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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피아와 싱어, 그리고 세계시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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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메 앤터니 애피아.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 태생의 학자들의 이름을 접하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이름을 접하니 어색하다. 마치 미국 대통령 후보로 '버럭 오바마'를 처음 알게 됐을 때의 느낌이랄까. 당시에도 언론은 그의 이름을 어떻게 표기해야 할지,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잠시 혼란스러워했었다. 애피아의 이름을 접한 건 이 책이 처음은 아니다. 삼인출판사에서 번역돼 나왔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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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메 앤터니 애피아.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 태생의 학자들의 이름을 접하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이름을 접하니 어색하다. 마치 미국 대통령 후보로 '버럭 오바마'를 처음 알게 됐을 때의 느낌이랄까. 당시에도 언론은 그의 이름을 어떻게 표기해야 할지,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잠시 혼란스러워했었다. 애피아의 이름을 접한 건 이 책이 처음은 아니다. 삼인출판사에서 번역돼 나왔던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이라는 책에서 이미 만난 바 있다. 너스봄이 주가 되는 책에서 애피아를 만났듯 애피아가 주인공인 이 책에서는 너스봄을 만날 수 있다.  

  세계시민주의. 많이 들어 본 말이다. 애피아가 말했듯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들은 기원전 4세기경의 키니코스 학파이다. "당시 이들은 사회 관습과 전통, 학문, 예술 등을 무시하고 자신의 본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하면서 단순하고 간소한 생활을 했다. 시노페의 디오게네스가 대표적인 인물이며, 헬레니즘 세계의 각지를 돌아다니며 세계시민을 자칭하곤 했다."  이것이 스토아 학파로 이어지는데, 당시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도시국가가 무너진지 오래고, 그리스가 지중해 세계의 지배자로 등장한 로마의 지배 아래 있던 시기였다. 사람들은 스스로 이제 한 도시의 시민이 아니라 세계의 시민이라고 생각했고, 개인보다는 전체를 중히 여겼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삶에 결정권이 없다고 생각했고, 운명론에 빠지게 되었다.  

  애피아의 세계시민주의는 "민족 공동체에서처럼, 인류 공동체 차원에서도 공존의 습성을 길러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때 공존의 습성은 함께 갈아가기와 연대하기를 위한, 전통적 의미에서의 대화"라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그는 나아가 이때의 "대화는 어떤 것에 대한 합의, 특히 가치에 대한 합의에 도달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이 서로에게 익숙해지도록 도움을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후반부에 있다. '얕은 연못'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 장인데, 여기서 애피아는 철학자 피터 엉거와 피터 싱어를 언급한다. (이름이 비슷한 엉거와 싱어가 형제거나 친척은 아닌 듯 하다.) 그의 비판은 피터 엉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 책을 통해 봤을 때) 피터 엉거와 피터 싱어의 주장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감안하면, 그 비판은 피터 싱어에게도 적용이 된다. 또, 엉거와 함께 싱어도 비판의 도마에 올리고 있다.

 최근 산책자에서 나온 피터 싱어의 책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를 읽었다면, 애피아의 비판에서 생각해 볼 만한 구석이 많다. 나는 싱어의 주장에 동의하고, 그것이 실현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 싱어만큼이나 '이상'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고, 혹자는 싱어가 현실을 모른 채 지극히 이상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애피아의 비판도 여기에 닿아 있다. 세계시민주의에서는 결국 전 인류를 하나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모든 인류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다. 세계시민주의자인 애피아와 실천윤리학자 싱어가 다른 해결책을 내놓으면서, 같은 지점을 바라보는 건 그 때문이다. 싱어를 세계시민주의자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싱어의 생각은 이미 세계시민주의적이다.  

  싱어는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에서 우리가 고급 취미를 줄임으로써 세계의 절반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어느 얕은 연못에 한 아이가 빠진 것을 보았다면, 내 옷이 진흙투성이가 된다고 해도 나는 그 아이를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가 죽으면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내 옷이 더러워지는 것은 그보다 덜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논점을 점차 확대하며 모든 상황에 적용한다. 유니세프로 부터 헌금 봉투가 왔다. 나는 100달러를 보내 아이를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아이는 굶어죽을테니까.  

  그러나, 애피아는 여기에 반대한다. 그는 아이를 구하는 데에는 찬성하지만, 그 아이를 구하는 방법이 지금 당장 내가 100달러를 내놓는 것인가 하는데 의문을 제기한다. 애피아는 매사에 우리가 이렇게 돈을 내놓고, 희생을 하는 것이 진정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한다는 것이 우리가 모든 재산을 남에게 준다는 것을 실제로 수반하느냐고 묻는다. 애피아는 세계의 굶주리는 이들과 약자를 돕는데는 찬성하지만,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엉거와 싱어는 세상의 나쁜 일 전체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애피아는 나 자신을 파산시킬 만큼 엄청난 액수를 유니세프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더 좋은 일에 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애피아는 "우리의 의무는 전체의 짐을 홀로 지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우리들 각자가 자신의 몫을 공평하게 져야 하지만, 자신의 몫 이상을 지도록 요구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싱어가, 물에 빠진 열 명 중 한 명을 구하고서 나의 도리를 다했다고 하지 말고, 남은 어른 아홉 명이 빠진 아이 아홉 명을 구하러 들어가지 않으면, 당신은 다시 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지점을 비판한다. 내 몫을 다했어도 더 해야 한다고 말하는 싱어와 그러지 말고 모두가 공평하게 짐을 져야 한다고 말하는 애피아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이 부분에서는 나도 싱어보다는 애피아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의식 있는 개개인 몇몇이 뛴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쪽에 촛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싱어가 감성에 호소하는 주장을 편 데 비해, 애피아의 비판이 이성에 의거하고 있어 애피아의 비판이 핀트가 살짝 어긋났다고 말할 수는 있다. 싱어는 단지 그만큼 절박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절박함에 대해 이성으로 비판을 가하는 것은 가혹하다. 애피아는 또 싱어가 - 책에선 엉거를 언급한다 - 빌게이츠의 기부 행위에 찬사를 보낸 것에 대해서, 그런 빌게이츠의 행위도 그가 그만한 위치에 올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니, 모든 사람들에게 매사에 돈을 내라고 말해선 안된다고 한다. 부가 부를 벌기 때문이고, 저축을 꾸준히 해서 나중에 기부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애피아의 생각에 반대한다. 빌게이츠가 부자가 되어 기부를 하는 반면, 부자가 되어도 그만한 기부를 하지 않는 대기업 총수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 기부는 그때그때 하는 것이지, 나중에 몰아서 하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기부 문화를 더 죽이게 될 것이다.  

  애피아와 싱어. 둘다 세계시민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세계의 빈곤을 없애는 데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싱어가 좀더 적극적으로 개인의 실천을 요구한다면, 애피아는 그보다는 시스템 상의 개선에 주목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애피아는 싱어를 비판했지만, 크게 봤을 때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세계시민주의의 도전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우리의 대표자들에게 그런 이방인들을 기억해 달라고 말할 것이다. 이방인들이 겪는 고통에 우리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 아니라, (스미스가) "우리 가슴속에 자리 잡은 이성, 원칙, 양심"이라 부른 것들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가장 부유한 나라의 국민들이 실천을 더 잘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요구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문명을 더욱 세계시민주의적으로 만든다면 더 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도덕적 요구가 될 것이다."

 

d*****t 2009.09.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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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진담TV 수요독서] 콰메 앤터니 애피아 / 세계시민주의
"[교육진담TV 수요독서] 콰메 앤터니 애피아 / 세계시민주의" 내용보기
2분 퀵서비스 이제는 외국의 문화를 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문화, 우리나라에서 만든 문화 콘텐츠도 외국에서 좋은 소식을 많이 전해주고 있죠. 2000년대 일본의 배틀로얄 신드롬이 2020년 우리나라에서 오징어게임이 됐고, 1990년대 영국과 미국의 보이·걸그룹 트렌드와 2000년대 일본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뒤섞은 2020년대 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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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퀵서비스

이제는 외국의 문화를 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문화, 우리나라에서 만든 문화 콘텐츠도 외국에서 좋은 소식을 많이 전해주고 있죠. 2000년대 일본의 배틀로얄 신드롬이 2020년 우리나라에서 오징어게임이 됐고, 1990년대 영국과 미국의 보이·걸그룹 트렌드와 2000년대 일본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뒤섞은 2020년대 한국은 BTS와 블랙핑크를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한쪽에선 이런 혼합의 흐름에 저항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소수민족’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한국 문화를 중국의 것으로 소개하려들고, 미국은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배척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닌 트럼프라는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외국 얘기만은 아닙니다. 조선족이라 불리는 중국 동포와 중국인들, 우리나라보다 경제적 규모가 다소 작은 나라 사람들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심하게 차별하고 있다는 것 또한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문화의 교차와 배척이 동시에 이뤄지는 이런 시대, 우리가 지녀야 할 올바른 태도란 무엇일까요? 철학자들은 대체로 세계시민주의에 그 답이 있다고 여기고, 바람직한 세계시민주의적 태도가 무엇인지 다양하게 논의해 왔습니다. 오늘 읽을 책은 그 논의 중 하나로, 가나 부족장 가문 출신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하는 철학자인 콰메 앤터니 애피아식 세계시민주의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겠습니다.

 


2종 보통 키워드
제가 꼽은 키워드는 세계시민주의입니다.

 

세계시민주의, 코즈모폴리터니즘이란 말은 자신이 특정한 공동체에 소속돼 있지 않다는 것을 표방하는 이념에서 시작됐습니다. 코즈모폴리턴이란 우주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코스모스와 시민을 뜻하는 폴리테스의 합성어인데요. 고대 그리스의 견유학파 철학자들은 ‘니들은 조그만 공동체에 속한 시민일 뿐이지만, 나는 대우주에 소속된 시민이다’라고 사람들을 조롱하기 위해 이 말을 만들어냈다고 하네요. 그러다 이 말은 하나님이 관여하는 단일한 세계에 소속된 사람이라는 말로 이해됐다가, 교통 통신 수단의 발달로 이젠 정말 명실상부하게 지구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이해해도 크게 무리가 없는 시대에 들어와선 우리가 진짜 지녀야 할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그 의미가 또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특정한 공동체에서 자라나며 ‘인간’이 되는 방법을 배운다는 현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로부터, 그 뒤에는 학교에서, 더 자라서는 회사나 동호회 등 특정한 문화 집단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우리는 사람으로 자라나죠. 이런 현실적 조건 때문에, 좁은 시선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이 인정하는 문화만이 옳고 다른 문화는 그르다는 폭력에 빠지고, 그 반대편에선 모든 문화가 옳다면서 서로 건드리지 말자는 상대주의로 빠져듭니다. 완전히 반대편인 것처럼 보이지만, 애피아에 따르면 양쪽 다 생각의 기준이 ‘내 집단’이라는 점에서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폭력이 도덕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명백해서 큰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데, 상대주의는 우리에게 철학적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논의할 만한 주제를 던져줍니다. 가치 자체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성격을 지닌 어떤 것인가, 과연 서로 다른 집단 각자의 문화가 같은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가, 그들이 가치에 관해 설명할 때 사용하는 용어는 같은 의미를 지니는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모두 동의할 만한 그래서 모두가 같은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반이 되는 보편적 가치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또는 구성이라도 할 수는 있겠는가. 여기에다 ‘보편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들이 실제론 서구라는 특정 지역의 가치관을 다른 집단에 ‘보편적’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는 것이라는 제국주의적 논의까지 더하면, 상대주의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문제의 목록을 대강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런 사고방식에 설득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이것을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에서 접근한다면, 애피아의 입장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호기심과 대화입니다. 우리가 상대주의의 모든 논변에 동의한다고 해도, 여전히 어떤 인간에겐 다른 집단의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저 낯설고 신기하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죠. 그렇게 호기심을 가진 두 인간이 만나면서 두 집단은 서로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목록을 확인하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려보고, 각자의 기반 위에서 상대의 문화를 재해석하고 수용합니다. 이런 조합은 대체로 인류의 역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고유’의 문화라고,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이런 혼합의 결과물입니다. 이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세계시민주의적 태도는커녕 인류가 쌓아 올린 문화 전체를 거부하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애피아의 입장입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이 책과 함께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마사 누스바움의 <세계시민주의 전통>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룬 책은 아직 9.11 테러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2006년에 나온 책이고, 현안이나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의 의미를 파헤쳐보는 방식으로 세계시민주의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에 접근합니다. 보통 이걸 철학에서는 ‘분석적’이라고 말하는데요. 누스바움의 <세계시민주의 전통>은 2019년에 나왔고, 이 책 이후에 진전된 논의와 누스바움 자신의 입장을 포함시켜 역사적인 맥락을 짚는 방식으로 책을 구성했습니다. 같은 주제를 다루며 다른 접근법과 입장을 지닌 두 책을 비교해보며 읽는 것은 매우 좋은 독후활동이라 생각합니다.

s*********b 2022.03.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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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두고 읽는다면 제법 쏠쏠한 재미가 있는 세계시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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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야는 기본적으로 세계시민주의적 애국주의를 옹호한다. 이런 입장을 가진 사람은 곧 뿌리뽑힌 시민이 아닌 뿌리내린 시민의 자격을 가지며, 그들이 뿌리내린 곳에서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자이기 때문에 나름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과 고향에 대한 애착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세계에서 고향의 문화와 정치를 양성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받아들이며, 특정 지방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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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야는 기본적으로 세계시민주의적 애국주의를 옹호한다. 이런 입장을 가진 사람은 곧 뿌리뽑힌 시민이 아닌 뿌리내린 시민의 자격을 가지며, 그들이 뿌리내린 곳에서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자이기 때문에 나름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과 고향에 대한 애착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세계에서 고향의 문화와 정치를 양성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받아들이며, 특정 지방의 문화적 관습을 유지 전파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는 셈이다. 결국 이러한 그의 입장은 세계시민주의라는 보편성과 아울러 지역적 특수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가 지지하는 세계시민주의는 지역적 특수성을 무시한 단순 동일화의 진행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아피야는 자신의 입장을  ‘지역적 헌신을 요구하는 세계시민주의’라고 규정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입장은 문화적 혼종성(contamination)을 인정함으로써 새로운 문화적 형식과 내용의 창조에 호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가 지역적 단위로 일어난다는 것에 찬성한다.

여기서 저자는 (사실과 당위를 구분하는)실증주의와 상대주의를 거부한다. 이것들은 모두 상대 문화에 대한 관용과 차이를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논리를 지녔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는 이런 관용과 차이를 인정하기 위해 세계시민주의를 끌어들인 셈이고 이 시민주의는 ‘대화’를 강조한다. 이런 세계시민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아피야는 흄의 견해를 받아들여 이러한 세계시민주의적 애국주의가 ‘감성’에 기초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감성에서 신념이 그리고 이 신념이 이론적 모색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의 시도 역시 세계시민주의적 감성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은 세계시민주의의 감성적 특성을 다시한번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감성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에 아피야는 이론적 검증이라는 까다로운 절차 없이 서로 잘 어울려 사는 실제의 세계시민이 가능하다는 이유를 밝힌다. 실제로 대부분의 갈등은 새로운 문제의 등장이나 충돌이 생겼을 때에나 가능한 것이지 대부분은 ‘관행의 우선성’에 의거하여 비교적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동의를 한 부분에서도 상당히 첨예한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역시 관행의 차이 때문인 경우가 많음은 생명존중과 낙태의 문제로 설명해주고 있다.

아무튼 이런 세계시민주의적 애국주의는 근대의 특징이기에 또 한 가지 특징이 부가된다. 그것이 바로 자유주의적인 특징인데, 이 자유주의적 특징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존경받을 권리고 삶을 시작한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자유주의적 이론의 핵심인 인권개념과 같은 것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아피야가 옹호하는 ‘자유주의적 세계시민주의’는 인류의 사회적・문화적 생활방식의 다양성에 가치를 둔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도덕적인 분위기조차 지역적으로 다를 수 있음을 언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차이는 세계시민주의라는 보편적인 특성을 통해 보편적인 윤리적 제약, 특히 기본적인 인권을 존중한다는 차원을 인정하는 의미에서 허용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특수한 지역적 정서를 통해 국가가 탄생하며, 이러한 국가가 도덕적인 특성을 가진다고 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국가는 원래부터 도덕적 문제이다. 국가는 …… 그것이 항상 도덕적 정당화를 필요로 하는 강제적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규제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콰메 앤서니 아피아,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마사너스봄 외저/ 오인영 역), 삼인, 2003, 55쪽.)고. 그리고 이것이 국민과 같은 임의적인 특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그의 견해가 다시 한번 세계시민적 문화의 다양성이 국가의 실재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런 국가의 복수성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세계시민주의자인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국경 안에서나 국경을 초월하여 충분히 연대할 수 있는 민주 국가에서 애국적 시민이 되어 살아갈 권리를 당연히 지지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세계시민주의자로서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그러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콰메 앤서니 아피야,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마사너스봄 외저/ 오인영 역), 삼인, 2003, 56쪽.)


그런데 이 책을 무비판적으로 읽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사실 아피야의 견해가 비교적 논증적인 글쓰기는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는 부분들이 몇 있다. 그 중에서도 이 글이 지나치게 개인적인 차원을 우선시하는 바람에 경제적 정치적 권력문제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도덕의 사회적 차원을 강조하기는 하더라도, 이 강조가 개인의 도덕적 차원의 설명을 뒷받침하기 쓰이는 것으로만 사용되지, 세계의 여러 가지 체계문제를 면밀히 고려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와 국가 간의 권력 이해관계에 대한 고려는 거의 전무하다. 뿐만 아니라 세계시민으로 살기 위해 강조되었던 관행의 우선성도 좋지만, 정작 이 관행을 바꾸는 힘에 대한 탐구는 소홀한 것 같다. 관행도 중요하지만, 관행을 관행으로 정착시키고 새로운 관행으로 변화시키는 힘들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 관행의 우선성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 여기에 사실 저자에 의해 거부되었던 논증이나, 표현으로서의 투쟁같은 개념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결국 저자의 관행의 우선성은 이론적으로 논증의 개념이나 투쟁의 개념을 극복한 것은 아닌 셈이다. 그 외에도 지적할 문제들이 많다. 그렇다고 이 책이 좋지 않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비판적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충분하다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다.

t******3 2008.08.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