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은 조각나 있다.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식구도 말이 식구지 한 상에서 같이 밥을 먹기 힘들다. 살뜰하게 서로 정을 나누기는 더 어렵다. 모두 저마다 바쁘게 살아가지만 저 하나 챙기기에도 벅차기에 식구와 함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고단하게들 살아간다.
가람이네 집 식구들도 갈기갈기 조각나 있다. 특히 엄마 아빠 사이가 너무 벌어져 있다. 엄마는 아빠를 늘 나그네 같이 행동한다고 미워하고, 아빠는 엄마가 하는 일은 늘 잔소리뿐이라고 불만스러워한다. 가람이의 쌍둥이 형 가득이는 정신이 좀 모자라다. 엄마는 가득이만 챙길 수밖에 없는데 가람이는 그게 불만이다. 누나는 갈가리 찢긴 식구 모두를 못마땅하다. 한 집에 살고 있을 뿐 식구라고 하기에 부족한 이들에게 특별한 계기가 찾아온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가족사랑캠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는 가득이 때문에 늦어져 길을 잃는다. 가람이네 식구만 깊은 산 속에 있게 된다.
산에서 혼자 살기는 힘들다. 더구나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깊은 산 속에서 길을 잃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식구들이 함께한다면 함께 힘을 합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길 잃은 가람이네 식구는 처음에는 아옹다옹하지만 산 속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서로에게 기대고 상대를 이해하며 결국 식구를 받아들인다. 그때 고난이 크면 클수록 식구들끼리의 유대는 더 단단해진다. 이를테면 길을 잃고 점점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든지, 지금은 멸종되었지만 늑대가 나타나 위협한다든지, 늑대가 사는 굴 앞에 배낭을 구고 왔다든지 하는 시련들이 생기면 생길수록 식구들 사이는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하여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누나는 누나대로 형은 형대로 가람이는 가람이대로 제 자리를 천천히 찾아간다.
나는 잠깐 생각해 보았다. 엄마는 형 곁에 있어야 하니까 아빠와 함께 갈 수가 없었다. 겁이 많은 누나도 그랬다. 아무래도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엄마, 내가 아빠와 같이 갈게.” 엄마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가람아, 엄마가 미안해.” 엄마는 그 말만 했지만 여러 가지 뜻을 그 말속에 담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은 모두 엄마가 하지 못한 말을 알아챌 수 있었다. (153쪽)
골짜기를 따라 가던 식구들이 다다른 굴 앞이다. 아빠가 굴속으로 들어가 살펴보겠다고 하는데 엄마가 혼자 가면 안 된다고 말리는 상황이다.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가람이가 아빠와 같이 가겠다고 나선다. 가장 위험한 역경에서 식구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진 것이다. 그러니 이들 식구들은 이미 구조가 된 셈이다. 식구들 하나하나의 마음이 모아졌는데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굴 끝에 구조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흐뭇한 헤피 엔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도시에서 살고 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조차 도시적인 삶에 익숙하다. 그런데 도시에서 살며 식구들 모두 하나가 될 수는 없을까. 야생의 ‘사라진 산’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비록 동화는 헤피 엔딩으로 끝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은 계속 잇따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