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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 프란치스코는, 가톨릭 신자로서 성인에 대해 너무나도 모르기에, 한 명이라도 소설로써 만나보자는 의미에서 읽게 되었다. 소설의 허구적인 면이 조금은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한편 소설적인 면이 더 끌어당겨줄 매력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카잔차키스는 성인을 어떻게 그려냈을까? 읽어가면서 성 프란치스코의 끊임없는 기도속에, 카잔차키스가 혹시나, 구약의 예언자들처럼 신의 목소리를 듣는 성인의 모습을 그리지 않았나 하는 기대를 했었다. 그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냈을까 하며..기대을 가지고.. 하지만, 그는 겟세마네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는 예수님처럼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으로서 프란치스코를 그렸을 뿐, 그가 어떻게 하느님을 만났는지는 상상하진 않았다. 오히려, 프란치스코를 통하여, 인간적 모든 욕망을 억제되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현명하게 쓰는 것인가? 어느정도 허용함으로써,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등의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프란치스코 스스로도 어떤 해답은 없지만, 그를 그토록 잔인하리만치 몰고 가는 그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교황과의 대화를 통해서 프란치스코가 교황의 논박을 인정하는 모습은, 프란치스코가 얼마나 겸손하고 깨어있는 열정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그려주고 있다. 이 소설은 동료이자, 평범한 수도자인 레오 형제의 입장에서 바라 본 프란치스코의 삶이며, 어찌 보면, 프란치스코의 하느님에 대한 깊은 사랑이 오상(five wounds)으로 발현되면서, 화자의 프란치스코에 사랑도 그것을 점점 닮아감을 느낄 수 있다. 한편, 프란치스코의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 사랑과 대조적이게, 화자의 사랑은 인간적인 불완전함을 담고 있다. 그러기에, 오히려, 화자의 나약함과 의심이 나의 모습과 더 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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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있는 라떼란 대성전에 가면 성프란치스코의 동상이 있다. 아시시에서 교단회칙을 교황에게 승인받기 위해 로마로 들어온 프란치스코 성인을 기념하기 위한 동상일것이다. 그 동상을 직접 보면서 설명을 듣기 전까지 나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아시시에서 로마까지의 여정에 대해서도, 그가 교단의 회칙을 승인받기 위해 교황을 만났다는 것도 알지 못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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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차키스의 작품인 [성자 프란체스코]이다.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순결하고 많은 사랑을 받은 성자의 이야기를 그리스를
대표하는 [니코스카잔차키스]가 만들어 낸 작품이다.
프란체스코가 만약에 [천국의 열쇠]를 갖었다면
이 세상 그 누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할까?
그는 음식에다
[잿가루]를 뿌려 먹었고 헐벗고 추위에 떠는 이들과 아픔을 같이
하기 위해 잘 입지도 덮지도 못하고 그렇게 생활했다.
[내가 그들에게 담요를 줄 수 없지만 아픔만은 함께 할수 있다....]
자기 자신의 육체를 너무도 냉혹히 대했다. 육신은 나귀와 같다고
...........잘 채찍질 하여 길 들여야 한다고....
평생 그의 곁에서 지켜보는 레오사제는 입에 오르내리는 성자 프란체스코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짠하다. 더불어 카잔차키스만의 맛깔나는 글솜씨는 책장을 넘기는 순간마저도 멈칫했다.
마음을 정화시키고 싶다면 권하는 한 권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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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차키스의 신관(神觀)이 가감없이 드러나면서도, 사실을 많이 반영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다만, 가톨릭에 대한 기본지식조차 갖추지 못한 번역자의 서툰 번역이 몹시 아쉽다. 감수라도 받아서 출판하였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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