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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발레씨어터가 케네디센터에서 공연한 <백조의 호수>인데요, 영상 초반부에는 공연장에 입장하는 관객들을 배경으로 케네디의 딸 캐롤라인이 작품해설을 하고 있고, 2막과 3막 사이의 인터미션에는 예술감독 케빈 매킨지와 두 주역 질리언과 앤젤의 인터뷰도 수록되어 감상의 재미를 더합니다.
매킨지가 해석한 ABT백조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오데트가 왜 백조로 살게 됐는지, 그 전사가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마치 <로마의 휴일>의 앤 공주처럼 혼자 숲으로 산책을 나온 오데트(질리언 머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매력적인 미남(마르첼로 고메즈)을 만나 그에게 매료됩니다. 하지만 그는 숲의 괴물 로트바르트(이차크 수타파즈)사 마법으로 모습을 바꾼 거였어요. 순진하고 아름다운 오데트에게 한눈에 반한 괴물(ABT의 로트바르트는 악마보다는 괴물 아닌가요?)이 멋진 기사로 모습을 바꾸고 그녀를 꾀어내 백조로 만들어버린 겁니다. ABT백조가 이채로운 것은 이처럼 오데트에게 전사를 부여한 점도 물론이지만 발레를 감상하다 보면 대체 왜 백조에게 사랑을 맹세한 왕자(앙헬 코레야)가 그 맹세의 말이 귓전에서 떠나기도 전에 그리도 쉽게 흑조에게 마음 주어버리고 말까, 하는 의문을 갖기 마련인데, 왕자의 마음을 어느 정도 들여다보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스무 살이 되는 생일을 앞두고 왕자의 성년식이 열리는 왕궁의 뜨락에서, 왕자의 친구들이 모여 춤을 춥니다. 하지만, 이 자리의 주인공은 왕자임에도 그는 흥겨운 잔치 한가운데서 소외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여성들이 앞다투어 춤추고 싶어 하는 건 왕자의 친구 벤노(헤르만 코르네조)예요. 심지어 파드트루아를 추는 것도 왕자가 아닌 벤노지요.
1막은 이처럼 백조와 왕자가 만나기 전에 다른 버전에선 볼 수 없는 설정으로 왜 백조가 로트바르트에게 붙잡혀 있으며, 왜 그에게서 벗어나기를 원하는지, 왕자는 왜 성년의 생일을 앞둔 가장 들뜨고 설레는 밤에 숲으로 달려가 백조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원치 않는 사랑의 족쇄를 풀고 싶어 하는 백조와 모두가 짝지어 춤추는 흥에 겨운 잔치에서 혼자만 파트너 없이 고독감에 싸인 왕자. 둘 다 새로운 사랑에 뛰어들 이유와 동기는 충분했던 셈이죠. 그러니 심지어 이렇게 불똥만 떨어져도 사랑의 스파크가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선남선녀가,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졌다고 해서 그들의 사랑이 경솔하다거나 신중하지 못하다고 나무랄 일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인류를 오늘까지 지탱해온 동력은 이처럼 물불 가리지 않는 청춘의 열정이었지요.
성질도 급한 두 남녀, 왕자는 자신을 피하는 백조를 답답해하며 "얼마면 되겠니" 하던 원빈처럼 "어떻게 해야 내 사랑이 거짓이 아님을 믿겠소?" 하며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이 낯선 청년을 믿어도 될까(아마도 멋진 남성의 춤신청을 가벼이 받아들인 잘못으로 괴물의 포로가 된 전철을 밟는 건 아닐까) 하며 불안함 내려놓지 못하던 백조는 "이 사람이야" 하고 처음부터 정해버린 제 마음 어쩌지 못하고 자신의 처지를 마임으로 구구절절히 설명하지요.
둘이 마침내 사랑을 확인하려는 순간, 괴물은 위기감을 느끼고 오데트와 백조들을 불러들이며 2막이 끝나는데, 질리언과 앙헬의 아다지오는 숱한 백조 버전 중에서 가장 대화가 많은 커플이 아닐까 싶더군요.
그리고 그 유명한 흑조의 32회전 푸에테를 보여주는 3막의 무도회. 여기서도 무게중심은 오딜과 왕자의 파드되보다는 변신한 로트바르트가 개입해 무도회의 판을 뒤흔들어 다시 만드는 데 쏠려 있습니다. 왕자의 생일에 축하사절로 온 각국 공주들 중 누구와도 결혼할 수 없다고 강경한 거부의사를 내보이는 왕자와 이를 당혹스러워하는 왕비 앞에, 초대받지 않은 낯선 손님인 로트바르트-오딜 부녀가 등장합니다.
다른 버전과는 달리 앙헬 코레야가 맡아 춤춘 ABT의 왕자에게서는 오딜을 보자마자 호숫가에서 사랑을 고백한 그녀임을 알아보고 (로트바르트의 의도대로 착각하고) 자신의 사랑을 만난 남자의 만족과 안도감이 엿보입니다.
왕자가 오딜을 뒤따라 무대에서 잠시 퇴장해 있는 사이, 변신한 로트바르트는 닭 보던 소(개가 맞나요?ㅋ)가 된 신부후보 공주들과 함께 춤추며 자신의 마성적인 매력을 유감없이 펼쳐보입니다. 그러고는 비어 있는 (원래 왕자의 자리인) 왕비의 옆자리를 차고 앉기에 이르지요.
질리언은 인터미션에 삽입된 인터뷰에서, 오딜의 푸에테가 왕자와의 계약이 성립되었음을 선언하는 의미라고 말하는데, 과연, 3막의 흑조는 왕자는 물론이거니와 무도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의 넋을 빼앗을 정도의 압도작인 클래스를 보여줍니다. 32회전을 도는 동안, 어쩌면 축이 되는 다리가 오르골 인형처럼 그렇게 조금의 흔들림도 없을 수가 있는지 경이로울 정도였어요. 인터미션에서 앙헬은 "왕자는 누가 봐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그저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농락할 뿐인 냉혹한 오딜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었을까?" 하고 묻지만, "하지만 왕자는 그런 오딜에게 반한 거다"라는 운명론적인 답을 내놓습니다.
예술감독인 매킨지는 이 작품을 왕자의 성장담이라고 해석하는데, 1막에서는 사랑에 소외된 왕자, 2막에서는 백조와 단번에 사랑에 빠지는 왕자, 3막에선 흑조와 백조를 혼동하고 흑조를 자신의 신부로 선언하는 왕자, 그리고 마지막의 파국에 이르기까지, 작품은 그 어느 버전보다 왕자의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득력있게 보여줍니다.
1막에서 고독감에 휩싸여 마음에도 없는 결혼으로 등떠밀린 왕자는 2막에서 신비로운 호숫가의 정경, 절로 연민이 우러나는 백조의 가슴아픈 사연,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자신의 마음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섣부른 사랑을 맹세하고, 3막의 흑조를 추호의 의심도 없이 자신의 결혼상대로 만천하에 알립니다. 과물이 보여주는 영상을 통해 자신의 배신으로 괴로워하는 진짜 오데트의 모습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의 사랑은 아직 미몽에서 벗어나자 못한 철부지 소년의 그것에 머물러 있는 것이죠. 자신의 눈먼 사랑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깨닫고 나서야 왕자는 비로소 진짜 사랑에 눈뜨지만, 그 깨달음은 너무도 뒤늦은 것입니다.
왕자는 오데트에게 용서를 구하는 한편 그녀를 구하기 위해 괴물과 맞서 싸우지만, 모든 것을 손에 넣은(오데트를 정복하고 왕자의 사랑을 망가뜨린) 괴물의 힘은 당해낼 수 없습니다.
둘의 혈투를 지켜보던 백조는 한쪽이 목숨을 잃고서야 끝날 이 싸움을 멈추게 하기 위해 이 대결과 파국의 원인이 된 자신의 목숨을 버려 왕자를 구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를 본 왕자도 백조의 뒤를 따라 호수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괴물의 계획을 붕괴시킵니다. 사랑을 빼앗고 소유하는 것으로만 알았던 괴물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랑을 지킨 둘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삶의 의지를 잃고 말아요. 그리고 백조와 왕자는 죽음 이후에야 겨우 사랑을 이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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