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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진 소설, 이시백의 <응달 너구리>
"찰진 소설, 이시백의 <응달 너구리>" 내용보기
한줄평 ; 구수한 사투리와 기가 막힌 비유, 속담이 이야기의 맛을 한층 찰지게 하는 이시백만의 윤기나는 소설들. 아, 그의 다른 책들을 더 읽어보고 싶다.처음으로 이시백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장편소설인 줄 알았으나 11개의 단편소설이 빼곡하게 담겨있는 소설집이었다. 마지막에는 소설가 정아은과의 대담집이 정담있게 실려 있어 책을 읽고 혼자 덮는 기분이 아닌, 함께 읽은 기분
"찰진 소설, 이시백의 <응달 너구리>" 내용보기
한줄평 ; 구수한 사투리와 기가 막힌 비유, 속담이 이야기의 맛을 한층 찰지게 하는 이시백만의 윤기나는 소설들. 아, 그의 다른 책들을 더 읽어보고 싶다.

처음으로 이시백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장편소설인 줄 알았으나 11개의 단편소설이 빼곡하게 담겨있는 소설집이었다. 마지막에는 소설가 정아은과의 대담집이 정담있게 실려 있어 책을 읽고 혼자 덮는 기분이 아닌, 함께 읽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어 좋았다.

한겨레출판이니 만약 소설 속에서 작가가 정치적인 색깔을 굳이 드러낸다면 한겨레 색깔에 맞는 서사가 담겨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어떤 정치적인 색깔을 강하에 내뿜는 그런 책이냐 하면, 그보다는 시골 주막에서 동네 사람들과 막걸리 한 잔으로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 농사 지으며 고생하는 얘기를  질펀하게 주고 받는 책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옳다 하겠다.

책을 읽으며 가장 감동을 받은 것은 그의 맛깔나는 우리말 사용이었다. 일반 소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단어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그의 문학성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모든 문장을 필사해보고 싶을 만큼 그의 글은 찰지고 윤이 났다. 첫작품 '잔설'의 세 번째 문단을 읽어 보자.

[잔설]
날이 어지간히 눅으면서, 전나무 우듬지에 얹혔던 눈이 지나가는 바람도 없이 길바닥에 툭툭 내려앉는 걸 김 영감은 일삼아 걷어찼다. 그 통에 몇 남지 않은 잎을 매달고 겨우내 가랑거리던 졸참나무에 얹혀 젖은 깃을 털어대던 박새 한 마리가 오두방정을 떨며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짓까불며 날아다녔다. 웬만큼 쏟아냈는지 두텁던 구름이 멀게지며 꼭 아침 밥상머리에서 젓가락으로 가르마 타는 퇴기 이마빡 같기도 하고, 반쯤 얼어서 물크러진 달걀 노른자 같기도 한 겨울 해가 때꾼한 얼굴을 오랜만에 내밀었다. 밤낮으로 서걱거리던 억새들을 지지르고 허옇게 쌓였던 눈들이 설핏한 햇귀에 마지못해 숨통을 거뭇거뭇 내어놓았다. (10)


그가 문장을 통해, 주인공들의 대화를 통해 쏟아내는 비유나 속담은 얼마나 찰지게 딱 맞는지, 그것이 비유인지 속담인지조차 잊게 만든다. '그슬리다 만 개 꼴을 한 집'이란 비유는, 정말이지 문장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비유를 가져다 썼을까, 궁금증이 일만큼 멋졌다. 아, 소설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부러움 반, 놀라움 반으로 이야기의 서사만큼이나 비유와 속담을 찾아내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기침만 해도 풀썩 주저앉을 것만 같다는 비유는 또 어떤가. 정말 그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은 없을 것이다.

[번지 없는 주막]
낡아빠진 소맷자락으로 이마를 훔치던 노파는 비스듬히 기운 자신의 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슬리다 만 개 꼴을 한 집은 자신이 보기에도 흉물스럽기만 하다. 양철판이며 슬레이트를 누덕누덕 얹은 지붕에는 부스럼처럼 돌멩이가 여기저기 지질려 있고, 비스듬히 기운 집은 가까이에서 기침만 세게 해도 풀썩 주저앉을 것만 같다. (208)

그런 재미가 가외로 많다는 것이지 그렇다고 이야기의 서사가 재미없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 헤치는지 이야기꾼 천명관의 '고래'를 읽는 것처럼 이야기는 저마다 자신의 한을 가슴에 품고 대서사를 활자를 통해 토해내고 있었다.

재성이는 간신이라는 별호가 붙을 만치 약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런 난세에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김 영감은 몸으로 겪어 배운 사람이었다. 곧은 나무는 쉬 베어지고, 가지 넓게 벌린 나무는 눈바람에 부러지는 법이었다. 그저 휘어질 때 휘고, 적당히 허리 굽힐 때 구부리는 척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게 세상 이치였다. (잔설, 28쪽)


[백중]
"엄한 돼지럴 묻을 게 아니라니께. 저런 종자부터 쓸어 담어야 혀."
"모르는 소리 말어, 촌것들은 돼지 썩은 물 퍼마시든 말든, 그저 제 밥상에 오를 삼겹살 떨어질까 걱정하여 부랴부랴 외국서 수입허라구 아우성치는 서울 것들, 제 표 깎일까 싶어 허발을 하며 구덩이에다 쓸어 묻으라 하구서는 이제 와선 무지한 농민들 탓으루 미루는 정치허는 짐슴들부텀 묻어버려야 허는 중이나 알어." (89)


무엇보다 이 책의 제목을 달고 있는 <응달 너구리>는 작가가 이 단편집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속과 겉의 강함과 약함, 약삭빠름과 어리숙함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작품이어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순진무구하여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삼봉이를 사람들이 응달 너구리라 불렀는데, 황 노인은 뒤늦게 시골 무지렁이 같은 삼봉이가 왜 응달 너구리인지 깨닫게 된다.


[응달 너구리]
"뇡약을 싸야쥬. 제초제럴 썼다간 단박에 결딴나니께 거시기 허구유. 뇡약이야 당장 표가 안 나구 시름시름 앓아눕게 허니께 맞춤이쥬, 뭐."

여전히 소처럼 큰 눈을 끔벅거리며 싱거운 웃음만 짓는 삼봉을 바라보던 황은 등줄기에 뱀이라도 기어오르듯 섬뜩해졌다. 거죽에 드러난 순만 가지고는 땅속에 든 고구마 밑을 알 수 없듯이, 사람도 겉으로만 봐서는 알 수 없다는 걸 황은 새삼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그저 맥없는 흙바닥으로 여겨 마음 놓고 디디고 섰던 발아래가 움찔거릴 때의 소스라침이라고나 할까. 뒷덜미가 아뜩해지는 걸 느끼며, 황은 이제껏 뜻도 모른 채 불러오던 삼봉의 별호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응달 너구리가 응달 너구리지 벨 뜻이 있것슈. 너구리 두 마리가 골자구닐 새루 두구 마주 보구 살았대지 뭐유. 근디 그늘배기 굴에서 겨울을 난 응달 너구리는 맞은편 양지짝을 보니께 벌써 봄이 온 거잖유. 그래 굴에서 기어 나와 먹이를 찾아 먹구 살아났는디, 반대짝 양지 바른 굴에 사는 너구리는 여적지 눈이 안 녹은 느늘배기를 보구설람에 '아, 안즉두 한겨울이구나' 하구 마냥 굴속에 머물다가 결국 굶어 죽었다지 뭐유. 그래서 보기엔 영 춥구 딱혀두 그 나름으로 의뭉스럽게 살아가는 인생을 응달 너구리라 한다는디, 내야 뭐 의뭉스러운 꾀래두 낼 재주나 있나유 ? 그저 벤소 깐에 세워놓은 묵은 빗자루쥬, 뭐." (121)

마지막까지 자기는 의뭉스러운 꾀도 내지 못하는 벤소 깐에 세워놓은 오래된 빗자루나 같다고 말하는 삼봉이를 바라보는 황 노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말이나 못하면 좋지. 저렇게 말을 하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슬쩍슬쩍 자기 것을 다 챙겨가는 삼봉이에게 보기 좋게 당한 황 노인은 뒤늦게 세상이 무서운 것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정치판에서 좌와 우가 나뉘어져 있고, 내편 아니면 니편이다. 조금만 반대를 하면 종북으로 색깔론으로 몰아간다. 해묵은 이념 대립은 잊혀질만 하면 다시 고개를 든다.

저자는 가장 손해를 보면서도 언제나 자신을 공격하는 세력에게 표를 주는 '계급배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저자는 책 마지막 부분 대담에서 '자기가 속해 있는 계급에 대해 오히려 공격하고, 스스로 자학하는 그런 모순을, 칠십 년대가 아니라 바로 지금 농촌의 모습들과 그 안에 있는 전도된 의식들을, 이런 것들을 좀 담아내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뜻은 이 소설집을 통해 잘 전달되었을까. <맨드라미 필 무렵> 마지막 문단을 읽어보자. 


[맨드라미 필 무렵]
시적거리던 늦더위가 때늦은 큰바람에 속절없이 날아가고 빈 마당에 털썩 가을이 당도한 것이다. (231)

"가자, 가. 개도 늙으면 지는 해를 바라본다잖네?"
영만은 수북이 쌓인 맨드라미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그려. 종북인지 종남인지 어디로든 갑시다. 이 싸갈머리 없는 바닥을 뜨구 맙시다, 어머니. ....
"그런데 어디로 가지."
종북이건 종남이건 돈 앞엔 셔터마우스라던 준식의 말이 어스름처럼 눈앞을 캄캄하게 가로막아 영만은 선뜻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256)

결국은 돈이고 자본주의인 것이다. 종북이든 종남이든 우리는 모두 돈 앞에서 평등한데, 돈은 결코 평등하게 사회에 분배되지 않는다. 돈이 최고인 세상에서 우리끼리 지지고 볶는 아수라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시백의 소설.

유머스럽고 재미있고, 천재 이야기꾼을 발견한 것으로 큰 흥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다 읽고 나면 가슴 한 켠이 아릿하게 저리면서, 뭔가 세상을 좀더 배웠다는 자각과 통찰이 일어난다.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그가 사용한 비유와 속담 그리고 구수한 우리말을 다 옮겨 적어보고 싶다. 멋진 작품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i*******n 2024.08.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