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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수극이라면 사죽을 못 쓴다. 박찬욱, 타란티노. 피비린내나는 복수극의 대가들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다.
침대에서 한치도 움직이지 못하는 뇌성마비 장애인의 복수극, 대체 뭘, 어떻게 복수를 하겠다는 건가? 특이하단 생각 반, 호기심 반으로 읽었다.
그런데 이 마녀의 복수, 특이하다. 이 마녀의 분노와 슬픔에 공감하면서 한 장 한 장 피비린내 나는 복수를 기대하며 두근두근 책장을 넘겨가다보면, 이 마녀보다 더한 애처로운 삶과 먹먹한 슬픔으로 가득찬 인생들을 마주하게 된다.
마녀가 깨끗이 절단내주길 바랐던 복수의 대상들 앞에서, 이 복수조차 이룰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처연한 마녀와 함께, 그냥 한없이 울먹이고 싶은 순간.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 속에서 그보다 더 처연하고 충격적인 복수의 끝을 보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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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백 쪽이 넘는 길고긴 스토리였다. 사월의 마녀가 끌고 가는 길고긴 증오와 복수의 길을 따라, 자매 아닌 자매들의 이야기를 따라 이쪽저쪽으로, 과거와 현재가 복잡한 미로로 꼬인 길을 사방팔방으로 함께 숨차게 달렸다.
입양가정이라는 독특한 가정사와 자매들의 엄마인 엘렌, 입양된 아이들의 각각의 사연, ‘사월의 마녀’라는 새로운 개념, 자매들 간의 오해, 몸은 평생을 침대에서 보냈지만 정신만은 자유자재인 나, 그런 나를 돌보는 의사 후베르트손과의 대화 등등 증오와 사랑이 모두 숨 쉬는 가운데 가끔은 한숨이 가끔은 두려움이 이야기 전체에 나지막이 깔려있는 긴장감과 함께 흘러갔다. 안개 가득한 분위기에 새로이 드러나는 사실들… 그리고 그와 함께 밑바닥에 깔려있는 서스펜스에 반전 아닌 반전…
긴 이야기였지만 그리고 끝에 약간 김이 빠지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미스터리가 꼬리를 물고 신비한 안개 속에서 끊임없이 펼쳐지는 그들의 삶에 함께 휘말려 들어가 단숨에 읽었다. 육체적인 장애와 자유로운 정신이 뛰어난 상상력으로 교차하고 끝간 데 모르고 뻗어나가는 이야기는 자신의 ‘삶을 강탈해간 자매들을’ 향한 치밀한 복수극을 위해 인간 삶의 종말을 예고한다.
머리에 대망막 주머니를 뒤집어쓰고 태어난 베난단티는 둑음의 세계와 접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기를 보고 “이게 뭐냐”고 묻는 엄마를 향해서 버림받았다고 여기는 장애아의 증오는 얼마나 클 것인가. 더구나 자신이 4월의 마녀일 때, 그 증오는 어떤 모습으로 표출될 것인가.
‘그렇다, 나는 원한다. 손에 저울을 들고 번쩍이는 왕좌에 앉은 신 앞에서 내 죄를 고백하고 싶다. 그 순간이 오면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까만 구슬 세 개를 내보일 것이다. 질투의 구슬과 절망의 구슬. 그리고 마지막, 하늘이 내려준 나의 직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죄에 대한 구슬을.’
결혼했고 아이들도 있고 의사로서 직분을 다하지만 늘 외로운 자매, 끊임없이 자유분방한 연애를 하지만 그래도 외로운 자매, 반항을 일삼다 마약과 술로 일생을 보내는 자매 그리고 장애로 평생을 침대에서 지냈던 나, 결국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인지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그게 엄마의 사랑이든, 남자의 사랑이든, 인류애 넘치는 한 인간의 사랑이든, 사랑이 없으면 그게 어떤 삶이든 외롭긴 마찬가지니까.
결국 결론은 사랑이 아닐까.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쩌면 이것이 작가가 말하려고 했던 최고의 반전 아닌 반전이 아닐까. 벤치에 앉아 내가 어둠 속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후베르트손을 가만히 지켜보는 나,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뭘까. 그래서 그런 삶을 준 신에게 반항한다 해도 이 신의 한마디에 뭐라 답할 것인가.
“나는 알고 있다. 네가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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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나를 찾으소서 내 영혼에 천국의 빛을 비추소서 주여 나를 찾으소서 올바른 길로 이끄소서 구원하소서 나는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옵니다........
고맙습니다만, 사양하겠습니다. 나는 무조건적인 구원의 확신을 구하지 않는다. 영원한 삶을 갈구하지도 않는다. 단지 죽은 뒤에 신 앞에서서 내 삶을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 나는 원한다. 손에 저울을 들고 번쩍이는 왕좌에 앉은 신 앞에서 내 죄를 고백하고 싶다. 그 순간이 오면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까만 구슬 세 개를 내보일 것이다. 질투의 구슬과 절망의 구슬, 그리고 마지막, 하늘이 내려준 나의 직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죄에 대한 구슬을.
"잘 들어보세요!" 이렇게 말하면서 먼저 질투의 구슬을 신의 천칭 저울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난 죄인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나는 매일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을 탐했습니다. 어머니에게서 편지를 받은 타이거 마리아를 부러워했고, 귀엽고 매력적인 암네타를 시샘했으며, 목발만 짚으면 걸을 수 있는 엘세게르드를 질투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정신지체시설에서 차례 차례 퇴원했을 때도 질투했지요. 여러 해 뒤 그곳을 나와 외스트예타로 보내졌을 때도 내 마음은 항상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린셰핑으로 와서 신경외과의 실험 대상이 되었을 때도 건강을 회복한 다른 환자들이 부러웠습니다. 신경외과 의사들은 환자의 두개골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뭔가를 뒤적였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나는 환자들이 하나씩 자리에서 일어나 힘들게나마 걸음을 떼는 걸 보았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누워 있어야만 하는 신세였습니다. 그래서 미간을 찌푸린 채 그들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걸을 수 있기만을 바랐습니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고개를 뒤로 젖히고 신의 눈을 들여다볼 것이다. "당신은 왜 미움이 아닌 질투심을 죄의 항목에 집어넣으셨습니까?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더 큰 죄가 뭔지 얘기해볼까요? 나도 그걸 갖고 싶다. 라고 말하는 대신 그 사람은 그것을 가져선 안된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은 아무것도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까!"
이제 두번째 구슬을 신의 저울에 올려놓을 차례다. "이건 절망의 구슬입니다. 이번에도 난 죄인이지요. 그것이 죄악으로 남아 있는 한 반론의 여지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게 짧게나마 해명할 기회를 주세요. 그것의 실체를 보여줄 기회를 달란 말입니다." 나는 거의 속삭이듯 낮은 소리로 반론할 것이다. "절망감은 전 국민적 질병입니다. 종국에는 슬픔의 감정조차 허락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려진 형벌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나 또한 슬퍼할 수조차 없는 한 시절을 살았습니다. 슬퍼하는 대신 뭐가 문제인지 찾아야만 하는 시절이 있었지요. 좀더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그 시절은 삶의 곳곳에서 비통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그에 대응해야만 한다는 문제를 갖고 있었지요. 뿐만 아니라 슬프고 비참한 상황은 여러 곳에 잠복해 있다가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때문에 사람들은 이미 극단적인 상황까지 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야 슬퍼할 이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들은 거짓말을 하며 성인군자처럼 설교를 늘어놓았습니다. 요란한 소리로 떠들고 웃으면서 다른 모든 사람들을 압도했습니다. 나는 슬퍼할 만한 이유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지요. 나의 상황은 너무도 절망적이어서 사람들은 내게서 불길함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내가 육신을 부지하는 데 필요한 음식과 옷을 얻었다는 것에 우선 감사의 마음을 갖기를 바랐습니다. 내가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직시하기를, 종국에는 나의 장애를 비극이 아닌 그저 불편한 상황으로 받아들이기를 기대했지요. 하지만 그건 명백한 비극이었습니다. 걸을 수도, 말할 수도 없다는 것이 비극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단순한 불편함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비극이었습니다!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을 향해 주먹질을 하고, 욕을 하고, 저주를 퍼붓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때리고, 바닥에 뒹굴고, 짓밟고, 두 주먹으로 바닥을 두들기고, 정처 없이 걷거나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 후에야 겨우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거지요. 비로서 잠시나마 가만히 누워 개미 한마리가 풀줄기를 따라 집으로 기어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거지요. 그런 뒤에라야 삶이란 이렇게 한순간일 뿐이면서 동시에 무궁무진한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있는 거지요. 우리가 어떻게든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임을 인정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쯤에서 나는 다시 한번 신을 올려다볼 것이다. 그는 수염을 살짝 잡아당기면서 내 얼굴을 쳐다보고 계속 얘기하라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렇다면 더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슬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만이 나를 절망에 빠뜨린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엘렌에게 중요했던 것은 나의 삶보다는 후고의 죽음이었어요. 그후로도 나는 나의 존재를 마땅히 주장할 만한 누군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조재라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었지요. 그건 그야말로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엄마에게조차 단 한 번도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어보지 못했던 사람은 결코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조차도 말이죠."
이 대목에서 하늘 가득 신의 음성이 올릴 것이다. "후베르트손이 있지 않았느냐?" 그러면 나는 신을 차가운 눈초리로 쏘아볼 것이다.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분노가 만물의 지배자와 맞닥뜨리는 순간. "잠자코 계십시오! 이 마지막 말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겁니다. 나는 후베르트손에게 갔습니다. 나중에. 우선 세번째 구슬을 당신의 저울에 올려놓고 싶습니다. 나의 직분을 잘 감당하지 못한 죄에 대한 구슬을." 나는 일어서서 등을 양손으로 받치고 헛기침을 한 번 한 후에 계속 얘기할 것이다. "당신이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간 건 아니지요. 내겐 예리한 시각과 오성이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왜 인생을 잘 꾸려가지 못했을까요? 왜 나는 스티븐 호킹처럼 유명한 학자가 되지 못했을까요? 아니면 최소한 평범한 여대생이라도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왜 나는 공부도 계속하지 못하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자매들에게 내 영혼을 빼앗겼다는 감정을 느껴야만 했던 걸까요?" 신 역시 이 부분만큼은 수긍할 것이다. 그래..왜 그랬느냐? "나의 린셰핑 시절로 같이 되돌아가보실까요? 그러니까 내가 신경외과 의사들의 피실험자이자 착한 바보 역할을 하던 바로 그해 말이예요. 그때 난 정말 유용한 사람이었지요. 나도 뭔가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라는 생각에 얼마나 마음이 흡족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면, 난 태양처럼 환하게 웃곤 했지요. 저 어린 데시레를 보세요. 대단하지 않나요? 시설에서도 통신대학에서도 온 편지를 무릎에 올려놓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걸 보세요! 이제 영어도 마스터했다지요! 톰슨과 전자에 대한 연구보고서도 작성했다던데! 아, 하지만 이제 책을 볼 수 없게 되다니! 신경외과 의사에게 보내져 다시 머리에 구멍을 내야 한다니." 이쯤에서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신을 바라볼 것이다. "전지전능한 신이시여. 당신은 아십니까? 내가 얼마나 많은 수술을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잦은 수술을 통해 나는 의사들이 내 병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마법같이 작은 신경조직을 찾아내리라는 것, 예리한 면도날 같은 기구들을 이용해 능숙한 손놀림으로 그 신경조직을 원상태로 고쳐놓으리라는 것, 그래서 예전에는 감히 꿈에서조차 생각지 못한 일들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노래 부르고 춤추고 달릴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렇게 또하나의 새로운 삶을 준비했습니다. 그 희망으로 매번 수술이 끝나고 바로 며칠만 지나면 빡빡 민 머리를 한 체 교과서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상처가 아물자마자 새 담당의사에게 보이기 위해 다시 보호시설에서 신경외과로 보내도 난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새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그후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치렀습니다. 방송통신학교 직원이 직접 증명서와 하얀 모자를 들고 병실로 찾아왔습니다. 환자들이 꽃다발을, 직원이 케이크 하나를 내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외스트예타 주의 기자도 찾아왔었죠. 사람들은 휠체어에 앉아 갖가지 꽃에 둘러싸여 있는 나를 격려하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기자는 친절한 미소를 가득 머금고 뒤에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나는 행복했습니다. 처음으로 내가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된 순간이었으니까요. 난생처음으로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룬드베리가 왔습니다." 추측건대 이 대목에서는 숨을 깊이 한 번 들이마셔야 계속 얘기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룬드베리 박사를 기억하시겠지요. 그 수석의사 말입니다. 당연히 기억할 것입니다. 당신의 전지자시니까. 그가 내게 의례적인 졸업 선물로 책 한 권을 건네주면서 뭐라고 얘기했는지도 아실 겁니다. 그는 나의 뇌를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뇌피질에 메스를 대고 반으로 잘라야겠노라고 했습니다. 간질이 더 많은 장애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지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내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하지만 완치되거나 새로이 건강을 찾을 수 있을지는 장담 못 하겠습니다. 다만 또다른 장애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뿐입니다. 이해해주십시오. 그리고 뇌를 자르는 것은 특별한 경우이긴 하지만, 미국에서는 40년대부터 이미 시술된 방법입니다. 그는 이렇게 얘기했지요." 그 시점에서 내 목소리는 아마 속삭이듯 낮아질 것이다. "나는 맥이 빠졌습니다. 사람을 새로운 희망으로 잔뜩 부풀게 해놓고 그런 얘기를 하다니요. 온몸의 기운이 쏙 빠졌습니다. 내 몸에 일어난 반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단 몇 분 만에 뼈 마디마디에서 골수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가 갖고 있던 최소한의 힘도, 의연함도 모두 잃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나의 뇌를 쪼갠다니! 오성과 감성, 문자와 숫자, 의식과 무의식을 분리하려 하다니! 룬드베리는 내가 또다른 장애에 시달리지 않도록 해준다는 명목으로 나의 개성 모두를 강탈하려 한다! 선물을 내려놓고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순간 퍼뜩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가 내게 약속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 나 자신을 위해 스스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노래하기? 춤추기? 달리기? 아니다. 운이 좋대야 문서 보관실 업무 정도겠지. 하루에 네 시간, 혹은 여섯시간, 아니면 여덟시간 이상 어두침침한 미로 같은 도서관 가장 구석진 곳에서 휠체어에 앉아 하는 일 정도겠지. 재수 없으면, 영원히 일자리를 구할 수 없을지도 몰라. 앞으로의 내 삶이 불행해질 확률이 꽤 높았습니다.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단 한마디 말을 했습니다. 노! 당신은 나의 뇌를 자를 수 없습니다. 나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다시 신의 눈을 쳐다볼 것이다. "이미 자포자기 상태였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말도 안 했고, 책도 읽지 않았습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의사만 보면 미친 사람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면서 졸지에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시당국에선 단순 치료만 하는 바드스테나의 값싼 보호시설로 나를 보냈습니다. 그때 나의 삶은 또 한번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바로 후베르트손이 내 인생에 끼어든 것입니다. 그를 통해 나는 세상엔 지금까지 믿어왔던 것보다 좀더 많은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좀 유치한 표현을 쓴다면, 내 영혼이 날개를 얻었다고나 할까...." 신은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중얼거릴 것이다.
"더이상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후베르트손의 곁에 있기 위해 억지로라도 그의 환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나는 매일 침대에 가만히 누워 밤의 세계를 여행했습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요. 공부도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스티븐 호킹처럼 될 수 없었지요." 이 대목에서 나는 빙긋 웃으며 마술을 보여줄 것이다. 입고 있던 수의의 주름에서 네번째 구슬을 꺼내는 마술. 앞의 구슬 세 개를 합친 것보다도 훨씬 큰 금빛 천구(天球)룰 꺼내 보여줄 것이다. "보시죠. 고개를 숙이고 이 구슬을 보시란 말이에요! 이것도 천칭 저울 위에 올려놓겠습니다. 이 구슬이 나의 죄목들을 보상해줄 수 있을까요?" 나는 들고 있던 구슬을 저울판에 굴릴 것이다. 구슬은 불꽃을 일으키며 반짝일 것이다. 구슬이 저울판에서 자리를 잡기도 전에 이미 신이 갖고 있는 그 어떤 별보다 무겁다는 게 증명될 것이다. "보십시오. 저울이 이 구슬의 무게에 눌려 기울었습니다. 접시의 금속추도 거의 찌그러질 것 같군요...." 그 대목에서 신이 고개를 숙여 큰 손을 내게 뻗질 것이다. 그러면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두려움으로 몸이 덜덜 떨리지만 단호한 걸음걸이도 천천히 하늘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의 시선은 신의 손에서 얼굴로 옮겨간다. 그의 대답 때문에. "나는 알고 있다. 네가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것을."
-449~456page -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라고 표현한 <막스 티볼리의 고백>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4월의 마녀는 과연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였던가! 620페이지 전체중에서 나의 마음을 가장 절절하게 만들었던 이 내용들은 완독 후에도 몇 번씩 되짚어 보게 한다. 지금까지 내 죄를 고백하기 위해 난 몇개의 구슬을 준비하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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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세자매...아니 네 자매의 얽히고 섥힌 이야기였었다 핀란드 정부의 잘못된 복지정책을 꼬집기도 하는 이 책은 중학생이던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기도,, 더불어 세상을 보는 이중법적 시각을 키워준 책이다,,,이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공감하고 느꼈던 것은 마냥 삶을 살아갈게 아니라 무언가 의미를 두고 살아가는게 진정하고 참된 것임을 태어났으나 버림받으며 살아온 첫째딸의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것이다 모든것을 빼았겼다고, 입양된 자신의 세 동생들에게 강탈당했다고 느껴 그들의 트라우마를 하나씩 공격해가는 그녀의 삶을 보면서 과연 저게 진정한 자기위안인가 하는 생각을 했으며 저렇게 허무한 삶이 그녀에게 주는 안식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무엇을 원했기에, 사랑? 부모님? 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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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읽으려고 벼르고 있었다. 어느분의 리뷰를 보고서 몹시도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요즘 북유럽문학을 자주 읽다보니 그쪽 작품의 제목이 나오면 더 읽고싶어져 제목을 메모해 놓곤 한다. 이 이야기는 장애와 입양, 그리고 복지문제를 다룬 이야기이다. 중증 지체장애자인 데시레는 움직이지 못하는 육체를 이탈해 갈매기나 까마귀 또는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 그 사람을 조종할수 있는 '사월의마녀'이다. 친부모에게 버림받아 병원에서 또는 시설에서 평생을 생활하는 데시레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게 그녀의 다른 자매들 크리스티나, 마르가레타, 비르지타라고 믿고 그들에게 각자의 아픔을 생각나게 하는 편지를 보내게 된다. 동물들에게나 사람들에게 들어갈때마다 간질발작이 심해지지만 세명의 자매들의 동태를 살피는 걸 멈추지 않는다.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해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스티븐 호킹'을 닮아 기초물리학에 뛰어나고 호흡 인터페이스에 숨을 불어넣어 컴퓨터 화면으로 대화할수 있는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다. 크리스티나 ; 어렸을때부터 친엄마에게 학대받다가 위탁가정인 엘렌의 집으로 가게 되고, 학교 친구들과 혹은 집에서도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의사가 되고, 교수와 결혼해 쌍둥이 아이들까지 두고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픔을 지니고 좀처럼 행복해 하지 않는다. 마르가레타 ; '인생은 자갈밭을 갈퀴로 고르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는 마르가레타는 어느 임대아파트의 세탁실에서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엘렌의 집으로 입양되어 누구보다도 엘렌을 좋아하고 따르는 물리학자이지만 생모에게 버림받았다는 것 때문에 어느 누구와도 깊게 사귀지 못하고 남자들을 갈아치운다. 비르지타 ; 누구보다도 엄마를 좋아하고 이쁜 옷을 입지 않아도 좋으니 엄마와 살고 싶어하는 비르지타는 이 책 속에서 가장 마음이 아픈 존재였다. 거친 막말을 하고 마약과 술에 빠져 알코올 중독자로 사는 모습도 그렇고 나이 사십이 넘도록 엄마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네 자매의 모습들이 다 힘든 삶을 살고 있다. 각자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아프지 않는 사람들이 없다. 자신들의 마음속에 커다란 덩어리 처럼 묵직한 고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1950년대의 스웨덴의 복지문제를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 엄마가 생활능력이 없어 아이를 키우기 힘들때 부모 스스로 시설에 아이를 맡기는 걸로 알고 있다. 사회복지국은 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모습이 보이면 바로 복지국 직원이 나와 그 집의 부모와 집안 곳곳을 조사한 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입양을 보내거나 시설로 보내는 모습들이 보였다. 엄마와 떨어뜨린 아이에게 그것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겠지만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비르지타에게는 그래도 엄마랑 사는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데시레를 시설에 보낼수 밖에 없었던 엘렌에게 다른 여자아이들을 입양해 기른 것은 데시레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동일수도 있었겠다 싶다. 내가 보는 엘렌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엄마였다. 그래서 세 자매에게 엘렌 아줌마는 영원한 엄마의 품이었다. 연예인 어떤 부부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두명이나 입양하는 모습을 보이며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기사나 이런 책들의 입양에 대한 내용을 보면 나도 능력이 되면 입양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지만 대답은 '못할것 같다'다. 내 아이들 키우는 것도 버거운 일인데 다른 아이를 사랑으로 키울수 있을까 싶다. 입양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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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에서는 '북유럽을 뒤흔든 핏빛 판타지가 온다'라고 외치고 있지만, 글쎄, 내게 이 이야기는 판타지도, 복수극도 아니었다. 장애아라 버림받았던 아이, 낳아준 부모에게 버림받고 입양된 아이들, 그리고 그 부모들과 주변인들의 내면의 이야기, 삶의 기록이었으며, 곁가지로 모든 것이 완전하고 행복한 복지국가라는 환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데시레는 사월의 마녀이다. 유체이탈을 하여, 날아다니든 새든, 건강한 인간이든, 아니면 나뭇가지에 매달린 빗방울이든 어디에든 원하는 곳에 깃들여 그것들을 움직일 수 있다. 다만 그 대가로 그녀는 언제나 시체처럼 병원 침대위에만 머물러야 하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태어나야 했다. 데시레가 돌보기 힘든 장애인이라서 엘렌이 기다리던 딸을 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전후 복지국가 건설이 한참이던 때 장애인은 숨겨지고 국가에서 관리되어야 하는 결점이었다. 게다가 암에 걸린 남편의 병간호 역시 엘렌이 딸을 포기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고, 아마도 죄책감으로 엘렌은 아이들을 입양해 정성껏 그들을 돌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버린 딸 역시 잊지 못했다. 아마도.
그리고 데시레는 사월의 마녀라는 능력을 이용해 자신을 대신해 딸의 자리를 차지한 세 자매들을 미워하며 지켜보고 그들 사이에 불안을 일으킨다.
크리스티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친엄마에게 거의 살해당할 정도로 학대받고 지낸 아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의사라는 사회적 지위를 획득했음에도 언제나 소심하고 불안감 속에서 지내는 여인. 마르가레타, 낳아준 부모가 누구인지 몰라서, 자신의 뿌리가 무엇인지 몰라서, 언제나 불안한 아이. 그래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생활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랑을 구하고, 그것을 자신이 가지지 못할 것이라 불안해 하면서 선뜻 손을 잡지 못하는 여인. 비르지타, 무책임한 친엄마를 잊지 못해 결국은 앞으로 나갈 수 없었던 아이. 스스로를 마약과 술, 성으로 파멸시킨 가여운 여인. 데시레와 그녀를 모르는 그녀의 세 자매들의 이야기가(아 ,한 명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구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진다. 그 이야기 속에는 입양된 아이들의 불안감, 어머니와 딸들의 갖가지 감정의 부딪힘이 있으며, 보일 듯 말듯 흐르는 남녀간, 모녀간, 자매간 사랑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이, 강렬하지는 않지만, 그들 모두의 삶 속에 잔잔히 흐르던 사랑에 대한 소망이 네 자매가 서로 손을 잡고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책을 덮은 뒤에도 한동안 입양에 대해, 입양된 아이들에 대해, 부모를 빼앗긴 아이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무시당한 장애인들에 대해, 깨끗하고 완전한 복지사회를 위해 '쓰레기같다고' 무시하는 인간마저도 돌보아주는 오만한 복지 시스템에 대해, 그리고 다른 이를 내려다보며 싸구려 동정을 보내는 속물적인 나에 대한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들았다.
ps) 쓸데없는 말이지만 문득 '데시레'라는 이름이 'desire'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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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그림이 상당히 충격적이다.심리학에서 붉은색은 정열,억압,분노 등의 상징이다.붉은색 바탕에 자유를 상징하는 나비,형체가 없는 성충같은 모습의 여자는 환상적인 범죄소설 느낌이 와닿는다.600쪽 분량의 장편소설로,우리에겐 복지 정책이 가장 잘 된 나라로 알려진 스웨덴 작가의 소설이다.책 서두 부분부터 저자의 해박한 물리학적 지식에 경탄하게 된다.책 속의 물리학적 표현의 글들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다. 스웨덴에 대한 배경 지식을 쌓는 다는 생각으로 읽으면 될 것 같다.어려운 물리학적 배경지식을 쌓으면서 물리학과 챈해질 기회를 만들기에도 좋은 책이다.
이 책은 우리에겐 너무 생소한 스웨덴 작가의 작품이다.1950년대 전후에 태어난 네자매(데실레,크리스티나,마르가리타,비르지타)와 의사 후베르트손이 엮어가는 몽환적인 이야기다.자신이 출산한 기형아 데시레를 입양기관에 맡겨버리고 건강한 세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엘렌의 실체.4월의 마녀가 보낸 익명의 편지 한 장으로 시작되는 네 자매의 과거로의 여행.
주인공 나(데시레)는 뇌성마비와 간질증상을 가지고 태어난다.데시레는 움직일 수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다.그러나 그녀의 의사소통 방법은 호흡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모니터에 문장으로 전환된다.그녀는 천문학과 물리학에 능하고,다른 사람의 몸 속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사월의 마녀다.
크리스티나는 친엄마에게 학대당한 어린시절의 그늘진 기억이 있다.의사로써 성공적인 삶을 살면서도,치유되지 않는 어린시절의 기억은 결벽증,냉소,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나타난다.
마르가리타는 물리학자로써 비교적 성공적인 삶을 살지만,치유받지 못한 어린시절의 기억은 자신을 별가치 없는 존재로 인식한다.그녀는 16세 때 교사에게서 롤리타가 되는 속성을 배운다.성인이 되어서야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그 어떤 공허감을 주체하지 못해서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들과 성관계를 갖게 된다.
비지르타의 삶이 가장 처절하다.사춘기때 만취상태에서 집단 성폭행 당한후,거리의 여자로 전락한다.술꾼,마약중독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이 책은 스웨덴의 역사를 조금은 알아야 재미가 있겠다.등장 인물은 스웨덴 왕실 여인들의 이름과 카톨릭 성녀의 이름으로, 스웨덴 사회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스웨덴 역사도 모르고,동양인인 우리에게 이 책은 중반부부터는 지루하다.P615 옮긴이의 말부터 읽고 소설을 읽는 것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같다.
스웨덴의 권위 있는 문학상 아우구스트상을 수상하며,40만부 이상 팔려 나갔고,전세계 23개국에 번역 출간된 책이다.하지만 동양인의 정서에는 맞지 않아서 지루한 부분이 많다.추리소설이나 공포영화 같아서 사월의 마녀 데시레가 뭔가 극적인 사건을 만들고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을 기대했지만,소설은 현재에서 과거 어린시절의 성장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이다.그 어떤 클라이막스의 부재다.드러나는 네 자매의 인생이 너무 잔인하다.스웨덴의 복지 정책의 이면을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한 작품으로서의 의의를 두면 된다.
물리학적 표현들 *충분한 압력이 가해지면 진공상태에서도 물질이 생성될 수 있다.이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크리스티나는 점점 더 투명해졌다.그래서 그녀는 모든 순간을 해체시킬 수 있을 것처럼.그리고 단 한 번의 파동과 미립자의 운동으로 그 순간들을 그 순간들을 쫒아버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한 번 주어진 질량과 에너지는 형태가 새롭게 바뀌어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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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 느낌이 나는 진홍색을 배경으로 얼굴을 감싼 한 여자가 구겨지듯 모로 누워 있다. 아마 그녀가 사월의 마녀인가 보다. 흰 천으로 둘둘 싸인 저 안에는 어떤 표정과 사연을 품은 몸이 도사리고 있을까.
이야기는 한 지체부자유 여성이 누운 병실에서 시작된다. 한평생을 침대에 드러누워 살아야 했던 데시레.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장애를 지녔다는 이유로 어머니 엘레에게서 버려졌고, 여러 의사들에게 실험 대상이 되었으며, 그 후 장애가 점점 더 심해져 홀로 거동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능력이 있다. 하나는 여러 학문 분야를 두루 섭렵한 명징한 두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유체이탈이라는 신비로운 능력이다. 다른 사람이나 까마귀, 갈매기 같은 동물의 뇌 속에 들어가 그들의 몸을 빌어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그녀는 바로 사월의 마녀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버린 후 세 아이를 차례로 입양했다. 마르가레타, 크리스티나, 비르지타... 사월의 마녀 데지레는 자기 행복을 강탈해 간 이 세 자매들에게 복수를 꿈꾼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조종해 세 자매에게 각각 익명의 편지를 보내고, 또 비르지타를 미끼로 나머지 두 명을 자기가 머문 병원에 모이게 한다. 익명의 편지를 받은 세 여자는 잊고 살았던 과거를 하나하나 떠올리게 되고, 그렇게 현재와 과거가 교차 편집되면서 이 여자들의 삶은 각각 다른 각도에서 그려진다.
마르가레타 - 세탁실에 버려진 채 발견됐다. 그래서 아주 어려서부터 엘렌의 집에 입양된다. 그러나 엘렌이 병이 들자 다시 재입양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크리스티나 - 아이 때 친어머니에게서 물리적 학대를 당한 끝에 발견되어 엘렌의 집에 입양오게 된다. 이미 정신적 충격으로 실어증을 앓지만 엘렌의 보살핌 속에서 금세 회복하고, 평온한 삶에 조금씩 적응할 무렵, 행복은 다시 깨진다. 엘렌이 반신불수가 되면서 다시 친어머니 곁으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비르지타 - 친어머니가 알콜중독에 육아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아 억지로 어머니와 헤어지게 되고, 시설에 있다가 엘렌의 집에 오게 된다. 어려서부터 말썽을 피우기 일쑤였고 조금 자라서는 남자들과 무분별한 성교를 하는 등 골치덩어리였다. 자기 자신도 약물과 알콜중독자가 된다.
데시레는 이 세 자매가 자기의 행복을 앗아갔다고 여기지만, 사실 이는 다소 근거 없고 억지스러운 원망이다. 어머니가 데시레를 버린 것은 다른 세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애를 지닌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였을 테니까. 게다가 세 아이 가운데 단 한 명만이 엘렌에게 친딸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중증 장애아로 태어나 평생 육체적인 고통과 고독을 씹어 삼키며 살았던 데시레 못지 않게 나머지 세 자매도 차마 견디기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 세 사람에게 엘렌이 마련해 준 작은 안식처마저 없었더라면 그들의 삶이 어떠했을까. 특히 크리스티나와 마르가레타에게는 엘렌과 함께 살았던 그 몇 년이 비록 불안정하긴 했어도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 같다. 그 순간을 깨버린 비르지타를 나조차 용서하기 힘들었지만, 마지막 비르지타의 이야기를 읽고는 가장 불쌍하고 가슴 아팠다. 엄마와 헤어지기 싫었던 어린 비르지타, 억지로 엄마랑 떨어지고 급기야 엄마를 잃음으로써 치유할 수 없는 상처 속에 몸을 내맡겨 버린 그녀야말로 가장 가엽지 않나 싶었다. 겉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영위하며 냉정하고 올곧게 살면서 속으로는 작은 애정과 관심에도 감지덕지하는, 크리스티나와 마르가레타를 보면서도 가슴이 뻐근해졌다. 단 한번의 손길도 받지 못한채 내버려진 데시레의 슬픔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또, 자기 친딸을 사랑해주지 못한 엘렌의 자책감과 공허함에도 공감이 갔다. 이들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을 각자의 방식대로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때때로 가장 아픈 부분을 떠올리게 하는 서로에게 무의미한 할큄질만 해 대는 것이다.
스웨덴 소설은 처음 읽고 마이굴 악센손도 낯선 작가지만, 심리 묘사나 상황 설정이 아주 남 이야기 같지만은 않았다.
한 번도 제대로 아이가 될 수 없었던 아이들과, 제대로 엄마가 될 수 없었던 엄마의 슬픈 이야기. 읽고 나서도 아픔이 오래 남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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