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코" 내용보기
로마에 있는 라떼란 대성전에 가면 성프란치스코의 동상이 있다. 아시시에서 교단회칙을 교황에게 승인받기 위해 로마로 들어온 프란치스코 성인을 기념하기 위한 동상일것이다. 그 동상을 직접 보면서 설명을 듣기 전까지 나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아시시에서 로마까지의 여정에 대해서도, 그가 교단의 회칙을 승인받기 위해 교황을 만났다는 것도 알지 못했었다. 중학생이 되어 세례를
"프란체스코" 내용보기

로마에 있는 라떼란 대성전에 가면 성프란치스코의 동상이 있다. 아시시에서 교단회칙을 교황에게 승인받기 위해 로마로 들어온 프란치스코 성인을 기념하기 위한 동상일것이다. 그 동상을 직접 보면서 설명을 듣기 전까지 나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아시시에서 로마까지의 여정에 대해서도, 그가 교단의 회칙을 승인받기 위해 교황을 만났다는 것도 알지 못했었다.

중학생이 되어 세례를 받고 내 수호성인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전기와 일화들을 찾아읽었던 기억은 있지만 사실 어린 나이에 그분에 관한 일화는 쉽게 받아들이기에는 좀 어려운 이야기들도 많았기 때문에 대충 읽다가 말았을 뿐이다. 낡고 허물어져 가는 교회에 악마의 세력이 더 커져 악마가 그 교회의 사제를 조롱하며 놀고 있는거라든가 어느 방향으로 길을 잡아야 할지 망설여지는 갈림길이 나오면 프란치스코는 옆에 있는 형제를 제자리에서 돌게 한 후 그가 쓰러져 코의 방향이 가리키는 곳을 길로 정해 가기도 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이제야 막 신앙생활을 시작한 십대가 받아들이기에는 기이하고 괴상한 이야기들일뿐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나는 다시 프란치스코성인에 대해 알고 싶어서 그 유명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프란치스코를 읽으려고 시도했다. 신앙의 깊이에 대해 고민을 하고 한참 종교적인 전례와 성인들의 삶에 관심이 많았던 시기였지만 다시 한번 나는 프란치스코 성인에 대해 한걸음 다가서는데 실패할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해 아는 것 하나없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글을 읽으려고 시도한 것은 성경을 한번도 읽어본적이 없는 사람이 신학논쟁을 하겠다고 덤벼드는 것과 같은 것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가 얼마 전에 프란치스코 성인의 고향인 아시시에 가 볼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그곳에서 처음 형제들과 공동체 생활을 했던 리보또르또에서부터 까리첼리 은둔소, 뽀르지웅쿨라, 성다미아노 성당, 성프란치스코 성당과 글라라 성당까지 둘러볼 수 있었지만, 너무 정신없이 다녀서 사실 지금 그곳의 풍경이 꿈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수박겉핥기처럼 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의 모습을 아시시에서 느끼게 되니 이제는 왠지 카잔차키스가 전해주는 프란치스코성인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망설임없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일대기가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친절하게 프란치스코 성인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그분의 삶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자신의 신앙을 레오형제를 내세워 바라본 성인의 모습에 투영시켰을 뿐이다. 예전보다는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었지만 여전히 나의 신앙고백은 힘들기만 하다.
솔직히 처음엔 그저 가볍게 우스개소리처럼 떠도는, 한국교회에 대해 알 수 없는 세가지 중 하나인 프란치스코회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는 하느님도 모르신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책을 펼쳐들기도 했다. 하지만 카잔차키스가 이야기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야기는 온전히 자신의 신앙고백인 것이다.
지금 나는 그저 한권의 책을 읽었을뿐이고, 프란치스코 성인의 잔꽃송이들 중 하나의 향을 겨우 맡으려고 하는 느낌일뿐이다. 좀 더 시간이 흐르고 그분이 이야기하는 평화와 선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는 삶을 살게 될 수 있을지, 십자가의 고난과 영광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될 지... 그것은 모르겠다. 카잔차키스가 자신의 언어로 신앙고백을 했듯이 나 역시 나 자신의 삶의 모습으로 신앙고백을 하게 되는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질 뿐이다.


이달의 사락 r***2 2011.12.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