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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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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인간의 죄를 인간이 심판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는 메세지를 준다면, <영혼의 새벽>은 한 발 더 나아가 용서를 이야기 한다.   군사 정권 시절 운동권의 친구 때문에 아무 죄도 없이 심한 물고문을 당한 최성규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자신을 고문했던 S를 만나게 된다. 그것도 성당에서. 악마가 성스러운 곳에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말하는데 최성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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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인간의 죄를 인간이 심판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는 메세지를 준다면, <영혼의 새벽>은 한 발 더 나아가 용서를 이야기 한다.

 

군사 정권 시절 운동권의 친구 때문에 아무 죄도 없이 심한 물고문을 당한 최성규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자신을 고문했던 S를 만나게 된다. 그것도 성당에서. 악마가 성스러운 곳에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말하는데 최성규는 절망한다.

 

같이 고문받다 수녀가 된 장 미카엘라는 괴로워하는 최성규에게 '귀양의 애가' 라는 책을 전해준다. 6.25 때 북한으로 끌려가 죽음의 행진을 하다 동료 수녀들을 잃고 돌아온 프랑스 수녀가 쓴 책이다. 수녀는 이 책을 통해 '진정한 용서의 의미를 깨달으라'고 당부한다.

"예수가 우리들에게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고 말한것은 이웃을 무한대로 용서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인 것이다."

인간은 과연 인간을 용서할 수 없을까. 용서는 오직 하느님의 몫이므로 인간은 감히 원수를 용서할 수 없는가. 그렇다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은 거짓이 아닌가...

아니다.
인간은 원수를 용서할 수 있다. 원수가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똑같이 비를 맞고 똑같이 햇빛을 받는 용서받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바로 그것이 인간의 용서라고 이 책은 전한다. 곧 인간의 용서는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용서받은 존재이자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발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용서는 행위가 아니라 발견이다. 그 어떤 원수도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존재임을 발견하는 바로 그 길만이 우리들 인간이 할 수 있는 용서의 시작이다.



p****o 2010.02.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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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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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선생님의 장편소설 1,2권을 오늘 다 읽었다. 어찌 보면 종교 서적 같기도 한 내용들이다. 화두는 '용서'라는 것. 최인호 선생님의 종교가 카톨릭인 것은 다른 책을 보고 알았기 때문에 그다지 새삼스럽지는 않았다.추리형식을 띄고 있는 부분과 인용 부분들이 많아서 조금 지루한 감이 있었지만 또 그만큼 곱씹어 볼 만한 구절들이 많았다. 최성규, 세례명인 베드로... 이 책을
"용서의 의미" 내용보기
최인호 선생님의 장편소설 1,2권을 오늘 다 읽었다. 어찌 보면 종교 서적 같기도 한 내용들이다. 화두는 '용서'라는 것. 최인호 선생님의 종교가 카톨릭인 것은 다른 책을 보고 알았기 때문에 그다지 새삼스럽지는 않았다.추리형식을 띄고 있는 부분과 인용 부분들이 많아서 조금 지루한 감이 있었지만 또 그만큼 곱씹어 볼 만한 구절들이 많았다. 최성규, 세례명인 베드로... 이 책을 풀어나가는 주인공으로 대학시절 친한 친구가 운동권 간부인 관계로 야심한 밤 어딘가로 끌려가서 무지막지한 고문을 받는다. 물고문... 흠.. 그 장면들이 상상이 되면서.. 내가 숨을 다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70~80년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내하기 힘든 고문을 당했을 것이며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 것인가.. 새삼스레 분노가 치밀었다. 정말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살.아.야.겠.다는 절대적인 생각으로 그 친구의 애인의 이름과 집 약도를 말해주고 만다. 폐쇄 회로를 통해 그 여인(친구에 대한 질투와 함께 연정을 품고 있던 바로 그 여인)이 고문을 받는 것을 보고... 충격을 금치 못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 여학생은 봉쇄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녀가 되어 버리고, 그 운동권 친구는 재야 정치인으로 발돋움하여 잘 나가는 국회의원이 된다. 자신과 그 여학생을 고문하던 이른바 S. 사탄의 첫 글자인 S를 땃다고 자신의 입으로 내뱉던 그를 10년이 훨씬 지나 새로 이사한 교구의 성당에서 만나게 된다. 사목회장으로 한없이 온유한 미소를 띄고 있는 그를 보며 참을 수 없는 구역질과 증오심, 복수심에 불타는 그는.. 그를 단죄하고자 한다. 그가 S를 린치하고 궁극적으로는 용서하기까지 성경과 마리 마들렌 수녀의 <귀양의 애가="">를 인용하며 풀어나간다. 인간의 용서는 '내가 너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받은 너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 이 결론에는 공감할 수는 있지만, 그 방식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악행을 저질렀던 그들의 죄값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단지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나도 그를 인정해주어야 하는가. 이것은 같은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만 설득력이 있을 뿐인것 같다. 나치 시절 엄청난 고통을 받았던 유대인들이 그랬다지. 용서해라. 그러나 잊지는 마라. 잊지 않기 위해서 전범들을 끝가지 찾아서 재판에 회부한 것 아닌가. 물론 개인적으로 내게 해악을 끼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나 개인에게 달린 일이지만, 그 해악이 나 개인에게만 멈추지 않았을 때 그 사람의 죄값은 치루어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소설에서의 용서의 의미가 너무 종교적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우리는 그넘의 잘못된 용서 관념.. 지난 일이니 잊어버리자,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이런식의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친일 문제도, 광주 항쟁때의 학살도, 운동권 학생들의 죽음도 모두 묻혀져 버린 것 아닌가. 제대로 된 용서는 정의의 개념도 함께 가져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종교적으로 아가페적인 사랑과 용서의 의미는 잘 드러냈고, 수양하는 자의 관점에선 받아들일 만한 내용들이 많지만, 사회정의적인 차원에서의 해결책이 아쉬운 소설이었다. 간만에 머리식힐려고 읽었던 소설이 오히려 내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b*****j 2002.11.1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