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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치꾼들이나 교육관련 공무원들이 입만 열면 하는 거짓말이 있다. "교육은 100년지 대계다."라는 말이다. 정치꾼들은 정권이 바뀌면 자신의 취향대로 교육을 좌지우지한다. 특히 이번 2mb정권과 그 무리배 집단은 아주 졸열한 방법으로 역사교과서를 왜곡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이 전혀 참여하지 않은 뉴또라이 진영의 역사교과서와 역사관이 어떻게 역사교과서에 첨가 될 수가 있으며, 교육의 내용에 대해서 왈가불가 한단 말인가? 교육관련 공무원들 역시 자신들의 소신보다는 정권의 코드에 맞춰서 바뀐 정권에 맞춰서 교육과정과 내용을 개편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교육은 100년지 대계다."라고 말하는 정치꾼과 교육관련 공무원들이 있다면 그들은 양심이라고는 없는 뻥쟁이들이다.
아니 뻥쟁이보다 더 사악한 집단이다. 그들은 교육에 대한 철학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교육이란 초기 공교육이 확립되던 시기, 즉 산업화로 발전하는 사회에 표준적인 인재를 조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들에게 학생들이란 단지 사회를 지탱하는 부속품이요. 교육은 그 부속품이 잘 만들어지도록 만드는 생산 과정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정한 어떤 기준에 미달하는 불량품은 가차없이 폐기해버린다. 반면 그 부품 중 한국이라는 기계에 맞는 최상의 부품은 터무니 없는 가격을 매겨버린다. 그로 인해 학생들은 너도 나도 최상의 부품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 학창시절을 제도교육이라는 부품공장에서 낭비한다. 아니 낭비를 떠나서 부품이 완성되기도 전에 망가져 버리는 상황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그런데 사악한 집단들은 부품공장의 문제를 재료의 문제로 돌리고 있다. 그래서 재료를 더 단련시키기 위해서 일제고사라는 첨가물과 함께, 좀 더 빨리 최상품의 부품을 만들기 위한 공장을 세웠다. 국제 중학교와 각종 특목고들을 말이다. 한국기계의 선진화를 외치던 2mb라는 메모리는 교육의 선진화는 들어보지도 못했는지, 학교라는 부품공장을 과거로 점점 되돌리고 있다. 말로는 다양화를 외치고 있지만, 점수라는 한가지의 측정치로 모든 것을 평가한다. 2mb라는 용량의 한계에서 나와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첨가물들은 각종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일제고사의 성적을 조작하는 사건이 여기 저기서 발생하고 있으며, 학부모들은 보다 좋은 공장을 찾아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학원들은 일제고사라는 첨가물에 대응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개발해서 학부모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다.
그런데 그 사악한 집단의 거짓말은 국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것일 뿐임에도 우리는 그런 거짓말을 언제부터인가 맹신하기 시작한다. "학생들의 능력을 시험"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무식한 소리 한마디로 말이다. 중국의 신세대 작가 한한은 자신의 소설 "삼중문"에서 시험의 결과가 좋지 않아 자살하는 것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말했다. "죽은 책을 공부할 뿐만 아니라 죽도록 공부하다가 공부로 인해 결국 죽게 되다니. 아마도 중국에서 실연으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마음 약한 사람은 이미 고교 입시와 대학 입시의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거의 다 죽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언제부터 인가 한국 사회에서 시험이라는 잣대가 절대적인 잣대가 되어 버리고 학업문제로 인한 청소년들의 문제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생각한다. 자살한 학생만 못난 것이 되는 것이 한국이라는 사회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는 근본적인 교육개혁이라는 것이 나올 수가 없다. 전교조교사와 일부 학부모 단체를 중심으로 가장 모범적인 교육시스템이라는 "핀란드식" 교육 개혁을 외치고는 있지만, 대답 없는 메이리 일 뿐이다. 오히려 그들에게 씌여진 굴레는 학력저하의 주범이라는 적반하장의 목소리일 뿐이다. 이미 핀란드라는 나라의 교육시스템은 전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상태고, 미국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들은 핀란드 식 교육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도 말이다. 사악한 집단과 그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맞으면 선진국 타령을 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선진국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식의 이중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그래서 사악한 집단과 "핀란드식 교육개혁"을 원하는 집단간의 접점은 쉽게 찾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사악한 집단들이 잘하는 거짓말을 실제로 지켰더라면 한국의 교육은 훨씬 더 비약적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핀란드의 경우 1970년부터 교육개혁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 1990년대에 지금과 같은 교육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100년지 대계답게 오랜 시간을 두고 교육 개혁의 방향을 논의 했다면, 우리는 핀란드 부럽지 않은 교육개혁을 했을 것이다. 문제는 잘난 척에 바쁜 옹고집쟁이들이 거짓말만 할 뿐이라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핀란드식 교육 개혁의 철학을 이해할 수 조차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하지도 않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교육의 목적은 선진국들이 추구하고 있는 교육의 목적과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인재라는 것을 하나의 부품이나 국가 발전을 위한 도구로만 생각할 뿐 만 아니라, 머리 속에 지식이 많은 사람을 인재라고 생각하는 전근대적인 잣대를 교육의 목적으로 삼아버린 것이다. 선진국들이 이미 10년 전부터 학력관을 지식중심에서 사고력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 일생을 통해 배워나가기 위한 힘, 즉 학습력을 사회에 나가기 전에 익히게 하는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선진국들의 교육방향에 가장 적당한 교육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나라가 핀란드이고 많은 나라들이 서로 벤치마킹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핀란드식 제도를 본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핀란드식 교육은 제도보다는 국민들과 교사, 그리고 교육당국의 철학과 인식을 공유 하는데서 시작하고 있다. 일본은 교육개혁을 하기 위해 핀란드식 교육과정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교육과정심의회 미우라 슈몬 회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학력 저하는 이미 예측하였던 불인이다. 각오하면서 교과심의를 해왔다. 아니 반대로 평균 학력이 내려가지 않고서는 앞으로의 일본은 아무것도 안 된다는 생각이 더 맞을 것이다. 결국 못하는 아이는 못하는 그대로 괜찮다. 전후 50년 동안 밑바닥까지 뒤쳐진 아이들을 끌어올리는 데 힘쓴 노력을 이제는 잘하는 아이가 더 뻗어나갈 수 있도록 애써야 할 때다. 백명 중 한 사람이 나와도 좋다. 앞으로는 바로 이들이 일본을 이끌고 나갈테니까. 특별한 재주가 없는 아이라면 똑바른 정신 정도만 키워주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일본이라는 단어만 없다면 우리나라의 정치꾼들과 많은 학부모들 그리고 교육정책당국의 생각을 그대로 표현해주는 것이다. 정말 무책임하고 잔인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의 교육을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말이라는 것이 현실이 그저 참담하게만 느껴진다.
이런 인식을 보면 핀란드식 교육의 중심은 제도가 아니라 철학과 인식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40년에 가까이 진행된 교육의 개혁이 말해주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철학과 인식의 적립을 위한 개혁과정이었고, 최근 10년의 제도개선이 국민들의 반발 없이 세계최고의 교육제도가 확립된 것이다. 이 부분을 완전히 무시한 채 교육제도만을 받아들여서는 교육에 대한 철학적 분열과 갈등 그리고 알맹이 없는 껍데기 교육제도만을 받아들이게 될 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점수가 아니면 학생들의 능력을 잴 수조차 없다고 하고, 수치 목표가 없으면 교사가 어떻게 일하는지 가늠조차 할 수 있겠냐며 되레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핀란드식 교육철학이 공감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핀란드식 교육철학이라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철학과 전혀 다른 점이 없는데도 핀란드식 평준화 교육은 좌파식 교육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긴다. 핀란드식 교육 철학은 자유, 책임, 협동, 평등 이다. 지금 언급된 철학들 중에 자유민주주의에 어긋나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썩어빠진 정치적 논리를 교육에 끌어들이는 정치꾼들에 의해서 좌파식 교육이라는 멍에가 만들어진 것이다.
우선 자유에 대해서 핀란드와 우리의 인식의 차이를 보자. 1%만을 생각 하시는 2mb와 그 무리배는 자유라는 것을 대학학생선발권의 자유로만 인식하는 천박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핀란드에서는 학생, 교사, 학교, 지방정부에게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자세히 들어가면. 우선 학생들에게는 어떤 공부를 할 것인지에 대한 자유가 주어진다. 수업시간에 교과와 상관없는 행위를 하고 있어도 교사들은 그 학생에게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단지 다른 학생들의 수업에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만 주의를 받을 뿐이다.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학생은 학생으로써의 의무를 포기한 것이고 교사는 교사로써의 의미를 포기한 행위로 보인다.
하지만, 이 이면에는 또 다른 교육적 철학이 숨겨져 있다. "이 방법 저 방법을 동원해서 흥미를 유발시키기는 하지만 본인 스스로 할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무릇 인간이란 날 때부터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태어나며 스스로 배어가는 존재라는 신념을 많은 사람들이 가지면서, 강요하면 본래의 학습 능력과 효과가 사라져버릴 뿐만 아니라 교육에 있어서도 오히려 마이너스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동시에 거기에 대한 책임이라는 것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즉 "아이들이 '나 스스로를 위해서 공부한다.'라는 극히 '보통의 교육'을 철저히 받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 나라는 학생들의 두발마저도 강력하게 통제할 정도로 학생들을 통제하려고 하지, 자유와 책임이라는 것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조그만 일탈이나 실수를 전혀 용납하지 못하는 강압적인 분위기가 넘쳐난다. 핀란드의 교육은 개인의 자유와 책임에 대한 확고한 교육적 철학을 바탕에 두고 있는 것이다.
교사에게도 커다란 자유권이 있다. 교과서가 없기 때문에 교육과정의 편성에 강력한 힘, 즉 자유권을 가지고 있다. 학생을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교사에 대해서도 특별한 평가 시스템이 없다. 교육기관이나 지방정부가 하는 것은 교사의 감시나 평가가 아니라 교사와 학생들에게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가를 고민한다고 한다. 교사의 자질에 대한 평가는 수업을 받는 학생들과 그들의 학부모님들의 권리일 뿐이라고 한다. 교사의 책임이라는 것은 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흥미와 동기를 유발하는 것이고, 공부하고자 하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이 바탕에는 교사의 자질과 능력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철저한 신뢰가 바탕이 되고 있다.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석사학위가 있어야 될 정도의 자질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일제고사의 선택권을 학생에게 준 교사를 파면시켜버리는 이상한 나라다. 교사의 자율권은 전혀 없고, 책임만을 강요한다. 교사들은 정부에 복종만 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핀란드의 교육은 경쟁이 없다. 16세 이전까지 시험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시험을 통해서 경쟁해야 될 이유가 없다. 교육이라는 것의 목표가 스스로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어느 지방을 가든 어느 학교를 가든 똑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평등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민자 자녀를 위해서 모국어 수업을 보장한다. 그 학교에 그 모국어 교사가 없으면 다른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거나 교육당국에서 교사를 파견해서 학생들의 수업 받을 권리를 철저하게 지켜주고 있다. 최근에 이민자 자녀가 늘어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핀란드의 이런 정책은 앞으로 꼭 도입이 필요한 정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문제인 것이 여전히 남아있는 피부색깔에 의한 차별, 그리고 출신 국가에 대한 차별의식의 개선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탈북자 학생들이 말하길 못사는 북한에서 왔다면 멸시를 받기에 차리리 중국 조선족이라고 말하는 것이 덜 멸시 받는다고 하니, 우리 내부의 차별의식은 피부색을 넘어서 이젠 출신국가의 경제력까지 뻗어있다.
그러한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교육의 재정립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온 국민이 공유해야 한다. 어느 일방만 그것을 공유해서는 지금과 같이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교육정책과 목적은 요동칠 수 밖에 없다. 말로만 "교육은 100년지 대계"라고 하지 말고, 정말로 100년을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교육의 목적과 철학을 정립하고 교육제도를 정립해 나가야 한다. 핀란드의 교육의 성공은 명확한 교육의 목적과 철학의 승리이지 제도의 승리가 아니다. 경쟁의 노예들과 시험의 노예들이 교육의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분명히 쉽지 않은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핀란드 교육의 성공에 대해서 명확한 분석과 연구를 모두가 공유하면서 우리에게 맞는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자 이제 시작하자. 학생들을 어떻게 복종시킬지, 학생들을 어떻게 관리할지 고민하지 말고, 우선 아이들을 어른들의 소유물이나 부속물이 아니라 한 명 한 명이 우리와 같은 하나의 인간이라는 관점으로 어떻게 자유와 책임을 부여하고 가르칠지 시작하자. 점수로 어떻게 아이들과 학교를 줄 세우고 교사를 평가할지 고민하지 말고, 교육의 목적이 학벌인지 학력인지 사고력인지부터 명확히 하자. 그리고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지식을 주입시켜줄지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스스로 배울 수 있는 힘을 키워 줄 수 있는지 고민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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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담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든 느낌이다. 과연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100살까지 산다고 봤을 때 55년 남았는데), 우리나라에 핀란드의 교육 체제 같은 시스템이 구축될까? 암담하고 암울하다. 못 볼 것만 같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로 추측해 보건대,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는 행태로 추측해 보건대, 그리고 지금 나같은 학부모가 여전히 살아 있을 것으로 추측해 보건대.....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고1인 내 딸아이는 기말고사 시험을 쳤다. 이 시험 기간 5일 동안 우리나라 정부는 현재 고등학교 1학년 내신성적을 대학입시에 안 넣겠다고 했다가 다시 넣겠다고 하는 둥 떠들어댔다. 딸아이도 나도 이 시험 성적이 대학입학 시험에 들어가게 될지 안 들어가게 될지 아직 모르는 상태이다. 모른다는 것, 몰라서 무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더 모른다는 것, 그래서 무엇이든지 되는 대로 다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안달하는 것, 그게 지금 우리의 교육 현실이다.
이 책의 작가는 일본 사람이다. 학력이 떨어져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 일본의 교육 정책에 대해 반성하고 개혁하기 위해 핀란드 교육 방법을 배우고 그 방법을 일본에 적용시켜 보겠다는 취지로 취재하고 정리하고 고민하면서 만든 책일 것인데, 왜 이 책의 많은 내용들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또 깨달았다. 일제 지배로 인해 우리의 역사가 손해를 본 것이 여기 '교육' 영역에 또 있었구나.
적어도 3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프게 남는다. 교육 정책 하나를 실현시키고 그 결과에 대해 무언가를 판단하려면 3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다는 것. 핀란드에서는 그 과정을 다 겪고 난 뒤에 지금에 이른 것이다. 다른 나라가 보기에 너무나 근사하고 너무나 민주적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평화와 안정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교육 제도를 갖추기까지 핀란드 국민들이 애쓴 시간들. 우리에게 그런 시간이 있어 줄까? 30년은 커녕 3년도 제대로 지켜보지 못하고 이리저리 휩쓸리며 난리를 치고 있는데.
언젠가 남편과 나눈 적이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 제도는 자기 아이가 1등이 되는 제도가 가장 좋은 제도일 것이라고. 자립형이든 국제중학교든 사교육이든 방과후교육이든 이런저런 것 아무 소용없고 오로지 자기 아이가 1등만 하면 되는 제도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자기 아이가 1등을 못하고 남의 아이가 1등 하는 제도로서는 영원히 불평불만이 사라지지 않을 교육제도일 뿐이라고.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다. 제도가 아니라 사회이다. 1등 하는 아이만 원하는 사회가 문제인 거다. 1등 하는 사람만 사람이고 1등 하는 사람만 월급 많이 주고 1등 하는 사람만 행복한 사회,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왜,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어른들 거의 대부분이 이 의식을 갖게 된 것일까. 과연 이 의식을 바꿀 수 있기는 할까.
핀란드 국민들의 사회 의식은 부럽다 못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 사회 분위기가 도저히 실감나지 않았다. 일본인 작가도 의문을 가질 정도이다. 도대체 그 나라에서는 그게 어떻게 가능하느냐고 묻는 작가의 의식이 바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과도 통하고 있으니, 내가 살아서는 못 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게 바로 그 때문이다.
할 말이 너무 많지만, 못하겠다. 그저 절망스러울 따름이다. 선생님을 믿지 못하는 것도, 선생님의 평가 방식을 믿지 못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우리들 스스로의 책임 때문이다. 자기 아이를 1등으로 만들어 주는 선생님이라면 누군들 믿지 않으랴. 1등으로 만들어야만 손해를 보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1등이 되어야만 남들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그 속에는 1등을 하지 못하면 손해를 보고 무시를 당한다는 뿌리깊은 열패감이 자리잡고 있음은 물론이고), 그게 서로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고 말았던 것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분명히 보이는데 답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고 무엇보다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일이다. 과연 우리 국민에게 그처럼 오랜 인내심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 동안에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은 계속 시험을 당할 수밖에 없을 텐데. 과연 기다려줄까.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조금씩 정말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살아가도 괜찮을까. 100년 후에는 지금보다 나으리라 믿을 수 있을까. 속상하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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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에서 2006년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바 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핀란드라는 나라가 2001년과 2003년에 이어 2005년에도 PISA의 학력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한 때문이다. 그러나 부동의 1위라는 사실이 세계의 수많은 교육전문가들을 열광케 했다면 그것은 너무도 단순한 이유가 될 것이다. 교육은 그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또한 동기와 목적에 그 존재이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핀란드와 기초학력에 있어 그에 버금가는 수준을 갖고 있는 한국의 교육현실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OECD국가들 중 가장 많은 수업시간과 보충수업 시간,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사교육비 최고인 대한민국. 학생들은 늘 시험과 입시라는 중압감에 눌려 지쳐 있고, 공부는 즐겁고 재밌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나라. 이러한 한국의 교육현실과는 너무도 판이하게 실현되는 핀란드의 교육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어쩌면 이 땅의 교육현실과 그 속에 살아온 나를 포함한 기존세대가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후쿠다 세이지 교수는 어떠한 노력이 핀란드를 세계 제일의 기초학력 국가로 만들었는가에 관해 그 교육적 특성 뿐만 아니라 그러한 교육적 특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교육적 배경으로서의 핀란드 사회가 지향하는 공유된 가치로서의 '평등' 및 '교육기회의 균등' 등을 언급하고 그러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교육적 방법의 가장 큰 테두리로서 '사회적 구성주의Socio-constructivism'가 자리하고 있다는 설명을 통해 핀란드 교육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교육기회의 균등'이라는 사회의 공유가치를 교육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에서 최저학력층이 존재하지 않는, 다시 말해 낙오자를 양산하지 않는 각고의 노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 구성주의'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지식이 존재하고 그것들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교육의 당면과제인 '객관주의' 지식관과 달리 교과서에 대한 검인정 제도를 없앨을 뿐더러 교과서에 대해 '유효한 교재'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었고 '지식'보다는 실제의 일상생활과 직업을 갖는 데 있어 요구되는 '능력Competence'의 측면에 집중해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능력을 기르는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고독한 승자를 만들려고 하지 않고 배우는 과정에서 '협동'을 통해 서로 협력하는 연대의 사회공동체를 지향한다.
이러한 그들의 교육철학에는 '모든 인간은 사회적 배경(성별,인종,종교,재산,지위 등)을 떠나면 지적으로 평등하다.'는 인간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관을 사회가 공유하고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사회가 지닌 성숙도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평등이라는 가치가 단순히 정치경제적인 차원에서만 운위되고 있는 것이 아닌 근본적인 인간관에 이르는 광범위하고 심오한 차원의 세계관이라는 사실에 사실 적잖이 놀랐고 또한 압도당했다.
단순히 우리의 교육문제 뿐만 아니라 삶의 문제까지 고민할 수 있게 하는 좋은 매개로서 후쿠다 세이지 교수의 책은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국의 현실에서 느꼈던 수많은 문제의식과 그만큼의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감히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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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교육감 선거처럼 이제 보다 직접적으로 유권자가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을 결정할 수 있게됐습니다.
그들이 공약으로 내세우는 정책방향과 참으로 천차만별인 상세 내용들을 보며 투표의 방향을 정해야할 때, 소중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책의 차이를 모를 때, `뽑을 사람이 없다' 라는 비겁한 변명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평소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에 대해 관심이 없을 때 정책의 차이를 모르게 되죠. 그런 사람이 제도를 통해 교육이 바뀌는 가능성을 깎아먹습니다.
우리가 받아왔던 교육, 우리 아이들이 받을 교육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꼭 일독을 권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투표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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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의 교육이 모든 것을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데 반해 핀란드는 교육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교육이란 학교와 한 곳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와 더불어 함께 하고 책임을 다 한다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교육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교육과 미래를 걱정하는 이라면 꼭 읽어볼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육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들에게도 이 책을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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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A 2003에서 평균 득점의 국제 비교표에 보면 상위권 4위까지의 모든 영역에서
지식에는 어떠한 목적과 가치관이 전제가 되어야 함을 표방하는 입장에서 나왔다.
때문에 핀란드의 교과서는 유일하게 바른 지식을 집대성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양질의 자료ㆍ안내이기 때문에 공권력에 대한 검정도 필요 없고 어디까지나 자유 선택이다. 또 교과서를 사용해서 배우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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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은 수박겉핥기가 아니라 필자가 직접 핀란드에 가서 교육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실제 학생들의 학교 생활 모습을 보고 썼다는 점에서 흥미롭다.(그 필자가 일본인이라 좀 그렇지만 우리와 비슷한 교육현실을 고민하는 일본이라 괜찮을 듯) 다른 나라의 교육정책이나 실제 교육현장을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도표도 많고 학생들 사진도 있고, 교육학 이론을 설명한 부분도 있지만 인터뷰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특히, --핀란드는 PISA에서 전체적으로 성적이 좋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OECD국가와 비교했을 때 사회적 배경이 학업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적다는 것이다.--
핀란드가 아이들 스스로 달성하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할 때 우리나라는 일제고사를 강요하고 우열반을 편성하는 데 주력한다. 핀란드가 학력이나 사회적 수준이 낮은 아이들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할 때, 우리나라는 사회적 약자들은 내버린 채 '국제중'같은 문제에 집중한다. 핀란드의 지자체가 남는 예산은 우선 교육비로 돌릴 때, 우리나라는 교육에 투자할 예산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물론 인구도 적고, 복지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그래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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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교육이 한창 이야기되었던 적이 있었고, 요즘도 핀란드 교육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식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의 교육 방법이 궁금해서 펼쳐보게 된 책이다. 인구 500만이 약간 넘고 겨울이 긴 척박한 땅. 그곳에서 무상으로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신의 수준에 맞게 자신이 선택한 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할지 상상이 된다. 이런 핀란드 교육이 성공할 수 있는 배경은 한 가지 원인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교육 정책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교사, 학부모들의 연대가 있어 왔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교육정책 입안자들의 생각부터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스스로 공부하게 할 것, 모든 이가 평등하게. 아무도 낙오되지 않게 할 것.'이다. 스스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책임진다는 것, 그런 선택을 모두가 평등하게 할 수 있다는 것, 이런 기회를 누구나 가질 수 있다는 것.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일들이 핀란드에선 당연하다는 듯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이런 후덕한 지원은 높은 세금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60%에 달하는 세금 때문에 맞벌이를 많이 한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핀란드 사람들의 성숙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지금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은 이런 세금 때문이고 우리의 후손들이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 세금은 높아도 괜찮다는 것. 책의 흐름은 초반에는 여러 시험에서 핀란드가 상위권에 속한다는 통계를 나열한다. 중반과 후반에는 핀란드의 교육 방법과 교육에 대한 가치관이 실려 있다. 일본인이 핀란드를 통해 자국의 교육에 대하여 반성해 보자는 의도로 쓰여진 것이지만 가볍게 읽으면서 우리 나라의 교육도 돌아볼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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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과제 작성을 위해 구입한 책. 중고로 샀는데, 새 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앞으로도 중고책을 구입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소장하고 아껴볼 책은 아니니... 생각보다 핀란드의 교육은 '단단한' 것 같다. 그리고 우리의 교육 제도 역시 핀란드의 것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시 핀란드와 우리의 교육 차이는 '제도'가 아닌 '운용'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 책을 서술한 후쿠타 역시, 한때 전 세계가 주목했던 국가 '일본' 사람인데, 과거 그리고 어쩌면 현재에도 일본의 교육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일본은 지금 오랜 시간 방황을 하고 있고, 우리 역시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세계 여러 나라의 교육을 살피고, 공부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나저나 핀란드의 PISA 성적, 경제 여건 등이 굉장히 훌륭하고...어쩌고 해서 덜컥 이 나라를 한 번 살펴봐야지 했는데, 핀란드의 2000년대 초반 성적은 뛰어나나, 지금의 핀란드는, 글쎄올시다, PISA 순위도 떨어진 것 같고, 핀란드 대표기업 노키아는 애플과 삼성에 밀려 찬밥 신세가 되어 가고 있으니, '새옹지마'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런 핀란드의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도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하는 생각도 들고, 어쩌면 과거로 회귀할지도 모르는 올해 대선 주자들을 보면서 착잡하기도, 한편으로 또다른 기회가 올 것 같기도 하다. 핀란드 교육 책 읽고 대선 이야기까지 나왔으니, 내 집중력도 많이 떨어진 모양이다. 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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