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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자분의 도자기 여행 시리즈 4권을 주욱 읽고 있다. 첫권인 동유럽편은 종이질과 인쇄 상태가 안 좋아 아쉬웠는데 이번 책은 그런 점이 없다. 화려한 일본 채색자기의 멋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만족스럽다. 시리즈를 4권째 진행하면서 점점 책 편집이 더 좋아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물론, 내용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인문기행서 정도 수준이었던 동유럽편에 비해 이번 책은 거의 논문 수준의 전문성을 보인다.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도공 이삼평의 공주 고향설을 추적해 밝혀내는 부분 등등,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내용이 많다. 저자분의 작업에 경의를 표한다.
내용 면에서도 이번 책은, 유럽 도자기 역사를 여정에 따라 추적한 앞서 책들과 달리, 책 한 권 전체에 일관된 주제의식이 보인다. 일본 쿠슈의 7대 가마를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임진왜란(도자기 전쟁이기도 하다) 때 조선의 도공들을 끌고가서 시작된 일본의 도자기 산업이 어떻게 각 번 다이묘들의 후원 아래 메이지 유신과 일본 근대의 부국강병을 이끌었는가를 밝혀준다.
이삼평이 도조가 되어 만들어낸 아리타 자기로 유명한 사가 번은 도자기를 수출해서 마련한 군비 자금으로 암스트롱 대포 등 최신식 무기와 함선을 구입한다. 이때 사가 번의 무력이 당시 세계 최강 프로이센 군대와 맞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사가 번은 이를 감추기 위해 도자기 무역에 관한 15년간 문서를 없앴다고. 한편 심수관 자기로 유명한 사쓰마 자기 역시 유신 자금으로 쓰였다고. 난 사쓰마 시마즈 집안의 식산흥업 정책과 아마미 군도의 설탕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여기에도 도자기 수출 자금이 있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그리고 조선 도공들에게 하급 사무라이 계급을 내려 주었다는데 그 후예가 세이난 전쟁 때 활약했다는 점도 처음 알았다. 그렇다면 이들은 사이고 다카모리의 정한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한 것일까? 이 부분, 좀더 공부해봐야겠다. 임진왜란 후, 조선통신사들이 조선의 사기장들을 일본 막부의 허락을 얻어 귀국시키려 해도 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던데, 그 이유가 뭘까? 이들은 국적보다 계급이 더 중요했던 것일까? 저자는 이런 의견을 보인다. 신선하다.
당연히 다이묘 번주들의 압력과 비협조가 첫 번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둘째 이유는 이들의 신분 상승이다. 일본 땅 조선 사기장들의 이름에 '에몬(衛門)' 이 흔한 것은 이들이 사무라이 계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고향 땅에 돌아가 보았자 조선에서는 여전히 천민 계급으로 살아갈 것이 분명한데, 일본에서는 사무라이 계급으로 녹봉까지 받으면서 양반처럼 떵떵거리며 살 수 있으니 당연히 돌아가는 사람이 적었던 것이다. - 147 쪽
책은 조선 도공들로 시작된 일본 도자기 역사의 전통이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는 점을 서술한다. 부럽다. 게다가 그 옛날 유럽에 팔려나간 작품 중 가치 높은 작품들을 다시 일본으로 되사와서 박물관에 전시해놓고 있다니! 정말 부럽다. 이게 일본의 저력인가?
이렇게 책에는 일본 도자기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와 깊은 성찰이 보여서 읽는 내내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옥의 티가 꽤 보인다. 솔직히, 저자분께서는 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역사 지식이 있는, 믿을만한 지인에게 출간 전에 원고 검토를 부탁하시길 바란다. 소소한 용어 오류나 오타야 큰 문제 아니지만 아래, 도고 헤이하치로 부분은 정말 심했다.
*** 오류
20쪽 나베시마 나오시게(金鍋島直茂) => 鍋島直茂이다.
227쪽 종전의 미망인 백파선 => '미망인'은 '남편을 따라 미처 죽지 못한 여자'란 성차별 의미가 있는 구시대 용어라, 요즘 웬만해서는 쓰지 않는다.
317쪽 메이지 개혁 => 메이지 유신. 책에 '개혁'과 '유신'을 섞어 썼다.
464쪽 박평의 문중에는 또 한 사람의 도고가 있다. 해군제독을 지낸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가 바로 그다. 그는 러일전쟁 때 우리의 독도 부근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전멸시켜 '구국의 영웅'이 된 전설의 해군 총사령관이다. 그 역시 박씨 혈통이라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 엄청난 오류!!!! 도고 헤이하치로는 1848년 생이다. 사쓰마 사기장이자 사쓰마야키 시조 중 한 분인 박평의 직계 후손인 박수승이 사쓰마 사족의 족보를 구입해서 '도고' 씨로 성을 바꾼 때는 1887년이다. 이유는 조선인 차별 때문에 수재였던 아들 박무덕의 앞날을 걱정해서였다. 그 아들 박무덕이 바로 도고 시게노리(東鄕茂德)로, 일제시절 외교관으로 활약했으며 외무대신도 2번 했다. 그는 태평양전쟁 패전 후 에이급 전범으로 수감되었다. 그런데 이들 박씨가 사쓰마 사무라이의 족보를 사서 도고 씨가 되었다고 어떻게 도고 헤이하치로도 박씨 혈통이 되는가? 이 부분, 저자분이 너무 엄청난 실수를 하셨다.
- 466~ 477쪽 그렇다면 결국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유신에 이르는 기간 중 사쓰마 번의 사무라이들은 대부분 조선인과 그들의 후예가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중략) 메이지 유신의 성공에 조선인 부대가 엄청난 공헌을 했다는 사실은 바뀔 수 없다. 너무나 엄청난 이 역사적 아이러니라니!
=> 이 부분도 납득할 수 없다. 사쓰마 도자기를 만든 조선인 도공들에게 하급 사무라이 계급을 주었다고하여 어떻게 사쓰마 번의 사무라이들이 대부분 조선인과 그 후예가 되는가?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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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자기여행』을 읽고 유럽 최초로 경질자기를 만들어낸 드레스덴의 선제후 아우구스트의 궁전에 "일본 도자는 조선 도공 이삼평으로부터 시작됐다"라고 새겨놓았다는 것을 알게된 순간 저자의 다음 여정이 일본으로 정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http://blog.yes24.com/document/7411623 을 읽으면서 한반도 도래인 덕분에 일본에서 비로소 농경과 청동기문화가 시작되었고, 삼국시대에 불교와 철기문화가 전래되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일본 근대화의 기반 또한 임진왜란때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의 공이라니 우리나라와 일본은 뗄레야뗄 수 없는 숙명으로 묶여있는 것 같다. 마치 전생의 원수가 부부로 맺어진 것 처럼 서로 미워하면서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다. 유럽을 크게 동, 서, 북유럽 세 권으로 나눈 것과 달리 일본편은 각각 규슈, 혼슈를 나누어 두 권으로 출간한다는 것만 봐도 일본 도자기에 대해 저자가 얼마나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토기와 목기 정도만 사용하던 일본에서 조선의 사발을 보고 반해 명품은 성 한 채의 값이라도 지불할 정도로 과도한 열정을 품은 덕분에 중국을 정벌하고자하는 임진왜란의 본래 목표는 좌절되었으나 조선도공들을 포로로 데려가 일본도자문화를 꽃피웠으니 일본의 입장에서 임진왜란은 패전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일본의 중흥과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전기가 된 셈이다. 포로들을 사로잡은 중에 도공이 우연히 끼어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예 도자기 명장들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고, 의복, 요리 등의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도 골라서 데려갔다고 한다. 유명 도자기 가마가 있는 장소를 포함하도록 전쟁의 경로를 정했으며 한 가마에서 일하는 수십명을 싹쓸이 하듯 끌고갈 정도로 치밀했다. 산업스파이들이 명장들을 스카웃해간 셈인데 그에 비해 당시 조선은 얼마나 허술하고 세상물정에 어두웠던 것인지... 일본 막부에서 조선도공들을 아낌없이 지원해준 덕분에 이들은 마침내 일본 도자기를 세계적 수준에 올려놓았다. 조선후기에는 관요를 운영할 도공이 부족해 일본에서 도자기를 들여와야했고, 일본식민지배시대에 그나마 있던 도자산업도 완전히 붕괴되어 항아리 만드는 기술만 남게 된 것이 우리나라의 형편이다. 조선과 중국의 자기를 모방하던 일본은 중국의 도자채색기술까지 배워 독자적인 일본자기를 발전시켰고 나중에는 거꾸로 중국에서 일본자기를 모방했다고 한다. 일본의 도자기는 유럽으로 수출되어 군수물자를 도입하는 자본이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이 다시 조선을 강제 합병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형보다 나은 아우가 여기 있다. 현대 수출위주의 일본경제와 일본을 따라가려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산업화는 거듭 변주되는 역사를 보는 듯하다. 한국에서 도자를 배우려면 이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야겠다. 일본 도자문화에 바쳐진 조선 도공들의 눈물에 경의를 표하며, 일본에 여행가면 이제 도자기에 가장 먼저 눈이 갈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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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그릇으로 쓰는 것에는 어떤 게 많을까. 그것도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스테인레스나 유리로 만든 게 많지 않을까. 잘사는 집은 도자기 그릇을 쓸지. 어쩐지 그건 부잣집에서 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도자기는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도자기 그릇이어서 아주 비싼 것도 있겠지만 많이 만드는 건 비싸지 않을 것 같다. 예전에 한국에서는 놋쇠도 많이 썼다. 도자기 그릇을 아주 쓰지 않은 건 아닐 거다. 항아리는 한국에서 많은 사람이 썼지만 지금은 별로 안 쓸 것 같다. 냉장고 때문에. 그래도 여전히 장 담그는 곳에서는 항아리 쓰겠지. 항아리에 물을 담아도 괜찮을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다니. 도자기 만드는 사람이 나오는 소설도 있겠지만, 도자기와는 조금 다르면서도 비슷한 항아리를 생각하면 황순원 소설 <독 짓는 늙은이>가 떠오른다. 백자, 청자 구울 때 사람이 가마에 들어가는 이야기 있던가. 예전에 그런 거 본 것 같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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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동물과 큰 차이가 나는 점은, 생존을 위한 필수 양분을 어떤 방식으로 섭취하는지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저 날것을 아무렇게나 절단, 저작하여 소화하는 게 동물이고, 반대로 인류라면 원 재료를 "조리"한 후 먹습니다. 이렇게 해서 뜻하지 않은 식중독 따위를 예방할 수 있고, 섭취할 수 있는 재료의 범위를 넓힐 수 있으며, 나아가 풍미의 향유라는 인간만의 쾌락 영역을 확보합니다. 어떤 종류의 "그릇'이건 이를 필수 도구로 이용하는 것도 인간뿐이며, 처음에 그저 식사의 장치로 사용했던 것을 나중에 완롱, 감상의 고유 대상으로 삼은 건 더군다나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인간이 그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고된 노동 단계에서 벗어나 일종의 문화 생활을 누리는 수준으로 접어들었는지의 여부는, 손쉽게 도자기류의 구비가 얼마나 그 문화권에서 보편화되었는지로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동양에 대해 언제나 잉여 쾌락(주로 정신적)의 향유 면에서 큰 열등감을 느껴 왔던 서양이 근대 이후 필사적으로 도자기의 수입, 제조 기술 습득에 열을 올린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 조용준 선생님께서 몇 년 전부터 펴내고 계신 <OOO 도자기 여행> 시리즈를 한 권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읽었습니다. 퀄리티가 진귀하고 텍스트(책) 취지에 부합하는 사진이 많이 실려 있다는 게 초보자에게는 엄청 큰 응원이 되죠. 뿐만 아니라 (당연한 소리지만) 이 분야 입문자에게는 기초부터 착실히 가르쳐 주시면서도 한 권 떼고 나면 소양이 엄청 늘게 도와 주는, 도자기학의 친절한 교과서이기도 합니다. 이런 알찬 내용이 기행문의 형식으로(여행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풍부한 역사적 배경, 맥락의 설명과 함께 곁들여져 있으니(역사도 이야기로서의 역사는 누구나 좋아하죠), 예쁜 도자기 공부도 공부지만 책을 읽는 사람의 영혼과 정신이 몇 뼘은 더 자란 뿌듯함이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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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도자기 여행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이번 일본 도자기 여행도 그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에 무심코 책을 펼쳐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본'의 도자기 이야기는 유럽의 그것과는 달랐다. 아니, 달라야만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이 더 맞는 것일까. 아무튼 그랬다.
일본의 도자기 이야기는 우리의 역사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책을 읽으며 더 안타까웠던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식민지배와 남북분단 등의 역사로 인해 조선 도자기의 명맥이 끊어져버리고 말았는데 오히려 조선의 장인들이 일본으로 끌려가면서 일본의 도자기 기술은 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일본의 도자기 속에 담겨있는 도예기술만을 보고 도자기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맥을 이어오게 된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겪으며 조선의 장인들을 마구잡이로 납치해갔다는 역사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그 이야기를 접하게 되니 좀 더 실감하지 않을수가 없다. 그리고 고국을 떠나게 되어 힘든 생활이 되기는 했겠지만, 일본에서 도예기술을 인정받아 사무라이 계급과 동등하게 대우를 받으며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면 비록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끌려간 것이라 해도 조선에서 천민으로 살아야하는 도가 장인보다는 일본에서의 생활을 더 원했을수도 있다는 사백년전의 현실은 무엇이 옳고 그른 판단이었을지 말을 아끼게 된다.
올해는 일본에서 조선인 사기장들이 가마를 일군지 4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사실들도 많았고, 90년대에는 일본과의 교류가 생기면서 전시회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던 것일까?
일본으로 끌려간 대부분의 장인들이 출신지역이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꿔 가문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그중에 유일하게 t심수관이라는 조선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대단하다 느껴진다. 일본에서 조선인으로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미루어 짐작은 해 볼 수 있으니까.
책의 내용을 읽기 전에 도자기 사진만 훑어보면서 감탄을 하곤했는데 이제 그 도자기의 역사와 그 도자기를 빚어낸 장인들의 삶과 역사를 알게 되었으니 도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지고 있다. 그저 눈을 호사시켜보자고 책을 펼쳐들었던 내 마음이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책에는 도자기 가마와 전시장, 지역의 축제에 대한 정보와 찾아가는 길 안내도 설명이 되어 있는데, 내가 전혀 갈 일이 없겠지 라는 생각에 술렁술렁 책장을 넘기다가 책을 다 읽어갈즈음 문득,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현장에서 그 역사를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저자가 이십년전 기억에도 없는 도자기 전시장에 갔던 것처럼 나도 우연이 필연이 되는 경험이 되지는 않을까, 잠시 상상의 세계를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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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준님의 도자기여행 시리즈는, '도자기'에 관한 지리적인 역사와 도자기 자체의 역사가 함께 합니다. 그런데, 이번 책을 보면서 특히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이라는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죠. 특히, 이번에 일본여행을 다녀오며 오키나와에도 도자기마을, 공방이 여러곳 존재하기에 여행에도 함께 하게 되던 책이기도 했습니다. 규슈의 조선가마를 여행하며 역사와 예술을 함께 알려주는, 저자는 여러가지를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 책 표지를 넘기자마자, 그의 여행이 어떠한 곳들이었는지를 그리고 각 지역에서 대표적인 도자기 느낌이 어떤지를 한 눈에 알려주고 있습니다. 제 가족여행에서도 아이가 도자기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하게 되기도하니, 다음 여행에는 저자의 설명에 따라 규슈를 가봐야겠다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 일본은 '다도'가 대단한 의례로 자리잡고 있지요. 다도, 그 치명적인 아름다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센 리큐에게 묻기를 사람들이 왜 그리 차에 매료되는 것이냐고. 다도는 센 리큐에 따르면 화합과 공경, 맑음과 고요의 상태를 이루는 마음을 강조한 소박한 세계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렇게 센 리큐에 의해 다도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도요토미는 그 도구인 도자기에 매료되었고, 그리하여 조선에서 기술자들을 잡아오면 좋아했지요. 이 책은, 한국인이라면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 꼭 읽어봐야겠다 싶게도. 지금 일본총리인 아베 신타로의 노선에 대해, 대략 마음을 접고 보아야한다 싶어집니다. 아베 신타로는 결국 메이지유신의 지역출신. 한일관계에서 그 수장의 성향을 알고보면, 우리도 중대 외교결정시에 이번이어야만 하는지, 그 타이밍을 조절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책 에필로그에서, 유럽 도자기 여행이 아닌, 조국에 대한 역사를 다뤄야겠다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하는데, 여러가지를 밝혀준 저자에 대해 강한 감사를 보내게 됩니다. ![]() 일본 땅에 희고 고운 조선백자가 처음 만들어진 지는 2016년의 딱 400년 전. 김해 사기장인 이삼평을 강제로 끌고가서, 그 곳에 자리잡으며 가마를 열어갑니다. 우리역사의 암흑기는 이렇게 조선에서 일본이 사기장들을 잡아가면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우리가 일본 탓만 할수도 없는 것은 글공부가 최고다 하던 명목주의 시대, 기술자들에 대한 처우가 영 좋지 않았으니, 더불어, 그들을 구해내려는 노력을 역사 어디서든 본 적이 없었기에, 사람귀한 줄 몰랐던 정치의 역사를 돌아보며 안타까워집니다. ![]() 7대 조선 가마들에서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일본에 뿌리내렸기에, 어찌보면 일본 것이다 하고 주장할 것만 같건만, 신기하게도, 뿌리는 조선이었다고 초대 사기장을 존중하고 그 출신을 기리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더불어, 도자기의 수출들로 인하여 돈이 일본에 모였는데, 그리하여 메이지유신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런데, 메이지 유신의 정권은 다이묘들이 운영하던 관요를 폐쇄하라 합니다. 그리하여 각 지역 도자기 문화는 접혀갈 것 같았지만 남아있던 후손들이 지키고 지켜, 결국은 나라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 ![]() 7군데의 가마를 돌아보며, 그 지역마다 초대정신을 어떻게 기리려했는지, 지금, 자신들의 기술에 거들먹거리기보다 초심을 잃지 않고, 초대 사기장에 감사를 보내는 마음이 보이니, 비록 일본으로 사기장들이 납치되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겸손된 마음들은 우리가 배울 문화다 싶었습니다, ![]() ![]() 게다가 오랜 시간으로 장인정신으로 이어지는 기술들은 예술적인 기술은 점점 더해지고, 더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생겨납니다. 우리가 사기장들을 귀히 여겼고, 그리고 굴곡의 역사들이 적었더라면, 그랬다면 이 작품들이 우리에게도 발전 작품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요?
![]() 조선에서 이어졌음을 잊지 않는 후손. 지난 1992년 13대 또칠의 한국에서의 인터뷰를 봅시다. "한국의 도자기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먼저 물어봅시다" "한국에 도자기 하는 사람으로서 인간문화재가 있습니까?" 묵묵히 기술을 개발하고, 예술혼을 들이며 만들어내는 작품들. 지금 우리의 도자기들도 물론 발전이 있었지만 여전히 한국의 도자기보다는 일본이 더 우수하다고 여기곤 합니다. 물론 많은 사기장들의 강제 이주로 일어난 격차일 수도 있지만, 지난 시간만 탓해서 무얼할까요. 저자는 일본 도자기여행으로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 단지 예술로써의 도자기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 그간의 유럽도자기여행 시리즈들이 꽉찬 내용이었으니 이 책도 그러하리 당연히 기대했고,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배우게 합니다. 우리역사와 관련된 내용이기에, 저자가 여러모로 알려주는 지식들, 더 공감가며 읽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일본여행으로 규슈를 찾게 되거든, 알려주는 정보들을 이용하여 꼭 찾아가봐야겠다 싶어집니다. 이러저러 여러면으로 고마운 책, <일본 도자기여행: 규슈의 7대 조선가마> 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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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일본에서 도자기를 생산한지 400주년 되는 해이다. 이에 맞춰 일본 규슈에서는 성대한 도자기 축제를 벌였다. 그 소식은 현해탄을 넘어 우리에게까지 전해질 정도니 얼마나 성대한 규모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일본은 이렇게 성대한 축제를 하는 것일까? 그리고 400년전에는 어떤 일이 일본에서 있었던 것일까?
16세기는 대항해 시대의 서전이였다. 이슬람으로부터 독립한 포루투갈과 스페인은 이슬람의 앞선 문명을 바탕으로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중 포루투갈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고 이후로도 계속 동진하여 마침내 일본에까지 이르게 된다. 포루투갈은 당시 엄청난 문명국이였던 중국의 문물을 접하게 된다. 바로 비단과 도자기였다. 이런 문물은 포루투갈을 통해 유럽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소개와 동시에 유럽 왕실은 중국의 앞선 문물에 흠뻑 빠지게 된다. 특히 당시 초강대국 스페인은 이런 중국 물건을 수입하기 위해 신대륙에서 채굴한 은을 아낌없이 썼다. 당시 스페인 식민지였던 네덜란드는 이런 중국 도자기에 대한 가치를 알고 있었고 곧 기회를 잡게 된다. 바로 네덜란드의 독립과 포루투갈의 쇠퇴였다. 포루투갈의 쇠퇴로 동양항로에 대한 독점권이 무너지며 네덜란드에는 해외진출의 기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특히 중국에서 돌아오던 포루투갈의 상선을 나포해 그 안에 있던 중국 도자기를 암스테르담에서 경매로 팔았던 네덜란드는 도자기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중국으로 진출을 서두른다. 이렇게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거쳐하고 1624년에는 타이완에 전진기지를 건설하는데 성공한다. 이제 중국 도자기의 독점권을 따내 막대한 부를 일구는 것은 시간 문제인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정세는 크게 변하고 있었다. 바로 명나라와 청나라의 전쟁이였다. 명청 교체기로 중국 대륙은 전쟁에 휘말리며 도자기 수입은 여의치 않게 되었다. 게다가 명나라 복원을 주장하는 정성공이 대만을 점령하면서 네덜란드의 중국 전진 기지는 제대로 역할도 못한채 밀려나고 말았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굴하지 않았다. 이미 진출해 있던 일본의 도자기에 주목한 것이다. 중국 도자기에 비해 전혀 뒤쳐지지 않는 품질과 상품가치를 지닌 일본 도자기는 중국 도자기를 대체할 충분한 상품 이였고 그렇게 시작한 일본 도자기 수입은 한마디로 대박이였다. 중국 도자기와는 다른 분위기 도자기는 순식간에 유럽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폴란드 국왕이였던 선제후 아우구스트 2세는 드레스덴의 자기 성에서 일본 도자기와 재현하기 위한 노력을 했고 1710년 결국 서양 최초로 동양의 도자기와 비슷한 도자기를 생산하는데 성공한다. 1650년부터 100여년간 지속된 네덜란드의 일본 도자기 수입은 무려 120만점. 그것도 공식적으로 집계를 한 것만 그 정도 양이였다.
당시 일본 도자기는 아마리라는 곳에서 선적되어 수출되었고 생산은 대부분 아리타 지역에서 진행되었다. 그래서 일본 도자기를 아마리 도자기 또는 아리타 도자기라고 불리게 된다. 도자기 수출은 아리타 지역에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고 이는 이 지역 번들의 자금원이 되었다. 이 자금은 결국 당시 중앙 정부인 막부와의 대결에서 지역 번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1750년대 중국의 도자기 수출 재개와 유럽에서의 도자기 생산으로 일본 도자기의 수출길이 막히게 된다. 이에 아리타 지역의 가마들은 일본의 내수 시장용 도자기를 생산하며 일본의 식탁 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항기 일본 도자기는 다시금 유럽에 수출되기 시작된다. 이미 아리타 지역의 번들은 서양과의 전투를 통해 얼마나 자신들의 전투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알았고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모색하게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일본 도자기가 있었다. 다행스럽게 일본의 도자기의 경쟁력은 여전히 유럽에서 통용되었고 이는 사가번, 사쓰마번, 조슈번 등 규슈와 인근 지역 번들의 번영을 가져왔다.
이렇게 성장하는 지역 번들과 달리 막부는 여전히 봉건적 사상에 질서를 옹호하고 있었고 이는 결국 양측간의 무력투쟁으로 발전한다. 영국 출신의 무기상 글로버를 통해 막대한 서양 무기를 보유했던 삿쵸동맹과 막부간의 전투는 이미 승패가 정해져 있었다. 이렇게 승리한 샷쵸동맹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 일본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당시 글로버를 통해 구입한 막대한 서양의 무기 대금은 말할 것도 없이 도자기 수출을 통해 얻었던 자금으로 지불한 것이였다.
이후 아리타 지역의 수많은 유신 자사들이 일본 중앙 정치 무대에 서게 되었고 아리타는 명실상부한 근대 일본의 요람이 되었다. 이런 저력을 만들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도자기 였으니 아리타 지역에서의 도자기에 대한 애정은 깊을 수 밖에 없어을 것이다. 그래서 아리타 지역에서 도자기를 처음 만들었던 도조에게 일본인은 대은인이라는 명칭을 주며 기념비까지 세운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념비 이름이 바로 도조 이삼평비다. 1917년 세워진 이 기념비의 주인공 이삼평이란 이름에 주목해야 한다. 바로 우리식 이름이다. 그는 바로 조선인이였다. 1917년이면 한일병합으로 우리나라가 없어진 이때 일본은 조선인의 이름을 비석에 새겨 기념한것이다. 그만큼 아리타 사람들에게 이삼평은 출신을 떠나 깊이 존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조선 도자기 약탈에 열과 성의를 다했다. 도자기를 약탈하는것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도자기 장인들도 납치했다. 그렇게 납치된 도공의 수가 수만이 이르렀다고 하니 일본이 얼마나 도자기를 가지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납치된 수만의 도공 중 하나가 바로 이삼평이다. 아리타 지역에서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백자광을 발견하여 조선식 도자기를 굽기 시작한 것이 지금으로 부터 400년전인 1616년 이였다. 이렇게 시작한 일본의 도자기 역사는 지금도 세계 최고 수준의 도자기를 만드는 나라가 되어 도자 산업 강국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 책은 일본에서 조선 도자기를 만들며 살아야 했던 대표적인 도자기 장인들과 그들이 만든 도자기 이야기가 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현재의 일본 도자기를 이끌어갔는지를 그리고 있다. 현재의 일본 도자기에서 조선 도자기의 향기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자기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그 지역의 정서, 문화, 환경등을 모두 흡수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같은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도 어느 지역에서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이 도자기도 마찬가지 인것이다. 이것이 도자기의 매력이다. 같은 기술로 만들더라도 정서, 문화,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400년간 일본의 정서와 문화 그리고 환경이 흡수되었으니 당연히 조선의 숨결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서 13대 또는 14대를 이어온 조선의 사기장들의 후손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뿌리는 조선임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전통을 당당히 밝히며 이어오고 있다. 그런 모습에서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왠지 집에 있는 자기 그릇들이 달리 보이는건 도자기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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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그런게 있다. 너무 맛있는 건 먹기 아깝고 너무 좋아하는 건 쓰기 아까워 마냥 두고보고 싶고. 이 책이 나에겐 그렇다. 책은 7월에 다 읽어버렸지만 리뷰를 끝내버리면 어쩐지 책을 다 먹어버린듯한 느낌이 들어 아쉬울 것 같은 그런거 말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교보문고에서 진행했던 저자님 강연회도 다녀와 저자님 이야기도 직접 듣고 사인도 받고, 이래저래 더 애착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2016년 마지막 날인 오늘은 마무리해야하지 않을까, 저자님의 다음 책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 유럽의 도자기 시리즈도 좋았지만, 일본 도자기 이야기는 우리네 선조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인지 더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일본자기 역사 400년이라 한다. 즉 그 말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의 사기장들이 납치된지 어언 400여년이 지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난 400년간 빼앗긴 도자산업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무엇을 해왔을까. 일본이 납치해간 사기장들의 지위를 승격시키고 남의 땅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후원을 하고 도조로 칭하며 신사까지 설립해 그분들의 업적을 기리는 동안 우리는 빼앗긴 그분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무엇을 해왔을까. 예나 지금이나 왜 우리는 나라의 지도자들을 지도자로 인정하기가 이렇게나 어려운지 안타까울 뿐이다. 저자는 이번에도 역사와 예술을 아우르는 저자만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임진왜란부터 메이지유신을 거쳐 지금의 아베정부까지 일관성있게 다양한 방법으로 침략의 역사를 되풀이 해온 애통한 역사와 그에 얽힌 도자기의 운명을, 어떤 역사서보다 진지하고 어떤 소설보다 실감나게 그려낸다. 남의 나라 사기장들을 죄다 납치해 정작 우리는 나라의 공식적인 행사에 사용할 자기를 만들 도공조차 없게 만든 그들의 뻔뻔함에도 불구하고 화를 낼 정당성을 부여하기 어려운 이 현실이 부끄러운 건 강연회 때 작가님이 하신 질문 하나 때문이다. 우리는 가정에서, 일상생활에서 진짜 도자기를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단순히 편하고 싸다는 이유만으로 영혼없는 그릇을 이용하는 우리가 왜 다시 일본으로부터 도자기의 위상을 되찾아올 수 없는지 말이다. 누군가 물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도자기 역사도 책으로 낼 계획이 있는지. 부끄럽지만 우리나라 도자기는 책으로 낼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대답이 씁쓸하면서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2017년을 두어시간 앞둔 지금 더 슬프게 다가오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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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조차도 언제 명맥이 끊어져버릴까 조마조마한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중 잡아간 도자기 장인들이 그 지역에 뿌리를 두고 도자기 가마를 굽기 시작했는데 400여년이 넘도록 대를 이어가며 계승 발전시켜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삼평이란 분인데 일본의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마을에 '도조 이삼평비'를 세웠다. 지역 축제는 활발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것이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말하는 백자나 고려청자는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다. 그나마 이천에서는 매년 가을마다 이천도자기축제를 열어 많은 관객들이 찾는 지역축제가 되었다. 직접 도자체험도 해보고 세라피아에선 도공들이 가마에서 굽는 걸 직접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유럽에 이어 우리의 도자기와 깊은 연관이 있는 일본 규슈 7대 조선가마를 여행한 저자의 충실한 탐사는 부러움 내지 꾸준히 이어오지 못한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일본 문화가 부흥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을 따지고보면 도자기 기술의 전파와 보급에 있을 것이다. 고급 문화 중 하나인 도자기를 생산하는 가마가 생겨나면서 문명이 꽃피웠다고 생각한다. 전작에 이어 읽게 된 <일본 도지가 여행>도 책을 읽을 맛이 나도록 재미나게 쓰여져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남원 여행갈 때 춘향테마파크에서 한 전시관에서 보던 도자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이삼평과 마찬가지로 15대 심수관까지 이어온 도자기 명인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일본으로 도자기 기술을 알린 것이 아니라 전쟁 중에 강제로 도자기 명인을 잡아들여 일본으로 끌고 갔다.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도적질인 것은 분명하다. 일본 도자기 여행을 한다는 건 반대로 우리의 도자기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 지 역설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대를 이어오면서 만든 작품들이다. 찻사발 하나에 성 한 채를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일본에서 도자기가 차지하는 위치가 상당히 높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후손들이 타지에서 만든 훌륭한 도자기들을 볼 수 있었고, 남의 것을 약탈해갔으면서 마치 자신들의 전통인냥 탈바꿈시켜 자랑스레 축제를 벌이는 걸 보면 명맥을 이어가서 고맙다고 해야할 지 아니면 부끄러움도 없는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애초에 자신들의 고유 전통이나 기술이 아니었기에 이질감이 더욱 큰 것 같다. 도자기가 일본에 미친 영향은 커서 메이지유신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아시아 침략을 위한 발판이 된 것을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는 놀라울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