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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고 시 쓰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부탁으로 책을 구매하게되었습니다 평소에 시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아버지에게 드리기 전에 한번 읽어 보았습니다 시에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고 감정적으로는 크게 동요가 없는 이성적인 사람이라 딱히 시집을 읽어 보아도 느껴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무함에 대해서는 이성적으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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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같은 꿈의 조각들을 엮은 시집이다. 하도 많은 부운몽들을 해독하며 펼쳐진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나는 이미 간 자여서”(「세계는」)라고 말하며 “쉼 없이 날아다니는 온갖 부운몽들”(「미래의 어느 뒤편에선가」)을 따라다닌다. “나는 하루 종일 구시렁거리는 구름들만 바라본다”(「하루 종일」)라고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희망을 이 세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허무를 외면하고 구름 속에서 삶의 의미를 더듬고 있다.
시인의 언어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섬뜩함까지 느껴진다. 힘을 빼고 가볍게 언어를 다루는 방식에서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이치를 통달한 초월자의 아우라가 보인다. 툭툭 던지는 말에서 “나는 이미 모든 것을 겪어 본 사람이야”라거나 “나는 벌써 다 알고 있어”라는 고백이 들린다. 삶도 죽음도 그리 큰 의미는 없는 거라고, 그냥 사는 거라고, 원래 허무한 것이 삶이라고 경험자로서 알려 준다.
이런 詩는
이런 詩는 이런 데 좋고 저런 詩는 저런 데 좋고 그냥 한 하늘이 걸려 있을 뿐 詩 좋고 바람 하나니 사람들의 온갖 마음들은 그저 구름처럼 스쳐 지나가시라 해 밝을 때 부는 바람처럼 가난한 집 처마 밑에 또닥거리는 빗줄기처럼 과거와 현재를 풀어주고 그리하여 미래를 풀어주기 위하여 ― 「이런 詩는」 전문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풀어주기 위해 시인은 시를 쓴다. 그가 하늘에 걸어 둔 시를 구름처럼 스스럼없이 지나가면, “슬픔을 치렁치렁 달고”있는, 이런저런 사연으로 엉킨 마음들이 풀어지는 그런 시를 쓰고 싶은 따뜻한 마음이 읽힌다.
공간적 의미의 “세계”와 시간적 의미의 “하루”가 자주 등장한다. 삶의 무대인 세계에서 시간을, 하루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묻고 말하는 내용들이 적혔다. 세계는 죽음으로, 하루는 영원으로 확장되는 시인의 넓은 생각의 폭을 따라 읽는다.
“어느 날 죽음이 내 방문을 노크한다 해도 읽던 책장을 황급히 덮지는 말자”(「환갑」) 생의 대부분을 ‘정신분열증’으로 병원에서 보냈다는 시인은 책을 펴낼 때만 기운을 차렸다고 한다. 고통 속에서도 읽고 쓰는 것만이 의미였던 그는 설사, 죽음이 찾아와도 그것을 멈출 수 없다.
과거를 지나 미래를 보고 삶을 넘어 죽음의 세계까지 훤히 볼 수 있는 그가 사람과 새와 꽃들에도 꿈을 하늘에 걸어 두고 희망으로 살아가라고 말한다. “가봐야 천국이다” 너무 애쓰지 말고 살아라고 말한다. “그래도 살다 보면 때로는 봄이 오겠지”(「살다 보면」)라고 그래도 희망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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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배처럼 텅 비어. 이 말을 곱씹고 또 곱씹어본다. 그리고 몇 번을 다시금 말해본다. 말할수록, 허공이 채워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최승자, 그는 언어에 힘을 불어넣는다. 힘이 없는 언어마저, 그 단어마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그를 감히 누가 약하다고 할 것인가. 빈 배를 상상하면, 아주, 아주 푸른 바다가 떠오른다. 아니, 아주 푸르지 않은 바다가. 검정도 아니고 파랑도 아닌, 그 사이의, 남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바다가 떠오른다. 이 시집은 그 바다에, 떠 있다. 그것을 잡으러 가는 이를 아무도 조난자라 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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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시를 읽는 취미가 생겨서 시집을 사게 되었는데요 그 중 최승자 작가님의 시를 좋아합니다. 처연한 듯 절망적인 정서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최승자 작가님의 특유 시적 분위기가 생각에 잠기게 하고 또 아픔과 슬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아합니다 최승자 시인님의 작품을 보며 많은 위로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께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작품도 구입할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