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자라면, 삶에 대해 고민하라!” 삶에 대한 고민은 무거운 돌덩이를 이고 산을 오르는 시지프스의 고뇌마냥 언제나 두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고민을 쉬이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삶 자체가 정답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노동으로 그저 이 힘든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 이것은 공자의 철학의 기본이자 밑바탕에 깔려있는 정신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공자는 천하를 거지로 주유하면서도 자신의 기량을 펼칠 주군을 만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살아내어야 한다’는 삶의 힘겨운 주문을 조금은 더 가볍게 할 수는 없을까? 그 방법이 있다면 논어를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논어는 공자의 살아내어야 하는 삶의 주문 앞에서 언제나 정면승부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는 책이다.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생생하게 겪었던 경험으로 엮어져 있기에 깨달음의 강도도 높을 수밖에 없다. 살아내기 위한 가장 좋은 처방을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하루하루를 ‘더 나아지는 삶’, 즉 향상심에서 그 의미를 찾는 것이다. 논어의 제 1장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배움과 실천의 삶은 살아내어야 하는 삶을 기쁨으로 채우며 더 나아지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다. 그렇기에 현대에도 2500년전의 공자의 삶의 방식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이다. “세상이 어지럽다 한들 들짐승이나 날짐승과 함께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도대체 누구와 함께 살아간단 말이냐. 만약 지금 천하에 도리가 행해지고 있다면 나 역시 세상을 바꿀 마음은 없다.” -제18편 미자 “여기에 아름다운 보석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상자에 넣어 보관해두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후한 값을 쳐주는 사람을 찾아가 파는 것이 좋을까요?” 그러자 공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제값을 쳐서 나를 사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제9편 자한 |
학교에서 한자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어깨너머로 배운 탓인지 동양의 고전을 읽어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왔던 것 같습니다. 평생에 한번은 <논어>를 읽어보아야 한다는데, 최근 들어 책읽기에 몰입하면서 자연스럽게 <논어>를 주해서를 읽을 기회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논어>는 주해서는 물론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책들도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의 사이토 다카시교수의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은 후자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저자의 말대로 <논어>를 비롯한 동양고전을 요즘의 책을 읽듯 한번 쓰윽 읽어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몇 번이고 거듭 읽어야 느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그런 과정을 밟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저자는 <논어>를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가 될 수 있도록 책읽는 이가 흥미를 느낄만한 주제를 골라 쉽게 풀이를 했다고 합니다. 모두 다섯 장으로 구분한 책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1 몸 밖으로 흘러넘치는 지혜, 2. 거침없는 행위, 경계 없는 사고, 3. 피하지 말고 뛰어들어 즐겨라, 4. 쓸모 있는 인격, 5. 인간의 축을 바로 세워라, 등인데, 이런 제목을 보면 저자가 <논어>에서 어떠한 것을 느낄 수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논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논어에서 인용하고 있는 사례 등을 비롯하여 당시의 사회상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논어>의 주해서를 읽어보면 그런 배경들을 설명하면서 공자님 말씀을 이해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전 중국어는 떼어 쓰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해석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공자님 말씀을 해석하는데 있어 주해자의 주관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덕은 외롭지 아니하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라고 푸는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의 의미를 저자는 “여러 덕은 따로따로 고립되어 있지 않다. 각각은 틀림없이 서로 이웃하고 있으며, 하나를 익히면 그 옆에 또 하나의 덕이 따라올 것이다.”라고 이해한다고 풀었습니다. 하지만 굳이 하나를 익히면 또 하나의 덕이 따라올 것이라고 복잡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누군가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을 터이니 덕을 지키는 것에 힘겨워하지 말라’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공자께서 동이에서 살고 싶어 하셨다고 하는 것은 전국시대 말에 활약한 공빈이 <동이열전>에서 ‘동이는 예의바른 군자의 나라라고 일컬을만하다[동방예의지 군자국야(東方禮義之 君子國也). 그래서 우리 선대 어른 공자께서도 동이에서 살고자 하셨으며 누추하다고 여기지 않으셨다[오선부자 욕거동이 이불이위(吾先夫子 慾居東夷 而不以爲陋)]’라고 한 대목을 인용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논어> 「자한편」을 ‘군자가 그곳에 살면 무엇이 비천할 게 있겠느냐?’라고 대답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조선이 동이의 후손임을 의식한 해석은 아닐까요? 공자께서 동방의 이민족이 사는 땅으로 가서 살겠노라라고 말한 것에 대하여 ‘그런 수준이 낮은 비천한 땅에 가서 어쩌려고 그러십니까?’라고 물은 것에 대한 답변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말입니다. 저자는 공자님을 이해하는데 있어 <논어>에 국한하지 않고 비슷한 시기의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말씀을 담은 <대화편>을 썼음을 인용합니다. 그리고 보니 <논어>와 <대화편>은 그 성격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책의 내용은 공자나 소크라테스가 한 말을 제자들이 정리하여 책으로 꾸민 것이 공통점입니다. 이 둘을 비교하면서 저자는 <논어>가 짧은 반면 플라톤의 저작이 방대한 이유가 사물을 탐구하는 의식 자체의 차이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짧은 저의 생각으로는 어떤 사안을 표음문자인 서양언어로 설명하려면 길어질 수밖에 없지만, 표의문자인 한자는 간략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의 원제목을 <논어력(論語力)>으로 한 것은 <논어>가 주는 생동하는 힘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이 책으로 <논어>의 진경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다만 논어를 이해하는 길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
이 책은 중국의 유명한 고전인 논어(論語)를 주해하거나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책 제목 그대로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문학부 교수인 사이토 다카시(薺藤 孝)가 논어를 읽고 느낀 바를 담대하게 써 나간 수필에 가까운 글이다. 저자는 논어를 읽으며 느낀 강한 인상 하나하나를 글에 담아내려 했지만, 그 인상은 어디까지나 논어의 메시지와 자신의 처지가 조합된 것이다 보니, 읽는 이에 따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일부이며 각기 상이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그가 인용한 많은 논어의 문장과 사례 중, 내 처지에 빗대어 생각이 제멋대로 확장되고 변주된 몇 가지를 근거로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리뷰를 써 볼까 한다. 1. 자아실현 우리는 삶의 많은 순간 학문을 접한다. ‘평생 배워도 모자란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러나 모자란 이유는 단지 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문이 전하는 말이 단순히 머릿속에 지식으로 축적되기만 한다면 별 의미가 없다. 각각의 덕목이 내 삶 안에 들어와 내 존재 차체를 형성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되도록 하려면 사상을 구체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인간’을 통하는 방법이 유효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존재 그 자체가 사상이 되어버린 한 인간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위인(偉人)에 주목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라는 곳은 예나 지금이나 부조리함과 부도덕함이 곳곳에 존재한다. 그것은 피하려 해야 피할 수 없는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필수 요소다. 인류사에 존재해 온 그런 필연적 모순과 부당함은 오히려 사회발전의 원동력이기 되어왔기 때문이다. 사회(또는 조직)의 발전은 신념을 가진 이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나 조직의 폐해를 타파하고 변혁을 위해 노력해온 결과다. 부조리나 부도덕은 존재나 태생 자체가 그러한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시대의 변화에 부적응한 결과로 보는 게 오히려 타당하다. 공자가 그렇듯 부조리한 사회 안에서 계속 활동한 이유는 인간이 살아갈 장소가 사회이며, 자기실현이라는 것도 결국 사회를 벗어나서는 이룰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절이 싫어 떠난 중은 더 이상 중이 아닌 것처럼, 사회나 조직이 싫어 이를 회피하거나 외면하면 그 역시 그 사회나 조직의 온전한 구성원이 될 자격이 없다. 온전한 조직원이라면 (그것이 선천적이든 선택적이든) 소속된 사회의 모순을 수용하고 그것의 변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허구가 아닌 세상에 실재하는 자아실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2. 타자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법 우리는 끊임없는 타자의 요구 안에서 살고 있다. 자아실현을 핑계로 타자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자아실현과 타자의 요구의 교차점에서 ‘나라는 존재의 사회적 가치’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타자의 요구에만 끌려가면 스스로의 가치는 헐값이 된다. 반면 자아실현에만 집착한다면 현실과 유리된 이상주의자가 되거나 고집 센 ‘상종 못할 인간’이 되고 만다. 따라서 합리적인 판단 하에서 중용의 미를 찾아야 한다.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타자의 요구를 조금 더 우선시하는 것이 약간 더 현명한 선택인 듯하다. 당장에는 다소간의 손해를 보는 것 같아 억울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항상 그 이상의 보상이 예기치 못한 시기에 엉뚱한 곳에서 주어진다는 것(마치 새옹지마처럼)을 많이 경험했다. ‘타자의 요구 속에서 자기를 실현한다’라는 자세로 매사에 임하면 타인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할 일도, 내 일이 타인에 의해 지나치게 간섭을 받을 일도 없어진다. 스트레스도 자연스레 줄며 삶과 일 양쪽에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3. 평가하는 나, 평가 받는 나 잘못을 남에게 잘 떠넘기는 것이 요령 있게 세상을 살고 효율적으로 조직의 인정을 구하는 능력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누구도 입 밖으로 내거나 마음속의 ‘좌우명’처럼 선언적으로 새겨놓지는 않지만, 본능 또는 무의식적으로 삶 속의 난관을 헤쳐나가는 기재로서 많은 이들이 사용한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공사를 불문하고 일상의 많은 시간을 여기에 할애한다.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필요하면 용서를 구하고, 반성을 통해 반복을 피하고 자기발전의 계기로 삼는 사람과 비교해 누가 사회와 조직에 더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는 굳이 따질 필요도 없다. 남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이 특별이 나쁜 일은 아니다. 논어에서도 공자가 여러 인물들을 비평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공자 자신이 거기서 무언가를 배우거나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 타인과 비교해 남을 폄하하고 스스로를 높인다거나, 험담을 통해 여론을 조성하려는 마음은 아니었다. 타인에 대한 비판에 앞서 내가 이런 생각과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먼저 살펴 가려내고 걸러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군자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과 원인을 자신에게서 구하지만, 소인은 그것을 남에게서 구하고 책임을 떠넘긴다. <논어 제15편 위령공(衛靈公) 중에서> 논어에 예순을 이순(耳順)이라 표현하는 말이 나온다. 마흔 살에 유혹을 이겨내고(不惑), 쉰 살에 하늘의 뜻을 알아내고도(知天命) 10년이 더 지나서야 비로소 남의 비판에 유연하게 귀를 기울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타인의 비판이나 비난을 억울함이나 화남 없이 수용하는게 어려운 일이라는 뜻일 것이다. 남의 비판을 수용하는 척 무표정이나 미소로 잘 들어줄 수는 있지만, 그 때 생기는 내 안에 감정까지 물 흐르듯 유하게 만드는 건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비판 안에 담긴 타인 감정의 찌꺼기는 버리고 메시지만 잘 걸러내 자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에너지로 온전히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정말 이순이 아닐까 한다. 예순이 될 때까지 진정한 이순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4. 仁: 어떻게 생각하고, 禮: 어떻게 표현하는가 논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의 덕목, 즉 키워드는 ‘인(仁)’과 ‘예(禮)’이다. 이 두 가지 덕목을 내 나름대로 해석해본다면 ‘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문제이며, 예는 ‘어떻게 표현하는가’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생각이 없는 표현은 공허하고, 표현이 없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무의미하듯 ‘인’과 ‘예’는 그래서 따로 떨어트려놓고 생각할 수 없는 덕목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과 스스로의 표현을 얼마나 자주 섬세히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을까? 나의 경우를 일반화하는 것이 옳은 전개는 아니지만, 감히 짐작하건대 (명상이나 묵상, 수행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일상 중 매우 드물 것이다. 그래서 (비판을 포함한) 타인의 피드백이 중요하다. 건강하고 투명한 소통을 통해 스스로의 생각과 표현을 타인에게 꾸준히 검증 받아갈 때 우리 안의 미덕을 키워내고 무질서하고 부도덕한 삶에서 벗어나 좀 더 현명하고 오롯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 <END> |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 ㅡ사이토 다카시 ] 곁에 두고 읽는 니체,잡답이 능력이다.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등 여러권의 책이 우리나라에 출간되어 읽히고 있는 사이토다카시의 신작이다. 솔직히 깊은 분야아닌 개론서는 별로 믿음이 없던 터여서, 전자도서관에 사이토다카시의 여러책은 읽어보지도 관심기울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논어라니, 이 저자는 무엇을 얻었는지 궁금하던 차에 읽어보기로 했다. 우선 단숨에 읽힌다. 무겁지 않고, 정말 논어에서 내가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2000여년도 더 지난 옛사람인 공자의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되새겨보게 되었다. 우리 책장을 채우고 있는 논어관련 책들은 읽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책을 들었다,놓기를 반복한 책들도 있지만, 이책은 가볍게 읽혀지는 책이라 논어에 초심자인 나는 재미있게 읽었다. 책의 깊이로 따지자면 지도 정도 하지만 깊은 논어를 다룬 책들에서는 읽지 못했던 공자와 제자들의 이야기들이 많이 인용된 점이 특이하다. 저자 본인이 대학에서 학생을 가리치는 일을 하여 특히 스승으로서의 공자와 그 제자들의 모습이 인상깊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다. 여러 논어,공자에 관한 책 중 별 특이한 점은 없어보이지만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는점 깊은 있는 책을 잡고 읽어 보고자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점 미처 알지 못한 공자의 면을 엿볼 수 있는 점을 든다면 이책은 성공적이라 생각한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책은 지도인 듯 하다. 그것이 맞는지,정확한지는 가보아 목적지에 도착해보아야 알게 되듯 .... 이책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 일본 사상가들의 유교에 대한 관점도 부분적으로 인용하고 있다. 혁파해야하는 사상이라고 생각한 학자도 있지만 저자는 그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책에 들어가게 되면, -몸밖으로 흘러넘치는 지혜 -거침없는 행위,경계없는 사고 -피하지말고 뛰어들어 즐겨라. -쓸모있는 인격 -인간의 축을 바로 세워라 로 이야기 하고 있다. 챕터 자체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이야기 한점이 편하게 와닿는다. 내용을 보면 내가 잘 몰랐던 제자와의 여러 일화들과 대화가 인용이 많이 되어,그 시대 공자의 사상을 쉽게 엿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지침이 아니라 대화로써 학문한다 ㅡp32 엘리트를 지향했던 공자의 가르침이 지금 우리 한사람한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말은 현대사회기 이미 일부 우수한 사람들에게만 할일이 맡겨져서는 안되는 시대가 되었다는뜻이기도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논어>가 이상으로 삼은 정신.즉 지식인은 군자의 기개라는생각을 가져야하는시대가 바로현대 사회가아닐까 ㅡp38 p 72 <논어>의 기초에 깔린 합리성에는 크게 세가지 측면이 있다. 바로 비신비성과 실천성,유연성이다. 합리성의 첫번째 측면인 "비신비성"은 사물을 신비화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p 73 <논어>에 삶도 아직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라는 유명한 말이 나온다. 여기서 죽음을 알지 못하다 라는 말앞에는 삶오 아직 알지 못하는데 라는 구절이 붙어 있음을 주목해보라. ...그것은 바로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문제다.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으면서 사실 삶도 죽음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p 82 두번째요소는 실천성이다. 공자의 학문은 기본적으로 실학이다. p 89 배우면 완고함이 없어진다 -學而 p 99 사물을 신비화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해야만 비로소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고,실천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이책에서 언급한대로 논어는 배우고 익히는 책인듯 하다. 1편이 학이이며,배우고 익히고 정진하고 실천하기 위한 스승과 제자의 대화록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이책의 P113 에 이야기하는 배움을 토대로 덕목을 세워야 인간이 바로 지어진다 는 것은 배움을 갈고 익히고 실천하는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다. 쉽게 읽어 볼 수 있는 책이지만 ,지도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알지 못했던 골목도 같이 보여주는 책으로 이책은 마무리 하고 있다 기원전 551년의 사상을 현대에 적용해서 읽어 보기에는 다양한 안내서가 필요할 것 같다. 여러 안내를 보다보면 그 근원에 다다르고 싶어지지 않을까 한다. |
공자의 어록을 담은 《논어》는 대학시절 수강한 적이 있다.원서로 되어 있던 교재로 매우 난해하게 다가왔다.내 한문 실력이 낮았기 때문이었기에 수업을 따라가고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기를 쓰고 공부했던 기억이 새롭다.1학기 수업이었기에 많은 진도는 나가지 못했고 주요 부문만 발췌하여 강의했던 것이다.첫 구절은 잘 알려졌듯이 '배우고 때론 이를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學而時習之 不亦說呼,有朋自遠方來 不亦樂呼'이다.공자는 배움과 벗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모양이다.
공자의 제자 이를테면 안회(인),자로(용),자공(지)가 스승 공자에게 질문을 던지면 이에 답하는 형식의 《논어》는 물질 우선주의,형식을 탈피한 초실용주의를 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우선 공자가 강조했던 인(仁)과 례(禮)의 사상과 관념이 매우 희박해져 가고 있다.이를 두고 좋다,나쁘다고 일도양단할 수는 없겠지만,사람 사는 사회에서 필요한 것들이 경시되고 잊히려 한다는 점에서 안타깝기 그지없다.실용주의에 입각하되 마음 내면에는 인,의,예,지,용과 같은 덕목이 적절하게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그래야 사람만이 갖고 있는 고귀한 정신을 되살리면서 상생으로의 길목도 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공자가 말한 인,의,예,지,용이라는 덕목은 서로 이웃과 같이 연결되어 있다.그가 설파한 덕목을 하나로 모으면 덕(德)이라는 최상의 덕목을 만나게 된다.사람들과 대화와 소통의 장이 많아지고 리더자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인과 덕이라는 덕목이 몸에 배이게 해야 한다.그래서 지금보다 더 넓고 깊은 세상과의 조우를 통해 만인이 우러러보는 이상적인 지도자로 거듭나지 않을까 한다.또한 덕을 늘 갖춰 나가되 인,의,예,지,용과 같은 덕목과의 연결,조합을 잊어서는 안된다.
"덕(德)은 외롭지 아니하다.반드시 이웃이 있다." p-16 이인(里仁) 제4편
이 도서는 사이토다카시 저자가 논어의 주요 덕목과 부분을 발췌하여 해설해 놓았다.공자는 노나라의 정치가로 실패하자 제자들을 데리고 주변 세상을 배회하며 그의 제자들과 함께 주유했다. 제자들과의 배움과 학문에 대해 토론했던 내용들이 주가 되고 후세인들에게 삶의 큰 지표로 적합하다.그가 제자들에게 설파한 덕목은 합리성에 바탕을 둔 이념들이다.그것은 비신비성,실천성,유연성으로 현실성에 입각한 것들이 위주가 된다.그의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관직에 나가 일할 뜻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빗대어 질문하고 대답했던 내용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아름다운 보석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상자에 넣어 보관해두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후한 값을 쳐주는 사람을 찾아가 파는 것이 좋을까요?"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제값을 쳐서 나를 사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자한 제9편
공자의 말씀 가운데 늘 명심하고 처세의 표준으로 삼는 것이 중용이다.예를 들어 용이 부족하면 두려움이 많아질 것이고 반대로 많아지면 무모(無謨)해지고 난폭해질 것이다.겸양도 마찬가지다.이게 없으면 거만해지지만 과하면 비굴해지기 마련이다.그러한 면에서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지나치면 아니한 것만 못하다는 말로 중용의 잣대를 지키기는 현실에서 무척 어렵다.인간의 생각이나 감정,행동은 늘 자신의 입장과 잣대에 맞춰 행하는 속성이 있기에 중용을 지키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그래서 공자는 중용이 어렵거든 광인과 견인을 선택할 것을 조언한다.큰 뜻을 품고 적극적이며 과감하게 선을 지향하는 광인과,신중하지만 절조가 있고 선하지 않은 일은 결코 하지 않는 견인을 차선책으로 내놓았다.이러한 까닭에 중용의 덕을 최상이라고 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금과옥조와 같은 말들이 많다.속담,격언,금언,명언 등이 바로 그것이다. 공자의 말씀 가운데는 현실 속에서 처세의 덕목으로 적격이지 않을까 한다.인.의.예.지.용 나아가 덕이라는 덕목은 부단한 수양 속에서 조금씩 함양되어 간다고 생각한다.게다가 이러한 덕목은 배움을 토대로 덕목을 쌓아 나아가야 인간이라는 본래의 그릇으로 형상화될 것으로 기대한다.배움의 의의,학문에 대한 의욕을 북돋아주는 논어는 무모,독선,불합리성을 개선하여 보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나아가는 바로미터가 되어 주는데 손색이 없다.
"인간은 '시를 통해 선한 마음이 샘솟으며 '예'를 통해 안정을 찾고 '음악'을 통해 완성된다." -제8편 태백(泰伯)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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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고전 중 하나로, 간단하게 말하자면 공자의 어록이 담겨있는 책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논어>를 편하게 읽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너무 오래된 집필 시기와 그에 따른 용어의 문제, 통일 되지 않은 문체와 같은 문장의 중복 등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어>에는 수많은 ‘인생의 교훈’이 있기 때문에 읽지 않을 수 없는 점이 문제이다. 때문에 일본의 작가 사이토 다카시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내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이라는 책이다.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은 표지에 적혀있는 ‘살아 있는 자라면, 삶에 대해 고민하라’는 말에 충실하여,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의 답을 <논어>에서 찾아내는 책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자신이 논어에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리하고 있다. 총 다섯 개의 카테고리를 사용하여, 논어를 편집하고 정리하여 독자들이 좀 더 친근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한다. 책은 1장 몸 밖으로 흘러넘치는 지혜, 2장 거침없는 행위, 경계 없는 사고, 3장 피하지 말고 뛰어들어 즐겨라, 4장 쓸모 있는 인격, 5장 인간의 축을 바로 세워라, 로 구성되어 있으며, 또 다시 각 장마다 세부적으로 소제목을 달아 논어의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책은 단순히 이러이러한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이러한 뜻이다 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논어>의 전개방식과 공자의 사상을 함께 설명함과 동시에 현대에서 접할 수 있는 예를 들어 한층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1장 몸 밖으로 흘러넘치는 지혜에서는 ‘균형’의 중요성과 가르침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균형’의 중요성이란 한 가지의 덕목만을 갈고 닦아서는 안 되며, 아무리 중요한 덕목이라도 다른 덕목들과의 균형이 빠진다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가르침의 자세에 대해서는 자칫하면 ‘차별’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맞춤식’ 교육법을 설명하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차별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도 덧붙이고 있다.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단순히 배우기 위한 책인 줄 알았는데, 공자가 어떠한 마음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어 좋았다.
2장 거침없는 행위, 경계 없는 사고에서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인간과 사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그 속에서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타인의 요구와 자신실현의 사이에서도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하는지 안내한다. 이 장에서는 특히 쉽게 오해할 수 있는 문장, “그 지위에 있거나 직무를 담당하지 않는다면 그 일에 왈가왈부하지 마라” 같은 표현들이 나온다. 작가는 이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 책이 진행되면서 작가는 자주 <논어>의 각 부분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데, 오해하기 쉬운 문장들 역시 앞뒤의 맥락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해명한다.
3장 피하지 말고 뛰어들어 즐겨라 에서는 우리가 삶에 있어서 부딪힐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논어>의 합리성으로 문제를 풀어나간다. <논어>에 나타나있는 합리성을 크게 비신비성, 실천성, 유연성으로 나누어 그에 맞는 <논어>를 정리하고, 좀 더 친근하게 <논어>를 실천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장의 제목처럼 <논어> 속으로 뛰어들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느낌이 든다. 권위, 지식, 배움 등 현대인의 삶에 가깝고 친숙한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4장 쓸모 있는 인격은 말 그대로 ‘인격’에 대해 이야기한다. 쓸모 있는 인격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인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라는 질문을 가지고 읽는다면 좋을 것 같다. 공자는 쓸모 있는 인격을 만들 수 있는 길은 배움이라고 생각했다. 그 배움이 왜 필요한 것인지, 어떤 ‘마음’에서 기인한 것인지 설명하여 실천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마지막 장인 인간의 축을 바로 세워라 에서는 <논어>에서 뽑은 두 가지 키워드인 ‘예’와 ‘인’에 대해 설명한다. 이 두 가지 덕목을 가장 핵심으로 두고 <논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여러 가지의 예를 들어 잘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는 ‘예’와 ‘인’을 쉽게 풀어내고 있다. 마무리까지 책은 <논어>를 최대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들이 가득하다.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의 다섯 가지의 주제를 언뜻 보면 각 장의 제목이 쉽게 이해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안에 있는 책을 면면히 살펴본다면 작가가 말한 ‘연결의 힘’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각 장마다 넓은 범위의 주제를 설정하고 그 안에 비슷하지만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음으로 <논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논어>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을 토대로 <논어>를 읽게 된다면 좀 더 제대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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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언제나 제자들과 함께 있었고, 공자의 말들은 제자들과 주고받은 대화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던진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22-23p) 공자의 말씀과 가르침인 '논어'를 현대사회에 적용하여 새롭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든 책이다. 평소 어렵게만 생각했었는데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서 썼기 때문에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공자는 배우려는 자에게 차별 없이 대하고, 날카로운 사회비판 속에서 절묘한 균형감각을 지닌 그 시대의 현자였다. 예수, 소크라테스, 석가모니와 함께 인류의 스승으로 손색없는 인물로 꼽힐 만 하다. 공자와 제자가 나눈 대화 속에서 그의 사상과 함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고, 배울 점도 많았다. 또한 제자들을 대하는 태도에도 권위적이지 않고 스스럼이 없어서 서열을 따지거나 개방적인 태도를 취했다.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과 상황에 맞춘 말을 전했기에 제자를 아끼는 마음이 잘 드러난다. 제자에게 관심이 없다면 이런 대화가 오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공자가 죽음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라는데 이 고민은 과거부터 현재에 걸쳐 지속되어 온 고민 같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법을 알 수 있다면 삶과 죽음이 문제 되지 않을 텐데 말이다. 가장 궁극적인 목표이자 삶의 본질인 이 질문에 대해서 끊임없이 탐구하고 스스로에게 자문하며 사는 게 삶의 한 부분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의 끝부분에 부록으로 '제자들을 통해 읽는 <<논어>>'라는 제목으로 공자의 제자에 관한 글이 담겨있는데 이 책을 한층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한다. 논어를 다가가기 쉽게 해석하였고, 저자의 관점에서 이해한 책이기 때문에 '논어'를 통해 만나봤던 공자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논어를 읽으며 자신이 생각했던 관점과 비교해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묘미를 더할 것 같다. |
많은 사람이 알고 있고 관심가지는 책 논어, 논어는 논어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읽혀지지만 인문학이나 다른 여느 서적에 많이 인용되고 있으며, 논어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 논어가 읽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논어가 진리를 담고 있으면서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 삶 속에서 생겨나는 많은 문제들을 논어를 통해서 알 수 있으며,그 원인이 무엇인지 해결방법은 무엇인지 알아갈 수가 있다. |
논어는 주로 공자가 제자들에게 들려준 말을 글로 옮긴 것이다. 또한 일방적으로 공자가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던진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때문일까 논어를 읽다보면 그 속에 담긴 공자나 제자들의 인간상과 그 상황이 생생하게 살아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여기에 저자는 논어를 되풀이해서 읽으면 나 자신과 <논어>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구체적인 상황에서의 스승과 제자의 대화를 들려주고 있지만 그 대화속에서 느껴지는 깨달음은 보편적인 깨달음이 되어 현재 우리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조언으로 새겨진다. 이러한 점이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이 논어를 읽는 이유일 것이다. 이전에도 논어에 대한 책들을 읽어보았지만 어려워서 이해를 하는 것은 어느정도 포기했었는데, 이 책은 논어를 읽는 방법을 알려주는 저자의 해석이 덧붙여 있어 일기가 한결 쉬웠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스승'으로서의 논어에 대하여 많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는 정말 좋은 스승이었던 것 같다. 개개인의 성격과 기질에 맞추어 같은 질문에도 다른 대답을 해주는 스승이었고,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있다면 선입견없이 환경과 과거는 묻지않고 제자로 들였다. 그러하기에 공자의 제자가 3000명이었다는 말까지 생겼구나 싶었다. 뒤쪽으로는 공자의 대표적인 제자들, 안회, 자로, 자공, 염유란 사람들에 대해 설명하며 이들을 알고 논어를 읽을 때 훨씬 깊은 이해에 도다른다고 말하고 있다. 각각 다른 성격이지만 그에 맞는 가르침을 공자에게서 각각 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을 이해하고 논어를 읽으면 논어를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갈 수록 더욱 보편적인 가르침으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존경받는 논어. 내 생각의 중심이되어 삶이 흔들릴 때 나를 잡아주는 힘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혜가 필요할 때, 도전이 필요할 때, 위로가 필요할 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을 때 아마도 이 책을 꺼내보지 않을까 싶다. 한번읽고 두번읽고 세번읽을 때 다른 논어의 세계가 보인다는 논어를 나는 몇번이나 읽게 될지 과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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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논어》이다. 예전부터 여러 번 논어 공부에 힘을 기울였지만 중도포기하기 일쑤였다. 한자의 난해함은 둘째치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동의할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내용이 있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지속하면 지루함에 다른 책을 기웃거리게 된다. 결국 수학 공부할 때 맨 앞부분에 있었던 집합만 열심히 한 것처럼, 논어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있는 논어 책을 보면 앞부분 위주로 공부한 흔적이 남아있다. 요즘에는 원서를 보겠다는 욕심은 접어버리고, 그 대신 다양한 저자의 논어에 대한 글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이 책《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은 사이토 다카시의 저서라는 점에서 궁금증을 더했다. 사이토 다카시는 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인데, 문학, 역사, 철학, 교육심리학부터 비즈니스 대화법, 글쓰기, 처세술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는 방대한 지식과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삶의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스타일의 글을 선보여 세상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하면서도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지식을 전달하는 교수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일본 독자는 물론 한국 독자를 열광케 한 그의 책으로는《혼자 있는 시간의 힘》,《내가 공부하는 이유》,《독서력》등이 있다.
이 책은《논어》를 현대사회에 적용하여 새롭게 읽어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논어》는 지금부터 약 2,500년쯤 전에 살았던 중국의 공자라는 인물의 언행을 기록한 책입니다. 서양의《성서》에 필적할 만한 영향력을 지닌 동양 최대의 고전이지요.중국의 지식인들은 물론 동양의 많은 지식인들이 이 책을 읽었으며, 현대인들도 비록 직접 읽은 적은 없더라도 거기에 담긴 정신만큼은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논어》를 읽어보려고 할 때면 사실 조금은 마음에 부담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논어》의 문장 자체가 현대인들이 읽기에 다소 어렵기 때문입니다. (5쪽 시작하며 中)
사이토 다카시의 글은 어려운 것을 쉽게 다가오도록 하여 접근성을 좋게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공부하고 싶지만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는 독자의 마음을 막막한 데에서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한다. 자칫 지루함에 중도포기해버리는 사람들이 안타까워 논어라는 고전에서 어떤 점에 주목해서 읽으면 좋을지 소개해준다. 이 책에서 저는《논어》가 주는 생생한 느낌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주제를 선별했습니다. 관련된 어구도 가능한 한 많이 소개하려고 했는데, 어디까지나 이 책은 논어를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입니다.《논어》를 더 깊이 알고 싶으면 원문을 몇 번이든 반복해서 읽으면서 직접 그 자체의 세계로 들어가 보길 바랍니다. (7쪽)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된다. 1장 '몸밖으로 흘러넘치는 지혜', 2장 '거침없는 행위, 경계 없는 사고', 3장 '피하지 말고 뛰어들어 즐겨라', 4장 '쓸모 있는 인격', 5장 '인간의 축을 바로 세워라'로 나뉘고, 부록으로 '제자들을 통해 읽는《논어》'가 수록되어 있다. 자신이 직접《논어》를 읽으며 깨달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생동감이 있고 쉽게 논어에 다가갈 수 있다. 그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자칫 단편적이고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는 듯 보이는《논어》에서 '연결의 힘'을 발견하게 된다.
《논어》뿐만 아니라 책을 읽을 때에는 그 내용이 우리에게 어떻게 스며들도록 할지가 중요한 문제이다. 그동안 논어에 나오는 글자를 의미 파악만 하고 넘어갔다면, 이 책을 읽으며 다른 방식의 독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이 책은 무질서한 듯한 내용들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드는 문장에서, 어떻게 방향을 잡고 이해할지 방향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이 책을 순서대로 읽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차례에 나오는 소제목을 찬찬히 살펴본 후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해지는 부분을 찾아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은 논어의 길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서이다. 사이토 다카시의 시선으로 본 논어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한 사람, 논어를 구체적으로 읽기 전에 입문서가 필요한 사람, 왜 논어를 읽어야할지 모르겠는 사람 등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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