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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를 보면 그 사람의 취향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책장을 유심히 살펴보니 나의 관심사가와 취향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 보여 놀랐다. 그 중에 행복에 관한 책들이 상당 수 곳곳에 꽂혀 있어 또 한 번 놀랐다. 역설적으로 나의 삶이 행복하지 못했기에 무의식중에서 행복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 그런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나의 삶은 행복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책을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처음 읽을 때 그어놓은 밑줄들에서 한 번 더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어떻게 하면 행복에 다다를 수 있을까? 라는 명제에 대하여 “행복은 의무다”라는 주장이다. 소크라테스가 손가락을 높이 쳐들어 인간들의 시선을 하늘로 향하게 한 후 아리스토텔레스가 땅으로 그 시선을 되돌렸던 그 시점에 비로소 행복의 개념은 시작되었다. 그 후 행복은 에피쿠로스를 지나면서 육체적인 쾌락주의라는 멸시로 배척되었고 ‘행복’이라는 개념이 정착하게 된 것은 18세기 이후라는 것이 정설에 가깝다. 미덕이라는 고대의 행복과 달리 ‘의무로서의 행복’을 처음 언급한 사람은 칸트였다. 칸트는 “도덕 형이상학 원론”에서 준엄하게 천명한다. 우리의 의무는 행복해 지는 것이라고.[본문 161p] 자기 자신을 행복하기에 합당한 존재로 만드는 행위를 통해 행복해지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목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대다수는 ‘행복’에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의 개념 또한 보편적이고 객관화되어 동, 서양을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한 보편적 행복관을 한 번 더 강조하며 일깨워 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 볼 수 있다. 이미 우리는 어떻게 하면 행복에 이를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카르페 디엠!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 다만 빵을 얻기 위해 살아가느라 바빠 잊고 있을 뿐. 삶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세상을 향하는 시선 하나가 세상을 바꾸듯이[본문 66p]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거의 의무적으로 노력해야 하며 그럴 때 비로소 이미 여기에 와 있는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현재가 시간의 토대라고 말한 성 아우구스투스의 성찰은 얼마나 깊은가 과거, 현재,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의 현재, 현재의 현재, 미래의 현재만을 발견할 뿐이다. 아무것도 현재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본문 179p] 그래, 모든 은유나 비유는 벗고 직설적으로 말하자. 지금 여기의 삶 이외는 아무것도 없다! 그 가장 단순한 진실을 믿고 바로 지금, 오늘, 여기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자. 행복이 저 산 너머에 있지 않고 지금 여기 우리 곁에 이미 와 있음은 알고 있지 않은가? 다만 그것을 손을 뻗어 잡지를 않고 있을 뿐. 이제 손을 뻗어 행복을 잡자. 그려면 행복해 질 것이니. 그것이 바로 내가 행복해 질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며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