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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없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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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는 어디에 붙어있을까 독도는 그리고 그 상황은 어떨까 대통령이 제주도를 다른나라에 넘겨준다면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청와대는 어느 도시에 있을까 그럼 간도는 어디에 붙어 있고 어떻게 생겼을까 지도의 어디쯤에 존재할까 간도가 우리땅이라고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될까 청와대 국민청원에 억울한 사연이나 독도문제가 올라오면 벌떼같이 달려들어도 간도문제가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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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는 어디에 붙어있을까 독도는 그리고 그 상황은 어떨까



대통령이 제주도를 다른나라에 넘겨준다면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청와대는 어느 도시에 있을까 그럼 간도는 어디에 붙어 있고 어떻게 생겼을까



지도의 어디쯤에 존재할까 간도가 우리땅이라고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될까



청와대 국민청원에 억울한 사연이나 독도문제가 올라오면 벌떼같이 달려들어도



간도문제가 올라오면 '너나 잘하세요'다.



우리는 주인의식이 없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있다.



언제 뉴스에 조선족학교에서 한글교육을 못시키게한다는 보도를 보고 그런가보다한다.



일제시대 국어교육을 금지시킨거에 대해선 자자손손 분개한다.



만약 일본에 있는 한국학교에서 한국어 가르치지 말라고 일본정부에서



지시를했다면 바로 일어날것이다. 또 아베총리가 대통령수행단을 두들겨팼다면



전국민이 당장 달려갈 것이다.



중국에서 두들겨팬다 조용하다 한국어 못가르치게한다 조용하다.



중국은 한국의 부모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소중화사상에 쩔어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 한반도를 집어삼키려 한발한발 다가서도 모르는 우린



점점 익어가는 냄비속 개구리들이다.



미군이 철수하면 한국은 공산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이 된다.



이미 북한은 중국의 젖병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능력을 상실했다.



1962년 간도를 둘러싼 북한과 중국사이의 비밀협상인 조중변계조약이 있었다.



조종변계조약은 유엔의 등록은 물론 공식적인 발표도 하지 않았다.



1962년 한반도 38선 이북의 북한정권은 맹방관계인 중국과 간도문제를



협상하여 중국영토로 인정했다.



1962년 조중변계조약은 1909년 간도협약을 북한이 그대로 따른것으로



조중변계조약은 비밀리에체결되어 한국이 조약체결 상황을 알지 못했으므로



조중간의 국경협정이 전적으로 합법적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 발단은 1905년 일본이 대륙정책의 현안이었던 조선합병과 만주에 대한



권익사업의 차질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철도부설권과 석탄채굴권을



확보하는 교환조건으로 간도를 중국영토로 인정하고 말았다.



1905년 선후장정은 양국정부로부터 조약권을 위임받은 정식조약이



아니었으므로 법적효력을 갖지못하는 임시조약에 불과했다.



간도가 한국땅이라는 근거는 17세기부터 이곳은 봉금지역이었고 게다가



조선인들이 중국인들보다 먼저 간도지역을 실효적으로 점유하였으므로



영토취득 요건에 부합하며 현행국제법의 중간선개념으로 본다해도 토문강



이남까지의 지역은 조선영토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1712년 정계비가 되고 토문강을 경계한다고 해석된다.



백두산정계비에는 [대청]비로서 [동이토문],[서위압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대청]국이 세운비라는 의미이다.



백두산정계비의 기록대로 [동이토문,서위압록]으로 국경선을 정한다면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송화강-흑룡강-태평양 동안을 잇는선이



한중양국의 국경선이된다.



현재 중국영토의 60%는 남의 나라땅으로 티벳,내몽골,간도,신장위구르,영화회족등



강압적인 식민통치를 이어가고 있다.



유고사태,,팔레스타인문제,르완다등 여러곳에서 분쟁이 일어난다.



이유는 하나다 민족주의 중국에선 지금 민족주의가 한참이다.



정부에서도 부채질하고 있다.



지금의 중국이 강압지배하고 있는 식민지는 중국것이라는 하나의 중국을 위하여다.



그 시작은 어디일까?



1989년 4월 15일 후야오총서기의 사망으로 시작된 민주화운동은 계엄군의



천안문광장 진압으로 한달여만에 끝났다.



'관다오' - 정부관료와 기업가 or 상인등이 유착하여 전매차익을 나누어 먹는다는 말로



여기엔 태자당이라는 고위 당정간부의 자제들도 끼어있었다.



국제적으로는 소련,폴란드,헝가리에서 진행된 민주적인 정치개혁과 국내적으로는



부패에 대한 국민의 불만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1989년 5월 13일부터 학생지도자의 주도로 천안문광장에서 1,000명의 학생이



단식에 돌입하였고 이것이 끝내 유혈진압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1989년 11월 동독의 베를린장벽의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공산당이 붕괴하는데



폴란드는 10년,헝가리는 10개월,동독은 10주,체코는 10일 루마니아는 10시간이



걸렸을뿐이다.



공산주의로 뭉쳐서 개방해야되는데 이것이 민주화운동인 천안문사태로 난관에



처한 공산당은 국민의 단결을 위한 접착제로 민족주의를 도입하여



국민의 단결을 유도한 것이 지금의 중화민족주의로 연결된 것이고 하나의



중국을 외치는 근본원인이 된 것이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단체는 조직의 합법화를 요구하는데 그렇게되면 중국에도



'반대파'가 만들어지고 공산당을 반대할 기초가 놓이게된다.



등소평은 사회주의의 본질은 생산력 해방이고,생산력 발전이며 착취를



소멸하고 양극화를 해소하며,최종적으로 공동으로 부유함에 도달하는거라하였다.



경제가 장기간 동안 곤경에 빠지면 정치는 안정될 수 없고 사회도 안정될 수 없다.



민주화운동초기에는 교내학습모임에서 100만명이 참여하는 시민운동으로



확장하였으나 학생지도부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무엇보다 운동의 주도세력인 학생과 지식인이 엘리트주의 혹은 전통적인



사대부의식이 매우강했다.



그래서 이들은 노동자와 자영업자등 다른 사회계층과 적극적으로 연대하려는



노력도 부족했다.



그 결과 정부는 별 어려움 없이 학생과 지식인을 고립시키는데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무력집압할 수 있었고 생각보다 빨리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또한 중국내에서는 소련이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에서 발견되는 시민사회가



부족했다.



노동조합등 군중단체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노동자는 공산당의 강한 통제 아래 놓이게 되었다.



농민도 마찬가지였다.



공산당은 농민의 지지와 참여를 통해 혁명에 성공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는데,



노동자의 노동조합과 같은 농민대중조직은 없었다.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농민이 민주화운동에 집단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통로나 방법은 많지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1989년의 민주화 운동은 대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나설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운동의 주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운동은 오로지 학생만의 운동이었다.



그런데 학생이 민주화 운동을 성공적으로 주도할 수는 없다.



한국등 제3의 민주화물결을 경험한 국가들은 학생이 운동의 촉발과 추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전체상황을 파악하여 활동계획을 수립하고,집권세력과



민주제도의 도입을 둘러싼 협상을 벌이는등의 역할은 정치조직과 사회단체의



몫인데 중국에는 바로 이것이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중국정부는 국제적으로는 소련및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국내적으로는 천안문사건의 영향으로 설득력이 매우 약화된 사회주의 이념을



대신하여 국민통합을 외부인자로 돌리기 위해 민족주의가 공산당의 통이념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중변계조약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밀공개로하고



있어 조약의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조중변계조약'은 비밀조약으로서



양국간에는 인정되나 국제법상으로는 자격이 미흡하고 국제법상으로는



효력을 갖지 못하므로 통일 한국이 그대로 계승할 수 없는 조약이다.



북한도 중국에 조중변계조약을 체결한 것은 '간도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미해결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던 것이다.



남한에선 어땠을까 박정희정부는 남북이 통일된 이후 간도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하여



간도문제를 조사하는등 통일한국에 대비하고 있었으나 김영산대통령이 모두 폐기했고



반기문 외교부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간도가 우리땅임을 주장하는 입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했지만 노무현정부는 중국정부에 대해 역사인식에



있어서는 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동의를해 한국의 간도문제를



더욱 불리하게 만들었다.



민족주의라는 접착제를 이용해 국민의 단결을 이끌려는 중국정부를



상대로 간도문제를 해결해야하는 과제를 남한정부는 안고 있다.



간도협약은 침략국가였던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체결된 조약이었으므로 무효인



것이다.



방법은 하나 흡수될 경우 흡수된 국가의 조약은 종료되며 흡수한 국가의



조약만이 흡수된 국가의 영역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참고서적



톈안먼사건

대쥬신을 찾아서1,2

동아시아영토분쟁의 패러다임

국운풍수

욕망하는 지도

실크로드의 부활
나는 왜 사라지고 있을까
마오/장륭
이슬람의 눈으로 본세계사
석유의 종말
일본사/구태훈
풍수화/김용운
팍스 몽골리카와고려
중국의 음식문화
와다하루끼의 북한현대사
이슬람/이희수
얼굴,한국인의 낯
드라비다어와 한국어의 비교연구
우리가 배운 백제는 가짜다
우리가 배운 고조선은 가짜다
반중국역사
한자의 역설
진순신이야기중국사
한국어는신라어일본어는백제어
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
흉노제국이야기
종이로 사라지는 숲이야기
훈민정음과 파스파문자
딱정벌레/박해철
달라이라마와 함께 지낸 20년
호치민평전
거란제국사연구
청사
몽골제국의탄생
패권의 비밀
한국,번영의 길
베트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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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21.07.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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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5 세계4대 발명품
"P195 세계4대 발명품" 내용보기
유대자본의 세계정복을 다룬 ㅡ가난한 아빠 부자 아들 중국판 보는 느낌입니다 훌륭하게 잘쓰셨습니다. 제가 점수를 박하게 드린 이유는 같은 한국인으로써 중국의 영토 침공에 대한 위기감을 갖자는 의미에서 그랬습니다 딴 뜻은 없습니다.. 좋은 글 잘봤습니다. 제목 :세계4대 발명품 세계4대 발명품 기원을 보자. 화약은 중국에서 먼지와 오줌을 섞은게 최초의 기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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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자본의 세계정복을 다룬 ㅡ가난한 아빠 부자 아들

중국판 보는 느낌입니다 훌륭하게 잘쓰셨습니다.

제가 점수를 박하게 드린 이유는 같은 한국인으로써 중국의 영토 침공에 대한

위기감을 갖자는 의미에서 그랬습니다 딴 뜻은 없습니다..

좋은 글 잘봤습니다.


제목 :세계4대 발명품

세계4대 발명품 기원을 보자.

화약은 중국에서 먼지와 오줌을 섞은게 최초의 기원이었다.


나침반은 중국이 정설이나 신라침반에서 유래했다는게 요즘 추세이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때

양국간 분쟁도 있었다.


중국사신이 신라의 '자'에서 지남철을 가져갔다는 삼국사기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아라비아를 통해 영국으로 갔다가 거기서 개량되어 다시 아라비아로 수출이 돼 오늘날의


나침반이 되었다.


인쇄술 우리 조상들은 탑을 만들때 층마다 부장품을 끼워 넣었다.

해방후 도굴꾼들이 고분을 뒤지다 석탑으로 눈을 돌렸다.



예전부터 불교엔 층과층 사이에 유물을 넣어두는 관습이 있었다.


도굴꾼들이 층사이에 있는 유물을 찾기위해 불국사 석가탑을 밤에 기계로 들어올리다.


날이 밝자 달아나고 아침에 탑이 기우뚱한걸 수상하게 본 스님의 신고로 해체작업중 나온게

세계최초의 목판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고 부시대통령이 방한했을때 노무현대통령이



자랑한 유물이고 1989년 유네스코에서 세계최초의 목판인쇄본이라고 인정까지받았다.


2006년 용산국립중앙박물관 북한유물전에서 북한금속활자 한개가 전시되었는데 세계최초금속



활자본인데 아직도 우리나라 석학들중엔 중국이 세계최초라고 떠들고 다니시는 분들이 있는데



중.고등학교국사교과서에 다 있는 내용인데 한심하다.


종이의 기원을 보자 내가 한국 사람이기에 한국입장에서 쓴다.

중국의 종이기술은 후한의 환관인 채륜으로 알려졌으나 그는 궁정에 종이를 소개한 사람일 뿐이고


그 당시보다 170년 앞서 제작된 둔황(돌궐)에서 발견된 아마로 만든 종이가 발견되었고 거기에는



지금도 사용되는 한자가 적혀있다.



인도유럽어인 토카라어가 투르크스탄 (옛돌궐지역, 현중국신장-위구르자치주) 불교동굴



수도원의 벽뒤쪽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중국 투르키스탄(돌궐.신장-위구르자치주)은 현존하는 인도,유렵어의 동쪽 끝부분이다.

간쑤-신장사막내에 있는 실크로드를 따라 펼쳐진 옛 돌궐족의 오아시스 도시인 둔황을 중국이



처음 지배하게 된 건 BC206년 기원전 2세기말경이었다.


종이의 발명지가 중국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기원전 3세기 셀룰로오스 섬유로 종이를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인도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종이 제작방법이 전승되었는데 영국이 인도를 식민통치하면서


이 전통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 독립의 분수령이 된 1938년 하리푸라 의회에서 종이 제작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명맥이 끊긴 제지술의 불씨를 살리는데 기여했다.


이 기술은 아마 네팔로부터 전해졌을 것이다. 네팔에서는 서향나무 껍질로 만든 매우 섬세한


수제품인 로트카종이라 지금도 제작되고 있다.

나무줄기로 종이를 만드는건 최근의 일로 그 역사는 150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후로 모든 것이 변했다 산업혁명은 수공업 수준이던제지술을 어엿한 산업으로 변모시켰다.

종이가 서양에 전파된 계기는 731년 제5차 탈레스전쟁때 고선지가 항복한 아바스조의 칼리프를


잔인하게 학살해 그 지역 왕국들의 분노를 사 패배했고 그 때 제지기술을 지닌 중국인들이 생포되어


사마르칸트(우즈베키스탄)로 끌려갔다.


이것이 제지술이 서양으로 전파된 기원이다.


최초의 문자는 기원전 5,000년 이라크지역 수메르 점토문자로 시작해 이 설형문자는 서남아시아


여러지역으로 퍼져나가 알파벳의 기원이 되었다.


학창시절 아라비아숫자라고 배웠다 이건 인도숫자를 아라비아사람들이 십자군원정이후 유럽으로



전파한게 그 동기고 지금도 진실을 아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면 아라비아숫자라고 알고 있다.



근대 동양문화의 중심은 중국이었고 서양사람들이 제일많이 찾은 곳도 중국이다.



여기서 흔히 사용하는게 세계4대 발명품이기에 서양에서 그렇게 가르쳤고 그것이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로 퍼져나갔다.



인도문자는 그래도 강대국이기에 진실을 알고자하는 몇몇 사람들이 알고는 있지만



나침반같은 경우에는 역사기록으로만 남아있어 진실을 전할 방법이없다.



또 인쇄술의 경우 (한국사상식 바로잡기,한국문화재수난사)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직지심경



금속활자같은 증거물이 있고 유네스코에서 인정까지 받았지만 워낙에 널리퍼져있는 잘못된 상식이라



인쇄술의 기원인 우리나라에서도 잘못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유물반환때도 직지심경은 뺐다는 이야기가 있지않은가 우리문화재를 소중히 여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자신의 정신을 똑바로 갖는것도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아닐까Re-born 888






제목 : 드라마 ㅡ조선구마사


요즘 중국자본이다 아니다 표현의 자유다



동북공정이다 말이 많다.



제작진의 논리가 정당해 보이지만 중국자본이라는



사람들의 논리를 우선 살펴보자.



참고로 난 조선구마사 시청한적도 없고 단지



3월24일 뉴스만 보았을뿐이다.



우선 동북공정이 뭘까 이성계가 명나라에 헌납한



요동(랴오닝성)을 자기것으로 굳히고 연변조선족자치주



조선인학교에서 한국어를 못가르치게해 역사와 언어를



잃은 민족은 주변민족에 흡수된다는(여진족) 원칙에 따라



조선족을 중국인으로 만들고 1909년 간도협약을 파기못하게



한국정가를 계속 부추기고 있는것이 동북공정의 전반부다.



중국은 북한에 연료의3/4과 교역량의90%를 제공하는 것도



동북공정의 2단계와 관련이 있다 문제는 땅이다.



미사일기술을 수출해 세계의 이목을 북한에 집중시키는 동안



중국은 뭐하고 있을까



1913년 독립한 티벳(책:중국의 거대한 기차)을 6.25때 세계의



이목이 한국에 집중된 틈을타 1950년 강제합병해 지금까지



식민지로 삼고 재미보고 있는것처럼 미얀마,홍콩에서도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한술더떠 동북공정이 자신의 목에 칼을 대는 논리란걸



자각하지못한 일본은 요동다음 간도 북한 남한 일본 먹고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중국의 의도를 과소평가한채



중국이 한국을 때릴때마다(김치,한글,태권도,일본해ㅡ



2008올림픽폐막식,판소리,단군,이어도,간도) 모두



중국것 ,순망치한(이와잇몸)인줄도 모르고 좋아라한다.



중국은 지금 동북아시아에서 미군사력에 앞서기 위해



항공모함만해도 4대나 완성시켰다.



파시즘이 뭘까 민족주의 더하기 자본주의,2차대전을



일으킨 이탈리아와 독일의 공통점이 하나 더있다 팽창주의.



예로 지금의 한중교류처럼 그 시절에도 파시즘국가들은



주변국가들과 민간교류가 활발했다 38선같은 국경은 없었다.



지금의 중국이 그시절 파시즘국가의 전형인데 우린 교류가



자유로우니 민주주의국가라고 착각한다.



중국은 지금 티벳,신장,내몽골,간도,영화회족(황하에서 천산까지)



홍콩,북한,한국이 타겟순서이지만 지금 한국은 중국에서 두들겨



맞고와도 싱글벙글하는 문재인 반미친중정권만 버티고 있다.



민주주의는 경제발전없이는 불가능하다 이건 박정희대통령과



김대중대통령의 공통점이다.(박정희와 김대중이 꿈꾸던 나라)



조선구마사제작진의 말대로 순수 국산자본이겠지만



대장금처럼 중국사신에게 임금을 비롯한 모든 대신들이 굽신대는



그런 시류에 편승한 문화 이젠 그만둘때도 되지않았을까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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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쥬신을 찾아서 꼭 읽어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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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만약 권율장군이 역모의 수괴였다면? 학교에서 배운다. 소중화주의 한국은 작은 중국이라는 뜻이다. 중국은 여진,조선,일본을 오랑캐라 말하며 한국은 여진,일본을 오랑캐라 부른다. 권율장군은 충신이고 영웅이다. 소설을 한 번 써보자. 권율장군이 어디 권씨인지는 모르겠지만 철원권씨라고 가정해본다. 도요토미는 임진왜란전 조선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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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만약 권율장군이 역모의 수괴였다면?


학교에서 배운다. 소중화주의 한국은 작은 중국이라는 뜻이다.



중국은 여진,조선,일본을 오랑캐라 말하며 한국은 여진,일본을 오랑캐라 부른다.



권율장군은 충신이고 영웅이다. 소설을 한 번 써보자.



권율장군이 어디 권씨인지는 모르겠지만 철원권씨라고 가정해본다.



도요토미는 임진왜란전 조선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걸어 시비를 건다.



연산군때까지 일본에 공녀를 바쳤던 조선은 중종때 자주개혁을 선언하며 이를 단절시키나



다시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은 이를 요구한다.



10만양병설(한국사상식 바로잡기)은 후대에 꾸며낸 허구이나 만일 실미도처럼 잘 훈련된



군대를 권율에게 맡기고 총지휘권을 주어 정벌하라 명했는데 낙동강쯤가다 지금은



농번기라 안되고 비가 많이와 화살이 느슨해지니 안되고 북쪽에 있는 나라가 남쪽에



있는 나라를 치는건 예의가 아니다라며 다시 회군해 개혁을 하고 있는 조선왕조를



쓰러뜨리고 일본에 사신을 보내 국명을 권율의 고향인 철원으로 하오리까 가야라



하오리까 여쭌다.



이에 고무된 도요토미는 가야란 이름이 아름다우니 (일본고대사서중 하나에 가야는



임라일본부 즉 일본의 식민지였다란 허구적이야기가 있다) 국명을 가야라하거라.



그후 가야의 태조 권율은 자신의 역모를 감추기 위해 소왜국주의사상을 내세워



조선은 작은 일본이라 칭하며 일본은 아버지의 나라라하여 큰나라에 빌붙여사는



사상인 사대주의로 일관한다 동국여지승람의 동국도 중국의 동쪽에 붙어있는



중국의 속국이란 뜻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칠 수는 없다. 그럼 권율(이성계)이 낙동강(위화도)에서 쿠데타를



일으킨게 정당화된다.



그리고 다시 공녀제도를 만들어 매번 공녀를 뽑아 왜국에 상납하고 그 반작용으로



조혼제도가 가야시절 내내 자리를 잡는다.



이게 오랫동안 정착되어 1909년 민적법에(노컷 조선왕조실록) 의해 성씨가 없는



노비나 백정,망나니,재주꾼들은 기왕이면 왕족의 성씨를 갖자며 철원권씨나 김해김씨를



가져가고 이들의 후손중 성공한 사람들은 진짜족보를 사서 종친회에 나온다.



한술 더떠 어떤 이들은 진짜임을 강조하고자 권씨가 아니라 궐씨라고 고쳐부르기도 한다.



몽고는 세계를 휘두른 국가다 원도 몽고족이 세웠고 러시아인도 한꺼풀 벗겨내면 속은



몽고인(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인도 무굴왕조,타타르까지 전세계를 휩쓸었다 황인종을 몽골리안이라 부르는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



고려도 세계속에 그것도 몽고 바로 옆에 있다 모든 나라가 복속해야했듯 고려도



황제에서 왕으로 격하되고 앞에 충성충자를 왕에게 붙였으며 공녀를 바쳐야했다



이건 고려만의 일이 아니라 세계적인 일이었다.



명은 원을 물리치고 중원만 통일한다 그리고 고려가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건다.



물론 여기엔 공녀도 포함된다. 고려 공녀는 공민왕이 등극함과 동시에 없앤제도다.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까지 영토를 넓힌 고려는 전군의 총지휘권을 이성계에게



맡기고 명을 치라 명한다.



고려는 문무를 겸비한 국가로 무인기질이 강했고 여러 전란을 거듭하면서 실전경험이



풍부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전권을 갖게된 이성계장군은 위화도에서 우기가 오길 기다리다 지금은 비가 많이와



화살이 느슨해져 안되고 농번기라 안되고 작은 나라가 큰나라를 치는건 예의가 아니라며



창끝이 겨눈 방향을 반대로 돌린후 고려를 무너뜨리고 고려에 싸움을 건 적국의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 새로 생긴 왕조의 국명을 이성계의 고향인 화양이라고 하오리까



조선이라고 하오리까 묻고 명태조 주원장은 조선이라는 이름이 아름다우니 (고대 조선은



중국이 지배했다고 중국은 아직까지 우기고 있다) 조선이라고 하거라라고 명한다.



이 때 고려의 대신 이인임이 이성계의 선조라고 자기네 사서에 기록해 후손들이 조선에



대한 외교적 히든카드(조선도 몰랐던 조선)로 써먹도록 조치하고 이를 임진왜란 직전



오키나와 상인들에게 전운이 감돈다는 정보(풍수화/김용운)를 입수한 명의 관리들이



이 히든카드를 써먹는다.



홍역관과 병부상서 석성의 이야기는 얼굴마담일뿐이다.



공녀를 보자 이성계는 즉위하자마자 공녀제도를 다시 부활시킨다.



그리고 조혼의 풍숩이 조선내내 이어지지만 지금의 교과서엔 조선의 공녀이야기나



조선시대 조혼이야기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온통 고려공녀 충성충자 고려임금 이야기뿐이다.



우리 조상들도 항상 그랬으니까 조선이 중국을 사대주의로 떠받들고 사대로 일관하는건



당연하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래야 자기들의 죄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민왕이 개척한 갈라전(동북3성과 함경도일대)도 윤관의 동북9성도 흥남부두일대로



왜곡되어있거나 함경도로 국한되고 교과서엔 온통 세종대왕의 4군6진이야기뿐이다.



태종 이방원은 고려군관 출신이고 세종의 대마도 정벌도 사실은 태종의 작품이다.



다시 말해 고려의 무인기풍이 세종때까지는 남아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군권은 모두 임금에게 집중시키는 체제를 만들고 공맹사상만을 강조하는



문치시스템에만 역점을두어 결국엔 임진왜란과 36년국치를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다.



몽골제국시절 세계가 몽고에 머리를 조아리며 공녀를 바쳤지만 명나라시절 세계에서



명에 머리를 조아리며 공녀를 바친건 조선뿐이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진짜 전주이씨임을 자랑하기 위해 자신은 이씨가 아니고



리씨라고 주민등록증에 달고다닌다.



악인열전을 보자 히틀러가 있다 600만명의 유대인을 독가스로 살해한 인물 독가스를



누가 나치에게 팔았는가 유대인재벌 로스차일드가문 그 후손들중 일부와 관계자들은



AP,UPI,로이터,워싱턴포스트,헐리우드 ,뉴욕타임스,뉴욕포스트등등 모두 그들 것이다.



위인전을 보자 이성계.나폴레옹(지식의 미술관) 모두 역모의 수괴인데 그 잔당들이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너무 작아도 안보이지만 너무 커도 안보인다.



나폴레옹은 남의 나라 사람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역모의 수괴인 이성계 이제 그만



이완용 같은 반열인 악인열전에 올릴때도 되지 않았을까











참고책



대쥬신을 찾아서

팍스 몽골리카와 고려

조선시대 궁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전통생태와 풍수지리

욕망하는 지도

노컨,조선왕조실록

가난한 아빠 부자 아들

한국사상식 바로잡기

풍수화



2019.5.28


제목 : 동해,일본해&성폭력범죄자의 특징

요즘엔 전자발찌를 차거나 화학적거세를 한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처벌수위는 비슷하다.



그런데 이들은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5분내지10분의 쾌락을 위하여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짖밟아버리는 범죄.



5~10분의 자신의 쾌락 떄문에 , 이게 성폭력을 즐기는 이유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페탱원수의 비시정부이다.(먼나라 이웃나라)



페탱원수는 1차대전의 영웅이었고 대통령가지 되었다가 2차대전떄 프랑스 온천도시 .



비시에 나치가 조종하는 비시정부의 수반이 되어 프랑스 국토의 1/3을 다스리다 전쟁이



끝난후 처벌받는다.



독일이 프랑스를 지배한건 3~4년이고 프랑스가 독일에게 문화적 혜택을 받은건 없어도



빼앗기거나 당한건 많다.



이성계를 보자 한족 부흥운동인 백련교도의 난으로 홍건적이 쳐들어왔을때 무찌르고



60년간의 일본남북조시대에 남조의 패잔병들이 남원쪽으로 진군했을때 황산에서



대파시켜 전쟁영웅이 된다.



여러대째 다루가치집안이었던 그는 (몽골은 왜 고려를 멸망시키지 않았나) 명나라 토벌을



명받고 위화도까지 갔다 쿠데타를 일으켜 자주국인 고려를 멸망시키고 만주와 요동이



우리땅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들을 모두 죽이거나 귀향보내고(오백년 도읍지를~)



명나라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 나라이름을 지어달라고 애원한다.



조선은 500년내내 임금의 권한을 수행하려면 중국황제의 허락을 받아야했고 세자를



지명하려해도 그 지명이 유효하려면 중국사신의 허락이 있어야 그 지명이 유효한



중국의 유일한 식민지였다.(대장금)



500년동안 중국만 바라보며 사대주의 쇄국을 하던 조선은 근대 서양문물을 1543년부터



받아들인 일본에 의해 강화도조약이 체결되고 조선의 이권을 먹으려면 먼저



식민지관계를 청산해야되는걸 알기에 강화도조약 1조에 '조선은 독립국'이란걸 명시해



조선을 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시킨다.



우리는 36년이라 배웠고 지금은 35년이라 가르치지만 사실 50년이 맞고 이건



이토 히로부미의 계략이었다.



3국간섭을 보자 중국땅을 점령했지만 서양세력이 간섭해 할양받을 땅을 포기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비스마르크를 보자 나폴레옹3세와 전쟁후 파리를 함락시키고 배상금을 요구하자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을 대신 가지라고 했을때 그는 다른 나라들이 간섭할 걸



우려해 돈으로 달라고 한다. (비스마르크평전)



만일 2차대전후 미국이 전쟁배상금을 일본정부에 요구했다고치자 그리고 대신



조선을 가지라고 했다면 우린 기분이 어떨까 그런데도 우리는 프랑스를 찬양하면서



우리와 같은 역사를 안고 있는 월남은 무시한다.(호치민평전)



일본이 조선과 전쟁을 안한 두번째 이유는 군사력도 얼마안되고 아직도 활이



주력인 나라 학교도 지어주고 철길과 도로도 놔주어 조선사람들은 좋아하나 나중엔



조선을 삼키기 위한 포석인걸 안중근의사등 몇몇분만 빼놓곤 모른다. (시일야방석대곡)



그래서 1909년에 하얼삔에서 그 일이 있었던 것이다.



이토의 자제 요청으로 조선을 삼키지 못한 일본은 바로 다음해 조선을 병합한다.



500년동안의 식민지배체제,쇄국정책을 이성계가 만들었고 그를 주도한 인물이 그의 군사(참모)



정도전인데 지금 이들은 자신들의 계략에 세뇌된 국민들에 의해 영웅이 되어 있고



너도나도 전주이씨라 자랑한다.



세계의 노예제도가 없어진건 1860~1870년 사이이고 일본도 1872년에 노예제도를 없앴지만



워낙 강고한 중국은 1903년에야 없애고 우리는 일본의 강압에 의해 제일 늦은 1909년에야



없앨 수가 있었다. (노컷조선왕조실록,청사)



누가 그런다 프랑스는 반민족 처벌했는데 우린 못했다고 그들은 3~4년 동안 우리는



50년 가까이 지배를 받았는데 상황이 같은가 앞이 안보이는 상황인데 같은가 해방후



빨치산들이(권오석) 남한을 전복하려고 총파업,도로,철도 운행중단시키는데 이걸 막으려면



남로당같은 공산당색출 능력이 있는 집단이 친일경찰뿐인데(한국보수세력연구) 상황이 같은가



우리의 근대문물은 거의 100% 일본이라는 필터를 거쳐 들어왔다.(돈가스의 탄생)



교육,문화,법률,의료,과학 혈액형별성격테스트도 한국과 일본뿐이다.(헌혈,사랑을 만나다)



김구선생님께서 해방후 말씀하신다.



마지막까지 내곁을 지킨 사람은 넷뿐이었다고.....



지금은 보는 사람마다 자기가 거기에 속한단다.



이완용은 독립협회 회장이었고 갖은 수난을 당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지만



노후생활의 안락함을 위해 변절한다.(한국분,한국인,한국놈)



유신반대 독재반대를 하다 사형선고를 받은 이철은 노후생활의 안락함을 위해 KTX승무원을



등친후 먹튀한다.(그대들을 희망의 이름으로 기억하리라:KTX여승무원문집)



그리고 우린 어떤 범죄자에겐 감투를 어떤 범죄자에게 전자발찌를 채운다.



다시 말해 조선은 중국이라는 다국적기업의 현지인 사장체제였고 36년식민지는



일본이라는 다국적기업의 본사파견제 사장체제였다는 이야기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보자 개막식때 천장철도가 잠시 나온다. 이건 티벳에 대한 식민지배



말뚝박기인데 우린 그런가보다한다.(중국의 거대한 기차)



폐막식때 보자 동해를 일본해라 표기하고 있다.



중국이 일본에 감정이 더 많을까 한국에 감정이 더 많을까



이건 이이제이,원외근공의 오랑캐토벌 수법이다.





한족은 강대국 요나라를 물리치기 위해 멀리 있는 오랑캐인 금나라를 이용해



거란의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여진이 세운 금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후일 원나라를 세운



몽골을 이용해 금나라를 멸망시킨다.



멀리 있는 오랑캐를 시켜 가까이 있는 오랑캐를 멸망시키는 원외근공전략 폐막식때



일본해가 바로 그래서 나온 것이다.



지금 양국에게 가장 급한건 서로때리기 서로방어하기가 아니라 전권을 위임받은 양국의



대표학자 몇몇이 모여 양국국민이 인정할 수 있는 동해,일본해의 새로운 대안명칭을 찾는 것이다.



지금 양국은 명칭문제로 막대한 국력을 외교전으로 소모하고 있고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중국은 어부지리한다.



몽고,거란,여진,한국,일본,오끼나와까지 모두 알타이어족인 흉노유목민의 후손들이다.



(대쥬신을 찾아서1,2, 한국어는 신라어 일본어는 백제어,성서의 뿌리 p63,254)



오랑캐끼리 싸움붙이는 중국의 이이제이전법에 이젠 그만 놀아나자 가장 좋은예가 임진왜란이다.(풍수화/김용운)



중국은 지금 칭기즈칸과 을지문덕을 중국인이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동북공정 고구려사)



만주와 요동이 한국땅이란걸 한국인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우리는 중국을 어버이로



섬겨야한다는 소중화주의를 자신들의 6년간의 치부를 위해 자손들에게 심어주고



우리는 오랑캐가 아니라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몇몇 동이족 반역자들의 논리에



이제는 그만 놀아나자



성폭력범이 5~10분의 쾌락을 위해 한 사람의 일생을 망친것과 이성계와 정도전 일파가



6년간의 왕노릇을 해보는 쾌락을 만끽하기 위해 나라를 500년간 중국의 식민지배체제로



만든 역사의 과오에서 이제는 벗어나야한다.



시간나시면 단양 도담삼봉에 한 번 가보세요



여기 한양의 풍수설계자이며 이성계의 오른팔인 정도전의 용비어천가가 있습니다.





Re-born 888

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21.07.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