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소란한 시대 속에서
정보의 폭주와 접속의 과잉을 경험
하지만 삶은 여전히 결핍으로 이어진다
연결과잉의 시대를 살지만 관계는 점점
해체되어 가고있는 모순의 시대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눌변'이 되는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확증편향적 사고와 ,나의 문화에 기초하여
내뱉는 언어들은 타인과 나의 이질성을 더욱
공공히 만들어 준다.
경청이라는것이 사전적 의미로는 상대의 말
을 귀기울여 듣는 청각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겠지만 ,조금만 넓게 생각해 보면 비단
듣는 행위만이 아니다.
다름을 인정 하고 이해하려는 관용과 배려를 포함하고
있는 타인에 대한 존중에 기초함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눌변은 소란한 시대에 상대에 대한
존중과, 말을 안으로 담인두는 것과 같이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상황이나 대상을 새롭게 빚어내고 ,새로운
리얼리티를 창조하는 언어는 각자가 살아온
문화와 ,자기만의 생각을 담고있는 그릇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이 그릇에 타인을
담아두려 하는 경향이 있는것 같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믿음이
모든걸 아우를 수 있는 견고한 지식이라
도 되는듯 타인에게 강요하는 관념속에
과연 공감의 유전자가 남아 있을까?
삶은 단순하지 않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세상만큼 다양한
삶들이 서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자기가 경험하는 단편적인
사실 몇가지로 세상을 규정하려 한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드러내고 ,자신의 자아를
빚어갈 수 있는 사회적 유대를 경험하긴
더욱 힘들어 질것이다.
열린 마음과 가슴으로 나와는 다른 삶의 장'에서도
삶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마음이 부실하고 삶이 빈곤 할 수록 구별
짓기에 매달린다고 하는데 난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책속의 말을 빌려 질문해 봐야겠다.
나는 제정신으로 살고 있는가?
천박한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있는가?
삶을 고귀하게 만드는 힘이 내게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