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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보여주는 빛나는 업적의 내용서술, 빛바랜 역사 편식
"저자가 보여주는 빛나는 업적의 내용서술, 빛바랜 역사 편식 " 내용보기
중국역대 황제들중 TOP10을 뽑는다면 항상 최상위에 들어갈 인물이 당태종 이세민이다   그런 그가 통치했던 시대가 이른바 태평성대라 불리던 정관의 치 이고~   이 책  괜찮은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특히나 대부분의 책들이 너무 장황하리만큼 시작해 용두사미로 끝나거나, 도입부를 너무 등안시한 나머지 본 내용과의 연결면에서 많이 미흡한모습을
"저자가 보여주는 빛나는 업적의 내용서술, 빛바랜 역사 편식 " 내용보기
 

중국역대 황제들중 TOP10을 뽑는다면 항상 최상위에 들어갈 인물이 당태종

이세민이다   그런 그가 통치했던 시대가 이른바 태평성대라 불리던 정관의 치 이고~

 

이 책  괜찮은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특히나 대부분의 책들이 너무 장황하리만큼 시작해 용두사미로 끝나거나,

도입부를 너무 등안시한 나머지 본 내용과의 연결면에서 많이 미흡한모습을 보이는

반면에    본서는 적절한 배분을 이루어냈다  이점 또한 이책의 강점이랄까?

 

 

수나라 양제에서부터 시작해 관롱집단과 함께 당고조 이연의 당나라판 캐네디가의

유래까지..    알기쉽게 설명해준다

특히나  정관의 치 라는 제목에 부합되게 이세민이 이룩해낸 여러면에서의

업적들을 나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적의 인사인 위지경덕과 위징등을 받아들여 치세에 크나큰도움을 받는것

 

당시엔 보기드믄 생명존중을 통해 삼심제의 기초를 다진점

 

역린을 건드려 자칫 대노할수 있음에도 신하들의 충언을 간압한것

 

백성이 배를 띄울수도 있지만 뒤집을수도 있다는 현실을 직시할줄 알았다는 점 등등

분명 이세민은 그 결과만을 놓고보자면 여느군주와 견주기 힘들만큼의 업적을

이루어낸것이 사실이다 또한 현재의 위정자들에게도 타산지석이 될만한 인물

이라는것을 부정키엔 동서고금 어디에도 성군이라 불릴만한 인물이 많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절대적, 비교론적으로 이세민은 꽤나  괜찮은 위정자였다

 

어렵지 않으면서 흥미로웠던 많은 내용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을 꼽자면   정관의 치 에 부합되는 이세민의

업적보다도 이해하기 힘들었던 당 고종 이치의 태자책봉과정에 대한 설명이었다

태종말년엔 오히려 공신들의 득세, 특히나 장손무기의 위세가 지나쳐 오히려

태종이 장손무기에게 끌려다닌듯한 느낌을 지울수 없다는 역사적판단을 접한지라

책에서의 이치가 권력투쟁에서 살아남는것에 대한 서술이 장황하진 않지만

나름 그럴듯하게 설명되는 논리부분을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성군이라는칭호에 걸맞게 자신의 사후 정국안정과 자손들의안녕까지 염려한배려다?

수긍할만한 결론이었다

정관의 치  라는 책에서 얻은 덤  일것이다

 

책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는 이처럼 읽어봄직한 책이다        이다

이제 한가지 문제제기를 하고자한다     결정적으로 아쉬웠던 점이 한가지있다

책의 내용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없지만 구성면에서 짚고넘어가련다

정관의 치,  즉 태종의 태평성대의 치세를 언급한것이라 할지라도 저자가 중국인이

어서일까? 라는 의구심을 삭이기엔   조금의 난점이 보이는것같다

태종때에 있었던 실패한 정책  특히나 고구려침공이나 다른 여타 다른국가와의

문제에서 애써 외면한것인지, 미화한것인지 모호하다는점이다

 

난 지금 고구려가 강성했다 라는 식의 진실여부를 묻고자는게 아니다

분명 이책에선 당태종의 실수에 대해 언급하며 그것마저 스스로 충언을 받아들여

진화해나갔다고 말한다 특히나 이세민의 아버지 이연또한 돌궐과의 굴욕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까지 실리를 중요시하며 그것은 자연스레 이세민에게로 이어진다  고

저자는 말한다

위징또한 죽는순간까지 고구려침공을 반대했고, 이세민또한 임종시 유훈으로

고구려를 다시는 침공치 말라고까지 한다 그러나 일언반구 이런부분은 언급되지

않는다    애초에 정관의 치세에서 긍정적인 부분만 언급하려면 그렇게 하던가,

자신의 단점마저 장점화하는 당태종이라 예까지 들며 가장 중대한 실패작중 하나인

고구려 문제는 소리소문없이 이책에선 존재조차 않는다

 

책 어디에도 고당 전쟁에 관한 부분은 언급되지 않는다   굳이 억지로 찾는다면 

종반부에 1장에도 미치지 못하는 분량으로 고구려침공 실패에 대해 언급하는정도이다

그러나 그것도 대부분을 이세민이 아들 이치를 위한 안녕을 위해 벌이다가

실패한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애써 위안을 하는 내용이다

 

중국의 역사 관련서적은 이런식의 논조가 주류다

세상에 어느나라가 부끄러운 패배와 치욕의 역사를 주류로 등장시키겠나

우리또한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글자중 하나가

두려울 공  자란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중국처럼 업적에 대해선 터질만큼

부풀려서 전하고, 실패에 대해선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들만큼 스리슬쩍 넘어가진

않는다     이책을 읽으며 다시한번 중국의 역사인식에 일그러짐을 느낀다는건

지나친 일반화일까?

 

저자는 책에서 언급한다

이세민은 태자이건승과 이태, 이치의 권력투쟁에서 역사는 재연의 연속이다 라는

것을 느끼진 않았을까?  라고

역사를 배우는것또한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위함이다

때론 약간의 애국주의에 호소해야하는 필요성도 있지만 지나치리만큼 수천년동안

중원을 지배하며 천자로 군림했다는 일부분만을 전체인양 기술하며 지배당한

역사는 애써 감추는게  진정  중국에게도, 중화주의에도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를일이다

 

유방 또한 흉노에게 쫓겨 줄행랑을 쳤지 않은가?

요, 금, 원, 청등에 의해 지배당해온 세월이 얼마인가?

무시할수없을 만큼의 저력을가진 강대국 중국이지만 분명 침략의 역사보단 침략을 당한

역사를 찾는게 더 쉬울것이다

이이제이       이것이야말로 지혜롭게 대처했다는 미화아래 이루어진 실제론 살아남기위한

어쩔수없는 몸부림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책내용과 무관한 구성면을  너무 길게 언급한것같아 약간은 죄송스럽기도..   쩝 ~~~

n********7 2008.05.19.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名君과 名相은 같이 있는 법
"名君과 名相은 같이 있는 법" 내용보기
관문을 나서며...마음 속 감회를 말하다 - 술회(述懷) - 당(唐),위징(魏微)(580~643)   중원 환축록 中原 還逐鹿 중원의 천하쟁탈전이 다시 시작되었으니, 투필 사융헌 投筆 事戎軒 나 또한 붓을 버리고 병거(兵車)에 올랐네.   종횡 계불취 縱橫 計不就 종횡의 뜻은 이루지 못했으나 강개 지유존 慷慨 志猶存 그 기개는 버리지 않았다네.   장책 알천자 杖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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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문을 나서며...마음 속 감회를 말하다 - 술회(述懷) - 당(唐),위징(魏微)(580~643)

 

중원 환축록 中原 還逐鹿

중원의 천하쟁탈전이 다시 시작되었으니,

투필 사융헌 投筆 事戎軒

나 또한 붓을 버리고 병거(兵車)에 올랐네.

 

종횡 계불취 縱橫 計不就

종횡의 뜻은 이루지 못했으나

강개 지유존 慷慨 志猶存

그 기개는 버리지 않았다네.

 

장책 알천자 杖策 謁天子

계책을 말씀드리며 천자를 배알한 후

구마 출관문 驅馬 出關門

이제 말을 달려 관문을 나선다.

 

청영 계남월 請纓 繫南粤

종군이 갓 끈으로 남월왕을 결박함 같이,

빙식 하동번 憑軾 下東藩

식기가 수레에 탄 채 제(齊)를 항복시킴 같이 하리라.

 

울우 척고수 鬱紆 陟高岫

구불구불 산 길 따라 산꼭대기에 올라

출몰 망평원 出沒 望平原

저 멀리 아스라한 평원을 바라보니

 

고목 명한조 古木 鳴寒鳥

고목에는 추운 새 울고

공산 제야원 空山 啼夜猿

텅 빈 산에는 밤 원숭이 울음우네.

 

기상 천리목 旣傷 千里目

천리 저 먼 고향을 바라보니 가슴이 아려오고

환경 구절혼 還驚 九折魂

내 혼은 몇 번이나 그곳을 가고 오네.

 

기불 탄간험 豈不 憚艱險

어찌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으리오만

심회 국사은 深懷 國士恩

국사로서 대우받는 천자의 은혜 가슴깊이 새기고 있네.

 

계포 무이락 季布 無二諾

계포는 두 번 말을 하지 않았고

후영 중일언 侯瀛 重一言

후명은 한번 한 말을 지켰다네.

 

인생 감의기 人生 感意氣

인생이란 기개(氣槪)로 살아가는 것.

공명 수부론 功名 誰復論

공명을 논하여 무엇하리오.

 

글로써 글을 감상하니 이 또한 풍류 아닌가 하하하

 

인생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지

공명 따위는 논할 가치도 없다는 기개를 보이는 시다. ‘당시선’에 전한다.

위징은 당태종의 유명한 충신으로 역사에 전해 온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당 태종인 이세민의 편은 아니었다.

 

당 고조인 이 연에 의해 중용되어 고조와 함께 당의 시대를 열었지만

오히려 훗날 당태종과 대결한 이 세민의 큰 형인 이건성의 편이었다.

그의 일생을 알아야 이 시가 이해된다.

 

아래의 참고자료를 보면 그의 일생이 뚜렷하다.

역시 명재상(明宰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흉중(胸中)에 기개(氣槪)와 전략전술(戰略戰術)이 가득하여야 되는 것이다.

사나이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는 것이다.

 

참고로 위징[魏徵,580~643]에 대하여 일화로서 알린다.

1.자는 현성(玄成). 시호 문정공(文貞公). 곡성(曲城: 山東省) 출생.

수(隋)나라 말 혼란기에 이밀(李密)의 군대에 참가하였으나 곧 당고조(唐高祖)에게 귀순하여

고조의 장자 이건성(李建成)의 유력한 측근이 되었다.

황태자 건성이 아우 세민(世民: 후의 太宗)과의 경쟁에서 패하였으나 위징의 인격에 끌린 태종의

부름을 받아 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의 요직을 역임한 후 재상(宰相)으로 중용되었다.

 

특히 굽힐 줄 모르는 직간(直諫)이 유명하며, 주(周)·수·오대(五代)등의 정사편찬(正史編纂)

사업과 유례(類禮)》군서치요(群書治要)》등의 편찬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어 집은 가난했지만,

그는 선천적으로 호방한 성격으로 어릴적 부터 큰 뜻을 품었다.

수나라 때에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징집되자 모면하기 위하여 도관에 들어가 도사가 되었다.

 

그가 삼십대 중반을 맞이할 때 그 즈음 수(隋)나라의 양제(煬帝)가 정치를 잘못하여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세상은 혼돈에 빠지고 말았다.

반란군 가운데 가장 큰 세력을 가진 집단은 낙구(洛口)에 근거지를 둔 이밀(李密)이었다.

 

위징은 처음부터 그의 신하가 되었는데, 이 밀은 위징의 헌책을 쓰지 않다가

결국 낙양에 근거지를 둔 왕세충(王世充)과 싸워 패하고 말았다.

위징은 장안에서 당을 일으킨 이 연(李 淵)에게 몸을 의탁했다.

 

그러나 위징은 중용되지 않았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스스로 적극적인 선전활동을 펼쳐 결국 산동진무(山東鎭撫)가 되었다.

이리하여 당 나라 고조 이연에게 등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날 위징이 황제에게 나아가 산둥(山東)의 적 서세적(徐世勣 : 훗날의 이적)을 설득시키겠다고 하였다.

 

황제는 그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였다.

용기를 얻은 위징은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위징은 군웅의 한 사람인 이적을 설득하여 당 왕조에 귀순시킨다.

군대의 힘을 쓰지 않고 세치 혀로 상대를 굴복시킨 것이다.

 

이를 위해 출발하던 때에 그는 <술회(述懷)>라는 시를 한 수 읊었다.

일명 ‘출관(出關) - 관문을 나서며 -’이라고도 한다.

시는 이때의 위 징 자신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자기의 능력을 알아준 황제의 은혜에 보답하고, 옛날의 절의 있는 어른들과 같은 대위업을 세우겠다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초(楚)나라 사람으로 한(漢)나라의 장군이었던 체면과 신의의 인물 계포와 전국시대 말 신릉군(信陵君)이 조(趙)나라를 도우려 할 때, 나이가 많아 종군할 수 없게 되자 "혼백이라도 따르겠다."고

신릉군과 약속한 그 한마디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절의의 인물인 후영과 같은 이들을 본받겠다는 뜻이다.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놓고 쟁패하던 시절, 계포(季布)라는 장수가 있었다.

어릴 때 형제에 비해 특별히 뛰어난 면이 없다고 생각했던 계포는 장차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다.

하루는 친구들끼리 밤에 만나서 놀기로 약속했는데, 밤이 되자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

 

다른 친구들은 무서워 한 명도 안 나왔는데 계포는 혼자 약속장소에 나갔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마침 지나가던 사람들이 계포를 살려내 왜 한밤중에 위험한 곳에 나왔느냐고 묻자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왔다고 답했다.  

그 뒤로도 계포는 약속을 지키는 행동을 계속한다.

여기에서 계포일락(季布一諾) 또는 계포무이락(季布無二諾)이란 말이 나왔다.

‘계포는 한 번 약속하면 지킨다’, 혹‘계포는 두 번 약속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릇 인간은 마음이 통하기를 바라는 것인데, 자기도 황제의 알아주심에 감격하였으니

이제 공명 따위는 논할 바가 아니라는 뜻이다.

 

흔히 회자되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위해 목숨을 바쳐도 좋다."와 같은 말이다.

이리하여 위징은 군웅의 한 사람인 이적을 설득하여 당 왕조에 귀순시켰다.

 

2.그런 위징을 눈여겨 본 사람이 바로 이연의 맏아들이자 태자인 건성(建成)이었다.

건성은 위징을 지략이 뛰어나다하여 ‘태자세마(太子洗馬)’라는 측근으로 등용되어

비밀스런 일을 의논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연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다.

위로부터 건성, 세민, 원길이다.

이연이 당 왕조를 일으키고 황위를 계승하자 장남 건성이 태자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각지의 군웅을 토벌하는 공을 세운 것은 세민(世民)이었다.

그 때문에 세민의 명성은 형 건성을 능가했다.

 

이대로 놓아두었다간 내 지위가 위험하겠다...’ 그런 판단을 내린 건성은 원길과 손을 잡고

세민에게 대항하려 했다. 측근에서 보좌하던 위징도 빨리 손을 써야 한다고 간언하였다.

한 마디로 말해 죽여 버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수를 친 것은 오히려 세민이었다.

현무문(玄武門)에 자객을 잠복시켜두고, 궁전으로 들어가는 자신의 형인 건성과 아우 원길을 죽여 버렸다. 이를 ‘현무문의 변’이라 한다.

 

이 사건 후 위징은 세민 앞에 끌려 나갔다.

“왜 우리 형제들 사이를 이간질 했느냐?”하고 이세민이 따져 물었다.

그러나 위징은 당당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태자께서는 제 상전이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태자를 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만일 태자께서 내 말을 들었더라면 절대로 오늘과 같은 화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위징을 높이 평가해 온 이세민은 과거의 일을 모두 잊고 그를 서기관(書記官)으로 임명했다.

두달후, 이세민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위징은 간의대부(諫議大夫)라는 측근으로 발탁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태종에게 직언하여 그가 제국을 다스리는 데 오류를 범하지 않게 했다.

당태종은 자신의 반대편에 섰던 ‘위징(魏徵)’을 최고위직에 기용했는데,

이때 ‘위징’이 내세운 조건은 ‘폐하의 잘잘못을 언제든지 따지겠다.’는 것이었다.

당태종은 이를 받아들였다.

 

‘위징’은 죽을 때 까지 당태종을 보필하면서 과감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이 당태종의 치세를 ‘정관의 치세(貞觀의 治世)’로 칭송하는 것은 그 바탕에 ‘위징’이 있었기 때문이다.

 

4.그가 태종을 만난 것은 마흔 일곱 살 때였으니, 거의 만년에 가깝다.

그때까지 그의 인생은 파란이 가득했고, 이렇듯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세민과 그 중신들이 나눈 문답을 정리한 정관정요(貞觀政要)라는 것이 있는데,

옛날부터 제왕학의 교과서로 널리 알려진 책이다.

이 책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면서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부드럽게 태종에게 간하는 사람이 바로 위징이다.

 

그 모습을 <정관정요>에서는 이렇게 전한다.

“위징은 원래부터 경국(經國)의 자질을 갖추었고, 성격이 곧아 굽힐 줄을 몰랐다.

태종이 그의 말을 듣고 즐거워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위징 또한 황제만나기를 좋아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발휘하여 보좌하였다.”

위징과 같은 충신 없이는 태종이란 명군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 날, 태종은 이들 현신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창업과 수성 중에 어느 쪽이 더 어렵냐?”고 질문했다. 방현령이 대답했다.

“창업은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일어난 군웅 가운데 최후의 승리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인 만큼 창업이 어려운 줄로 아옵니다.”고 한다.

 

그러나 위징은 대답이 달랐다. “예로부터 임금의 자리는 간난(艱難) 속에서 어렵게 얻어 안일(安逸) 속에서 쉽게 잃는 법이라고 합니다. 그런 만큼 수성(守成)이 어렵습니다.”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태종이 말을 했다.

“방공(房公)은 짐과 더불어 천하를 얻고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났소. 그래서 창업이 어렵다고 말한 것이오.

그리고 위공(魏公)은 짐과 함께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항상 부귀에서 싹트는 교사(驕奢: 교만하고 사치함)와 방심에서 오는 화란(禍亂)을 두려워하고 있소.

그래서 수성(守成)이 어렵다고 말한 것이오.

 

그러나 이제 창업의 어려움은 끝났소.

그래서 짐은 앞으로 제공(諸公)과 함께 수성(守成)에 힘쓸까 하오.”라고 말한다.

이에 당 태종은 정치를 행함에 있어 위징의 이야기를 옳게 여겨 올바른 정치를 펼쳤고,

이는 곧 ‘정관의 치(貞觀의 治)’로 승화되는데 기여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볼 때

위징은 중화체제라는 동아시아의 중국패권체제를 형성하는데 기여한 역량 있는 건설자였고,

유장한 중국사에서 명재상으로서 태평성대의 전통을 이은 걸출한 영웅이었다고 평가된다.

이렇게 당태종과 함께 당을 위해 힘썼던 위징도 처음에는 당태종의 형이었던 이건성의 책사였던 것이다.

 

즉 위징이 처음에는 당태종의 적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당태종이 훗날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적을 중용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이 부분에서 당태종이 인재 등용에 얼마나 힘썼는지를 알 수 있었다.

역시 명상과 명군은 동시대에 나오는 법이다.

 

인재등용에 실패했던 춘추 전국시대를 통일했던 진시황제도

그 인물자체가 지닌 영향력이나 능력에는 부족함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옆에서 교활했던 환관 조고에 의해서 진시황이 죽은 후 결국 진나라는 패망에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외에도 이러한 예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국가를 운영하는데 있어 통치자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그 옆에 누가 그를 보좌해주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5.하루는 위징의 직간(直諫)에 태종이 화가 나서 “오늘도 신하들 앞에서 내 위신을 떨어뜨렸으니 저 영감을 죽여버려야겠다.”고 길길이 뛰며 고함을 질렀다.

이에 장손황후가 사라졌다가 잠시 뒤 정복으로 갈아입고 나타나 큰 절을 하며

“감축 드립니다. 자고로 명군 밑에 바른 말하는 신하가 있다 하였는데, 위징 같은 신하가 있으니 폐하는 명군입니다”라고 말해 위기를 넘긴 적이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 온다.

 

그만큼 당태종이나 장손황후도 대단한 인물이었음을 잘 알 수 있다.

태종은 위징이 64세로 세상을 떠나자 이렇게 한탄하며 슬퍼했다한다.

“동으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바로 할 수 있고, 과거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이해득실을 알 수 있다.

짐은 늘 이 세 개의 거울을 가지고 나의 잘못을 고치고 예방했다.

지금 위징을 잃었으니, 거울 하나가 없어지고 말았다.”

역시 명군(名君)과 명상(名相)은 같이 있는 법이다.

 

6.이런 당태종이 위징이 죽은 이후에 고구려를 치다가 실패하고 돌아가면서

“위징이 살아 있었다면 이런 싸움을 당초부터 말렸을 것이다.” 하고 한탄하였다니

역시 우리 조상들인 고구려가 강하기는 강하였다.

고구려는 훗날 자중지란으로 멸망하였지 결코 당나라 힘에 의해 멸망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역사의 교훈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h*****k 2012.06.14. 신고 공감 2 댓글 3
리뷰 총점 종이책
TV 강연을 보듯 흥미진진한 역사 강의의 현장을 경험하다.
"TV 강연을 보듯 흥미진진한 역사 강의의 현장을 경험하다. " 내용보기
읽는다기보다는 파먹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정독(精讀)을 하는 내가 400쪽이 넘는 내용을 금세 읽어치운 것으로 보아, 아마도 [정관의 치]는 '재미있는 책'인 것 같다. 재미있는 역사책에 목말라 있던 상태에서 단숨에 들이켤 수 있었던 이온음료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런 현상을 '그만큼 우리 주변에 재미있는 역사책이 없다.'라는 사실의 반증이라고 본다면 살짝 슬
"TV 강연을 보듯 흥미진진한 역사 강의의 현장을 경험하다. " 내용보기

 

읽는다기보다는 파먹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정독(精讀)을 하는 내가 400쪽이 넘는 내용을 금세 읽어치운 것으로 보아, 아마도 [정관의 치]는 '재미있는 책'인 것 같다. 재미있는 역사책에 목말라 있던 상태에서 단숨에 들이켤 수 있었던 이온음료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런 현상을 '그만큼 우리 주변에 재미있는 역사책이 없다.'라는 사실의 반증이라고 본다면 살짝 슬퍼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당태종의 일대기를 적나라하게 담아낸 [정관의 치]는 수의 멸망과 당의 건국, 그리고 태종의 즉위 과정에서 사망까지, 7세기 초 약 30년(616~649)의 역사를 핵심으로 다룬다. 그러나 유사 이래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돌이켜본다면 극히 짧기만 한 한 시기에 불과한 30여 년이 후대에 길이 빛날 "표본의 역사"로 우뚝 서게 된 배경과 사유를 심도있게 파헤쳤다는 점에서 책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할 것이다. 
(책의 내용에 대한 개괄적 설명들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므로, 각설하고 이 글에서는 책에대한 느낌만 전하기로 한다.)

 

재미있는 역사서

 

무엇보다, '강의 형식의 구어체 서술'은 우리가 역사서를 읽으면서 통과의례처럼 겪어야 하는 딱딱한 느낌, 즉 '역사책은 딱딱하고, 역사공부는 재미없다.'라는 무언의 공식들이 무장 해제를 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마치 현장에서 강연회를 듣고 있는 듯한 구어체 문장으로, 이야기하듯 술술 풀어가는 서술 때문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하여,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닫아야 하는 아쉬움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각종 사료와 전문가들의 평을 곁들인 설명은 이야기의 흐름에 대한 독자의 몰입을 부추기기에 적합한 조미료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건과 상황에 대한 저자의 차분한 정리는 사건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역사가 주는 교훈을 음미하게 돕는다.

 

"이세민은 왜 항상 모든 일을 자신부터 시작하려 했을까? 정치는 무엇인가? 공자는 정치란 행동을 바로 하는 것, 즉 정치가가 바른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백성의 눈은 정확하다. (중략) 백성이 믿지 않는 통치자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까?" (p.255 본문 인용)

 

훌륭한 처세서

 

책은 <처세서>로써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다. 이는, 저자의 사건에 대한 전략 및 전술적 접근과 해설이 돋보인다는 뜻인데, 책이 당시의 사건과 상황들을 소개하면서 그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 병법들을 자연스럽게 연계하여 덧붙임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백척간두의 외줄타기 상황에서 내려진 당시의 결단들을 되짚어 봄으로써, 현실의 처세에 반영할 수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원교근공(遠交近攻 p.29), 차도살인(借刀殺人 p.49), 의병계(疑兵計 p.50), 격장법(激將法 p.110), 위위구조(圍魏求趙 p.124), 양동작전(陽動作戰 p.125), 부저추신(釜底抽薪 p.173) 등 처세를 위해 공부하다 보면 한 번쯤은 보았음 직한 병법들이 간간이 등장한다. 그리하여 독자들에게 '이면(裏面)의 역사'와 함께 '생활 속의 처세'까지 아우르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생각이다.

 

옥에도 티는 있다

 

우선, 풍부하고 방대한 다른 사료들에 비해 지도 한 장에 인색했다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7세기 초 특정시기(수 말과 당 초)의 중국 지도는 독자들이 개인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당이 세계 최대의 영토를 자랑하는 7세기 중엽의 지도들은 흔하지만) 기왕 역사를 제대로 공부할 거라면, 사건의 배경이 되는 지리를 인식하는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아닐까?
다음으로는, 종이가 너무 두껍다는 생각이다. 물론, 제본이 잘 되어 있어서 큰 문제가 없긴 하지만, 기왕이면 좀 더 얇은 재질의 종이를 써서 만들었더라면 들고 다니기에도 가뿐하고, 책이 부러지는(?) 염려도 없을 테니 말이다.

 

봄날에 만난 [정관의 치]

 

'시어머니께 고마움을 느끼면 시누이도 예뻐 보이는 것'이 인지상정일까? 내가 본 [정관의 치]는 실속있는 내용과 재미있는 서술 외에도 깔끔한 편집과 읽기 편한 디자인 등 출판의 기교가 정성스러운 책이었다. 사실, 디자인은 독자가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면 쉽게 인식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왠지 편하고 쉽게 읽히는 책들의 공통점이 바로 좋은 디자인이라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그 위에, 만약 이 책이 성공한다면, 그건 아마도 추리 형식의 질문을 통해 진술된 내용과 전개될 내용에 대한 독자의 흥미를 돋우는 서술기법 때문일 것이리라. 그리고 그것이 '강의'를 책으로 옮긴 덕에 독자들의 '읽는 재미'를 높인, 가장 효과적인 성공요소로 작용한 까닭일 것이다.

 

"이세민은 넘치는 기지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 형제들의 비행을 고발했다. 이세민이 이렇게 한 이유는 뭘까? 사실 이세민의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건성과 이원길을 궁에서 떠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기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이건성과 이원길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분명 이세민의 힘으로는 부족했다. 반드시 황제의 힘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이연은 무슨 근거로 이세민의 청을 들어준단 말인가? 따라서 당연히 교묘한 지략을 이용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황제를 이용할 수 있을까? 바로 황제의 감정을 자극해 덫을 놓는 것이다.
 당시 이연은 어떤 마음을 먹고 있었을까? 사실 이연은... "
(pp.187~188, 본문 인용. 현무문 사건을 앞두고 불거진 '천문사건'에 대한 저자 나름의 해석과 추리로, 문제의 핵심을 짚어가며 독자의 생각을 자극하고 있다.) 

 

[정관의 치]에서는 나른한 봄날의 춘곤증을 잠재울만한 재치가 돋보인다. 오랜만에 좋은 책 한 권을 읽었다는 생각이다.

z****n 2008.04.2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간 당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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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중국 CCTV의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백가강단의 강의들이 그렇듯이 이책 역시 대상은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대중을 위한 것으로 교양서라 할 수 있다. 백가강단의 다른 강의들이 그렇듯이 이책의 저자 역시 해당 분야의 권위자로서 나이 지긋한 학자이다. 그리고 그런만큼 이책에는 자신의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연륜이 느껴진다. 그리고 연륜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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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중국 CCTV의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백가강단의 강의들이 그렇듯이 이책 역시 대상은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대중을 위한 것으로 교양서라 할 수 있다.

백가강단의 다른 강의들이 그렇듯이 이책의 저자 역시 해당 분야의 권위자로서 나이 지긋한 학자이다. 그리고 그런만큼 이책에는 자신의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연륜이 느껴진다. 그리고 연륜 있는 학자가 쓴 책이 그렇듯이 깊이가 느껴진다.

그러면 이책의 깊이는 무엇인가? 이책이 대상인 당태종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책의 저자는 왜 당태종의 정관지치가 중국역사상 최고의 통치라 불리게 되었는가를 당태종의 개인적 동기와 그 시대에서 찾는다.

정관지치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위지치이다. 수나라가 망한 것, 그리고 당태종이 반란을 일으켜 당을 세우게 된 것은 수양제의 무리한 토목공사와 정복사업 때문이었다. 그러한 有爲, 억지로 무엇을 하려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無爲之治이다.

무위지치라 불리는 시기는 정관지치와 함께 역시 최고의 치세 중 하나로 꼽히는 한나라 초 경덕지치 역시 그랬다. 진나라의 무리한 통일전쟁과 폭정에 시달리고 이후 항우와 유방의 전쟁으로 시달린 백성들을 내버려두고 토목사업이나 전쟁과 같은 무리를 하지 않은 시기이다. 정관지치를 규정하는 것은 바로 그런 전란 후의 피폐한 나라사정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란 이후에는 무위지치가 가장 현명한 방향으로 생각된 것이다. 그 반대로 간 경우가 광해군이다. 임진왜란으로 피폐한 나라사정은 무시하고 광해군은 무리하게 토목공사를 일으켜 전쟁전보다 10배 이상으로 궁전의 규모를 확장했다. 무리한 공사를 일으키면서 세금을 쥐어짜냈고 전쟁후유증으로 힘든 민생을 더욱 어렵게 했다. 광해군을 폭군으로 부르게 된 것은 당연했다.

저자는 그런 시대상황은 정관지치의 조건일 뿐이었다고 말한다. 정관지치가 가능했던 것은 당태종의 의지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당태종은 형과 동생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태자 자리를 강제로 취한 후 아버지를 유폐시키면서 황제 자리에 올랐다.

형제의 피를 보고 올랐고 뒤에서 지켜보는 아버지를 의식할 수 밖에 없었던 당태종은 자신이 황제가 된 것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의지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유능하기도 했던 당태종은 무위지치의 노선을 채택했다. 바로 자신이 황제가 될 수 있던 배경인 수양제의 폭정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제 혼자 국가를 다스릴 수는 없다. 당태종의 치세가 위대한 시대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신하들 역시 그를 도왔기 때문이었다. 정관시절 수많은 명신들 역시 얼마 지나지 않은 수양제 시절을 똑똑히 보았던 사람들이며 그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잇었다. 뜻이 같은 황제와 신하들이 같이 노력한 결과가 정관지치였던 것이다.

이상이 이책의 대략이다. 물론 이책에는 이외에도 많은 내용이 있다. 그러나 그 내용들은 위에서 요약한 줄기에 살을 붙이는 디테일들이라 생각하면 된다.

위에서 요약한 것처럼 이책은 당태종 개인을 이해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목적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역사적 사실들은 많은 부분이 생략되며 건성으로 넘어간다.

이책은 당태종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아는데는 좋은 책이다. 그러나 당시 역사를 더 자세히 아는데는 맞는 책이 아니다. 당시 역사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제왕 중의 제왕 당태종 이세민’이란 책을 같이 보는 것이 좋다.

평점 4.5
리뷰 총점 종이책
위대한 리더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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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태종, 하면 떠오르는 것. 태평성대의 대명사격이 돼버린 '정관의 치' 이끈 성군이라는 것. 이 책은 바로 당 태종이 어떻게 정관의 치세를 이루었는가를 알려주는 책이다.   수나라 말기부터 당 태종 말년 까지 꽤 긴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수박 겉 핥기 식이 아닌 깊이 있는 내용들이었다.   특히 현무문의 변을 둘러싼 미스테리를 심도 있게 파헤친 부분이 흥미로웠다.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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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태종, 하면 떠오르는 것. 태평성대의 대명사격이 돼버린 '정관의 치' 이끈 성군이라는 것.

이 책은 바로 당 태종이 어떻게 정관의 치세를 이루었는가를 알려주는 책이다.

 

수나라 말기부터 당 태종 말년 까지 꽤 긴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수박 겉 핥기 식이 아닌 깊이 있는 내용들이었다.

 

특히 현무문의 변을 둘러싼 미스테리를 심도 있게 파헤친 부분이 흥미로웠다.

이 책의 핵심은 당연 정관의 치세를 다룬 10강~12강.

 

 

역사를 좋아하는 분은 물론이고 정치에 관심 있는 분들도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m*****0 2008.04.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