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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가 이상적 군주의 모델로 삼았던 그, 체사레 보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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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체사레 보르자는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에서 이상적인 군주의 모델로서다. 마케아벨리는 오히려 공화주의자이며, 『군주론』은 군주가 지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군주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그래도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으로 냉혹한 지도자를 옹호하는 정치학자의 선구자로 그다지 우호스럽지 않은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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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체사레 보르자는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에서 이상적인 군주의 모델로서다. 마케아벨리는 오히려 공화주의자이며, 『군주론』은 군주가 지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군주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그래도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으로 냉혹한 지도자를 옹호하는 정치학자의 선구자로 그다지 우호스럽지 않은 평판을 얻었다. 그는 책에서 사자의 힘과 여우의 책략을 이야기했는데, 그 표본으로 바로 체사레 보르자를 지목했다. 10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이탈리아를 뒤흔들었다 사라진, 그러나 왕의 자리에 올라보지도 못한 체사레 보르자를 말이다. 그에 대한 관심이 없을 수 없다.

 

체사레 보르자는 나중에 교황(알렉산데르 6)이 되는 로드리고 보르자가 추기경 시절에 낳은 서자다. 알렉산데르 6세는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아들을 추기경으로 임명하고, 나중에는 환속시켜 교황군의 기수와 총사령관으로 임명한다. 체사레 보르자는 아버지와 함께 로마냐 지방의 교황령(그 때는 교황의 지배권이 거의 미치지 않고 있었다)을 점령하며 이탈리아 왕국을 건설하고자 하였다. 바로 부자 공동의 사업으로 말이다. 그러나 단독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으며 그래서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그들의 힘을 빌어야 했다. 마키아벨리가 본 것은 바로 체사레 보르자의 그 줄타기와 신속한 군사 작전이었다. , ‘사자의 힘과 여우의 책략’. 정치적 목적을 위해 속이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았으며, 군사 작전을 펼칠 때는 계획이 서면 전혀 꺼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성공을 거의 목전에 둔 상황에서 아버지인 교황의 급사와 동시에 자신의 병(말라리아), 그에 따른 국제적 정치적 상황의 급변으로 말미암아 그의 시대는 급히 끝나고 말았다. 놀라운 것은 이런 성공과 실패가 모두 그의 20대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그와 이름이 같았던 카이사르(Caesar)(황제)가 아니면 무()”라는 원대한 어구를 좌우명으로 삼았던 체사레 보르자는 그는 악의 본보기로 통했다. 살인, 강간, 근친상간, 친족 살해, 약탈 등 인간으로서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 일들을 저지른 인물로서 그는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저질렀다고 전해지는 악행 중에는 그가 진짜로 저지른 것도 있지만, 억측과 부당한 혐의가 적지 않다. 전 이탈리아(이탈리아라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를 두려움에 떨게 하며, 수많은 정적들을 처단함으로써 증오를 얻었기에 그에게 씌워진 혐의가 적지 않으며, 그가 실제로 저질렀던 악행들도 그 시대의 일로서, 정치적 상황에서 그다지 드물지 않았던 것들도 많다.

 

이런 체사레 보르자를 역사학자 새러 브래드퍼드는 연대기 순으로 정리하고 있다. 체사레 보르자와 함께 그의 아버지인 알렉산데르 6세가 중심 인물로 서술하고 있는데, 체사레의 힘이 교황이었던 아버지의 후견이 절대적이었다는 점. 그의 정복 사업인 보르자 가문의 사업이자 야심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타당한 관점으로 보인다. 그리고 소설적 기법을 적당히 섞음으로써 인물들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서 체사레 보르자만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생생한 것은 교황직을 둘러싼 추악하고도 살벌한 경쟁과 음모다. 그 당시의 교황이라는 자리가 하느님과 예수의 말씀을 세상 사람에게 전달한다는 고상한 임무라는 건 어쩌면 허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굉장히 정치적인 위치이며, 오히려 굉장히 세속적인 임무를 가진 자리였다. 알렉산데르 6세나, 그 이후 체사레 보르자를 파멸시킨 율리우스 2세를 보면 교황에 오르기 위한 덕목과 그 직을 유지하기 위한 덕목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얼마나 다른지를 알 수 있다.

 

저자 새러 브래드퍼드는 체사레 보르자를 냉소적 지성이라고 쓰고 있다. 아주 드러나지는 않지만, 체사레 보르자라는 인물 자체에 매력을 느끼고 있음을 여러 군데서 느낄 수 있다. 또한 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책을 쓴 시오노 나나미는 아예 책 제목을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이라고 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보이는데, (표본 수는 무척 적지만) 이 둘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나쁜 남자의 매력이랄까 



YES마니아 : 로얄 n*****m 2017.04.27. 신고 공감 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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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이탈리아의 오렌지족의 승리와 좌절이던가!!!!
"16세기 이탈리아의 오렌지족의 승리와 좌절이던가!!!!" 내용보기
평소 세계사에 관련된 책을 좋아하던 터라, "마키아벨리"가 감동받았던 인물이란 서평을 보고, 관심을 가지고 책장에서 고르게 되었다.   69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스토리를 하루만에 호기심으로 읽어 갔다. 서양어의 명칭이 익숙치 않았지만, 반복되는 주인공과 주변인물의 다이나믹한 스토리로 마치 16세기판 "오렌지족"의 정치드라마같은 흥미와 재미를 주었다.   아버지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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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세계사에 관련된 책을 좋아하던 터라, "마키아벨리"가 감동받았던 인물이란 서평을 보고, 관심을 가지고 책장에서 고르게 되었다.

 

69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스토리를 하루만에 호기심으로 읽어 갔다. 서양어의 명칭이 익숙치 않았지만, 반복되는 주인공과 주변인물의 다이나믹한 스토리로 마치 16세기판 "오렌지족"의 정치드라마같은 흥미와 재미를 주었다.

 

아버지는 교황으로 절대권력자이었고, 최고의 배경과 금력을 배경으로 젊었을때 쾌락을 통한 주변인물의 순종과 부러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기술을 파악하게된 '영악한 오렌지족'이 기본 캐릭터가 아닐까!!!

 

16세기 이탈리아반도가 프랑스,스페인,이슬람의 영향력으로 혼란과 힘의 공백기가 생긴 시절의 체사레의 등장은 마치, 초한지의 '항우'와 오버랩이 되기도 한다. 

 

적들과의 대담한 협상력,과감한 용기와 자신감, 그것이야 말로 남자다움의 상징이 아니었던가!!!

 

때로는 조조처럼 교활해서 입술을 다물고, 음모에 몰두하는 두얼굴의 체사레.

 

역발산 기개세의 '허장성세'의 테크닉과 과대망상처럼 보이는 뱃포와 권문세가 자녀의 독특한 카리스마를 가졌고 대중을 미혹케하는 흥행력을 체사레가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성공과 권력을 향해 달려가는 역전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요새처럼 무기력하고, 절대권력의 엔돌핀이 없는 우리세대에 항우,체사레 같은 캐릭터가 눈앞에서 활개친다면 얼마나 흥미진진할까!!!!

 

그러나, 체사레도 항우처럼 주변의 뛰어난 인재없이 혼자, 마치 돈키호테처럼 풍차를 향해 달리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옆에서 손을 잡아 일으켜세우는 친구없이....

 

 

h******k 2008.10.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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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남자, 체사레 보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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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로 혼란한 정국 탓에 많은 사람들이 영웅의 도래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여느 고전보다 각광을 받았던 데에는 이러한 시류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키아벨리가 체사레 보르자(이하 체사레)라는 인물을 모델로 <군주론>을 저술했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군주론>의 유명세에 비해 체사레에 대해서는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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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로 혼란한 정국 탓에 많은 사람들이 영웅의 도래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마키아벨리의군주론이 여느 고전보다 각광을 받았던 데에는 이러한 시류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키아벨리가 체사레 보르자(이하 체사레)라는 인물을 모델로군주론을 저술했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군주론의 유명세에 비해 체사레에 대해서는 주목이 덜 하지 않았나 싶다.

잘 기억이 나진 않으나, 마키아벨리의군주론에서 그려진 군주의 상에 대해 난 별다른 매력을 못 느꼈었다. 대신 권력을 위해서라면 혈족마저도 저버릴 수 있는 인물의 매정함을 나는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랬기에 체사레의 삶에 대해 내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물론 나는 체사레의 냉혹함에 고개를 저었다. 일례로 체사레는 자신의 성공을 가로막는 이를 제거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는데, 여동생의 남편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그의 여동생인 루크레치아가 그다지 정숙한 편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여동생을 과부로 만들어가면서까지 권력을 추구하는 것을 어느 누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인간의 삶은 복잡한 것이다. 체사레가 그렇게 된 데에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실제로 체사레는 성공과는 거리가 먼 환경을 타고 났다. 그의 활동 무대는 이탈리아였으니 실상 그는 스페인 출신이었다. 단일민족을 강조하며 외국인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우리나라를 생각해보면 그가 겪었을 어려움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적자가 아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 로드리고 보르자의 정부였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던 길동에 비하면 훨씬 행복한 생활을 했을 체사레이지만, 이러한 그의 출신 배경이 짐이 될지언정 빛이 될 리는 없었을 거다. 이러한 어둔 면을 덮기 위해 그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방법을 택했다. 체사레가 종종 보여주었던 어마어마한 사치는 이 책에서도 종종 등장하는데, 체사레의 물질적 과시는 당대 유력 가문과의 결탁을 가능케 함과 동시에 경쟁자들의 코를 누르는 무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또 한 가지, 상대를 향한 날카롭고도 치열한 경계 역시 체사레가 살아남기 위해 택한 방법이었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진 않았으나 숱한 죽음이 체사레와 연관되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역사에서 살아남았다. 그만의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할 뻔 했다는 것과 서른 하나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는 것 역시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체사레를 지지했음을 우린 기억해야 한다. 체사레가 사랑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의 한 페이지에는 체사레가 돈이 부족하면 병사를 구할 수 없지만, 병사를 구하지 못하면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금언을 의식적으로 따랐다는 구절이 있다. 체사레가 물질적인 부 이상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역사가 늘 교훈을 우리에게 남기듯 체사레의 삶 역시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가 많다.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낀 당시 이탈리아의 모습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나라와 꽤나 유사하다. 비록 실패로 끝나긴 했으나 체사레는 자신이 꿈꾸었던 강한 이탈리아를 향해 나아갔다. 침대에서 죽느니 차라리 안장에서 죽겠다는 무모함이 결국에는 그를 죽였다. 하지만 꿈꾸지 않는 자는 실패하는 자보다 더욱 초라하다. 그렇기에, 아무리 암울한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체사레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비록 내가 동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지만...

q*****2 2008.07.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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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 한 풍운아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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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체사레 보르자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 할머니를 통해서였다. 이탈리아 사에 흠뻑 빠진 노작가는 카이사르의 중세판 환생이라고 할 수 있는 체사레 보르자에 경도되어 이미 그에 대한 글도 쓰지 않았던가. 덧붙여서 체사레 보르자가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의 실제적인 모델이 되었던 인물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체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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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체사레 보르자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 할머니를 통해서였다. 이탈리아 사에 흠뻑 빠진 노작가는 카이사르의 중세판 환생이라고 할 수 있는 체사레 보르자에 경도되어 이미 그에 대한 글도 쓰지 않았던가. 덧붙여서 체사레 보르자가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의 실제적인 모델이 되었던 인물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체사레 보르자에게는 냉철한 군주이자, 과감한 결단력의 소유자 그리고 전쟁터에서 뛰어난 전투지휘관이라는 온갖 미사여구가 뒤따르지만 결국 그는 아버지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후광을 입어 그런 성공들을 이루었다는 것이 알렉산데르 6세의 사후에 드러난다.

 

스페인의 아라곤 지방의 보르자(스페인말로는 보르히아) 가문 출신으로 자신의 삼촌이자 교황이었던 칼릭스투스 3세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로마에 입성해서 추기경으로 발탁된 로드리고 보르자는 1492년(컬럼버스가 미국대륙을 발견한 바로 그 해!) 정적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를 꺾고, 오랜 염원이었던 교황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족벌등용이라는 폐습을 적극 활용해서 정부와의 관계를 통해 낳은 자신의 아이들인(사생아) 체사레, 후안, 루크레치아 그리고 호프레를 고위 관직에 연달아 등용시키기에 이른다.

 

과거 막강했던 교회 권력의 부활을 꿈꾸던 교황 알렉산데르와 로마의 전통적인 보수귀족 가문인 오르시니, 콜론나 가문들과의 마찰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갈등의 전면에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체사레 보르자가 서 있었다. 명예를 중시하는 보르자 가문의 후예답게, 체사레 보르자는 자신의 일족이 당한 수치나 모욕에 대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보복을 함으로써 당시 보르자 가문이 누리고 있던 권세를 당대의 모든 이들에게 인지시켰다.

 

한편, 당시 여러 개의 소국으로 나뉜 채 하나의 구심점이 없는 채로 이전투구를 계속하고 이탈리아 주변에는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 그리고 스페인으로 대표되는 강대국들이 호시탐탐 이탈리아의 정치문제 특히 남부의 나폴리 왕국에 대해 자신들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알렉산데르가 주창한 대로, 교황령을 중심으로 한 주변의 여러 도시국가들과 공국 그리고 공화국들을 아우르는 대역사가 필요한 참이었다.

 

이미 어린 나이에 추기경에 임명되어 권세를 누리고 있던 체사레 보르자는 1498년 동생이자 교황군의 총사령관이었던 간디아 공작 후안 보르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사제복을 벗고 환속하여 동생 후안을 대신해서 교황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이탈리아 정복에 나서게 된다.

 

체사레 보르자는 로마냐 지방 석권을 위한 자신의 첫 전장이었던 이몰라와 포를리 공략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 주면서 포를리의 영주 카테리나 스포르차를 사로잡고 자신의 첫 번째 공략을 대성공으로 이끌게 된다. 보르자 가문의 영욕을 그린 영화 <보르히아>에서 보면 음모의 달인 카테리나 스포르차는 교황 알렉산데르를 독살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가 발각되면서 파멸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뒤이어 리미니와 페사로, 파엔차 그리고 우르비노를 정복하면서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무장이라는 당대의 칭송을 얻게 된다.

 

이 책에서는 어제 본 영화 <공공의 적 1-1>에서 강철중이가 말했다시피 ‘무슨 가족 간에 이렇게 팀웍이 안 맞아 먹어!’라는 푸념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아들 체사레의 이탈리아 원정을 위해, 교권의 최고 지도자인 알렉산데르는 자신의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대의명분과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아직 상비군 체제가 마련되어 있지 않던, 르네상스 시대에 용병들이 주를 이루는 전쟁에서 교황이 지원하는 돈의 힘은 그야말로 막강했다.

 

이탈리아에 존재하고 있던 각 공국들과 공화국들 간의 정치적 갈등과 더불어 주변 강대국들 간의 이해문제까지 겹쳐져서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던 시대 상황이었다. 모든 일들에 대해 냉혹한 분석을 통해 판단하고 움직이던 당대의 풍운아 체사레 보르자조차도 자신이 내린 어떤 결정도 그 결정이 불러올 결과들에 대해 알 수가 없었다. 오늘의 적이 내일은 맹방이 되고, 오늘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던 가문과 부하 장수들이 내일은 반대편에 서서 자신에게 칼날을 겨누는 상황 가운데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하고, 그러지 않아야 하는지 격동의 세월을 겪은 지도자의 고뇌가 이 책의 곳곳에서 배어났다.

 

체사레 보르자와 그의 아버지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교황권의 강화라는 초석에 바탕을 해서 보르자 가문을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통일을 꿈꾸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알렉산데르는 우리 나이로 환갑에 교황이 되어 11년간 로마를 지배했지만 보르자 가문이 이탈리아에 뿌리를 내리고, 체사레 보르자가 정복한 로마냐 지방의 정복지들을 공고히 하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부족했고, 보르자 가문에 대한 정적들의 증오의 깊이는 상상을 초월했다.

 

체사레 보르자는 자신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정치적 상황과 수많은 판단과 결정 사이 가운데 위태로운 줄다리기들을 시도하면서 영락을 거듭했지만, 결국 아버지 알렉산데르의 죽음으로 자신에게 가장 큰 도움과 후원을 제공해 주던 보호막이 제거되면서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르네상스 시대 한 풍운아의 삶은, 비록 그의 성공의 상당 부분이 아버지의 후광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지만, 역시 시시각각으로 변해 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에 있어서 어떤 결정들을 올바르게 해야 하고 그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현명한 삶의 처세술에 대한 귀감을 보여 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h******1 2008.06.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