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과로와 탈진으로 우울증에 빠진 아이들을 조명한 책이다. 아이들이 탈진해서 우울증에 빠지다니,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탄생이라니.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아이들이 대체로 순응적인 유형이 많다는 것, 그래서 의무감을 많이 가진 아이일수록 이 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다고 하는 것이다. 이들은 의무감을 이탈하면 죄책감을 가지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그러한 순응과 의무감을 부여하는 것이 그들의 심리 외부에 있는 사회적 환경이라는 점이다. 그 사회의 이름이 바로 ‘성과사회’이다. 특정한 성취에 도달하게끔 모든 것이 규격화되어 있고, 규칙이 정해져 있고, 시기가 정해져 있으며, 그 성취에 도달하지 못하면 곧바로 낙오자로 ‘낙인’찍어버리는 세계가 있는 것이다. 그 세계를 기성세대들이 만들고 조직했지만, 기성세대들은 그 정도로 완고하고 견고한 구조를 갖춘 세계가 아니었다는 것, 그들이 생존해 나가면서 그들이 만든 구조가 결국 아이들을 덥쳤다는 것,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아이들 역시 그 정해진 비극을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 차례차례 악마의 맷돌로 들어가는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가 있는 그 옛날 영화 <벽>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더 중요한 것은 이 기성세대의 윗세대가 전쟁을 겪었던 세대라는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전후에 이들은 전쟁의 참상을 겪지 않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울분을 간직한 채 사회를 재건했고, 그 재건한 사회를 자식에게 물려주면서 그렇게도 전하려 하지 않던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무의식적으로 전달하고 말았다. 전쟁 세대가 겪은 트라우마도 참으로 다양하지만, 전후 첫 세대가 전달받은 트라우마 역시 참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그 전후 세대가 비극을 다시 양산하지 않기 위해 조밀하게 만들어 놓은 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구조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봉착하게 된다. 뛰어넘는 일 말고는 그 막힌 골목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 하나 있다. 탈진해버리는 것이다. 이 막막함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물론 이 책이 범하고 있는 오류는 있다. ‘가족주의’다. 물론 이 가족주의로의 귀환은 저자의 현실 상황 인지와 연결되어 있어서 심각하게 문제 삼기에도 뭣하다. 그러나 독자에게는 저자의 심리학자로서 말할 수 있는 수준의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음을 뛰어 넘어 상상할 필요가 있으니, 저자의 ‘가족주의’로의 귀환을 넘어 상상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저자 역시 ‘가족주의’가 완벽한 해답이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이 점이 그나마 저자가 저자로서 가지는 객관적 태도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