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냥팔이 소녀가 한 겨울 길바닥에서 성냥개피 하나 하나에 불을 켜가며 할머니와 엄마를 만나는 기막힌 장면이 오소소 소름돋듯 떠올랐다. 너무도 슬퍼서 화가 나기도 하는 이야기. 소녀는 배고픔과 추위를 달래기 위해 성냥개피를 태웠고 대신에 그토록 그리워했던 할머니와 엄마를 만나고 그들의 안식처로 영원한 길을 떠나고 말았다. 자신을 둘러싼 암담한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현실을 헤쳐 나가야 하는 당사자임에랴... 타인의 행이나 불행에 대해서는 다소 너그럽다가도 나의 일이 되면 이성적으로 무슨 대처를 해 나간다는 것은 어렵다고 하지않을 수 없다. 어린 보쎄가 가지고 있는 현실. 고아. 입양. 냉대, 외로움. 이런 여러가지 현실은 결국 연약한 한 존재의 외로움으로 모아진다. 보쎄가 견녀내기 가장 어렵지만 결국 이겨내야 하는 것은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보쎄의 주변엔 보쎄를 입양한 아저씨, 아줌마도 계시고 유일한 단짝 친구인 벤카가 있지만 그중 아무도 보쎄의 근원적인 외로움을 어루만져 줄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꼬마 보쎄는 자신의 힘으로 외로움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었다. 황금 사과와 거인을 만들어내고, (아니 어쩌면 그건 만들어 낸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준비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외로움의 뿌리까지 잘라버릴 수 있는 아빠를 만나는 것이다. 언제나 '미오, 나의 미오'라고 불러 주시는 아빠, 먼 나라의 임금님. 꼬마의 눈에 가장 힘 세고 완벽한 임금님이 바로 보쎄, 아니 미오의 아빠였다니... 그동안의 긴 외로움은 뭔가가 잘못되어 겪을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끝도 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불행한 현실은 사실은 겪지 않았어도 될, 이제는 너그럽게 봐줄 수도 있는 현실이 되었으니 미오는 얼마나 기뻤을까. 행복에 달뜬 미오를 상상하며 덩달아 행복한 마치 미오의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듯 했다. 언제나 다정한 목소리로 미오를 불러 주시는 아빠. 친구를 데려와도 뭐라 나무라지 않고 집안을 좀 더럽혀도 혼내지 않고 미오가 부를 때는 언제나 미오가 우선인 그런 아빠. 세상에서 가장 멋진 말 '미라미스', 그리고 벤카를 대신해 주는 친구 '윰윰'. 비록 기사 카토가 이 먼나라의 행복을 위협하는 존재여서 먼나라의 왕자인 자신만이 그 위협적인 존재 '기사 카토'와 한 판 승부를 벌여야 하지만 미오는 결국 해내고 만다. 기사 카토라는 이름만 들려도 맥을 못추고 두려움 떠는 먼나라의 사람들과 동물들, 예쁜 꽃들과 새들을 위해 친구 '윰윰'과 어둠의 성, 죽음의 호수를 찾아내고 기사 카토와 벌이는 한 판 승부는 정말 흥미진진한 모험 그 자체이다. 미오는 기사 카토를 물리치고 개선장군처럼 먼나라로 돌아와 아빠의 품에 안긴다. 미오는 행복하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미오는 보쎄가 처했던 현실을 상기시킨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꺼져가는 성냥개비의 마지막 순간마다 안타까워 하는 것처럼 안타깝다. 미오는 과거의 힘들었는 순간들을 끊임없이 상기시킴으로 이 행복한 순간에 더욱 매달리고 싶어하는 아이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어린이 들이 보쎄처럼 상상의 나래를 펴 혹 자신이 처할 지도 모르는 힘든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를 바래야지.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를 부를 때 그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고 아이를 기다리려주는 것만도 버거운 어른인 나는 한없이 미오가 안스럽기도 하고 슬픔이 일었다. 아마도 그것은 부끄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오를 외롭게 만든 내가 바로 그 어른이었음이 부끄러웠던 것일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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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2021.4.22. 맑은책시렁 243
《미오, 나의 미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트 그림 김서정 옮김 우리교육 2002.7.10.
《미오, 나의 미오》(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일론 비클란트 그림/김서정 옮김, 우리교육, 2002)는 길과 집을 새롭게 찾아나서면서 동무와 이웃을 마주하는 발걸음이랑 몸짓이랑 마음을 들려줍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미오’는 사랑받으며 태어난 아이입니다만, 자라나는 길에서는 좀처럼 사랑받을 일이 없다지요. 그렇지만 마음에 흐르는 사랑을 잊거나 잃지 않아요. 마음자리 사랑이 어디에서 비롯하고 어디에서 샘솟는가를 궁금해 합니다.
아이는 모두 알지만 새로 배우려는 걸음마를 내딛는다고 느낍니다. 굳이 어버이를 골라서 태어나고, 어버이 살림자락을 지켜보고, 어버이 손길을 받으면서 삶을 짓는 꿈을 그리려 해요.
아이는 왜 어른으로 자랄까요? 아이로서 머물러도 될 텐데, 구태여 어른스럽게 나아가려고 하는 발걸음에는 어떤 뜻이 흐를까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른은 스스로 예전에 아이인 줄 떠올리는가요? 오늘은 어른 모습이되 얼마 앞서까지 아이인 줄 돌아볼 수 있나요? 새롭게 지으려는 꿈을 품기에 아이에서 어른으로 걸어온 줄 차근차근 짚는 하루인가요?
아이다울 적에 하늘나라에 가고 구름을 타고 풀꽃나무랑 이야기한다지요. 아이다움을 잃으면 하늘나라에 못 가고 구름을 못 타며 풀꽃나무랑 아무 말을 못 섞는다지요. 아이다울 적에는 눈빛으로 배우고 눈길로 알아보며 눈망울로 사랑을 나눈다지요. 아이다움을 등지면 눈빛이 흐르고 눈길이 흩어지고 눈망울에 죽음이 서린다지요.
어린이 미오는 늘 갈림길에 섭니다. 갈림길에서 어느 곳으로 가면 좋을까를 알려줄 어른은 없습니다. 어느 어른도 ‘이 길이 맞다’고 잡아끌 수 없어요. ‘이 길은 이렇고, 저 길은 저렇다’ 하고만 짚어 줄 뿐이요, 모든 갈림길에서 첫발을 내디딜 사람은 바로 어린이 미오예요.
가시밭길을 가더라도 가시밭길을 갔기에 겪는 하루가 있습니다. 말을 타고 하늘을 날기에 이 하늘길에서 맛보는 하루가 있어요. 피리를 불면서 풀꽃나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속이 타들어간 시커먼 사람들한테도 처음에는 마음이 있은 줄 알아차리면서 ‘싸움연모’가 아닌 ‘사랑’ 하나로 모두 포근히 안는 길을 가자고 다짐하지요.
그나저나 이 책은 “나의 미오”가 아닌 “우리 미오”로 옮겨야 맞습니다. 옮김말은 어린이한테 너무 걸맞지 않더군요. 아이가 스스로 씩씩하게 새길을 찾아서 푸른사랑을 빛내려고 하는 줄거리처럼, 이 나라 어린이가 스스로 싱그러이 읽고 아름빛을 새기는 길에 징검돌로 삼도록 ‘싱그럽고 수수하며 쉬운 숲말’로 모두 손질하면 좋겠어요.
ㅅㄴㄹ
“풀이 듣잖아.” 논노가 말했다. “꽃이랑 바람도, 나무도 우리가 부는 피리 소리를 듣고 개울 위로 고개 숙이고 있는 버드나무도 들어.” “그래?” 내가 물었다. “그럼, 우리 피리 소리가 좋대?” “응, 아주 듣기 좋대.” (50쪽)
에들라 아주머니가 저녁이면 소곤대는 우물 이야기를 들으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책에 코를 박고 옛날이야기를 읽는 게 아니라 바깥 신선한 공기 속에서 듣고 싶은 대로 옛날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도대체 아무것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에들라 아주머니도 그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아 할 것이다. (80쪽)
염탐꾼들은 사방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마침내 조용해졌다. 속이 텅 빈 나무가 우리를 구한 것이었다. 나무는 왜 우리를 구해 줬을까? (127쪽)
“윰윰, 이제 어느 쪽 길로 갈까?” “우리 둘이 같이 있기만 하면 어느 길로 가든 상관없어.” (144쪽)
기사 카토는 이렇게 보초를 많이 세울 정도로 나를 무서워했다는 말일까? 일곱 자물쇠가 달리고 일곱 보초가 망을 보는 탑 안에 칼도 없이 갇히는 나를? (179쪽)
나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 눈 안에서 묘한 것을 보았다. 기사 카토는 자기의 돌 심장이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어쩌면 기사 카토가 가장 미워한 사람은 기사 카토 자신이었을지도 몰랐다. (194쪽)
#AstridLindgren #IlonWikland #MiosKingdom #MioMySon #ミオよわたしのミ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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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이미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 그런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는 기쁨을 아는 아이가 기특하다. 아이가 내게 추천해준 책, 꼭 읽고 엄마와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고 벌써 몇 달째 조르던 책이 <<미오, 나의 미오>>이다. 도대체 이 책의 어떤 부분의 아이의 감성을 두드린 걸까. 독후화 대회에 잘 그릴 줄도 모르는 말, 미라미스를 그리겠다고 애쓸 정도로 푹~ 빠지게 한 매력은 무엇일까. |
어느날 아이가 사라졌다. 보쎄라는 아이가. 실제 이름은 보 빌헬름 올손 이지만 모두들 보쎄라고 부른다. 그 아이가 사라진 것이다. 그 아이가 사라지고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그 아이 보쎄 자신이다. 자신이 자신의 이야기, 자신에게 일어났던 이야기를 한다.
보쎄는 애들라 아주머니와 식스텐 아저씨가 입양해서 키우게 된다. 하지만 그 부부는 여자아이를 데려다 키우고 싶었지만 여자아이가 없어서 보쎄를 데려다 키운 것이다. 여덟 살이나 아홉 살의 남자아이들은 시끄럽고 놀다가 옷을 더럽힐것이라는둥의 이유로 부부는 보쎄를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애들라 아주머니는 보쎄가 집에 들어온 그날부터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말한 정도다.
라는 말을 아이에게 서슴없이 한다. 아이는 얼마나 상처가 될까? 왜 그 부부는 보쎄를 그렇게 잘 챙기지도 못할거면서 입양했을까? 그런 보쎄는 친구 벤카를 항상 부러워 한다. 벤카의 아빠는 항상 벤카와 이야기를 나누고 모형비행기 만드는 것을 도와주고 벤카가 얼마나 컸는지 보려고 부엌 문간에 표시를 하는둥 벤카를 아주 사랑스러워한다. 벤카가 시끄럽게 떠들어도 옷가지를 아무렇게나 어질러놓아도 아빠는 벤카를 무척 사랑한다. 그런 모습을 보는 보쎄는 벤카가 항상 부럽다.
그리고 보쎄의 양부모는 보쎄의 친부모에 대해서 심한 험담까지 한다. 그런 보쎄에게도 친절한 사람이 딱 한 사람있다. 과일가게의 룬딘 아주머니. 그 아주머니로 인해 보쎄는 놀라운 일을 겪게 된다. 애들라 아주머니의 심부름을 가다가 과일 가게를 지나가게 된다. 그곳에서 룬딘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고 보쎄의 턱을 잡고 이상하게도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사과를 하나 준다. 그리고 카드 하나를 우체통에 넣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알수없는 일상적이지 않은 말을 한다
평소에 남들처럼 보쎄라고 부르던 아주머니가 새삼스럽게 이름을 제대로 부르면서 심부름을 시킨것이다. 그 카드를 우체통에 넣으러 갔다가 보쎄는 놀라운 일을 겪게 된다. 룬딘 아주머니가 쓴 글자가 불꽃으로 쓴 글자처럼 환해진다. 놀란 보쎄는 편지를 읽게 된다.
라는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사과를 보니 사과가 정말 금사과로 바뀌어있다. 그렇게 놀라운 일을 겪은 보쎄는 놀라운일과 겪어서 놀람과 함께 외로움을 문득 느낀다. 다른 사람들은 행복하게 불밝힌 집안에서 행복하게 저녁을 맞이하는데 자신만 외로이 공원 벤치에 앉아있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서글퍼진다. 그렇게 앉아있던중 벤치옆에 왠 맥주병을 발견하게되고 놀라운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그 세계는 머나먼 세계인데 아름다운 그곳에서 임금님인 아빠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모험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임금님인 아버지는 보쎄에게 미오라고 부른다. 그렇게 모험을 겪는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마지막에는 모두를 겁에 질리게 하는 기사 카토를 물리친다. 그리고 마지막에서 보쎄로 돌아오는 것인지 미오로 살아가는 것인지 알수없는 묘한 뉘앙스를 풍기며 이야기를 끝을 맺는다. 과연 보쎄가 현실의 고통을 판타지로 이겨내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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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 나의 미오" 하고 부르면 애잔한 느낌이 든다. 꿈결에 들리는 노랫소리 깉기도하고 귓가를 스치는 부드러운 울림 같기도 하다.
머나먼 나라는 미오를 사랑하고 받아주는 왕인 아빠가 계신 곳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완전치 않다.모든 것이 완벽하고 안전한 낙원이 아니다. 싸워이겨야할 '악'이 있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현실에선 조그맣고 보잘것없고 사랑받지 못하고 외로운 소년이 왕자가 되어 길을 떠나고 도망치거나 외면하지 않고 악에 맞선다.낙원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 고통과 맞대면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
그 애는 잘 지내고 있다고 다짐하듯 말하는 보쎄의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왜 <미오,나의 미오>를 아름답고 슬픈이야기라고 하는지 알겠다.
'기사 카토의 돌심장'은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심장이 차가운 돌이라는 것은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 살아있는 것들을 죽이고 생명력을 빼앗는 것을 의미한다. 내 심장은 따뜻할까?머리만 쓰고 생각만 해서 내 심장도 많이 차가워진 것 아닐까?주변의 소중한 존재들에게서 상처를 주고 생기를 빼앗아 떠나가게 한 건 아닐까?
역자후기가 참 좋다. -사랑에 굶주린 한 아이의 외로움이 이토록 아름답고 장엄하고 의미깊은 이야기를 만들어낼수 있다는.. -현실과 환상은 끊임없이 간섭하면서 환상은 힘겨운 현실을 달래주는 힘을,현실은 환상으로 마냥 빠져들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보여준다. |
| 이책은 책 겉표지가 재밌게 생겨서 읽게 되었다. 이책은 판타지 책인데 미오하는 아이가 나쁜 기사 카도를 무찌르는 내용이다. 미오는 아빠를 겨우 찾아서 행복하게 지내다가 나쁜 기사 카토를 무찌르러 가는 참 용감한 아이다. 겨우 아빠를 찾고 행복한데 죽을 각오를 하고 카토를 무찌르러가다니 참 대단한 아이인것같다. 미오는 다행히도 기사 카토와 싸움에서 이겼다. 그리고 카토의 돌심장을 찔렀고, 그 결과 카토가 사라져서 참 통쾌했다. 미오가 앞으로도 아버지와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린드그랜선생님 글은 다 재미있는것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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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를 세상에 탄생시킨 린드그렌 선생님의 작품이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책인데 사주기만 했지 막상 나는 읽어보지 않았었는데, 마침 주변에 읽을거리라곤 아이 책밖에 없어서 읽게 되었다. 내가 이제는 다 컸다고 생각한 이후로 동화책은 아이 책을 미리 읽어본다는 것 이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는데, 린드그렌 선생님의 책을 다시 찾아 읽게 된 이후에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어렸을 때 공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던 바로 그 느낌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것이 바로 선생님의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린드그렌 선생님의 작품들은 소외되고 어려운 어린이 친구들이 그에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자신만의 삶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터득하는 내용들이 많아 아직 비정한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고 싶지 않은 아이들에게 무한 상상력을 제공해준다.
이 책 역시 그렇다. 양부모에게 입양된 보 빌헬름이라는 아이는 늘 미운오리새끼 취급을 받는다. 여자아이를 원했지만 당시 고아원에 여자아이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보를 입양했던 양부모는 끊임없이 그에게 잔소리를 해대고, 오로지 친구라고는 벤카밖에 없는 사내아이이다. 보는 벤카와 그의 다정한 아빠가 늘 부럽고 자신의 진짜 부모가 늘 그립다. 그러던 어느 날, 과일가게 룬딘 아주머니에게 사과 하나를 건네받고 아주머니의 심부름으로 카드 한장을 우체통에 넣으면서 그는 미오가 된다. 머나먼 나라에서 임금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있던 진짜 아빠를 만나게 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보의 상상인지 현실인지 모를 판타지의 세계가 펼쳐진다. 책을 읽으면서 책 속 세상과 하나가 되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듯 보는 미오가 되어 평소에 꿈으로만 생각했던 여러 행복한 경험들을 하고 나중에는 전설 속 용감한 기사가 되어 악당을 물리치고 저주에 갇혔던 사람들을 구하기까지 한다.
과연 이야기는 진짜 해피엔딩일까, 아니면 현실에 지친 보가 오늘도 을씨년스러운 공원 벤치에 앉아 언젠가 이런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희망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 것일까. 린드그렌 선생님은 우리에게 맡겨둔다. 어떠한 결말이든 행복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도록 하는 린드그렌 선생님의 배려라고나 할까. 아직은 마음껏 행복감에 도취되어 그 날 읽었던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꿈 속에서까지 만날 수 있는 자격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있다는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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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어떤 이에게 '상상'만이 유일한 생존 수단이 될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미오가 그렇다.
미오는 보 빌헬름 올손이 자기 자신에게 지어준 이름이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양부모에게 귀찮은 존재인 올손은 우플란츠 거리를 떠나 머나먼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그 나라에서 올손은 아버지인 임금님을 둔 미오 왕자가 된다.
볼 품 없다고 여길 수 있는 자기의 삶에 이렇게 당당하게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만약 올손과 같은 상황이라면 우리는 괴로워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어른들을 미워할 것이다. 하지만 올손은 단 하나뿐인 친구와 함께 하늘을 나는 미라미스를 타고 돌 심장을 가진 기사를 물리친다.
기사 카토는 모두를 떨게 한다. 그는 냉혹한 현실의 비유이다. ] 미오는 기사 카토와 맞서 싸울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기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한다. 미오는 간혹, "호수가 이렇게까지 깊고 험하지 않으면 좋겠어, " 하고 기원한다. 그러면 "이렇게 작고 외로운 기분은 들지 않을 텐데......" 라고.
하지만 미오는 기사 카토와의 싸움에서 이긴다. 기사 카토가 죽자 그는 작은 회색빛 새가 된다. 어린 시절의 고통이 성공한 어른이 된 후에 그렇듯, 그 두렵고 소름끼치던 것이 가엽고 조그만 것이 되어 폴폴 날아간다. 회색빛 새의 지저귀는 노래소리가 행복하기까지 하다.
미오는 지혜롭다. 미오가 만들어낸 머나먼 나라의 모든 것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상상의 세계에서 돌아온 미오, 그는 올손이 될 것이지만 기사 카토의 정체를 알고 있는 미오를 품고 있다. 그러니 미오, 아니 올손은 아마도 우플란츠 거리에서 살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작은 회색빛 새의 노래 소리로 기억하는 멋진 어른이 될 것이다. ^^
이 동화를 읽으면서 어느 때보다 마음 깊이 슬펐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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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미오, 나의 미오"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작가의 초기 작품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는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산적의 딸 로냐] 들이 있습니다.
양부모에게 입양 된 '보 빌헬름 올손'과 함께 떠나는 판타지 동화입니다.
양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보 빌헬름 올손', 다들 '보쎄'라고 부릅니다. 어느 날 심부름 가는 길에 과일 가게 룬딘 아주머니에게서 사과 하나를 받고 심부름을 부탁 받게 되면서 '보쎄'는 머나먼 나라로 여행을 시작합니다. 꿈에도 그리던 아빠(머나먼 나라의 임금님)를 만나게 되고 아름다운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그들의 알 수 없는 슬픔을 눈치챈 '미오'-머나먼 나라에선 '보쎄'라고 절대 안부르고 사랑스런 이름 '미오 나의 미오'라고 부릅니다-. 슬픔은 어둠의 악마 기사 카토때문임을 압니다. 그를 물리칠 사람은 자신 뿐이라는 것도 알게되죠.
옛이야기 형식으로 된 이 책의 결말 또한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승리를 합니다. 판타지 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 속에 현실 속 사람들과 그곳의 있었던 일들을 집어넣어 공상과 현실의 끈을 이어줍니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공상인지 그렇다면 이 주인공은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맨 마지막 글에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습니다.
"그래, 그렇게 된 거다. 보 빌헬름 올손은 머나먼 나라에 살면서 임금님인 그 애 아빠와 함께 정말로 잘 지내고 있는 거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쓴 이야기 인데 결말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미오'는 머나먼 나라의 모험을 통해서 현실을 살아나갈 새 힘을 얻었고 우리에게도 희망을 줍니다. 나를 온전히 믿고 사랑해 줄 나만의 머나먼 나라! [인상깊은구절] 하지마 에들라 아주머니는 잘못 알고 있는 거다. 그래, 진짜로 착각하는 거다. 테그너 공원의 나무 의자에는 보쎄가 앉자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 애는 머나먼 나라에 있으니까. 그애는 머나먼 나라에 있어, 하고 나는는 말한다. 그애는 백양버들이 살랑거리고... 밤이면 환하고 따뜻한 불이 있고.... 배고픔을 달래 주는 빵이 있고... 그애를 너무나 사랑하고 그 애도 너무나 사랑하는 임금님인 그 애 아빠가 있는, 그곳에 있다. |
| 보쎄라고도 불리는 9살짜리 소년은 입양된 고아이지만 양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해 부모의 사랑을 너무나도 그리워하는 아이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공원에서 병 속에 갇힌 거인을 구해준 보쎄는 거인으로부터 친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아버지가 '머나먼 나라의 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버지가 지금까지 보쎄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거인과 함께 머나먼 나라로 가서 아버지를 만나 '미오'라는 진짜 이름을 찾고, 굶주렸던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정말 원하는 만큼 받는다. 그러나 왕의 핏줄을 이은 아이만이 할 수 있다는 사명이 미오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는 어둠의 기사와 결투를 벌여야 하는 것이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결국은 어둠의 기사를 물리치고(다른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아버지에게로 돌아와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것이 책의 내용이다. 어린 시절엔 늘 상상을 하곤 한다. 특히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나 주변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않을수록 상상을 통해 대리만족을 이룬다. 이 책에서도 역시 보 빌헬름 올손, 보쎄라고 불리우는 어린 소년은 양부모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너무나도 간절히 엄마, 아빠의 사랑을 간구하게 된다. 특히나 아빠의 사랑을! 그리고 그런 부모, 자식간의 사랑의 모습을 친구인 벤카의 아빠에게서 보게되고 늘 그런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보쎄는 양어머니의 야단을 맞은 날 혼자 공원 벤치에 앉아 아빠와 그 외 자신을 둘러싼 많은 사람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하게 된다. 마지막 장에서 보쎄가 자신은 머나먼 나라에 있다고 강조하는 장면은 너무나도 맘이 아프다. 벗어나고 싶은 현실. 그 현실을 강하게 부정하는 보쎄! 결국 보쎄는 늦은 저녁 집에 다시 들어가고 양부모에게 심부름을 빨리 해오지 못한 일로 야단을 맞고 어제와 같은 일상이 다시 반복되겠지만 마음 안에는 새로운 보쎄가 들어있지 않을까! 미오가!!! 아빠의 충만한 사랑을 받은 미오가 마음 안에 들어있어 예전처럼 그리 슬프거나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상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달랬을 것 같다. 이런 책을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건전한 상상의 세계를 보여줄수 있을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