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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출간은 1974년이었고, 자그마치 40년도 더 전에 쓰여진 책이다. 일본의 소위 '잃어버린 20년' 도래의 20년 전 이야기인 것이다. 당시 전후 일본은 해마다 경제성장률의 신기록을 기록하며, 자동차와 도로의 보급률도 어마어마하게 늘기 시작한다. 몇 년 시차가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도 크게 다른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책의 제목은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이지만 자동차는 단순히 자동차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개인이 사회에 부담을 지우는 구조를 일컫는다. 자동차는 개인이 소유하지만, 도로 인프라 없이 자동차는 달릴 수 없다. 새로 도로를 만들지만, 그 과정에서 기존에 있던 것들은 사라진다. 사람이 다니던 길에 차가 다니고, 차들은 사람을 밀어낸다. 소음, 공해 같은 건 고려되지 않는다. 자동차로 말미암아 기존 대중교통 인프라는 붕괴된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122쪽부터 140쪽까지 이어지는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비판으로 보인다. 현재 신고전파라는 말은 경제학 강의시간이 아니라면 듣기가 어렵고 신자유주의가 훨씬 친숙한데, 이들 이론은 변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모델에 넣었다는 공통점에서 비판받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책으로부터 40년도 더 지난 2017년 현재에도 우리의 경제이념은 소위 '쓸데없는 것'에 대한 고려를 하는 경우가 적다. 하지만 너무 멀리 와버렸다. 국도변에서 보행하는 것은 위험하다. 시골의 마을 단위는 해체되어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고, 지역의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거대한 블록을 형성한다. 자동차가 없으면 출퇴근이 불가능하다. 수도권 주변의 도로는 수십배 확충되었으나, 도로가 확장되기 무섭게 자동차들이 그 자리를 메꿔 정체가 끊일 날이 없다. 자동차 뿐 아니라 모든 것이 다 그러할 것이다. 저자가 책을 저술할 당시에는 경고의 의미도 있었겠지만, 현재의 시선에서 이는 이루어지지 못한 소망,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 가지 않은 길이 더 작은 길이었다는 것이지만. 일본에 여행을 가서 느꼈던 것은 철도 인프라가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고, 사람의 이동에 훨씬 더 많은 값을 매긴다는 것이었다. 서울~부산간 고속도로 요금은 2만원대 중반 정도지만, 비슷한 거리의 도쿄~오사카 고속도로 요금은 1만엔을 훌쩍 넘는다. 철도, 버스, 택시 요금도 마찬가지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경제지표 격차를 고려해보아도 교통비는 일본이 비싸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사회적 비용 무시가 일본보다 훨씬 더 심하다는 뜻이고, 많은 현상이 여기서 비롯될 터이다. 그러나, 이 추세를 되돌리기란 이제 요원한 일이지 않을까 회의감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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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든 것들에 의해 지배당하는 21세기 호모 사피엔스
지난 주말 작은 도서관에 도착한 신간을 구경하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였다. 나는 경기도에서 서울 도심을 출퇴근 하며 하루하루를 교통지옥 속에 살아가고 있고, 남편은 자동차 회사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기에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이 발동하여 집어 들게 되었다.
최근 역발상과 통찰력으로 화재가 되었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중 가장 강렬하게 나의 의식을 지배했던 대목은 “잡초였던 밀은 수렵과 채집으로 편안하게 살고 있던 호모사피엔스를 자신의 이익에 맞게 조작함으로써 어디서나 자라나는 존재가 되었다.”는 부분이다. 그의 견해에 100% 동감하지는 않지만, 이런 문제 제기를 통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21세기의 호모 사피엔스는 우리가 만든 것들에 의해 지배당하고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하물며 생물체도 아닌 자동차, 나아가 자동차 산업이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고 조작하는지, 우리는 그 불편과 부당함을 왜 감수하며 살고 있고, 개선방안은 무엇인지 연구하여 이해하기 쉬운 수치로 보여주고 있다.
양적인 성장이 실질적인 삶의 풍요를 가져다주기는 하는 것인지, 편리(한 것처럼 보여지는 것들)를 위해 더 큰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는 않은지, 편리를 위한 우리의 선택들이 다른 이의 기본권을 짓밟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때이다.
20대 초반, 자동차 산업이 남기고 떠난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는 3대 도시 중 하나인 클리블랜드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었다. 토박이 친구들이 동네 구경을 시켜준답시고 돌아다니던 곳은 자동차 회사의 로비에 의해 운행이 중단된 지하철도 자리, 기름에 뒤덮여 햇볕이 따가운 날 불타오르곤 했다는 버닝리버(Burning River) 쿠야호가(Kuyahoga) 강, 문 닫은 공장부지와 번호판 없는 차들이 방치되어 있는 동부 산업지구(East Cleveland) 등이었다.
아이들이 고무 줄 넘기, 딱지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가로”가 지금은 불법 주차와 언제든 들이닥치는 통행차량들 때문에 꼭 필요할 때에만 부모님 손을 잡고 아슬아슬하게 피해 다녀야 할 모험의 길이 되어버렸다.
자동차의 편리함을 최대로 누리는 사람들 대부분은 지상주차장이 없고 놀이동산처럼 알록달록한 최신식 기구로 무장된 ‘인공 놀이터‘를 몇 개씩이나 갖춘 주거공간에 살고 있으니, 그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편리를 누리지도 못하는 약자에게 돌아간다는 불합리함을 간과해선 안 되겠다.
웬만하면 나는 먼 거리는 버스를 타고,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선 자동차의 크기와 개수가 사회경제적 지위와 동일시 되어버렸지만, 주위 시선 아랑곳 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나서 어쩔 수 없이 구입한 친환경 소형차 한 대만을 고집하고 있다. 자동차 소유가 이미 말기 암처럼 퍼져버린 지금, 자동차 회사에서 밥벌이를 하는 남편이 있고, 왕복 2시간 이상의 거리를 출퇴근하는 나에게는 이런 소극적인 대처만이 최소한의 양심이다.
얼마 전 EBS ‘하나뿐인 지구‘ 시리즈에서 쓰나미로 모든 것을 잃고 단 한 벌의 옷, 단 하나의 가구를 가지고 미니멀한 삶을 사는 일본인의 삶이 조명되었다. 그 날 나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품이 가득했던 창고를 정리하였다. 이 책을 덮고, 더 큰 차를 사고 싶어 하는 남편에게 말해본다. 지금도 충분하다고.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