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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중심의 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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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중심의 힘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꽃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내일   시골 가   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 김지하, 「중심의 괴로움」     김지하는 1970년대를 빛낸 시인이다. 1970년대라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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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중심의 힘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꽃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내일

  시골 가

  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 김지하, 중심의 괴로움

 

 

김지하는 1970년대를 빛낸 시인이다. 1970년대라는 비민주적 사회에서 김지하는 백묵으로 민주주의를 쓰며 민주주의여 만세!”(타는 목마름으로)를 외쳤다. 지금 생각하면 별다를 게 없는 민주주의 만세라는 말을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은 피가 끓는 소리로 외쳤다. 그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었고, 그러려면 민주주의를 해치는 강력한 권력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김지하는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박정희 정권 하에서 실제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전 세계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나서 김지하의 죽음을 막았다. 그가 쓴 시를 노래로 부르며 학생들은 거리로 나섰다. 김지하는 1970년대 민주주의의 꽃이었고 희망이었다. 이 시대에 시()는 문화운동의 중심에 오롯이 자리 잡았으며, 문화운동의 전면에 선 수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김지하 시를 읽고 또 읽었다.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김지하는 생명운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1980년대라는 불의 시대를 거쳐서 그가 이른 생명운동의 길은 자기 내면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맞물려 진행되었다. 1970~80년대는 외부에 싸워야 할 이 있는 시대였다. 외부에 있는 적을 물리치면 민주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세계가 건설될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몰아내려 했던 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정권을 유지했다. 군사정권은 물러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섰지만, 군인이 민간인으로 바뀐 것뿐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주는 풍요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은 갈 길을 잃었고, 그 자리를 문화산업에 기초한 대중문화가 차지했다. 1970년대를 뜨겁게 살았던 김지하 입장에서 보면 목 놓아 울 상황이었다.

 

김지하는 이렇듯 끝도 없이 치닫는 자본주의 문화에서 생명에 반하는 원리를 발견한다. 이제 적은 외부에만 있지 않다. 우리 자신이 바로 이라는 인식은 김지하가 생명운동으로 뛰어드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 중심에는 이 세상은 과연 인간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하는 물음이 놓여 있었다. 휴머니즘을 실현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외쳤던 시인은 이제 생명의 일부분으로서 인간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지구라는 틀에서 보면 인간은 결코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없다.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세우는 휴머니즘은 철저히 인간중심의 논리를 지지한다. 휴머니즘의 맥락에서 보면 자연은 인간이 개발해야 할 대상일 따름이다. 인간은 더 편리한 삶을 위해 자연을 별다른 생각 없이 파괴한다. 자연은 인간이 언제든 파괴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중심의 괴로움이란 시에서 김지하는 휴머니즘이라는 중심에 빠진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시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봄에 시인은 꽃대가 흔들리는 걸 본다. 바람이 부는 것일까? 시인은 흙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을 이야기한다. 바람이 꽃대를 흔드는 게 아니다. 대지의 저 밑바닥에서 밀려오는 중심의 힘이 꽃대를 흔든다. 꽃대는 스스로 흔들린다. 생명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생명은 스스로 흔들려서 생명을 피운다. 시인은 스스로 흔들리는 생명의 힘을 중심의 힘이라고 명명한다. 시인이 얘기하는 중심은 그러나 꽃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한다. 중심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중심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중심은 사방으로 흩어져 새로운 생명을 피운다.

 

중심이 흔들리면 꽃대는 당연히 흔들린다. “괴롭다/ 흔들린다라는 말로 시인은 이 상황을 표현한다. 스스로 움직이는데 왜 괴로울까? 흔들린다는 것은 곧 성장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을 동반하는 게 성장이 아니던가. 중심에서 밀려오는 힘으로 생명은 사방으로 퍼지는 힘을 얻는다. 중심이 고정되어 있으면 생명은 힘을 잃는다. 생명은 중심으로 모이는 게 아니라 중심으로부터 한없이 흩어지는 것이다. 중심에서 퍼지는 생명운동이 고통을 동반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아이를 낳는 엄마를 생각해 보라. 아이나 엄마나 중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한다.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 나와야 하고, 엄마는 아이를 뱃속에서 내보내야 한다. 자궁이라는 중심에 아이가 집착하면 어떻게 될까? 죽음이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생명은 그렇게 움직임 속에서 하나의 생명으로 거듭난다.

 

김지하는 한 생명이 흔들리는 이 순간에 나도 흔들린다는 또 다른 순간을 포갠다. 꽃대가 흔들리면 시인도 흔들린다. 시인이 흔들리면 무엇이 흔들릴까? 모든 게 흔들린다고 말해도 상관없다. 꽃대 하나가 우주 전체를 흔든다. 한 생명이 탄생하면 우주 전체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휴머니즘이라는 인간중심의 세계관으로 보면 꽃대가 흔들리는 건 사소한 움직임에 불과하다. 인간이 만든 세상에서 꽃대라는 게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김지하는 과감하게 휴머니즘의 이런 논리에 반기를 든다. “나도 흔들린다는 시구로 시인은 생명운동이 나아갈 길을 선언한다. 저 중심에서 밀려오는 힘은 모든 중심을 흔드는 힘이 있다. 중심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다. 아니, 생명의 수만큼 중심이 있다고 해야 한다. 저 꽃대를 흔드는 중심의 힘은 이렇게 수많은 중심들을 흔드는 생명의 힘으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

 

1990년대 이후 김지하는 1970~80년대를 이끈 민주화 세력과 여러 차례 부딪혔다. 자살로 민주화 열망을 표현하던 청년들을 향해 그는 생명담론을 근거로 쓴 소리를 날렸고, ‘여성성이라는 미명 아래 그는 지금은 촛불 혁명으로 내쫓긴 여성 대통령 후보를 공개 지지하기도 했다. ‘정치라는 이데올로기를 배제한다면, 그가 말한 생명이나 여성성은 우리가 곱씹어 생각해봐야 할 사안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생명이나 여성성이라는 이 말들에 이미 정치가 개재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청년들의 자살을 생명담론과 연결시키고, 여성성을 독재자의 딸과 연결시킬 때 그는 이미 정치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된다. 그가 쓴 시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나는 김지하의 이런 정치적 선택이 참 안타깝다.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이 정치의 그늘에서 허우적대는 상황이 자꾸만 떠오르기 때문이다. 중심은 잡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김지하는 몸으로 직접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o*****s 2018.07.0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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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중심의 괴로움_김지하 시인
"[시집] 중심의 괴로움_김지하 시인" 내용보기
사람에게 얼마나 고문을 했기에 사람의 정신에 분열증이 생길까? 시인의 ‘못산다’라는 표현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 말하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일일까?아픔과 고통의 극한에 고문을 통해 얻어 내려던 정보가 그들의 일이라면. 그렇다면 어딘가 그런 고문을 한 사람이 있다는 거다. 지금 모두 다 고문을 한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럼에
"[시집] 중심의 괴로움_김지하 시인" 내용보기

사람에게 얼마나 고문을 했기에 사람의 정신에 분열증이 생길까? 시인의 ‘못산다’라는 표현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 말하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아픔과 고통의 극한에 고문을 통해 얻어 내려던 정보가 그들의 일이라면. 그렇다면 어딘가 그런 고문을 한 사람이 있다는 거다. 지금 모두 다 고문을 한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지하 시인은 시를 썼다.

더욱이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의 화해의 손을 잡기도 했다. 나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씨알 먹히지 않는 소리다. 모두 숨죽이고 찍소리 못할 때, 김지하 시인은 우리를 대변한 사람이다. 그리고 아픔을 ‘못산다’라는 시를 쓰며 이젠 그 소리 ‘못산다’라는 말로 산단다. 그래서 예술은 위대한가 보다. 김지하 시인의 영면을 기원한다.


이젠

더는 못산다

나는

띠끌

또 나는

한바다 천지

한끝 상해도 못사는 걸

더는 못산다

온통 죽음

내 속을

귀기울여

듣는다

못산다 못산다 소리

들끓는 소리

그 소리 듣느라

산다

이젠 그 소리로 산다._P65. 소리


늦가을

잎새 떠난 뒤

아무것도 남김 없고

내 마음 빈 하늘에

천둥소리만 은은하다._P86. 늦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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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 2026.08.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