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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30대를 살아가는 청년들 10명이 인문학협동조합에서 활동하면서 한국에서의 청춘들 세대와 삶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공동저자들은 독자인 나보다 10살
이상 어리다. 내가 IMF 전후로 직장생활을 했으니까 지금 30대 청년들은 IMF이후로 산업구조가 재편되어 신자유주의 체제가
절정인 시대에 공부를 하고 취업준비를 해야 하는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들이다.
이전 세대에선 볼 수 없었던 학자금융자란 부채를 안고 시작하는 대다수 청년들의
빈곤의 문제는 한국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닌 전지구적인 문제이지만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비정규직이 많은 한국의 열악한 노동조건하에서 한국 청년들은
미래를 위한 꿈과 열정보다는 오늘 하루를 견디는 눈물겨운 생존의 민낯을[ 흙흙 청춘]이란 책으로 접한다.
이 책의 청춘들은 푸르고 빛나는 미래가 열린 아름다운 청년들이 아닌 편의점의
저렴하면서도 가성비와 맛이 좋은 도시락에 대한 정보를 SNS의 나누며 한끼를 때우며 치열하게 살아간다.
앞부분에선 청년들이 독립하여 자취하면서 먹고 사는 문제를 편의점 도시락를 세심하게
비교하거나 도시에서 집구하는 문제점을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 어려움과 불편함 그리고 나름의 적응기를 풀어내고 있다.
두 번째 장에선 <치즈인더트랩>,<멀리서 보면 푸른 봄>란 드라마를 통해 대학 조별
과제에 대한 담론 및 오늘날의 대학공동체 실상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으며 드라마의 변천사와 오늘날 소비되는 미디어 매체를 통해서 헬조선을
살아가는 불안한 청춘들을 만나게 된다.
세부목차의 내용이 모두 소중하지만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잉여들의 ‘웃픈’수다’라는 부분이었다.
헬조선과 수저론이란 개념을 통해 청년들의 언어문화를 살펴보며 스스로 자학적인
언어유희를 통해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서로 공유하여 의미화하려는 능동적 행위로 분석하고 있어 매우 신선했다.
전문적이고 밀도 있어 어려운 부분도 많았고 한국 청년들에 대해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다면적이며 복잡하다.
청년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과 그들의 모습을 새롭게 접할 수 있으며 청년의 문제는
우리들의 문제이기에 세대간 갈등을 조장해 분열시켜 분할 통치하려는 정치권의 술수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문제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고민의 장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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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구성애씨의 아.우.성이라는 전국민 계몽? 프로그램이 있었던걸 기억하면 우선 청춘이 청춘을 매몰시킬 수 밖에 없는 주택문제로 생활의 고닮픔과 함께 청년세대의 불편한 시선은 어쩌면 기성세대에 대한 반란이자 저항이라 할 수 있는 헬조선으로 묘사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부담되긴 기성세대나 청년세대나 마찬가지 아무튼 헬조선을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내는 흙흙청춘의 버거운 멘탈과 그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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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이 여러명이다. 그들의 직업은 흔히 일컬어지는 이른바 비정규직이다. 흙수저로 태어나 흑흑대는 청춘. 한 때 화제의 베스트셀러로 군림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과 정반대의 책이다. 서울대 교수도 아니고 강의와 인세로 밥벌어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선거가 있었다. 어느 당의 누구였는지 떠오르지 않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찾고있는 여성이었다. 학자금 대출로 졸업을 하고 선거에도 빚을 져서 나왔다고 했다. 흙수저인 자신이 대한민국을 바꾸어 보겠다고 했다. 대학을 나왔으니 흙수저가 아니라고 하는 반응도 있었다. 이건 마치 누가 더 못사나 경쟁하는 것처럼 니가 흙수저가 어떤 건지 알기나 하냐와 같은 대회같았다. 대한민국의 99%가 자신이 흙수저라고 생각할텐데, 거기에도 다 등급이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여러명이지만, 하나같이 다들 글솜씨가 놀랍다. 직종은 제각각 다르지만, 전문 작가가 되어도 충분할 이들만 모인 듯 싶다. 간결한 문장과 핵심적인 내용, 과연 인문학협동조합이라는 단체의 이름이 모자라지 않다. 저자들의 글을 읽으며 대다수의 내용이 깊이 공감되었다. 특히 아픈 강아지를 키우고 있어 반려동물에 대한 부분이 더 그랬다. 우리 강아지만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동물들이 가엽다. 그러면서도 우리 강아지는 그래도 괜찮게 살고 있는 거라고 위안하는 자신의 모순조차도 똑같이 공감했다. 먹거리나 집 문제에 있어서도 그랬다. 하지만 챗 첫장부터 시작되는 짧은 만화가 가장 그랬다. 신세를 한탄하고 놀고, 뭔가를 열심히 해보다가도 좌절하고, 죽고 싶어지는 일들의 반복. 다 자신의 탓인 것도 있지만, 오롯히 개인의 탓이라고만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기성세대들의 한탄은 이어져왔다. 나 때만 해도 너희 같지 않았다라는 말은 익숙하다. 겨우 몇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군입대 선배조차도 그런 식이다. 자신의 경험과 고생은 확대되고, 타인의 것은 축소시켜버린다. 지금이 전쟁 후의 상황처럼 피폐하진 않다. 영화 쉬리에서 최민식의 대사처럼 남조선 새끼들은 맨날 술처먹고 논다. 꼭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맘까지 속편한 것은 아니다. 기성 세대들이 구축해놓은 시스템과 환경파괴는 후대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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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0대 후반의 나이를 가진 나는 삼포세대에 해당된다. 연애, 결혼, 출산 세가지를 포기한 세대라는 뜻으로 지금 청춘들은 취업문제까지 하나 더 걱정이 늘었다. 그중 나는 취업과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전국의 30퍼센트가 공무원 시험공부에 몰두하고 있다는데 나도 그 시험에 도전중이다. 대학만 졸업하면 좋은 곳에 취업할 줄 알았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졸업하고 나니 걱정이 많아졌다. 비정규직에는 일하기 싫고 정규직을 가자니 스펙에 밀리고 , 비정규직으로 가면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안정된 직장에서 일은 많아도 매달 나오는 월급 받으면서 착실히 살고 싶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좋은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꽃다운 청춘을 공부하는 곳에 쓰고 있다. 남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힘없이 늙어가는 인생이 싫어서 더 악착같이 하게 된다. 꿈을 포기해야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걱정하고 있을 때 흙흙 청춘을 보게 되었다. 남들은 다 잘난 삶을 살고 있고 나만 힘들게 사는가.. 걱정하고 고민했지만 이책을 보면서 많은 청춘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득권 사회에서 아무것도 가진거 없는 20대가 살아남기란 참 힘들다는 뜻이다. 가끔 이런 나라를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어른들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나라가 바뀌어야 이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누구든 본인이 금수저 ,다이아 수저이기를 원한다. 그런데 막상 돈이 생기게 되면 고민이 다 해결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생기지만 사소한 행복은 줄어들 것이다. 돈돈 거리는 세상에서 행복함을 느끼고 살아가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까? 그러나 그런 수저 없이는 이 사회에서는 계층 이동이 실질적으로 힘들고 지금처럼 개미같이 일해도 입에 풀칠하기 힘든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로또에 열광하는 것이다. 흙흙청춘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조금 유쾌하게 읽었다.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적어 놓은 듯한 일기같은 이야기들 . 너무 많은 공감으로 한동안 멍하니 있기도 하고 눈물도 흘리기도 했다. 청춘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돈에 전전긍긍하면서도 학업을 놓지 않는 이야기들, 대학생의 힘든 삶, 주택문제, 매끼 해결해야하는 식사문제까지 사소한 하나까지 사회문제의 영향을 받는다. 돈이 없이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꾸 생기는데 정부는 해결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돈버는 사람들만 버는 세상 , 연예인이 쉬웠어요. 남들은 죽을때까지 모으지도 못하는 돈을 그들은 만들어내고 사용한다. 자꾸 돈은 생성되는데 왜 삶은 점점 더 힘들어 지는 것일까? 진심으로 진지하게 생각을 해봐야 하는 부분인것 같다. 이 책은 일생에 한번뿐인 아름다운 청춘을 힘들게 보내게 만든 사회에 대한 외침이다. 그 외침에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한들 우리의 바램들을 사회에서 모두 이루어져줄수도 없고 그저 잠깐 이슈화 되는 정도의 이야기들 뿐일것이다. 자꾸 바뀌려고 노력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인물은 썩어버리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꿈과 미래를 사라져버릴 것이다. 20대 청춘들 투표도 열심히 하고 젊은이들이 이끄는 사회를 만들어 가보면 좋을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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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 지금의 386 세대가 청춘이었던 그때 그들은 합법적으로 저항을 할 수 있었다. 정부에 의한 억압과 규제가 있었으며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그들은 희망찬 미래를 얻기 위해 저항하였고 민주화 사회를 만들어 냈다. 현재 그들은 청춘에서 기득권으로 바뀌면서 그들은 대한민국 사회를 통제하게 된다. 법과 제도를 만들어내면서 자신들이 누렸던 세상을 바꾸기 위한 합박적인 저항을 철저히 차단하게 된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사회 시스템 안에서 과거의 기득권층이 하였던 행동을 똑같이 따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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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청년 담론을 보면 청춘은 당연히 그래야 아파야 한다는 식의 청춘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한 꼰대의 충고질이나, 아프니까 위로해주겠다는 값싼 동정심을 남발하는 아재들의 시선들 그 이상도 이하도 없었다. 심지어 지금까지의 청년 담론에서 청년의 존재는 주체와 대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소비재로써 시장의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을 뿐이었다. 문제의식을 갖고 청년에 대해 접근하는 사람은 드물었고, 청년들은 점차 그 자신들의 담론에서 소외되고 있었다. 이러한 고약한 상황이 고착화되고 있을 때,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책이 등장했다. 얼핏보면 가볍기만 해 보이는 글들도 보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무언가가 목구멍이 탁 하고 걸리는 글들이다. 그저 쉽게만 넘어가지 않는다. 청년에 대한 깊은 이해가 그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청년 담론을 생산해내는 생산자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들 자신 또한 청년이기도 하다. 그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 깊이 고민하고 더 절절하게 풀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지금 청년들의 생활, 문화 그리고 그 근저에 깔려있는 생각들, 이론적인 지탱점들을 한 데 아우른다. 그렇게 그들의 삶을 담론 안으로 깊숙히 침투시켜 진짜 청년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나간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의 글들은 청년 담론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만하다. 이 책이 앞으로의 청년 담론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며, 이 책과 이 책을 쓴 저자들을 응원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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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라는 단어와 함께한 책들은 다들 '청춘들'에게 뭔가를 걸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야할 청춘이라면 아파야 한다던가, 많이 흔들려야 한다던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 청춘들이 이렇게 힘들다, 등등. 주로 '다음 세대'를 걱정하는 타인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청춘들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 책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누군가가 쥐어주던 희망적인, 혹은 절망적인 청년담론과는 달랐다. 가벼운 수기로 생각해 쉽게 읽히는 듯 했지만, 뒷부분의 담론들은 충분히 생각해야할 진지한 문제였다.
더불어 머리말에 등장한 의외의 인물은 이 책을 읽고 공감할 세대라면 깜짝 놀라거나, 아니면 적절한 등장에 실소가 나올 듯하다.
이렇게 스스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런 청춘이야기가 좀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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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나의 의지가 얼마나 반영 됐으려나.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독립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부모와 떼어낼 수 없어 보인다. 그나마 하루의 적잖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음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물론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선택할 수 없는 항목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젊음은 언제나 사랑스럽다. 그런지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대해 별다른 불만이 없는데, 단 한 가지, 지금보다 더 의존적인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만큼은 쉽지가 않을 듯하다.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활동에 나의 거의 모든 에너지를 또 다시 쏟아 붓게 될 것만 같다. 불안감을 해소할 길이 그것 밖에 없다는 식의 그릇된 믿음을 어찌 거역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전에는 좋은 대학이 곧 좋은 직장이라는 공식이 어느 정도는 성립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단호하게 “아니오”를 외칠 수 있다. 앞으로는 더더욱,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우리가 상상하는 것을 초월한 모습의 세상과 만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오늘날의 청년들은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힘겨워하고 있다. <흙흙 청춘>이라는 제목에서 내가 느꼈던 건 일종의 자괴감이었다. 의도적인 맞춤법 파괴는 인터넷 상에서, 스마트폰 대화창 속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었던 바다. 공부를 안 해서, 우리말에 대한 무지로 인해 외계어에 가까운 표현들이 탄생한 건 결코 아니다. 젊은이들은 의도적으로 말을 줄이거나 늘리고, 기존에 없던 말을 만들어가면서까지 스스로를 비하하고 조롱했다. 희망이 보이면 사람은 노력을 한다. 아무런 가능성도 엿볼 수 없을 때 사람은 냉소적으로 돌변한다. 더구나 요즘에는 자신의 부족함만을 원인으로 지목할 수 없을 정도로 주변에 비슷한 삶을 사는 이들이 넘친다. 극소수의 부모를 잘 만난, 소위 ‘금수저’들을 제외한 대다수는 노력해도 헤어날 수 없는 늪과도 같은 상황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자살률 1위 등의 불명예가 저절로 탄생한 게 아니다. 예전과 달리 청춘이 나약해서 그런 거라고 기성세대는 불만을 토로하지만, 청춘이 택한 방법을 비난하기에 앞서 유심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단지 글을 읽었을 뿐임에도 숨이 턱 막혔다. 비교적 평탄하게 살아왔고, 오래 걸리긴 했지만 안정적인 직장에 안착한 나는 운이 좋았던 거였다. 이따금 꿈꾸는 독립생활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독한 마음을 질끈 먹고 안간힘을 써도 책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경우처럼 적은 비용으로 살아낼 자신은 들지 않았다. 먹는 거라고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데, 일주일에 6일은 약식을 먹어야 하는 이들 앞에서 나의 생각은 사치 같아 보였다. 매 끼니를 3천원 미만, 심지어 1천원대 미만의 것을 반복해 먹어야만 한다면 난 얼마나 무기력할까. 맛도 맛이지만 영양 면에서도 몸을 지탱할 수 있을까가 가장 염려됐다. 인스턴트 식품은 이따금 손을 뻗어 즐길 별미 정도여야 하지 주식이 돼서는 곤란하다. 허나 많은 자취생들이 이에 의존해 연명(?)하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청춘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할 순 없겠으나 결코 무시해선 안 되는 어려움 중 하나가 조별 과제였다. 그다지 사교성을 타고나지 않은 나 또한 조별 과제가 주어지는 과목을 수강할 적이면 매번 난감했었다. 일단 수강신청을 혼자 하다 보니 생판 모르는 이와 한 조가 돼야 했다. 심각할 땐 아예 만나지도 않고 혼자서 모든 걸 준비해 얼굴도 모르는 조원들 이름을 기재해 제출하기도 했었다. 어찌저찌 하여 겨우 조를 구성했을 경우에도 문제는 발생했다. 모두가 비슷한 수준으로 과제에 기여를 하면 좋으련만, 누군가는 몰입해 과제를 수행하는 와중에도 온갖 핑계를 대며 멀찌감치서 관망만 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무임승차한 이를 포용하자니 어딘가 모르게 억울하고, 그러자고 배제하자니 왠지 너무 매몰찬 것도 같아 갈등했던 적도 많았다. 이제와 생각건데 결국 대학도 사회의 작은 축소판과 같은 곳이었지 싶다. 학생이라는 같은 지위가 결코 같지가 않아 그 안에서도 권력이라는 게 분명 존재했었다. 대학 안에서 우린 치열하게 취업을 위한 성적을 갈망하면서 권력을 쟁취하거나 권력의 쓴맛을 깨닫는 경험에 스스로를 길들였다. 누구나가 바라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 우린 같은 청춘들과 싸워야 한다. 취업 문제의 경우, 여기에 빈곤하기로 수위권을 달리는 어르신들과의 경쟁까지 추가되면 도무지 승리를 말할 수 없게 되고야 만다. 정말 죽어라 노오~ 력해 승자의 지위에 오를 순 있겠지만, 나의 승리는 곧 다른 청춘의 패배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승리하면 누군가는 패배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아군을 향해 총을 겨누는 건 비열한 짓임을 부인하긴 힘들다. 살아온 방식에의 변화가 필요하다. 적이 아닌 이를 적으로 인식했다면 이제부터는 끌어안아야 할 것이다. 정정당당하게 겨룰 수 있다면 경쟁에 참여해도 좋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부당함이 눈 앞에 크게 보일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다 함께 그 부당함을 거부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청춘 아닌 세대와의 연대 또한 도모해야 한다. 과거의 엄숙한 계급론도, 그렇다고 청춘들만의 자조 섞인 농담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오늘날의 많은 문제들은 알고 보면 공감하는 것에서부터 해소할 수 있다. 그것이 나에게, 너에게, 우리 모두에게 문제라는 의식의 공유가 가져다 주는 힘은 생각보다 막강하다. ‘너만 힘드냐’가 아니라 ‘너 그래 많이 힘들겠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마음을 모두가 지닌다면 나의 생존뿐만 아니라 너 그리고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한 노력 도모가 가능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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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흙흙청춘 대한민국에서 청년으로 살아남기라는 소제목을 가지고 있는 <흙흙청춘>을 받아보았다. 북카페 <책과 콩나무>에서 운영하는 서평단 모집에 종종 응하고 종종 선택을 당해서 한 달에 8권씩은 책을 보는 것 같다. 책 제목과 목차만을 보고 고르는 책이기에 복불복이다. 제목은 그럴싸하게 뽑았지만 내용이 형편없는 책도 있었고, 기대하지 않고 본 책에서는 큰 감동과 도전을 받아서 로또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전공이 아닌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이번에는 청년들의 삶에 관한 책을 들었다. 제목에서 부터 다양한 의미를 주고 있었다. <흙흙청춘> 흙수저의 청년, 흑흑흑 울고 있는 청춘의 모습, 때론 먹을 것이 없어서 흙같은 것을 먹는 청년 여러 명이 공동으로 집필을 해서 다양한 청년들의 문화와 삶을 엿볼 수가 있었다. 물론 가장 큰 공감은 '자취생 렙업기' 이었다. 자취생의 식사의 단계와 어떤 것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지에 대한 다양한 저자의 설명이었다. 초급 자취생부터 마스터레벨의 자취생의 식사를 설명하며 웃픈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었다. 필자가 사무실에서 퇴근이 늦어지면 가끔 먹는 봉구스를 저자는 주식으로 먹고 있었다. 영양과 다양한 것은 그냥 무시되고 오직 가격으로만 식사를 결정하는 그 모습이 짠하기 까지 하였다. '캠퍼스 인 더 트팹' 의 작가는 본인의 학위논문을 편집하여 투고하였는데, 내용 및 분석이 남달랐다. 캠퍼스에 낭만이 없어지고, 추억이 없어지는 이유를 다양한 각도로 분석하여 대학생활이 예전 같지 않음을 잘 설명하였다. 과거에 심심찮게 등장하였던 청춘물 '우리들의 천국','남자셋여자셋','응팔' 이러한 것들은 과거의 추억으로 묻어둘수 밖에 없음을 말하였다. 지금 대학가에는 예전 같은 낭만과 추억이 드물다는 설명이었다. 그럼에도 이 시기를 잘 통과해야 한다. 사회로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무엇을 하던지 용서가 되는 시기이다. 범죄를 저지르라는 말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되는 마지막 시간인 것이다. 물론 직장 및 사회에 나와서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놓아야 하는 것이, 그리고 맞추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흙흙청춘> 흙을 먹어도, 흑흑 눈물을 흘려도, 흙수저일지라도 청춘이라면 과감하게 도전하고 부딪혀 보시길. 그래야 후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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