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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많이 어려워 독서를 중단하기도 했다. 이런 책은 진중권 씨 수준의 지성인이 읽는 책인가 싶었다. 무한 반복과 의미의 상실 속에서 우주가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한들 무의미 속으로 매몰될 수밖에 없는 것이 대개의 삶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속에서 사회나 환경과 근본적인 자아 어디에서도 무엇이든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생기지 않는다. 자살도 신앙도 답이 아니라고 부조리를 인정하고 그저 묵묵히 살아나가는 것이 답이라고는 다가오지 않는다. 부조리 속이라면 부조리 자체를 인식하는 이상은 없는 게 아닌가도 싶다. 내일엔 내일의 해가 떠오른다지만 내가 과연 내일의 해를 볼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는 문제다. 팬데믹이 아니더라도 변화해 가는 현대의 상황은 내일의 내가 과연 내가 기대하는 위치에 있을지 단정할 수 없게 만든다. 노력한다고 노력이 보상 받던 시대는 이미 폐업된 것이다. 그렇다고 노력하지 않으면 어떤 기대를 한다는 것도 모순이 될 뿐이다. 이도 저도 부조리를 인식하게 한다. 어쩌면 시대가 모순을 부조리를 낳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읽어봐도 모르겠기는 마찬가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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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정말 어렵게 읽었다. 그리고, 읽고나서도 제대로 읽은 것인지 알 길이 없어, 유튜브나 구글로 이 책에 대한 해석이나 의미같은 것을 찾아보면서 내가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독서’로 무엇을 얻은 것이 아니라, 유튜브와 구글로 이 책 읽기를 완성한 것 같아 마음이 조금 찝찝하다. 하지만, 나는 요즘 까뮈의 ‘부조리’와 ‘반항’에 대해 폭 빠져 있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 책을 읽었다. 거의 일기같은 글을 썼고...어떻게 살아가야하나,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았고, 실천도 했고, 변화를 주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 하지만, 산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롭고 다채로운지... 읽고 느끼고 실행한다고 하더라도 사는건 그렇게 녹록치 않았던 것 같다. 거기에 더이상 이팔 청춘 꽃띠도 아니고, 늙어가는 것도 한 몫했겠지. 여하튼, 나는 언젠가부터 ‘인생은 덧없다’라는 말에 많이 공감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 오다노부나가가 죽었을 때도 그랬고, 장자를 읽었을 때에도, 올리버 색스의 글을 읽었을 때에도, 스토노도, 로맹가리도...뭐라고 해야할까, 거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사랑했던 개 친구 세나가 죽고...‘그냥 사람은 태어나서 이런 저런 사연들을 겪다가 죽는거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건 나쁜 의미가 아니다. 나는 그냥...너무 애쓰고, 애면글면하지 않고 살기로 했다. 스트레스를 받는 사항은 피했고, 못마땅한 사람과도 거리를 두고, 스쳐지나가는 인연에 연연하지 않고...내게 주어지는 개떡같은 일들에도 ‘그럴 수도 있지’하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악기도 배우고, 운동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등산도 다녔더니...그러면서 늙어갔더니, 멘탈이 그렇게 좋아질 수 없었다. 하지만, 그냥 ‘덧없음’으로 끝내기에는....‘이건 조금 아닌것 같은데’하는 시점에 까뮈의 글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조금 우스운 이야기지만, 오래전에 ‘이방인’을 읽을 때에는 잘 와닿지 않더니, 이게 또 세월이 흐르니 이렇게 새롭게 와 닿는다. 다시 책 이야기를 하면, 나는 ‘부조리’와 ‘반항’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생생히 알고 싶었는데, 위에도 썼듯이 책이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읽고 또 읽고 또 읽다보니...어렴풋이 그 의미를 알겠다. 나는 ‘부조리’를 이미 인지하고...‘반항’하며 살고 있었던게다. 그런면에서, 책은 어려웠으나...읽기 전과 후의 삶에 대한 태도가 확 바뀌는 것같다. 아마, 그의 다른 책들도 마저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 좋았던 부분 : 부조리를 아예 선언하고 시작하는 부분이 좋았다. - 나빴던 부분 : 이건...책 때문이 아니라, 내가 너무 수준미달이라서 책 읽기가 어려웠음 - 이 책이 내게 던지는 질문 : ’반항‘에도 노하우와 맷집이 필요할 것이다. 일단, 돌 굴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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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의 첫 문장이다. 참으로 도발적이다.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의 머리에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일 것이라 생각한다. 카뮈에게 있어 철학은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이 근본 과제라고 생각한다. 우주만물의 법칙이나 새로운 철학적 개념들, 자연과학적 증명 같은 것들은 그저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들이라고 한다.
과연 인간이 삶을 살아갈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기에 앞서 카뮈는 부조리라는 개념을 내세운다. 이 부조리는 카뮈의 문학과 사상 모두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 같은 것이다. 카뮈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지프 신화라는 철학 에세이를 읽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이 부조리라는 개념에 대한 카뮈의 사상을 이 책에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부조리는 쉽게 말해 세상의 진실을 인간이 명철하게 인식했을 때 생겨난다고 한다. 부조리를 인식하기 전, 인간은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습관적 삶을 살아간다. 모든 것이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태. 카뮈는 이 상태를 태고적 상태라고 표현한다. 이 태고적 상태의 인간이 어떤 계기나 우연을 통해 세상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습관적 삶에서 권태를 느낀 그는 모든 것이 낯살게 느껴진다. 의식을 통해 세상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인간은 부조리함을 느낀다. 어떤 의미도 제대로 파악할 수도 찾을 수도 없다. (카뮈는 권태를 나쁘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조리를 인식하는 원동력으로 긍정적 표현을 한다.) 알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와 그것을 거부하는 불합리한 세계에 대한 인식. 이것이 부조리다.
중요한 것은 부조리라는 개념은 두 개의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외부 세계가 부조리가 아니다. 의미 없는 세상과 그것을 인식하는 인간. 이 두개념이 충족된 상태를 부조리라고 한다. 의미없는 세계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부조리는 탄생하지 않는다. 명철한 의식을 통한 인식이 부조리의 시작인 것이다.
부조리는 세계와 나, 타인과 나, 나아가서는 나와 나 사이에 명철한 인식을 통해 벽을 형성한다. 나아가 시간과 유한성에 대한 인식은 삶에 모든 의미를 앗아간다. 죽음은 부조리 중에서도 가장 큰 요소일 것이다. 인간은 이 부조리에 대한 인식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지성으로 의미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카뮈는 책에서 인간의 지성에 대해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듯 하다. 애초에 부조리를 깰 답이 있었다면 부조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카뮈는 이 책 초반부에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은 이 책을 통해 부조리에 대한 체계적인 철학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부조리에 대한 논리적 귀결을 통해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답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부조리를 인식한 인간은 다시는 예전의 습관적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것은 자기기만일 뿐이다. 부조리를 인식한 상태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그곳에 버티고 있는 것과 빠져나오는 것이라고 카뮈는 말한다.
부조리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으로 카뮈가 제시하는 것은 희망과 육체적 자살이다.
먼저 희망은 부조리를 어떤 논의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 같다. 카뮈는 야스퍼스나 키르케고르 같은 실존주의자들과 후설 같은 현상학자들이 이런 시도를 한 자들로 언급하며 그들의 논의를 평가한다. 이들은 부조리를 인식하는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후에 그들의 부조리에 대한 귀결은 기만적이라고 평가를 내린다. 그들의 철학은 결국 초월적이며 종교적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초월적 개념, 내세에 대한 희망은 눈 앞에 있는 현실의 삶에서 도피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부조리에 대한 답이 아닌 것이다. 내세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카뮈는 이것을 가리켜 부조리에 대한 도피, 비약이라고 표현한다.
욱체적 자살은 부조리의 한계점의 수용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자살을 통해 부조리를 탈피하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도 함께 죽는다. 자살은 답이 아니다 문제 자체를 폐기하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카뮈는 말한다.
부조리를 인식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태도로 카뮈가 제시하는 것은 그곳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부조리를 인식한 인간은 부조리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의미와 희망이 없다는 것을 그대로 인식해야 핸다. 명철한 인식으로. 중요한 것은 여기서 의미를 찾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의미를 찾으려는 행위는 위에서 말한 비약과 같다. 부조리에 대한 도피를 하는 것이다.
부조리의 세계(카뮈는 이곳을 사막에 비유한다.)를 버티기 위한 논의 귀결로 카뮈는 반항, 열정, 자유를 말한다.
부조리와 인간 사이는 매듭이 존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둘은 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연결되어 있다. 두 항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부조리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항은 이 매듭을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부정하는 불합리한 세계와 그것을 알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사이에 놓인 끈을 어떤 의미도 없이 끈질기게 붙잡는 행위. 이 때 필요한 것은 자명한 의식이다. 의식은 부조리의 시작이자 그 귀결인 반항과의 중요 요소이기도 하다. 죽음의 인식은 모든 의미를 앗아간다. 하지만 그 유한성 속에서 인간이 가능한 모든 것을 불태워 경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열정이다. 부조리의 세계속에서는 삶이 모든 의미를 상실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모든 것에 의미 없음은 자유를 보장해 주기도 한다. 내일도 없고 바닥도 없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조건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오, 나의 영혼아, 불멸의 삶을 갈망하지 말고 가능의 영역을 남김없이 다 살려고 노력하라. 시지프 신화의 맨 앞에 나오는 구절이다. 아폴로 기념 경기 우승자에게 바치는 축가라고 한다. 부조리에 대한 귀결로 버티고 지탱하는 삶을 살아가는 부조리의 인간을 함축한 구절 같다.
카뮈는 부조리를 살아가는 부조리의 인간의 전형으로 돈 후안, 연극, 정복을 내세운다. 하나같이 가능의 영역을 충실히 살아가는 자들이다. 자신의 앞에 놓인 기회와 사랑을 열정으로 소진한다. 자신들의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계속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열정과 자유로 자신의 가능 영역을 불태운다.
후에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시지프 신화 목차에서 부조리의 인간을 예찬한다. 시지프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저 산꼭대기에서 되돌아 내려올 때, 그 잠시의 휴지의 순간이다. ??? 아무리 해도 끝장 볼 수 없는 고뇌를 향해 다시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본다. ???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 오는 이 시간은 바로 의식의 시간이다. 운명은 오직 의식이 깨어 있는 드문 순간들에만 비극적이다.??? 고뇌를 안겨 주는 통찰이 동시에 그의 승리를 완성시킬 것이다. 멸시로 응수하여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뒤에 김화영 역자의 작품 해설은 이 어려운 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친절하게 이 책이 출판되는 경위와 당시 반응까지 곁들여 준다. 특히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뮈의 삶과 결부시켜야 한다며 그 지점들을 짚어주며 친절히 설명한다. 카뮈의 작품과 이 철학 에세이에서 주로 다루는 주제가 죽음인데 그 이유는 카뮈의 삶에서 그를 지독히도 괴롭혔던 반복된 폐병 때문이다. 어려서 부터 성인이 된 후에도 그를 따라온 폐병은 항시 그들 죽음에 대한 인식으로 불안에 떨게 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부조리를 절연, 이혼 같은 단어로 표현하는데 카뮈 자신이 첫번째 결혼 생활에서 쓰디 쓴 실패를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여러 부분에서 카뮈의 삶과 결부되는 지점들이 많다. 이 책은 철학 에세이인 동시에 카뮈 자신의 삶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카뮈가 제시한 부조리한 인간의 전형으로 제시한 돈 후안은 카뮈 자신의 삶의 겹치는 부분이 많고 연극은 카뮈 자신이 가장 애정했던 일이었다. 그 자신이 부조리의 인간으로 삶을 살며 단순히 사유하는 관념적 철학이 아닌 행동하고 실펀하는 육체적 철학을 보여준다.
어려운 책이다. 사실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책에서 보여주는 카뮈의 문장고 서술은 읽는 내내 힘을 이끌어 낸다. 힘찬 주장, 확실하고 강렬한 선언, 아름다운 묘사와 직관적 표현들은 에세이를 넘어 한 편의 문학적 힘을 가진다. 다시 제대로 음미하며 읽고 싶어진다.
부조리 앞에 무릎을 꿇지 않고 절망하지 않은 자신의 가능 영역을 충실히 살아가는 부조리의 인간들, 자신의 고뇌에 고통을 느끼지만 열정과 반항으로 살아가는 부조리의 인간들을 향한 카뮈의 아름다운 예찬을 들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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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시지프에게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형벌을 내렸다, 그런데 이 바위는 그 자체의 무게 때문에 산꼭대기에서 다시 굴러 떨어지곤 했다. 신들은 무용하고 희망 없는 노동보다 끔찍한 형벌은 없다고 보았는데 그것은 이유 있는 생각이었다. 시지프는 부조리한 영웅이다. 그는 그의 열정뿐 아니라 그의 고뇌로 인해 부조리한 영웅인 것이다. 신들에 대한 멸시, 죽음에 대한 증오 그리고 삶에 대한 열정은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는 일에 전 존재를 바쳐야하는 형용할 수 없는 형벌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이것이 이 땅에 대한 정열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다. 시지프의 신화에서는 다만 거대한 돌을 들어 산비탈로 굴려 올리기를 수백 번이나 되풀이하느라고 잔뜩 긴장해 잇는 육체의 노력이 보일 뿐이다. 하늘 없는 공간과 깊이 없는 시간으로나 측량할 수 있을 이 기나긴 노력 끝에 목표는 달성된다. 그때 시지프는 돌이 순식간에 저 아래 세계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그 아래로부터 정상을 향해 이제 다시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는 또다시 들판으로 내려간다. 시지프가 산꼭대기에서 되돌아 내려올 때, 그 잠시의 휴지 시간.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 고뇌를 향해 다시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본다. 마치 호흡과도 같은 이 시간, 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오는 이 시간은 바로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 |
| 아 알았어요 안죽을게요… 진심 뭔소린지 모르겠어서 고생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멍청해지는 기분에다가 부조리탈트 올 것 같았음 아무튼 얼레벌레 깊생 안하는 회피충이라 부조리를 직시하라는 말이 힘들지만.. 그런 날이 온다면 반항하며 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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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명랑성이 떠오르는 알베르 카뮈의 반항, 자유, 그리고 열정
명랑성이란 바로 용감함, 세상의 공포와 화염 속을 뚫고 미소지으며 걷고 춤추며 나아가는 일, 축제하듯 희생을 치르는 일과 다르지 않다네. (유리알 유희 p.419)
p.83 어떤 경험, 어떤 운명을 살아낸다는 것은 그것을 남김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곧 부조리를 살려놓는 것이다. 부조리를 살린다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부조리를 주시하는 것이다.
p.85 정신이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이 규율, 불속에서 통째로 단련해낸 이 의지 그리고 정면 대결에는 무엇인가 강력하고 비범한 것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무게를 혼자서 짊어지고 가야만 한다. 부조리는 인간의 극단적인 긴장, 고독한 노력으로써 끊임없이 지탱하는 긴장이다.
흔히 말하는 정신력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있는 그대로의 운명을 마주하고 기꺼이 겪어내는 힘. 좌절, 눈물, 그리고 의지. 더이상 도망가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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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책이기에 당연히 소설이라 생각하고 선택할 이들도 있겠지만, 이 책은 에세이 형식으로 만들어진 카뮈의 부조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살면서 한번은 해봤을만한 고민에 대한 이야기. 인간은 왜 자살을 선택하는가에서 시작되는 의문은.. 오히려 더 많은 고민에서 비롯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생을 돌아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책 시지프 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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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으로 유명한 알베르 카뮈의 책이다. 여러 고민과 생각이 많았던 시기에 카뮈의 이방인, 페스트, 시지프 신화를 연달아 읽으며 조금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시지프 신화의 경우 이방인이나 페스트 등 소설들보다 읽기 힘들기는 했지만 그런만큼 얻는 것도 많았던 책이다. 한 번 읽고 다시는 펼쳐보지 않는 책들도 많은데, 이 책은 머리가 복잡해질 때마다 다시 읽고 싶어지는 매력을 가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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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삶의 권유라는 책을 읽고나서 다음 실존주의 책을 무엇으로 선정할지 고민하다가 이 책을 선정하여 읽었다. 아무래도 나의 삶의 가치는 실존주의철학과 일맥상통하다고 느꼈기에 이 책도 마음에 들었다. 다만, 독해력이 딸린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카뮈라는 인물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나서 카뮈의 사상을 알게 된다. 한마디로 철학을 더욱 더 깊게 알아본 계기가 되었고, 재미를 붙이게 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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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이방인>의 철학적 기초가 된 사유집 <시지프 신화> 두껍지않은 책이지만 내용이 다소 무겁고 딱딱하여 천천히 읽다보니 시간이 꽤 걸렸다. 그만큼 읽는내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는 신에게 구원을 구하지않고서도 인간이 당당한 실존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절실하게 알기원했다. 그래서 탄생한 책 <시지프 신화> 철학적 자살, 부조리에 대한 논리의 사유를 이어나가며 그는 인간의 부조리함이야말로 인간조건의 현실이자 지향해야 할 바 라고 역설한다. 이 책의 말미에는 자살하지 않고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행복과 긍정을 제시하고있다. 이 책은 꼭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