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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년전 쯤으로 기억한다. 코엑스에 있는 서점의 양서코너에서 우연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 영어번역본을 꺼내들고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가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한 충격으로 휩싸인 나는, 그날 부터 하루키의 골수팬이 되어, 그의 책은 우리말 번역본은 물론이고, 영어번역본까지 죄다 섭렵했다. 특히, 노르웨이의 숲은 먼저 영어번역본으로 읽고, 상실의 시대, 그리고 다시 노르웨이의 숲, 으로 다시 읽었다. 책의 내용이 주는 감동은 읽을 때 마다 새롭다. 상실의 시대와 새로 구매한 이책을 나란히 펼쳐놓고 일부 대조해 보기도 하면서 흥미롭게 읽었다. 근데, 한가지 궁금(내지는 아쉬운)점은 글의 내용 중에 영어표현, adore sense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데, 상실의 시대, 그리고 노르웨이 숲에도 똑같이 번역되어 등장하며, 어휘의 설명까지 딸려있는데, 내가 아는 영어지식 범위 내에는 그런 표현이 없는 것으로 안다. 영어번역본에는 adolescence(청년기 또는 사춘기)라는 표현으로 나오는데 유독, 우리말 번역본에는 adore sense라는 국적불명의 단어가 튀어나와 눈에 거슬린다. 일본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제조한 일본식 영어, 인지 아니면 번역의 오류인지는 알수 없지만, 조금은 뒷맛이 개운치 않은 부분이다. 하지만, 새롭게 번역된 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감동으로 행복한 주말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간도 아닌 책을 새롭게 번역했다 해서, 굳이 양장으로 출간하여 권당 만 원에 판매하는 것은 너무나도 상업적인 발상 같아서 다소 역겨운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문고판으로 깔끔하게 2권을 묶어서 만 원에 판매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하루키의 신간이 나오는 날을 학수고대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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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이 스테디 셀러라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내용도 지루하고 따분하고 완전 통속 수준의 신파 소설이다. 작가 주의 정신도 없는 형편없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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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남기는 하루키의 서문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책은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나아가 사회와 사람관의 관계에 다루기 있다. 어떻게 보면 연애소설 또는 어떻게 보면 사회소설이라고 할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을 '노르웨의 숲'이라는 제목으로 처음에 읽었다. 아주 오래전. 그리고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또한번 읽었다. 또 아주 오래전. 그리고는 생각했다. 내가 이것을 읽은 듯한 적이 있는데 데자뷰인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책이 그책이고 같은 책을 번역을 달리해 제목을 다르게 붙였다는 것을. 그리고는 다시 생각했다.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은 약간은 무언간 몽상적인 느낌을 주지만 다시 번역된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은 무언가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고.
주인공인 나 와타나베 도루와 고교시절 유일한 동급생 친구인 기즈키 그리고 기즈키의 친구 나오코. 이렇게만 본다면 그저 그렇고 그런 삼각관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구나 하고 치부해버릴지 모른다. 그러나 기즈키가 자살을 하고 난후 셋의 관계는 틀어져 버리고 만다. 그리고 나중에 나오코와 재회하지만 그때는 또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미도리와 또다른 삼각관계가 되어버린다. 나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꼭 이중적인 구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너와 나. 이렇게 끝나버리는 관계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연애를 할때조차도 그렇게 규정이 지어지지 않는다. 나와 너 그리고 나의 친구들과 너의 친구들 그리고 나의 가족들과 너의 가족들.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과의 관계는 거미줄 치듯이 줄줄 늘어져만 가고 넓어져만 가고 복잡해져만 간다. 또한 그 관계는 어떠한 곳이던 사회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회상까지 반영이 되고 나면 인간관계라는 것은 자칫 상상할수 없는 아주 커다란 거미줄에 갇힌 것과도 같다는 생각을 할수 있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듯이 이 책은 대작이다. 그리고 걸작이다. 그리고 수작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이번에 영화화해서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이 되어졌다고 한다. 처음 알았다. 어떤 영화일지 기대가 된다니보다는 궁금해졌다.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HCQmOBdldyk$ ![]()
흔히 내가 생각하는 책의 영화화는 책의 감점을 영화가 못 따라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아마 이 영화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영상미는 추구할지 몰라도 책에서 느껴지는 생각이나 감정 감동을 느낄수가 있을까.. 그것은 영화를 본 후에 생각할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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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같은 제목의 한국영화가 있더군. 스스로 B급영화라 자부하고 있으니 무언가 거대한 것을 기대할수는 없고 그냥 한판 신나게 웃고 즐겨보자는 것인데 그 영화의 제목이 '노르웨이의 숲' 무슨 의미로 영화에 제목을 붙인걸까 사뭇 궁금해진다. 보스의 명령으로 대낮의 숲에 묻으려던 시체가 없어지면서 겪는 인간들의 군상이라는데 역시나 여기에도 사람과의 관계가 포함은 되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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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씨를 알게된건 군대 막사 화장실에서였다.
화장실에 보면 좋은 글귀 같은 것들이 있는데
내가 주로 이용하는 5사로(그냥 다섯번째칸을 말한다)에 있는 글귀였다.
그글귀의 내용은
"비스킷 통에 여러가지 비스킷이 가득 들어 있는데, 거기엔 좋아하는 것도 있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잖아?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만 자꾸먹어버리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거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이라고."
무라카미 하루키(노르웨이의 숲 中)
이렇게 글귀가 있었다. (노르웨이의 숩 하 p.206~207)
거기에 있는 글귀는 '상실의 시대를 토대로 해서일까?' 아니면 '기분탓인지'
이책에서 말하는 것과 약간 미묘하게 다른 것 같다.
나는 처음 이 글귀를 봤을때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도 몰랐고, 노르웨이의 숲
이라는 책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름만 보고 일본의 가수의 노래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주 이글귀를 봤다. 그러면서 힘든 군생활을 위로하곤했다.(사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시간이 흘러가고 먼북소리로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책을 접하게 되었고,
그의 책을 더 찾아서 읽다가 상실의 숲이 노르웨이의 숲의 한글 판이라는 것을
알고 읽을려 시도 했지만 약간 부담되는 분량과 그리고 부대있던 몇권이난 되는
상실의 시대는 앞이 없어지것부터 뒤가 없는 것까지 완전한 책들은 없었다.
그래서 읽는 것에 쉽게 도전 하지 않았다. 더욱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이
상실의 시대 말고도 많았기에 ....
시간이 흘러서 이제야 읽었다.
그래도 리뷰니 책을 살펴보도록 해보겠다.
상실의 시대와 달리 노르웨이의 숲은 상하로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나의 경우는 부담이 줄었다.(분량이 엄청난 책들은 부담이기에 나에겐)
그리고 하드커버로 되어 있어 좋다.
책은 하드커버가 어울리는 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책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책은 나름 하드커버가 어울리는 책이라 생각든다.
그리고 상실의 시대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어떤 부분이 다르게 표현되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음, 나는 과연 어디를 향해 가고 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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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상세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고 샀어야 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란 소리에, 그리고 왠지 어디선가 들어본듯한 제목에 덜컥 주문해서 읽다보니
몇년전에 읽은 내용이다. 철저하게 속았다. 하지만 다시 읽어도 재미는 있었다.
제발 이런 경우가 없도록, 이미 국내에 소개된 책이라면, 제목이 바뀌었다라는 내용 정도는 제대로 독자가 판단할수 있도록 소개 내용을 편집해 주시길 빈다.
재밋게 다시 읽고는 있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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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정드레스님 포스팅에 써 있었다. 상실의 시대로 읽힌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 숲이라고...한 달 동안 들락거리며 살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10년 전 신문 광고를 본 기억때문에 -상실의 시대-란 제목을 잊지 않았기에 초고속으로 사버렸다. 신문광고 내용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젊은이들에게란 말이었던거 같은데 나는 상실의 시대란 제목으로 라디오방송에 사연을 적어 보내려 무지 공들여 뭔가를 쓴 기억도 난다. 김치냉장고가 갖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 살수는 없고 그런 짓을 했던거 같다. 사연은 보내지 않았지만 상실의 시대란 책이 그렇게 대단한가 싶을 정도로 신문광고는 잘되어 있었다.
하루키의 대표작이라 떠들어대서 기대감도 컸다.
1. 기대감에 못 미친다. 연애소설로 가네시로 가즈키의 '고'가 더 낫다.
2. 1편 후반부터 익숙한 문체가 이어진다. 이유없이 우울하고 슬프지만 눈물은 안나고 무작정 길을 헤매고 있는 듯한 누구나 한 번쯤 멍하니 거리를 배회한 경험을 써내려간것 같은 문체-여기서 요시모토바나나 생각이 났다. 요시모토 바나나 문체 스타일이 이랬다. 약간 씁쓸함.
3. 한동안 자살이 유행한 적이 있다. 유행할게 없어 자살같은게 유행하는 세상을 살면서 상실의 시대라니...배부르고 등따숩고 고민없는 골빈것들...자살하면 지옥에 간다는 성경말씀을 모르니 죽고 싶어 환장한 거겠지. 죽을 용기로 살아서 지옥엔 가지 마시라고 전하고 싶다.
떠들어 댄 것에 비하면 요시모토 바나나 책같은 우울에 비위가 거슬렸고 젊은 시절엔 자살을 한 번쯤 생각해 보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정말 죽어버려도 되나?싶게 청춘이 아름답다는 걸 일찍 깨달은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고 ... 빚 독촉 당하면 자살을 매일 꿈꾸게 되는데도 살아남은 자.....승리의 깃발을 든 나도 있고... 사랑과 섹스는 별개인가?아니면 하나인가?하는 의문이 들고... 나오코의 성적인 부분은 -조이스 메이나드의 -호밀밭 파수꾼을 떠나며-를 연상케 했다.
읽고 보니 젊음이란 많은 감정들을 거치는 방황의 정점을 찍는 삶의 과정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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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노르웨이의 숲. 빨강과 초록색의 표지가 강렬한 이 책들은 이제 온라인서점에서는 만날 수가 없다. 모두 품절. 거기다가 중고판매에서는 12만원의 가격에 기존 책가격보다 몇배를 불린 가격으로 판매를 하고 있다. 아니 왜!! 도대체 왜!!! 내가 사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은 이렇게 책값이 뻥뻥 튀겨져서 판매를 하고 있는 것이냐고! 실제값보다 몇배의 이윤을 받고 파는 중고판매상들에게 보란듯이 이 책들이 새롭게 출판되길 간절히 바란다.
예전 내가 20대초반 '상실이 시대'를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이야기를 접했었다. 물론 그 당시 눈으로는 읽었지만 마음으로는 읽지 못해서 왜 이 책이 인기라는거야?라고 투덜거리면 몇번을 잡았었지만 그때마다 실패를 했었는데. 이번 '노르웨이의 숲 상,하'권에서는 완전 몰입. 어허라? 내가 이제 하루키의 소설을 재미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냐? 드디어?라면서 놀라면서 술술 읽어갔다.
와타나베, 기즈키, 나오코는 고등학교 친구들이다. 기즈키와 나오코는 어린시절부터 소꼽친구로 자란 연인사이고 와타나베는 그 사이에 끼여 데이트를 즐긴다. 그러다 기즈키가 자살을 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친구의 자살과 남겨진 와타나베와 나오코. 와타나베는 그럭저럭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살고 있으나 기즈키와 깊은 사이였던 나오코는 요양원에 머물며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와타나베는 그런 나오코를 지켜줘야한다는 생각들을 사랑이라 부르며 정작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랑을 밀어낸다. 사랑이라는 것도 제대로 모른 채 육체의 따뜻함을 쫓던 와타나베는 상처받은 주변의 사람들을 진심으로 보듬어주며 자신도 상처를 치유하며 성장해가고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된다는 이야기다.
아무래도 이 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이 책을 집필하던 시기의 하루키를 '먼 북소리'라는 그의 책을 통해서 접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주인공 와타나베가 실제 하루키와 겹쳐지면서 그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걸 깨닫기 되었기 때문이다. 배낭을 메고 홀로 여행을 즐기고 음식을 즐기고 책보는 것을 즐기고 다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는 하루키의 모습이 와타나베의 모습에서 느껴졌다. 그래서 평소 그의 에세이를 통해 하루키라는 사람의 매력을 충분히 느끼고 있던 차에 와타나베를 만나게 되니 새롭게 보이게 된거란 생각이 든다.
얼핏보면 너무도 방탕하게만 보내는 20살즈음의 와타나베의 인생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내가 이 책을 집필할 당시의 하루키의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당사자들은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감정들. 10년뒤, 20년뒤 인생을 살아본 후에야 그때를 뒤돌아 보면서 회상해보면 내가 왜 그랬는지, 그가 왜 그랬는지, 그녀가 왜 그랬는지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서야 와타나베와 그 주변의 인물들에 대해서도 감정이입이 되는 것 같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때. 후회와 미련으로 가득한 그 때를 떠올리며 이 책을 다시 접하니 사고 싶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듯하다. 왜 처음 이 책을 봤을땐 몰랐을까? 책이란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리고 때에 따라 정말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또 한번 새삼스럽게 느낀다.
지금 당장 손에서 놓게되는 책일지라도 언젠가 한번은 다시 한번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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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 내가 [상실의 시대]를 처음 읽었을 때는 뭐 이리 우울한 소설이 다 있나 했다. 그래서 하루키 소설은 다시 읽을 일이 없을 거라 여겼지만, 시간이 흘러 20대가 된 후 [해변의 카프카], [1Q84]와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으니 너무나도 재미있길래 [상실의 시대]에 대해 품고 있던 음울한 이미지는 내 편견으로 인한 틀린 이미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마침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으로 다시 출간된 번역판이 있길래 빨간색과 초록색의 예쁜 양장본에도 마음이 끌리고 해서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보았다. 다시 읽어봐도 10대에게는 좀 충격적인 내용이 많기는 했다. 그러나 10대 때 받은 우울한 이미지는 저 멀리 사라지고, 다시 읽은 [노르웨이의 숲]은 내게 따뜻한 이미지만을 남기게 되었다. 주인공인 와타나베가 대학생이어서인지, 대학교라는 곳을 경험하고 나서 읽으니 확실히 더 공감이 갔다. 명문 여학교에서 빈부격차를 경험하며 힘겹게 살았던 미도리, 뭐든지 1등인 언니와 비교당하며 자라온 나오코도 한 여자로서 모두 공감이 가는 캐릭터들이었다. 이상하게 10대 때는 그런 장면이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부분은 와타나베와 나오코와 레이코, 세 사람이 속세에서 분리된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생활하는 부분이었다. 타인에게 상처받기 싫어하는 만큼 타인을 상처입히기도 싫어하는, 착한 사람들만 존재하는 지상의 연옥 같은 공간. 하지만 세상에서는 그들을 '비정상적'이라고 손가락질하니, 나 역시 대학을 막 졸업한 직후라서 학교에서 배운 올바른 인간상과, 사회에서 보는 비도덕적인 인간상의 괴리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나이 19세에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성장통을 앓고 있는 와타나베와 나오코, 미도리의 이야기가 이토록 가슴 절절하게 와닿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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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가 되었던 1Q84를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꽤나 재밌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그의 이전 작품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들게 되었다.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도 나와 있었지만, 원제를 그대로 따온 이 제목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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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만들면 안되나
936g이 뭐나, 64g 더 나가는 용지나 표지를 썼으면
1000g = 1Kg 될 것을!!
뭔 책이 무게로 나오냐.
짱 난 다.
그래서 2만원이냐.
미국 책처럼 문고본으로 나오면
500g도 안나오겠지.
물론 가비얍고,
한 권이면 되겠지.
짱 나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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