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나에게 도리스 레싱의 작품은 처음이다. 그녀가 어떠한 작품들을 써왔는지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책을 집어들은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만이 들었다. 번역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은 줄거리 자체가 크게 부각되지 않음으로써 읽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불러 일으키는 특징이 있는 듯 하다. 어쩌면 이 책에 설정되어 있는 배경자체가 거대한 변화를 허락치 않는 듯 하다. 서서히 폐허가 되어가는 도시의 모습은 어느 한 순간 ‘멸망’이라는 단어를 드리우기에는 너무도 느린 속도로 변화를 겪고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가고, 남아 있는 이들은 항상 두려움과 공포 속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그 도시에서 주인공은 살아남는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노력으로부터 비롯된 적극적인 삶의 영위가 아닌 듯 했다. 그저 하루 하루가 눈 앞에 펼쳐지기에 살아남는, 자포자기의 심정이랄까. 계속해서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세상 속에서 그녀는 ‘벽’으로 둘러쌓인 방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은 편안함이라기 보다는 두려움으로부터의 회피와도 같아 보였다. 끊임없이 감시하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킬 수 있는,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공간이랄까. 그녀의 방에 대한 태도는 집착이라고 말하기는 뭐한, 하지만 부재는 허락되지 않는 일상에 대한 숭배와도 같았다. 소설은 그녀에 대해 어떠한 묘사도 허락치 않는 듯 했다. 오히려 그녀는 이상 야릇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소극적으로 형성되어지는, 그저 살아지는 존재에 불과하게 느껴졌다. 변화의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는 여성의 삶에 잔잔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다름 아닌 낯선 이들의 등장이었다. 꼬마 소녀 에밀리와 그녀가 키우는 고양이, 휴고. 그들의 등장은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이 왜 그녀의 세상을 공유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그녀 자신은 당황스러움을 풍긴다. 그 낯선 꼬마에게선 알 수 없는 묘함만이 묻어났다.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살인사건이라도 금방 일어날 것만 같은 광기 등은 전혀 아니었다. 그 아이는 나이에 비해 너무도 성숙한 듯 했다. 그저 자신이 머물 수 있는 작은 방만 있으면 된다는, 자신은 깨끗하고 부지런하다며 그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꼬마 아이의 이야기, 그것은 여느 아이에게선 볼 수 없는 묘함이었다.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잘 닦여지고 훈련된듯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의 모습은 어두운 시대상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꼬마 아이로 인해 그녀는 시대가 불러온 우울함의 정서에 푹 빠져들고 만다. 시대는 아이를 아이로 남아있지 못하게 하였다. 아이는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녀보다 한발 앞서 꿰뚫어 보았으나 결코 그녀를 기쁘게 하진 않은 듯 했다. 그것은 피폐해진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나이든 그녀의 생활과도 같았다. 어쨌던 살아가지만 만족할 수는 없는, 그녀는 그런 아이를 통해 사회를 바라보았고 상처 입은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이야기는 어떠한 굴곡도 없어 나로 하여금 지루지리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아이일 수 없었던 아이답지 않은 아이가 숙녀가 되고 하나의 여성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관찰자가 되어 있었다. 어두침침하고도 무거운 이야기 속에서 꼬마 아이의 성숙은 그나마 존재하는 희망이었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희망적이지 않은 듯 했지만 말이다. 그것은 사회의 변화 속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성숙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어떠한 생명체도 존재치 않을 법한 탁한 공기 속에서 에밀리의 성숙은 소설의 우중충한 분위기에 반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어른이 되고 다시금 노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유한한 존재, 인간이었다. 그녀의 성숙은 그렇기에 영원할 수 없었으며, 길게 내다본다면 절망 그 자체였다. 마지막 벽 마저 무너져 버리는, 그것은 그나마 존재하던 희망의 몰락이었고, 그녀와 에밀리가 공유했던 회피의 부재였다. 다른 이들이 떠난 이후에도 머물렀던 이들마저 도시를 떠남으로써 그 도시는 존재를 잃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 도시가 있었음을 고백하기 위해 몇 안 되는 생존자의 하나로서 이전을 회상한다. 솔직히 궁극적으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겠다. SF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답답한, 그리고 너무도 폐쇄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라는 생각만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이 책에서 이야기되어지고 있는 ‘사회’라고 하는 것이 인간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사회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치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회 그 자체가 한 인간의 모습이었을지도… 재미를 원한다면 이 책은 그다지 좋진 않은 선택이 될 듯 싶다. 문자로선 표현되지 않는, 하지만 그 안에 깃들여져 있는 치열함의 정서를 읽어내고 내 것으로 만들기에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성숙이 요구된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