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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대전과 나치 독일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번 정도는 이름을 들어봤을 알베르트 슈페어. 슈페어는 독일의 군수장관이자 히틀러의 예술욕을 채워준 건축가로 유명하다. 이 책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20년 형을 선고 받은 슈페어가 출소 직후인 1966년 발표한 회고록으로, 원제는 'Erinnerungen (기억)'이다. 밀덕으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한지가 인생의 반을 넘겼는데, 지금껏 읽은 회고록 중 가장 알찬 내용이지 않았나 싶다. 나치당이 정권을 잡은 이래 히틀러와 가장 가까운 사이이자 권력의 중심부에 자리했던 이의 회고록이기 때문. 괴링, 괴벨스, 힘러를 비롯한 나치당의 수뇌부들은 모두 자살하거나 형장의 이슬이 되어 의미있는 기록을 남기지 못했기에 이 책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 더불어 슈페어 개인의 삶 역시 무척이나 흥미로운 편. 그저 무명 건축가였던 한 젊은이가 끝내는 독일국의 장관 위치에 올랐으니 실로 파란만장한 인생이라 하겠다.
'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 (이하 기억)'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은 단락은 이 부분이었다. 막연히 서슬 퍼런 나치 정권이 독일 국민들을 옭아맸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민주주의 체제와의 태생적 차이로 인해 전국민적 동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니 상당히 의외의 모습. 오히려 그들의 숙적인 소련과도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스탈린이 대조국 전쟁이란 미명하에 사관생도부터 여학생까지 가리지 않고 전선으로 내몰고, 노동자들을 우랄 산맥 너머로 강제 이주시킨 것을 상기해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또한 하인츠 구데리안이나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회고록에서도 지적하듯이 히틀러가 가진 전략적 식견의 부재 역시 기억에서 강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가지 놀라운 점이라면 슈페어가 히틀러를 만난 직후부터 독일이 독소 전쟁에서 패전을 향해 기울기 전까지 히틀러는 종종 전문가들도 생각치 못하는 날카로운 혜안을 보여주는 장면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슈페어가 서술한 바에 따르면 히틀러는 '복잡한 문제의 핵심을 매우 기민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있으나 너무 쉽게 핵심에 접근한 나머지 과정의 중요성을 생각치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고 하니 그의 예술가적 기질이 발휘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전황이 점차 좋지 않게 흘러가고 전쟁이 길어짐에 따라 나치당의 수뇌부들이 보이는 반응도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특히 괴링이 그러한데, 인용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포인트는 '패배주의적' 발언을 성급히 내뱉고는 자신의 말을 주워담으려 애써 노력하는 괴링의 모습이 상당히 웃기다는 점. 여러 기록을 통해서 접한 괴링의 인격으로 능히 짐작 가능한 모습이라 어쩜 이리도 기대에 부합하는 모습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패전을 앞두고 점차 히스테리컬해지는 히틀러와 조금이라도 전쟁의 무게 추를 승리쪽으로 기울이려 동분서주하는 슈페어의 모습은 흡사 고전 비극의 주인공을 보는듯한 기분마저 든다. 분연히 노력하지만 결국 자신들이 부여받은 운명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비극의 주인공. 허나 히틀러를 비롯한 지도층의 죄는 결국 독일 국민들의 피로써 씻게 되었으니 실로 아이러니한 일일 수 밖에.
'기억'이 갖는 가장 큰 허점은, 대부분의 회고록이 그러하듯 교묘한 자기 변명과 윤색이 가득하다는 점. 물론 그들이 실제로도 그러했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슈페어와 한번이라도 대립한 적이 있었던 나치당의 수뇌부들은 천하의 비열한으로 묘사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하인리히 힘러와 마르틴 보어만인데 이들이 '기억' 전체에서 좋게 묘사되는 장면을 한점이라도 찾을 수 없다. 또한 슈페어 자신은 독일의 전쟁범죄에 대해 막연히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결코 그 실체에 대해 모르는 채로 나치 독일에 봉사했다고 서술되어있는데, 과연 그것이 진실일지는 오직 그만이 알 일. 군수장관이자 히틀러의 친구로 산 사람의 입에서 나오기엔 신빙성이 낮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대전 동안의 독일 수뇌부에 대해서 이렇게 생생히 조명했던 책은 없으니 흥미가 있는 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본인 역시 앞으로도 두고두고 읽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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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슈페어는 히틀러의 건축가이자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전쟁 물자 생산을 총괄한 군수장관이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나치 각료 중 유일하게 교수형을 면해 20년형을 선고받은 슈페어는 2만 2,000여 건의 문서를 바탕으로 이 책을 완성했다. “나는 한 인간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고 싶었고, 히틀러의 본질을 명확히 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1942년 이후 행해진 모든 정책에 대해, 히틀러의 범죄 행위까지 포함해서 지도부가 집단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피고인석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