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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감자가 한때는 유행어가 된 적이 있다. 뭔가 2% 부족한 외모와 성격으로 평범함에 미치지 못하는 인물에게 붙여진 이름으로 상대방이 들으면 별로 유쾌하지 않는 불량감자다. 학창시절 불량 감자 같은 학생들은 기존의 규칙에 어그러진 행동을 하면서 일탈 행동을 일삼으며 지내는 경우가 흔했다. 그들 중 소수는 선생님 몰래 화장을 하고 담배를 피면서 어쭙잖은 어른 흉내를 내며 기성세대에 편승하려던 동기가 강했다. 그런 친구들과는 거리를 두면서도 그들의 용기를 부러워하는 자신을 대면할 때는 흠칫 놀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걸어보지 않았던 일에 대한 일탈이 질식할 것만 같은 현실의 탈출구로 여겨져 그들이 부러워지는 아이러니컬함도 있다. 사랑하는 연인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키움으로써 책임져야할 일은 늘어만 난다. 오랫동안 서로 다른 환경에 지내온 탓에 부부가 상대를 배려하며 원만한 가정을 이뤄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며 자신의 틀에 상대를 꿰맞추려할 때 갈등은 증폭되고 만다. 대화와 타협으로 그 갈등을 풀지 못했을 때 가정 해체는 불을 보듯 뻔하다. 불량누나 제인 소영은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을 감당해야 했고, 원하지도 않는 새엄마와의 재혼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자신의 의견도 깡그리 무시된 채 경제력을 책임지는 이의 의견에 따라 어느 한쪽을 따라 살아야만 했다. 아버지와 함께 지내게 되면서 변화된 삶에 적응하기 힘들어지자 소영은 현실 도피처를 찾아 길을 떠났다. 소영이 어학연수를 명분으로 떠난 캐나다는 한국에서처럼 타인의 눈치를 보면서 안 살아도 되는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홈스테이를 하고 있지만 맘은 제인에게 살가운 부모처럼 정성어린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적정한 돈을 주는 수요자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만남 이상은 아니었다. 제인이 캐나다에 머무르는 동안 엄마의 아들 지원 역시 어학연수를 위해 한국을 떠나왔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원은 '하얀 점 까마귀'를 통해 누나와 교감을 쌓아간다. 하지만 소영은 자신의 틀에 자식을 집어넣으려고 하는 아버지의 양육 방식에 반기를 들고 느낌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한다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겪어 본 이들은 다 안다. 특히, 가치관 정립이 확고하지 않는 10대의 경우는 더하다. 소영의 석연치 않은 행동으로 불안했던 아빠는 딸의 미래를 위해 지원이 엄마를 캐나다로 보내고 기러기 아빠를 자처했다. 하지만 제인의 일탈은 멈추지 않았고 급기야 임신을 하고서는 대책 없이 아기를 낳을 거라 고집을 부렸다. 강제로 유산을 시킬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들어 지원 엄마는 소영을 유산시킨 뒤 학업에 전념할 것을 당부하였으나 그녀는 가출해 새로운 생활을 꾸려 나갔다. 이들 중 어느 누구 하나 지금의 생활에 만족지수를 높이지 못한 채 각자의 위치로 돌아오고 말았다. 불량스럽다고 낙인찍힌 누나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지원의 행동이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일인지는 지금도 의문스럽다. 세계적 공용어인 영어 공부를 위해 많은 자금을 들여서 어학연수를 떠나는 이들이 주변에도 숱하게 널려 있다. 동화 속의 이야기이지만 이런 일들이 공공연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개연성 앞에 회의가 든다. 과연 누구를 위한 어학연수이고 무엇을 얻기 위한 어학연수란 말인가? 가치관의 혼재 속에 소신 있는 삶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게 만든 불량 누나 제인이 준 충격이 오래갈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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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경우 그 행동이 곱게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굳이 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부연설명도 없이 스스로 즐기고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온전한 자유가 아니게 느껴진다면......, 하물며 가장 많은 이해를 해 줄 수 있는 가족까지 냉랭한 외면의 시선을 둔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건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담보로 한다는 사실이 다소 허망하게 여겨지는 걸 보면 어른된 경험치가 더 크게 작용되어지는 것 같다.
깨어진 가족의 아픔 그리고 미처 위안 받기 이전에 새로이 자리한 새엄마. 그로인한 어색한 갈등은 어디서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없었기에 아니 너무도 자기라는 존재를 드러냈기에 조정의 수단으로 떨어져 지내야 하게 된 제인. 불안과 불신에 대한 표현으로 인해 자신에 대한 소중함, 존재감을 거침없이 떨쳐 버리듯 일탈을 행하는 누나를 바라봐야 하는 지원은 혼란스럽다.
진정 확인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와 정해진 규율에 따라 행동하길 바라는 부모와의 대립은 당연하다. 조금만 서로의 입장을 배려했다면 억지스런 고집과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텐데......, 서로가 보듬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함께하는 내내 숨통을 조이는 형태가 된 가족의 의미. 단지 각자의 입장에서 성과만을 대단스레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가출을 선택한 누나로 인해 또다른 자신의 모습, 그에 대한 여러 생각과 주장이 지원에게도 생겨나게 될테지만 긍정적으로 정리해 가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자식만을 위해서라는 부모들의 삶 모습에 억눌리듯 공부만을 했었는데, 깨어나고 있다는 지금도 여전히 자유스런 선택과 조율은 힘겹고 선택의 핵심이 좀 더 강건해진 느낌이라서 씁쓸할 뿐이다.
보다 나은 것을 위해 아이들을 멀리 떠나 보내는 이들이 많아지는데 긴장되고 걱정스럽고, 내 아이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흐름이 두려워서....... 심사숙고 끝에 내리는 결정에 따라야 하는 이 땅의 아이들이 과연 보이는 것만이 불량스럽지 않다고 해서 온전하다고만 할 수 있을지 싶다. 아이들이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며 행동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우선이 아닐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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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된 가정 속에서 방황하는 아이들]
학창 시절 그런 아이가 있었다. 공부도 잘 하고 얌전하고 한마디로 범생이의 전형적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아이. 그런 아이에게 남다른 점이 있었다면 묘하게도 키가 큰 뒷자리의 아이들, 일명 날라리 라고 불리는 아이들과 참으로 친하다는 점..지금 아이들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내가 자랄 때만 하여도 아이들 간의 구분도 칼로 자르듯 참 명확하게 선을 긋던 때였던 것 같다. 길가에서 우연히 화장을 짙게 한 반친구를 보고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나에게 범생이 친구는 그런 말을 했다.
"우리랑 너무 다를 것 같지? 아니야~ 똑같아. 오히려 더 순진할지 몰라. 날라리라고 하는 것도 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부르는 말일지 몰라."
당시는 정말? 정말 우리보다 순진할 수도 있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내 눈에 비친 그 아이들은 너무도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았고 학교 밖만 나오면 과감하게 변신하는 것도 도저히 흉내낼 수 없던 일이기에 말이다...그러나 세월이 흐를 수록 그 범생이 친구가 한 말의 의미를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경험하는 것이 당시는 얼마나 협소했는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불량소녀 제인' 역시 제인을 불량스럽다고 규정을 한 것은 어른들의 잣대이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아이의 모습이 불량스럽다면 왜?라는 것을 생각하기 전에 단정짓고 무조건 바꾸고 억압하려고 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이 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불안정한 부모의 결혼과 이혼, 재혼..그 틈에서 아이들이 받았을 상처는 뒤로 하고 부모의 권위로 아이들을 삶을 좌지우지 하는 폭력적인 태도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싸기에는 너무 버겁다. 딸아이의 말 한마디 가슴으로 들어주지 않던 아버지가 흘리는 눈물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어른들의 눈에 비친 제인은 불량스럽기는 하다. 담배에 남자에 건방진 태도에...그렇지만 청소년들의 그런 태도는 조건없이 나온 태도가 아님을 더더욱 알아채야 하는 게 바로 우리 어른들의 몫이 아닌가? 책 속에서도 어른들보다 동생인 지원이가 누나의 상처받은 마음을 더 잘 알아채니 너무 안타깝다.
무거운 주제를 다소 무겁지 않게 풀어가는 작가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화자가 어린 지원이였기 때문일까? 지원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투영하기 보다 요즘 아이들의 정서와 사고를 담고자 했던게 아닐까 싶다.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풀어나가는 태도가 진지하지 않은 것이 아이들로 하여금 책을 읽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어려운 주제일 수록 아이들의 언어와 생각만큼 담을 때 아이들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으면서 해체되는 가정 속에서 상처받는 아이들의 힘겨움을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느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 바로 가정의 변화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얼만큼 견뎌주고 극복해 가는지 그것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상처를 알아채지 못할 때 우린 일상에서 벗어난 아이들을 쉽게 '불량'스럽다는 말로 치부해 버리기 쉽다. 우리가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을 때 그때 아이들이 삶을 극복하는 힘도 한층 커질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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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오자마자 딸이 먼저 읽는다. 읽으면서 내내 웃으며 재미있는 구절은 소리내서 읽는다. 그런데 앞뒤 상황을 모르는 난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리고 나중에 읽어보니 왜 그 부분에서 내게 들으라고 강요하며 읽어줬는지 알겠다. 그래, 재미있다. 더구나 요즘 아이들 말투나 행동으로 보건대 딱 자기들이 사용하는 표현방식과 비슷했기에 더욱 공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뒷부분으로 갈수록 이건 그냥 아이들의 문제를 살짝 건드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왜 이 부분에서는 딸이 아무 말도 안 했을까. 아니, 뭐라고 했는데 내가 흘려들은 걸까. 있다가 학교에서 오면 한번 붙들고 물아봐야겠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이렇게 왔다갔다 한다. 제인이라는 인물은 분명 객관적으로 그리고 한 인간으로 보기에 그다지 나쁜 아이라거나 크게 잘못될 아이 같지는 않다. 소신 뚜렷하고 독립심 강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려 하고 감정 솔직히 드러내니 얼마나 멋진가. 그러나 조금만 고개를 돌려 내 딸이 그런다면...? 그건 '절대'라는 수식어를 몇 번이나 붙여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이게 바로 어른들, 특히 딸을 키우는 부모들의 딜레마가 아닐까 싶다. 책 속의 인물은 그저 그 안에만 갇혀 있는 인물이어야지 살아 나와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그러나 반대로 훌륭한 인물의 책을 읽고서는 그걸 본받기를 기대한다. 이런 이중적인 생각이라니. 하지만 그 문제에 있어서 우리 어른들은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여러가지 세상이 있는데도 그걸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알고 충격을 받는 것 보다는 책으로 간접경험을 통해 미리 알고 있으면 좀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모두 따라하지 않듯 책에 나오는 것도 무작정 따라하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그 말이 언제나 옳길 바랄 뿐이다.
제인 아니 소영이와 지원이는 남매라고는 하지만 형식적인 남매일 뿐이다. 그러나 둘은 오히려 인간으로 서로를 바라볼 줄 안다. 만약 진짜 남매였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가족문제를 다루는 이야기들이 주로 국내를 무대로 펼쳐졌다면 이 책은 외국으로 무대를 넓힌다. 그렇기에 더 대담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갔는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지원이가 소영이의 행동을 담담하게 보아줄 수 있었을까. 글쎄, 아마도 새아빠처럼 굉장히 보수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것이다. 개인의 감정은 극도로 자제한 채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래서였을까. 분명 심각한 문제가 있었고 갈등도 꽤 컸었는데도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경쾌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한편으론 지나치게 가벼웠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또한 건조한 느낌이 들어 감성적인 부분을 많이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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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니 조금은 머리가 아팠습니다. 짧은 글 속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튀어 나왔기 때문입니다. 글의 주인공 제인( 소영이)와 지원은 이혼 후 다시 재혼한 엄마 아빠에의해 남매가 된 아이들입니다. 그 뿐 아니라 영어공부를 위해( 딱히 꼭 그렇다고 씌여있진 않아도 엄마의 대사를 미루어 짐작하건데) 캐나다로 조기 유학을 온 상태입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재혼 가정의 아이들의 갈등을 그렸나 느껴 졌지만 그 외에도 사춘기가 되어 자기맘대로 하고 싶어하나 자식의 그런 성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와의 관계도 그려져 있어 정말 부모라고 자식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음을 느꼈으며 이 책의 제목이 불량 누나 이나 사실은 불량 부모라고 제목을 해야 하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가정이 영어라는 하나의 이유때문에 생이별을 하고 자식이 커 가는 것도 옆에서 지켜주지 못하는데 이런 상황이 하나의 코미디로 보여지고 과연 영어를 위해 가족이 헤어져 사는 상황 속에서 올바른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는게 당연하다 느껴졌습니다. 전반적으로 가족이 가정이 변해 간다는것을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나름 짐작을 했고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불량 자식은 없고 불량 부모만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공감대를 가질 거라 생각하면 책장을 덮었습니다. 조기유학과 영어 공부라는 사실은 요즘의 부모들의 일순위 고민을 더욱 고민스럽게 만들어주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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