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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기행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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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과 죽음이 이처럼 격렬하게 관능적으로 만나는 것을 지구상의 그 어디에도 느껴보지 못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을 바라보며 삶의 미미한 섬광을 좀 더 깊이 즐기기 위해 연회장 한 가운데 미라를 갖다 놓곤 했다. (p. 54)   죽음이란 무엇인가?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말한다. 죽음은 중병을 털고 일어난 사람과도 같다.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말한다. 죽음은 향기를 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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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과 죽음이 이처럼 격렬하게 관능적으로 만나는 것을 지구상의 그 어디에도 느껴보지 못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을 바라보며 삶의 미미한 섬광을 좀 더 깊이 즐기기 위해 연회장 한 가운데 미라를 갖다 놓곤 했다. (p. 54)

 

죽음이란 무엇인가?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말한다. 죽음은 중병을 털고 일어난 사람과도 같다.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말한다. 죽음은 향기를 들이마시는 것과 같고, 도취케 하는 땅에 있는 것과 같다.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말한다. 하늘이 잠시 개어 그물을 들고 새를 잡으러 나갔던 사람이 갑자기 미지의 땅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죽음은 바로 그 순간과 같다!(p. 59)

 

이집트를 보라. 지난날 이집트의 부를 수탈하고, 통상을 조종하고, 공장을 건설하고, 은행을 세우고, 대규모 기술 사업을 추친 할 수 있었던 것은 외국인들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모든 경제 활동에서 내국인들이 외국인들을 대신하기 시작했고, 아주 능숙한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외국인들을 필요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증스러운 방해물로 여기게 되었다. 특히 전쟁 이후에 생겨난 신흥 도시 계층의 경우, 외국인들을 제거하면 직접적이고도 긴요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경제적 동요와 자생적 요소의 활기찬 개입이 아니라 이 나라 경제 재건의 깊은 뿌리를 이루고 있다.(p. 89)

 

 

오늘날 세계에서 동양 문명이란 것은 없다. 순수하게 동양적인 것은 촌스럽고 시대에 뒤쳐져 오늘날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다. 동양이 자기 나름대로의 문명을 다시 창조하기 위해는 스스로 서구의 도제(徒弟)가 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도제 용역은 이미 시작되었다. 유럽의 발전된 생산 수단, 통상과 산업의 새로운 방식, 분석적 비판적 사고방식을 채택했고, 유럽의 과학을 가지고 동양적 삶의 방식을 개조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p. 90)

 

오늘날 우리는 우리 신의 저 무시무시한 원조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신의 풍요, 자가당착, 애증, 기쁨과 슬픔, 거대한 능력과 불치의 박약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소박한 말씀을 어떻게 하면 찾아낼 수 있을까? 진정한 신은 두려움의 산물인 우리 인간의 미덕들을 경멸하고 못 본 체 한다. 그는 자손을 낳고, 임신시키고, 살해한다. 그리고 또다시, 논리와 미덕과 희망의 경계를 너머 영원히 춤추며, 자손을 낳는다.

신은 모든 가능성을 안은, 어두운 미지의 폭발력이다. 그것은 물질의 가장 작은 입자 속에서조차 폭발을 일으킨다. (p. 114)

 

 

그리스인들은 반대 세력들을 조화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덧없는 모든 순간들을 즐기고 쉽게 어울린다. 그들은 세계에 균형을 가져왔다. 유대인들은 그 균형을 깨뜨리고 인간의 마음을 교란하기 위해 쉬지 않고 전투를 벌인다. 현실은 결코 그들을 품어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덧없는 순간들 너머에 있는 절대적인 것을 요구한다. (p. 208)

 

 

카잔차키스에게 있어 여행은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었고 그것은 필요 불가결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귀중한 원천이었다. 특히 동양은 그를 끌어당기는 자석과도 같았다. 크레타 출신으로서 그는 동양 세계에 호감을 느껴, 자신의 조상을 베두인족 혈통으로 믿고 싶어 했을 정도다. 특히 여기에 엮어 놓은 기록들은 그가 평생을 바친 작업의 중요한 부분을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 (p. 232)

YES마니아 : 로얄 y*******a 2015.04.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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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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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갈 일이 별로 없고 또 잘 안가다 보니 가끔 대중교통, 특히 열차를 타고 길을 가다 보면 마음이 설렌다. 헤프닝을 겪었다. 내 좌석에 어떤 남자가 앉아 옆사람과 티격태격 하고 있었다. 잠시 그것을 중단시키고 표를 보여 주며 내 자리라고 했더니  자기는 자기자리라고 했다. 표를 자세히 살펴봤더니 자기자리는 맞는데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버렸던 것이다. 복도로 나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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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길을 갈 일이 별로 없고 또 잘 안가다 보니 가끔 대중교통, 특히 열차를 타고 길을 가다 보면 마음이 설렌다. 헤프닝을 겪었다. 내 좌석에 어떤 남자가 앉아 옆사람과 티격태격 하고 있었다. 잠시 그것을 중단시키고 표를 보여 주며 내 자리라고 했더니  자기는 자기자리라고 했다. 표를 자세히 살펴봤더니 자기자리는 맞는데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버렸던 것이다. 복도로 나가더니 열차회사에 전화를 걸고 거친 육두문자를 섞어가면서 꼴을 부렸다. 안내방송을 안했느니 어떠니... 많은 사람들의 심기가 불편하기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다음 역에서 내렸다. 계속 육두문자를 하면서. 진짜 안내방송을 안하는지 유심히 들어 보았다. 할 때도 있었지만 안 할 때도 있었다.

 이 어느 겨울날, 겨울 어느날 열차를 타고 가면서 읽은 책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지중해 기행'이었다. 별로 긴 시간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여행과 독서를 통해 짧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1927년에 나온 책이다. 1차 대전이 끝난 후의 글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이탈리아와 이집트, 예루살렘, 시나이반도를 여행하면서 적은 글이다. 사색적 여행이다. 눈 여겨 볼만한 어록들을 꽤 많이 남기고 있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무솔리니에 대해 적고 있다.  고대 이집트와 현대의 동양(이집트를 동양으로 표현하고 있다.)에 대해서 얘기한다. 동양민족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희망을 얘기한다. '새로운 세계대전이 있고나면 세계의 운명은 서양에서 동양으로 이동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예루살렘과 시나이 반도에 대한 이야기는 예언적이다. 그의 감수성과 지적 통찰력이 미래의 그 곳을 꿰뚫었다. 카잔 차키스가 둘러 보았던 그 시절의예루살렘과 시나이반도는 평온했다. 여러 종교와 여러 종족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아랍인도, 유태인도, 베두인도,집시도 있었다. 하지만 카잔차키스는 불길한 기운을 느낀다.  

 '아이들의 부드러운 곱슬머리를 어루만지던 나는 예기치 못한 감정에 휩싸이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어떤 비극적 육감이 내 가슴을 짓눌렀던 것이다.'

 2차대전이 끝나자마자 그 비극적 육감이 처절한 현실이 되었다.

 

 시나이산은 하느님이 모세에게 말씀을 내리셨다는 <거룩한 정상>이 있는 산이다. 그 곳수도원을 방문한다. 재미있는 말을 남긴다. '수도자들의 근엄한 얼굴이 사나워지더니 입에서 붉은 글귀가 적힌 긴 양피지 문서가 튀어나와 너울거렸다.'

  기막힌 표현이다.

 '산 전체에 기운이 베어 있다. 이제 그것은 모세의 기운이 아니라, 내 평생 지극히 사랑했던 소박한 노동자, 기오르고스, 조르바의 기운이다.'

 

카잔차키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서기2000년에 대한 예언 뿐만 아니라  지금은 실현되지 않은  더 먼 미래에 대한 예언도 한다. 희망적이다. '나는 시나이사막을 횡단하면서 인류의 새로운 <출애굽>을 보았습니다. 이 환영, 이 사막의 반영이야말로, 나의 동방여행을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경험입니다.'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자유인' 카잔차키스, 그는 육체적 노마드이면서 동시에 영적 노마드이다. 집시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이야기한다. '어느 집시 처녀가 자신이 심어 놓은 나륵풀을 보고 웃고 있는데, 지도자가 채찍으로 때리면서 "...집을 짓는 자는 집에 묶이게 되고, 나무를 심는 자는 나무에 묶이게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라고 했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비문)

 

  

 

 

 

c******1 2014.12.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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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록장 천십사번째.- 고행
"도서기록장 천십사번째.- 고행" 내용보기
그나저나 이 분도 이름이 니코스이니 애칭으로 따지면 니코로 불린 거 아니냐!... 니코 미안.일어나서 도서관 가면서아 ㅅㅂ 그리스인 조르바 읽어야 한다니아앍 ㅅㅂ 그 인간 변태잖아아아 읽기싫어엇 야메떼 이야다아 쿳소오 근데 독서모임 때문에 읽어야 돼애애이러면서 갔는데 레알 이거보고 머리가 띵해짐아 그러니까 소설만 그리스인 조르바를 썼지 비소설은 다양하구나. 민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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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이 분도 이름이 니코스이니 애칭으로 따지면 니코로 불린 거 아니냐!
... 니코 미안.


일어나서 도서관 가면서
아 ㅅㅂ 그리스인 조르바 읽어야 한다니
아앍 ㅅㅂ 그 인간 변태잖아아아 읽기싫어엇 야메떼 이야다아 쿳소오 근데 독서모임 때문에 읽어야 돼애애
이러면서 갔는데 레알 이거보고 머리가 띵해짐
아 그러니까 소설만 그리스인 조르바를 썼지 비소설은 다양하구나. 민망하다 ㅋㅋㅋ 도서관에서 레알 나 혼자 비실비실 빵터짐(...) 매일 20페이지씩 소리내어 읽다보니 대략 10일만에 다 읽었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룰루. 여러분 조르바가 꼴보기 싫은 사람 있음까? 저처럼 잠언 읽으세요. 에세이는 싫어하는 편이지만 왠지 시같아서 부담이 안 간다.

 


줄거리 정리를 하게 될 듯한데 이 책의 내용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오해를 벗어던지는 데 효율적일 것 같아서이다.


대충 신에 대해서만 정리하자면, 신이 인간과 동물과 식물과 사물 등 모든 것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신은 수없는 가면들을 지니고 있지만 그 본질은 하나이다. 이 점에서만 기독교에 가깝다 볼 수 있다. 이 신은 무능하지만 계속 우주와 싸우고 있으며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각기 자신의 내부에 있는 신의 요소를 육체에서 해방시켜 지구를 몽땅 불태워 요한게시록 같은 정화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번 마더퍼커 번! 레알 요즘 내 주변의 사방이 아파트 짓겠다고 공사가 한창인데 그 소음을 들으며 출근하다 보면 진짜 이렇게 됐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서는 심연 속에서 다함께 정숙한 침묵의 파티. 이런 요소들은 모두 동양의 윤회 사상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 작가가 그리스 정교를 믿었다고 판단하기엔 어폐가 있다. 작가가 중국 여행을 한 후 쓴 기행문도 있고 말이다.

 


어쩌면 장막을 걷으라 말하지 않는 건 플라톤의 이데아에 전면적으로 도전하는 행위인인지도 모르겠다.


장막 저쪽에 있는 이상세계도 어차피 당신의 상상에 불과하다고 하는 듯. 실제로 이 대사 이후에 종종 그런 말투가 등장한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현상 속에 내재하지 않으며 바보가 되어 고뇌를 우직하게 지고 살아간다. 그것이 첫번째 의무와 두번째 의무 사이의 경계이다.

 


결국 내가 보고 듣는 건 다 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근본으로 나아가려고 계속 노력한다면 결국 다 나의 마음에서 끝난다는 사실을 인식할 것을 두번째 의무에선 계속 권장하고 있다.


결국 무엇을 하더라도 우리는 무릇 인간이며 대지는 인간을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음을 알라고 저자는 권장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크레온이 비인간적 존재와 싸우기 위한 감각을 준다는 말을 하는데, 그는 오이디푸스의 외삼촌이자 처남이다. 그런데 이 분 오이디푸스의 전말을 다 목격한 정신적 충격은 둘째치고 가족은 물론 일가친척이 모조리 죽지 않았나;;

 


페이트를 보면 유독 외국에서 평범치 않게 살았던 역사적 인물들이 일본의 평범한 문화를 즐기는 장면이 많이 발견된다.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눈으로 이들을 본다면 어떨까? 그는 분개할 것이다. 책에서 그는 일상을 벗어나 끊임없이 도약하려 노력해야 하며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은 왜 페이트의 교훈에 동조하는가? 이는 일상적인 겸손에 들어 있는 성스러운 모습에 대한 존경심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항상 도약하는 삶을 살았던 서번트들이 평범해지는 모습은 겸손을 잘못 해석한 건 아닐까 싶다. 사실 작품 자체의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하다.


P.S 그래도 난 니코니코니 카잔차키스가 싫다. 이유? 인식-인류는 애 낳으라는 소리가 절반 이상이다. 사스가 꼰대.

v*******5 2017.11.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