딸을 지노에게 데려다주는 정원사 안토니 곤살레스Anthony Gonzales(토니)가 된다. 폴린과 토니는 막 사랑을 시작하려는 참이다.

목동Shepherd과 시골뜨기Clown(셰익스피어 시대에 clown은 ‘광대’가 아니라 ‘시골뜨기’라는 의미이다) 아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오순절교회 신도 솁Shep과 쾌활한 아들 클로Clo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흑인이다. 『겨울 이야기』를 행복한 결말로 이끄는 뜻밖의 매개자인 사기꾼 아우톨리쿠스Autolycus는 이제 오톨리커스로Autolycus, 의심스러운 유명 인사의 뒷이야기를 떠벌리며 중고차를 판매하고 있다. 페르디타Perdita/퍼디타Perdita, 플로리젤Florizel/젤Zel, 카밀로Camillo/캐머런Cameron, 마밀리우스Mamilius/마일로Milo 등 원작과 개작의 등장인물들을 비교하는 읽기는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이처럼 배경과 등장인물들은 현대적이지만 소설은 그 자체로 희곡과 플롯 대 플롯으로 연관된다. 지노는 리오가 질투에 미쳐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달아난다. 리오는 미미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매도한다. 폴린은 그들 세 사람의 사이를 중재하려고 애쓴다. 미미는 딸 퍼디타를 출산하지만 리오는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토니를 시켜 딸을 지노에게 데려다주게 한다. 그리고 토니가 강도에게 쫓기다 퍼디타를 베이비박스에 넣고 폭력적으로 살해당하는 장면이나 솁과 클로가 버려진 퍼디타를 발견하는 장면 등 더욱 박진감 있고 극적인 전개가 펼쳐진다. 윈터슨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지문地文 안티고누스가 ‘곰에게 쫓겨 퇴장’을 놓치지 않는데, 『시간의 틈』에서 토니는 베어 브리지Bear Bridge 밑에서 죽음을 맞는다.

윈터슨은 부모 세대가 아닌 자식 세대 쪽으로 이야기의 초점을 옮기는데 이는 『겨울 이야기』가 ‘용서와 가능한 미래의 세계들에 대한 희곡이며, 용서와 미래가 양방향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희곡’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시간의 틈』은 무엇보다도 부모를 잃고 업둥이로 자란 퍼디타가 잃어버린 과거와 가족을 되찾는 이야기이다. 어른들 사이에서 일어난 모든 문제는 18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다가 ‘잃어버린 작은 아이’ 퍼디타를 되찾으면서 해결된다. 잃어버린 아이가 똑똑하고 당당한 소녀로 자라는 이 긴 시간 동안 리오와 지노, 미미는 과거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지만 퍼디타가 등장하는 순간 과거와 현재, 미래는 제자리를 찾는다.

『겨울 이야기』에서 시간은 모든 시도를 한다. 레온테스는 헤르미오네가 가진 아이가 자신의 핏줄이 아니라고 의심하지만 시간은 그가 틀렸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의 가족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16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원작에서는 시간이 직접 등장하여 시간의 속성을 설명하고 공백에 양해를 구한다면 개작에서는 지노가 만든 컴퓨터 게임 [시간의 틈]이 비슷한 역할을 한다. 리오와 지노가 과거를 곱씹듯 꾸준히 접속하는 이 게임은 멈춰진 과거, 복잡하게 얽힌 과거와 미래,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현재에 대한 은유이다. 이렇듯 윈터슨은 상실과 후회, 사랑과 슬픔, 시간의 속성이라는 『겨울 이야기』의 주제를 때로는 저속하고 때로는 시적인 언어로 깔끔하게 담아낸다. 그녀의 첫 소설에서부터 돋보였던 경구처럼 간결하고 정확한 표현과 절대 넘치지 않는 영리한 유머는 400년 전에 쓰인 셰익스피어 희곡 다시 읽기에 더없이 어울린다.

한편, 지넷 윈터슨은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에 대해 속편을 쓸 것인지 질문을 받았을 때 “속편은 작가에게 아이디어가 없을 때나 쓰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떨어지면 나는 쓰기를 그만둘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녀의 아이디어는 속편보다는 ‘개작’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녀의 말에 따르면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덮는다는 의미에서, 다시 쓴다는 의미에서 ‘개작cover story’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의 틈』은 『겨울 이야기』의 개작이다.

내가 개작을 쓴 것은 30년이 넘도록 나에게는 이 희곡이 개인적인 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것이 없다면 내가 살아갈 수 없는, 글로 쓴 세상(말)wor(l)d의 일부였다는 뜻이다. 여기서 ‘없다면’이라는 것은, ‘결핍’이라는 뜻이 아니라 ‘무언가의 바깥에서 산다’는 예전의 뜻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그것의 바깥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라고 고쳐 써야 한다.
이것은 업둥이에 대한 희곡이다. 그리고 나는 업둥이다. 이것은 용서와 가능한 미래의 세계들에 대한 희곡이며, 용서와 미래가 양방향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희곡이다. 시간은 되돌릴 수 있다.

u*****k 2016.06.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내용보기
원작을 읽으며' 예전에 셰익스피어를 이렇게 읽었었구나'하는 회심과 함께 추억에 빠져들다가, 개작을 궁금해하며 뒷장을 넘길 때 비밀을 풀어가는 듯한 기분에 들떴습니다.원작과 완전 상이한 문체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가서 눈을 떼지 못하고 줄줄 읽어가지는 개작이 더욱 원작보다 빨리 책장이 넘어가고 뒷이야기는 더욱 더 궁금해졌습니다.소제목을 설명해주어서 전체글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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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읽으며' 예전에 셰익스피어를 이렇게 읽었었구나'하는 회심과 함께 추억에 빠져들다가, 개작을 궁금해하며 뒷장을 넘길 때 비밀을 풀어가는 듯한 기분에 들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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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목을 설명해주어서 전체글을 읽기가 더욱 편한 작품이었습니다.

y********s 2016.06.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