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겨울에 때늦은 가을여행을 나섰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세속의 번잡함으로 머리가 무거울 때 찾아가 자연과의 풍광에 오감을 씻어내고, 노스님의 말씀 한마디에 마음을 청결해지는 사찰이 있다. 이 책은 이번 여행길에 스님에게서 선물로 받아든 책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의문은 어쩌면 모든 이들이 갖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런 질문에 세속과의 인연을 끊고 오로지 수행을 하며 평생을 살아오신 스님이 생각하시는 삶의 진리는 무엇일까. 수덕사 산중 어른이신 설정스님의 수행과정과 삶에 대한 그분의 생각을 불교전문작가가 인터뮤를 한 후 그분의 말씀을 정리한 책이다. 그러고 보면 책과의 인연은 언제나 새롭고 기이하다. 이런 여행길이 아니었으면 만나보지 못할 책이니 말이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설정스님이 출가이후의 걸어온 수행의 기록이다. 2부는 이 책의 주제인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스님의 가르침을 기록했고, 3장은 수행자의 자세와 현대사회에서 사찰의 역할에 대해서, 4부에서는 한국 근현대 불교의 산맥을 살린 조계종의 실질적 중흥조라 일컬어지는 경허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경허스님은 수월, 해월, 만공, 한암 스님등 한국 선을 대표하는 기라성 같은 선승들의 스승이기도 하며, 한국 최근세 선을 중흥시킨 대선장으로 평가받는 분이시다. 한국 선불교의 창시자로 인정받는 경허스님의 수행과정과 행적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한국 선불교가 나아갈 길을 도모해보는 장이다.
살면서 스스로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 중 한 가지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 다. 이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도달한다. 스님은 말하신다. 그 질문에 대한 시작은 “진정한 나로 살아 왔는가”라는 것이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에 답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진정한 나를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것이며, 진정한 나로 사는 길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이라고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신심(信心), 의심(疑心), 분심(忿心) 세가지를 스님은 강조하신다. 신심은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고, 의심은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는 의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고, 분심은 자신의 삶에 대한 분한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상(像)을 갖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우린 살면서 그 어떤 형상을 그려놓고 그 형상에 맞추어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헌데 그 상은 세상이 만들어놓은 상이지 나의 상은 아니다. 내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적인 상에 자신을 비추면서 살면 그건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삶을 사는 것이다. 어떻게 살것인가 에 대한 질문은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그럼 내가 누구인지를 남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마음공부를 통해 내가 스스로 깨달아 내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수행의 과정이다. 세상이 그려놓은 허상을 벗어버리고 그 속에 깃들인 온전히 순수한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 하지만 우리네 마음자락이 이미 세상이 만들어놓은 오욕과 허상에 사로잡혀 물질문명이 품어내는 광기와 번뇌에 사로잡혀 있는데, 어찌 온전한 세상의 모습과 나의모습이 보이겠습니까. 그걸 벗어나는 방법은 욕망을 덜어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을 덜어내는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무소유가 아닐까요.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의 최고의 목적은 깨달음에 이르러 윤회의 고난(苦難)한 사슬에서 벗어나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수행의 최고의 목적이 무로 돌아가는 것, 영원히 존재하기 위한 것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사라지기 위해서다. 그럼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네 중생의 삶은 고해(苦海)이다. 생사의 모든 발걸음이 바로 고해가 아니던가? 그 고해의 흐름 속에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의미 없는 것들에 대한 꾸준한 추종이다. 세상적인 권력과 물질, 오감에 대한 끝 모르는 욕망, 이 모든 것이 세상의 모든 욕망인 108번뇌의 시작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마음자락 하나 고쳐 먹으로면 되는 것을. 헌데 내 것 이면서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것 또한 내 마음 아니던가? 그러니 선한 마음자락으로 꾸준한 마음공부만이 그 고난한 흐름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는 최고의 수단이 아닐는지? 비록 깨달음에 다다라 무로 돌아가지는 못하더라도 그 빈자리에 우리가 그렇게도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마음을 찾아들어 지나가는 바람결에라도 행복함을 전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
|
이 책은 스님의 삶과 수행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정성을 다해 말해준다. 설정 스님이 살아온 삶에 대하여, 지은이 박원자님이 설정 스님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절에서 두 분의 대화형식은 읽는이로 하여금 정적으로 잔잔한 흐름을 느끼게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슨 일이든 정성스럽게 잘하면 된다. 아집이 사라지고 탐욕과 다툼이 없어져서 명성과 이익을 위해 살지않아야 진실하고 완전한 사람으로 삶의 여정에 들게 된다. 설정 스님은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각자 자기답게 살아가면, 다음에 따르는 결과는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다."라고 강조하신다. 우리는 나의 참생명을 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여야 할 것이다.
큰 절의 대중생활은 상대방의 장단점을 보고 나를 돌아보면서 조약돌이 흐르는 물에 둥글어지는 것처럼 성격이 원만해지고 남한테 피해를 덜 주는 사람이 돼 간다. 행복과 불행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내 뜻과 다르게 기억에 남는 것은 "한 사람이 어떤 자리에 간다는 것은 그만큼 주변 사람들의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거죠." 라는 말이다. 조금은 의아했다.
"흔들지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있으랴."는 삶의 과정에 있어서 방황, 시련, 고통이 따르기 마련임을 잘 말해주는 글귀이다. 먼 훗날에 삶에 아쉬움이 없도록 좀 더 진지하고 철저하게 살아야 겠다. 삶에 있어서, 용기, 격려와 덕담이 중요하며, 특히 용기는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덕목이다. 용기가 제일이요 총명, 성실, 봉사가 그 뒤를 따른다고 한다. 용기를 가지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한다.
정당한 방법으로 건의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소통하면 통한다. 진정성을 가지고 공적인 마음으로 일하면 몬든일이 성취된다. 설정스님은 또한 공정성과 청렴성을 강조하신다. 공정하면 판단이 현명해지고 청렴하면 위엄이 생긴다고 하신다. 불교에 귀의하다. 자기가 지은 대로 받는다라고 하는 인과의 법칙을 강조한다.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치열하게 살도록 당부한다. 자식들을 엄격하게 키우고 나는 독하게 다스리도록 주문한다. 여기서 엄격이라 함은 엄격함과 자애로움이 공존해야 한다고 한다. 마음속에 규칙을 가지고 절제된 삶을 살도록 당부한다.
밝은 곳을 향하면서 주력, 참선, 염불을 수행해야 성취가 가능하고 어둡게 마음을 쓰지말아야 한다. 오욕(재물과 명예, 이성간 사랑, 먹는것, 잠자는것)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것이 깨달음의 삶이라고 한다. 삼신(육신, 업신, 법신)이 혼연일체가 될 때 참나가 된다고 한다. 선농일치의 삶도 중요하다. 참선, 주력, 염불, 기도, 간경은 열반, 해탈,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이렇게 수행은 실제로 해보면 그만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어려운 길을 갈 때 비로소 당당해질 수 있다. 남에게 무엇을 주면 내 것은 없어지지만 그 만큼 기분 좋아지고 산뜻해진다. 과거와 미래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가 선물이고 감사고 행복이다. 좋은 성격의 소유자는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자신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고, 자기일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행복을 추구하고 지혜롭게 사는데 가장 중요한 가치는 성실이다. 남울 분하게 하거나 슬프게 하지 않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두려움을 버리고 용기와 자신감, 베짱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삶의 매순간을 철저히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곧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
|
공부가 워낙 미천하니 스스로 공부하는 힘이 부족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책을 읽는 중이다. 이 책은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스님과 박원자씨가 대담한 것을 옮겨 적었다. 책방에 가서 보니 감탄을 했고 시간을 잊고 읽었다. 특히 경허 스님에 관해서 논하는 것을 보고 덕숭총림의 이름이 허명이 아님을 알았다. 스스로 사람을 판단할 자격이 안된다고 보지만 나름대로 분별심을 가지고 바라본다. 그 기준은 안목인데 어떠한 대상이든 사람이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를 나름대로 정의한다. 물론 이러한 기준은 나중에 공부하는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추천할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이 부족한 상태인데 살아갈 때 도움이 될까 생각해서 보는 것이다. 그러한 기준의 하나로 경허 스님을 어떻게 보느냐를 들 수가 있다. 길 없는 길을 지은 최인호씨의 경우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대단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듯이 그 책은 세속 사람들의 안목이다. 이러한 안목조차 공부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갖추기 어렵다. 세상에 나온 경허 스님에 대한 말과 글 중에서 이 스님이 말한 것이 정답에 가깝다고 느꼈다. 어떤 재가 불자는 비판을 했지만 그 시각에는 동의하지는 않는다. 불교는 철저한 버림을 추구하는 종교다. 그것은 대단히 냉정해서 그 틈이 없다. 나는 그러한 의미에서 불교인은 아니다. 이 책을 보면서 한숨과 함께 반성을 했지만 말이다. 책 자체는 만점이다. 공부가 진척이 안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을 볼 때 달을 봤다고 자만했지만 실상은 그러한 달은 없다.(난 여전히 그러한 달을 봤다고 자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