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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7월 선정 도서는 나보코프의 소설이었다. 롤리타 작가의 소설이라니. 더구나 이 소설 역시 내용이 중년의 유부남과 어린 여자 아이와의 이야기였다. 어쩌자고 이런 소설을 추천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런 소설은 그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엔 너무도 도덕적 판단이 우선할 수밖에 없어서 말하기가 모호한 부분이 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첫 문장에 몇 줄로 요약되어 있다.
대략 이런 이야기다. 중년의 알비누스는 어린 마르고트를 통해 완벽한 여인과의 사랑을 욕망하고, 어린 여자인 마르고트는 돈 많은 유부남인 알비누스를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운다. 사실 이야기의 초점이 그저 알비누스의 비도덕적인 행위에 맞춰져서이지 따지고 보면 소설은 그 둘의 뒤틀린 욕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알비누스의 완전한 사랑에 대한 갈망(물론 자기 착각이지만)과 마르고트의 명예와 돈에 대한 욕망은 적절하게 조합되어 비극을 잉태한다. 이 책을 토론 하면서 가장 먼저 나온 질문은 왜 제목이 어둠속의 웃음소리인가였다. 22페이지에 처음 마르고트를 보고 와서 갈등하며 이런 생각을 한다. '어둠속에서 미끄러져 다니는 그것... 그 아름다운 목을 눌러버리고 싶어. 뭐, 어차피 죽은 거나 다름없지. 이제 나는 거기 가지 않을 거니까.' 당연히 어둠속의 웃음소리는 그를 끌어들이는 어둠의 유혹 같은 것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둠속에서 웃고 있으면서 그것이 파멸이 될 줄 알면서도 끝내 그쪽으로 들어오고 말 것이라는 운명 같은 것. 암시와 복선이 가득한 이 소설의 특성상 이 부분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사람들의 의견은 앞을 볼 수 없는 주인공의 주변의 비웃음, 극장의 어두운 배경이라거나 관객의 웃음소리 등을 이야기 했다. 후에 봤더니 역자 후기에 그 내용을 적어놓았었다. 그렇게 보자면 소설이 끝나고 나서 후기 같은 것은 없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물론 그쪽이 답에 가깝겠지만 우리가 논술을 치루는 것도 아닌데 답을 적어놓을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어쨌든 답을 내리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둠속의 웃음소리는 내 생각과는 다른 웃음소리로 의견이 모아졌다. 주인공은 첫머리에 나온 것처럼 결국 파멸에 이르고 참담한 최후를 맞는다. 독자는 그가 그런 삶을 살았으므로 그는 그럴만 하다고 말을 할 것이다. 안나카레리나 역시 그런 마지막을 맞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렇게 반문하면 어떤가. 만약 그의 삶이 비극적인 마지막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결국 이런 인간은 죄를 받고야 만다고 하지만 다른식의 결론이었다면 독자는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이런 반문은 결말이 비참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무너뜨리는 기점이 된다. 단순히 후회할 것이므로 그래서는 안된다는 식의 주장은 우연의 요소가 너무 많이 작용한다. 그렇다면 다른 논리가 알비누스의 삶에 철퇴를 내려야 하는데 그것은 그가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는 주장이다. 그의 지위는 그의 욕망대로 할 수 없는 존재임에도 말이다. 그는 가정을 이루고 있으며 아이도 있고 자신의 역할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욕망을 무작정 좇는 삶은 살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지난 달에 우리가 토론하면서 극찬해 마지 않았던 조르바의 삶은 어떠한가. 그는 여인들은 항상 사내를 원한다고 생각하며 쉽게 사랑하고 떠나고를 반복했다. 그는 다만 결혼을 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삶은 동경해 마지 않으면서 알비우스의 삶은 비난한다는 것은 이해하면서도 의아한 면도 없지 않다. 알비누스의 삶을 옹호하고 싶은 맘은 조금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야기에 대한 생각을 너무 뻔하게 결론짓는 것 역시 바라지 않는다. 소설은 어떤 방향에서 읽히든 그것은 작가조차도 침범할 수 없는 독자의 영역이다. 이 소설은 어떻게 읽더라도 알비누스를 중심으로 놓고 읽혀질 수밖에 없다. 사실은 마르고트와 알비누스의 욕망은 방향이 다를 뿐 그 크기와 추함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작품이 롤리타 작가의 글이 아니었다면 무조건 그 방향으로 읽히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여하튼 독서토론에서 이야기 하기에는 쟁점도 민감하고 토론거리도 답이 뻔해서 그다지 적절한 책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재미있는 사실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나비를 특히 좋아했으며 논문도 두 편이나 발표한다. 소설의 내용을 보면 문란했을 것 같지만 사실은 한 사람과 죽을 때까지 살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유태인을 그렇게 죽이고도 죄의식이 없었으면서 롤리타를 보고는 역겹다고 했다던데, 인간의 감정이 어떤 부분에서는 그토록 정상인데 한 부분에서는 그토록 폐허가 될 수 있는지 나보코프를 볼 때마다 그 이야기가 떠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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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의 대표작으로 그의 문학적 기법과 테마가 잘 드러나는 책입니다 불륜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지만 선정적이지 않고 인간 심리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빛나는 책입니다특히나 나보코프의 독창적인 서술 기법과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나보코프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나 인간 심리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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