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10.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수난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수난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내용보기
터키의 지배를 받고 있는 그리스의 리코브니시 마을, 부활절은 준비하며, 예수님의 역활을 맡게된 양치기 청년 마놀리오스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어느날 이 마을을 지배하고 있는 터키인 아가의 남자 몸종이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범인을 알 수 없는 아가는 마을 유지와 집정관, 사제, 교장을 감금하고 범인이 나타날때가지 한명씩 목매달아 죽이겠다고 하고, 이들이 죽은 후에
"수난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내용보기




 터키의 지배를 받고 있는 그리스의 리코브니시 마을, 부활절은 준비하며, 예수님의 역활을 맡게된 양치기 청년 마놀리오스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어느날 이 마을을 지배하고 있는 터키인 아가의 남자 몸종이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범인을 알 수 없는 아가는 마을 유지와 집정관, 사제, 교장을 감금하고 범인이 나타날때가지 한명씩 목매달아 죽이겠다고 하고, 이들이 죽은 후에는 마을사람들까지 한 사람씩 죽이겠다고 경고한다.

 부활절 [그리스도 수난]극을 준비중이면서, 예수님의 역활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마놀리오스는 이 살해사건을 쉽게 넘기지 못한다. 예수의 역활을 맡은 사람으로서 자신을 예수와 동일시를 하며 

자신이 죽이지도 않은 것을 자신이 죽였다고 자백함으로써 아가의 마음을 되돌린다.


유지들과 집정관, 사제, 교장 선생이 모두 감옥에서 벌벌 떨며 마을 사람들은 죽거나 말거나 자기 살 궁리만 하고 있을 때, 하인 마놀리오스가 마을을 구하기 위해 일어났습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하인은 우리이고, 집정관은 그입니다.



 마을사람들은  마놀리우스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전쟁으로 인해 피난온 포티스 사제가 이끄는 사람들이 왔을때, 리코브니시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외면하지만, 마놀리우스와 그의 친구들은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고자 노력하는 모습에 마놀리우스의 희생을 잊고 그를 미워하게 된다.

  피난온 사람들에게 마을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리코브니시 마을 사람들은, 포티스 사제와 마놀리오스의 세력이 커지기를 두려워하며 아가에게 거짓말하여 마놀리우스를 모함하고 예배당안에서 살해하고 만다. 

 

 리코브니시 마을의 유지, 사제, 집정관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 예수를 섬긴다고 하면서 사리사욕만을 챙기고 희생하지 않고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는 모습, 그리고 선한 사람들에게 누명을 씌우는 장면을 보면서 예수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가진자들은 거짓말과 악을 행하여 힘이 세지고, 가난한자들은 먹지 못해 굶어 죽고, 누명을 받아 죽어가고.


왜 이 세상에서는 사악한 인간이 더 힘이 세죠?

착한 사람은 왜 나약하고? 


 이 질문은 하는 미켈리스는 집정관의 아들로서 기득권을 다 포기하고 미놀리우스를 따라가면서 받는 느낌을 표출한다. 왜 이 질문이 오래되어 보이지 않고 지금에도 유효하게 느껴지는지...





그리스도는 포도주와 같다고 마놀리오스는 생각했다. 

그리스도는 포도주처럼 사람의 마음을 열고, 온 세상이 그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바로 그렇게 천국의 문도 열고 모든 죄인들이 머물 곳을 예비하실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스토리텔링 실력으로 예수의 죽음이 2천년을 넘어서 그리스의 작은 마을에서 다시 벌어지는 것 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우린 그 한 목숨의 죽음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쉽게 잊어버린다.

희망이라고 해야할까? 원망이라고 해야할까? 마놀리우스가 죽임을 당하고, 포티스 사제와 그의 마을 사람들은 리코브니시 마을에서 쫒겨나고 만다. 선을 행하는 사람들은 못 살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잘 살고, 포티스 사제의 마지막 이 말은 너무나도 나 자신을 부끄러움을 안기고 간다. 나는 마놀리우스같은 사람들을 질타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못 박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헛되군요. 나의 예수님. 2천 년이 지났는데도 인간들은 여전히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지

않습니까? 도대체 언제쯤이면 당신은 다시 태어나 이번만큼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우리 가운데서  영원히 사실 겁니까?



죽어가는 선장에게 터키인인 아가가 하는 마지막 말이다.

비록 나라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지만 어쩌면 그보다는 우정이란 것이 더 

끈끈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우리의 종교가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은 한탙 꿑이고, 인생은 라키

술이며, 다들 마시고 취할 뿐이야. 우리의 머리는 바람 부는 대로 향하지. 자넨 기독교인으로 

행세하고 나는 터키인 아가로 행세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