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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tiful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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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Olive Kitteridge에 이어 베스트셀러 문학작품 읽기 2탄으로 the elegance of the hedgehog을 읽었다. 도서관에 예약해놓았는데 차례가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 처음 60페이지를 읽고는 두 main character (부자 아파트 수위 아줌마 Madame Michel과 그 아파트에 거주하는 12살 suicidal 소녀 팔로마)의 초snobbery때문에 짜증 폭발해서 계속 읽을까 말까 망설이다 아무래도 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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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Olive Kitteridge에 이어 베스트셀러 문학작품 읽기 2탄으로 the elegance of the hedgehog을 읽었다. 도서관에 예약해놓았는데 차례가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 처음 60페이지를 읽고는 두 main character (부자 아파트 수위 아줌마 Madame Michel과 그 아파트에 거주하는 12살 suicidal 소녀 팔로마)의 초snobbery때문에 짜증 폭발해서 계속 읽을까 말까 망설이다 아무래도 맘에 드는 부분이 꽤 있어서 계속 읽기로 했다. 정말 훌륭한 결정이었다. 초반의 정떨어지는 두 주인공은 바로 가시돋힌 고슴도치들이었던 것이였다.

 

프랑스 책을 진짜 오래간만에 읽었다. 프랑스 소설은 원래 이런것인가? 책 속에 내가 감정이입되서 맘에 드는 주인공들과 호흡하는게 아니라, 바깥으로 나와서 별로 맘에 안드는 이 캐랙터들의 생각의 흐름과 변화를 감상하는게 중요한것 같다.

 

60페이지 정도 까지 읽었을땐 주인공 마담 르네 미쉘이 본인이 intelligent하고 톨스토이와 칸트, 니체를 읽고 모짜르트를 듣는걸 숨기고 보통의 무지한 수위 흉내를 내는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나도 회사에 가면 별볼일 없는 직원이지만 제인 오스틴과 토스토옙스키, 마르께즈를 좋아하고 BBC의 찰즈 디킨스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왜 숨길일인가? (약간 분노) 아파트에 사는 부자주민들에 대한 냉소는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문법이 틀릴수도 있지. 막스를 읽고 제대로 이해 못할수도 있지. 현상학 (phenomenology? 스펠링도 정확치 않다), 칸트라고? 도대체 몇 퍼센트의 사람이 철학을 심도있게 이해할수있느냐고? (쫌더 분노, 이 책을 읽으려면 사전이 필요하다~~~ 더 분노)

 

거기다가 제 2화자인 팔로마, 지금 12살 사춘기 소녀. 엄청난 부잣집 딸. 머리가 너무 좋지만 숨긴다. 왜? 13살 생일에 죽을꺼니까. 아파트에 불까지 지르기로 결심. 왜 죽을꺼냐 하면 오래 살아봤지 인생의 도착점은 금붕어 어항안인데 그때까지 파닥파닥 애쓸 필요가 뭐있나. 그냥 일찍 가겠다. 특히 맘에 안드는 자신의 가족들에서 해방되고 싶다. 이게 책으로 쓸일인가. 사춘기소녀 있는 집집마다 일어나는 일인데 어쩌라고!

 

경악한건 culture snob 르네가 책의 가치를 결정할때 cherry plum test란걸 한다 (cherry plum이 안나는 계절엔 다크 쵸콜렛 사용) 책을 펼치고 cherry plum를 준비한다. 책에 정신 팔려 과일맛도 모르면 이 책은 인정. 과일맛에 정신 집중되면 책의 패배. 웬일이니 하면서 그날 우연히 사오게된 양념치킨으로 나도 양념 치킨 테스트를 해보았다. 예상을 뒤없고 양념 치킨도 잊고 다음 페이지로 마구 넘어가는 나자신을 발견!

 

정말 끝까지 읽으면 60여 페이지의 분노는 다 사라진다. 주인공들은 일종의 심볼이다. 그렇지만 숨쉬는 캐랙터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지막엔 마음이 찡했다. 주인공들의 일본에 대한 모든 동경도 일종의 심볼이다. 처음엔 무슨 일본이 천국인줄 아는가 하고 의아했다. 화장실 휴지까지 구구절절 아름답게 묘사한걸 보고 "이건 아니야"했지만 이 또한 다 읽고 나면 화낼일이라기 보다는 스토리를 구성하는 묘사라고 생각된다. 지금도 화장실 휴지까지 사실 들먹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스시, 사시미, 만화, 하이쿠, 일본 영화, 옆으로 미는 문, 나중엔 일본여자들의 걸음걸이까지 완전 미화해서 이건 모야했지만 일본인들의 문화 알리기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외국 서점에도 다 manga 섹션이 있다. 스시집은 동네마다 있다. 하이쿠니 seppuku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안다.  우리나라사람도 감정적으로 일본문화를 적대시 할것이 아니라 우리 색깔을 찾아야 할것같다. 나도 뭔가 할수 있는게 있으면 좋겠다.

 

작가가 일본이 좋아 죽는다기 보다는 서양문화의 공허함같은걸 채우려고 반대 이미지를 넣은게 아닐까하는게 나의 짧은 생각이다. 서양 문화라는 것이 가식적이라고 자주 생각한다. 들어보면 하나마나한 말들을 한다. 조용히 사색하는 문화는 아닌것이다. 그래서 일본식 zen분위기가 이책에 필요햤던것 같다. 그래도 중간에 나타난 일본인 부자 할아버지 카쿠라씨는 뭔가 어색하다.

 

스토리나 플롯에 목을 맨다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을것 같다, 이 책의 beauty는 두 주인공들의 머릿속 생각들이다. 인생, 철학, 죽음, 영화, 예술 다 방면에 걸쳐 좋은 글이 많다. 팔로마의 profound thought시리즈 (16개가 있다) 는 책 중반이 넘어가면 다음이 뭘까 기대까지 하게 되었다. 팔로마의 생각을 읽으며 나의 사춘기 시절이 너무 많이 생각났다. 그 때 노트를 썼으면 팔로마처럼 좋은 머리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생각 많이 했던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생각은 자기자신을 속이지말고 솔직하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들과의 주고받음. 진실된 우정(특히 마누엘라)과 배려, caring 그런걸 말해준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든점은...

1. 그렇게 까지 어려운 단어를 많이 쓸필요가?

2. 카쿠로씨가 저녁식사 초대한날 비서를 통해 르네에게 팩키지를 전달했을때 "제발 드레스랑 신발은 안돼~~~~~~"라고 속으로 소리쳤건만 기대를 저버리고 이런 클리쉐 신데렐라 스토리로 변신...르네가 pretty woman의 줄리아 로버츠도 아니고...대실망.

3, 톨스토이: 안 좋아한다. 한권도 끝까지 읽은 책이 없다.

4. Fluffy Japanese fantasy: 어는 정도는 좋은 생각인데 이 책 안에서는 쫌 OTT. 중간에 고만좀 해하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5. 영화 Black Rain. 갑자기 튀어나와 황당. 안 어울린다.

6. 일본 예술영화: 이끼속의 동백꽃, 보랏빛 산인가 그얘기. 온몸에 소름이. 손 발이 오그라듬.

7. 동백꽃: 이 꽃의 아름다움이란거 이해가지 않는다. 항상 제일 못생긴 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이 책의 동백꽃은 심볼리즘인가. 머리가 또 복잡해지기 시작...)

 

아무튼 나만의 copy를 한 권 사서 두고두고 읽어보기로 했다. 동백꽃 얘기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영문으로 번역 진짜 잘되어 감탄했다. 불어로는 어떻게 씌여졌는지는 모르지만 beautifully written in English.

 

 

 

 

s****a 2009.10.26.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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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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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부터 드나들기 시작한 독서모임이 있다. 상반기에는 참여가 어려울 듯해 재빨리 신청하고 도서관을 찾았다. <고슴도치의 우아함> 곁에 전혀 다른 느낌의 The Elegance of the Hedgehog가 꽂혀있었다. 불어권 작가로 알고 있었기에 단번에 중역본임을 알아봤다. 내 선택은 망설임 없이 데려오는 쪽이다. 이유인즉 파울로 코엘료, 밀란 쿤데라 등의 소설을 영어로 만났을 때의 독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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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부터 드나들기 시작한 독서모임이 있다. 상반기에는 참여가 어려울 듯해 재빨리 신청하고 도서관을 찾았다. <고슴도치의 우아함곁에 전혀 다른 느낌의 The Elegance of the Hedgehog가 꽂혀있었다. 불어권 작가로 알고 있었기에 단번에 중역본임을 알아봤다. 내 선택은 망설임 없이 데려오는 쪽이다. 이유인즉 파울로 코엘료, 밀란 쿤데라 등의 소설을 영어로 만났을 때의 독특한 재미 때문이다. 활자화된 영단어의 무게, 질감, 울림에 매혹됐던 적이 있는 사람은 아마 알 것이다. 삶의 허를 찌르는 문장이 영어로 옮겨질 때 더해지는 둔중한 북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마주침을 운명으로 여기며 담아올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비영어권 작가들은 철학적이고 곱씹기 좋은 경구(아포리즘)를 즐겨 쓴다. 특별한 구절이 영어로 옮겨졌을 때 휙 못 넘기고 계속 멈칫거리게 된다. 계절적으로나, 시기적으로 한 번에 훅 빨려들어 푹 젖어들 소설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망설임 없이 담아온 것에 비하면 삼분의 일 가량을 이것은 소설이다를 상기하며 다소 불편하게 읽어야했다. 가까스로 진입했다고 안도하는 순간 책장을 덮고 물러나야했다. 속도감 있게 정주행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뚝뚝 끊기면서 밀도 높게 말하는 이야기 구성도 빨리 읽기를 막았고 더욱이 부정하고 덮어두고 싶은 삶의 본질(어두운 이면)을 거듭 파헤치는 점이 작품 주변을 맴맴 겉돌게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평하는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을 개인적으로 아이에게 연령대 이상의 가혹한 것을 보게 하는 게 아팠던 터라 유사한 이야기가 펼쳐질까봐 지레 겁을 먹었다. 다행히 기우로 끝났지만 마르크스동백꽃파트를 읽는 내내 긴장하고 떨었다. 소설가는 이 소설에서 서구와 반대되는 러시아(유럽에 속하지만)와 일본 문화를 동경한다. 우수하고 고급적인 것으로 추앙되는 것에서 시선을 거두고 반대편 혹은 멀리 있는 것에서 대안을 찾는 듯하다.  지금 여기 있지 않는 새로움을 끊임없이 갈구한다.

 

 ‘더이상 개천에서 용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뼛속 깊이 체화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소설의 끝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스스럼없이 되뇌던 소녀가 자신의 말이 남겨진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에게 전혀 다른 말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결론을 미리 언급한 까닭은 최근 내 모습이 떠올라서다. ‘너는 여기까지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운명의 선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믿는 가운데 도무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는 내가 보였다. 혼자 조용히 도출한 결론들을, 무정한 세상 앞에 순한 가면을 쓰고 은밀히 소지하고 내심 무기였던 진실을 소설은 수색영장도 없이 들쑤셔댔다. 내가 하는 암울하고 회의론적인 말은 괜찮지만 남이 같은 말을 하는 걸 듣자니 영업 비밀을 들킨 듯 당혹스럽고 이건 아니다 싶어 고역스러웠다. 인간은 환경에 지배받는다는 생각에 어린 조카를 각종 문화 행사에 끌고 다녔던 기억도 나고,3이 되는 조카에게 꼭 대학을 갈 필요는 없다라고 단언했는데 과연 그게 맞는 말일지 부메랑이 되어 내게 날아들었다. '너는 자라 무엇이 될까?' 겨우 내가 되지 않을까 쉬 속단했던 건 아닌지. 가나 초콜릿 같은 결을 지닌 책을 쪼개 먹을수록 생각은 깊어갔고(은유지만 약한 이가 나가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였고), 말들은 미끈한 물고기마냥 형체를 바꾸어가며 내게서 달아났다.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말의 미로에 갇히기를 반복했다.. 

     

 <문법에 대하여파트를 읽을 땐 언어의 미묘한 차이에 매혹당한 스무 살의 내가 떠올랐다. 현실은 바닥이지만 그럴수록 예술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며 삶을 견디는 자세가 나만이 취하는 생존 기술은 아님을 다시금 확인했다. 현재의 팍팍한 나를 잊고 어디 먼 세상의 다른 내가 되어보는 일은 생계만큼이나 절실하다.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만이 누군가를 가르치며 사람들을 주동하는 입만 나불대는 사람이 된다는 말도 인상적이었고, 이 세상을 주물럭거리는 손은 실상은 힘 있는 자의 입(언어 장악)임에 공감했다. 정해진 틀과 규범을 깨거나 과감히 초월하지 못하는 대신 그림, 음악, 문학 등 고상한 예술적 취향과 정신적 가치를 지켜내려는 노력에 대해서는 독서모임 회원들이 적잖이 동의할 것 같다.

 

 예상대로 여름비에서 로맨스가 전개됐다. 남녀의 만남을 무조건 썸으로 보는 이 고루한 시선은 언제쯤 바뀔까. 뮤직비디오에서 사랑을 말할 때 남녀로 규정하지 않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 아파트 관리인인 르네는 사회적 신분계층을 넘어서는 우정을 여러 각도에서 맺는다. 절대 바뀔 것 같지 않은 운명과도 같은 신분 체계가 뜨거운 물 속 각설탕처럼 용해될 때 혹시 다른 모양의 신데렐라 신화가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어 아차 싶었다. 십년 넘게 혼자 지내며, 거의 삽 십년 가량 관리인 일을 해온 아주머니에게 이전이라면 불가능했을 우정과 사랑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까칠하게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톨스토이 전집을 읽고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알고 예술영화에 해박할 뿐더러 네덜란드 정물화를 감상할 줄 안다는 이유로 그녀를 찬미하고 싶지 않았다.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달려오던 두 러너가 물을 마시는 구간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정도로 해석하고 싶다. 주행을 멈추지 않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신의 깜짝 선물 정도로 말이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읽는 동안 그러지 않으려 했으나 자살과 방화를 꿈꾸던 소녀도, 하는 일이나 사는 형편과 달리 특출한 미적 감각과 감응력을 지닌 아주머니도 모두 작가의 분신처럼 느껴졌다. 어렸을 때부터 영민했을 작가의 고독과 개성이, 또 앞으로 어떻게 늙고 싶은지에 관한 철학을 내비쳤다고 본다. 그러면서 독자인 나 역시 내가 처한 환경과 거기서 발생하는 가치를 곱씹으며 앞으로 내딛을 걸음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내 안에 소녀와 아주머니가 어떤 비율로 흐르고 있는지 재보는 시간이었다. 어찌됐든 두 인물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독자에게 다 전했으니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아주머니의 죽음으로 소녀는 절대 다시는’이라는 말 속에 항상’(살아야 한다)이 잠복해있음을 배우고 자신이 쥐고 있던 동전의 뒷면을 살피는 안목이 생긴다. 아주머니와 소녀는 나이와 계층의 제약을 넘어선 우정의 스파크를 팍팍 튀긴다. 정전기조차 한쪽의 기운만으로는 일어날 수 없다. 그들은 적절한 시점에, 서로를 알아볼 준비가 된 때 만나 서로에게 중요한 자극제가 될 수 있었다

  

  이제 오역과 상상력 남발을 끊고 프랑스 원서를 공들여 번역했을 진짜 고슴도치의 우아함>(문학동네)을 맛볼 차례이다. 소설에 유려한 음악과 그림과 책이 많이 언급되는데 이상하게 나는 자스민 차와 딱딱한 초콜릿과 소바와 회 생각에 쩔었다. 술은 못 마시니 사케는 아웃. 마지막으로 해운대 달맞이고개의 동백꽃이 자꾸 눈에 어른거린다. 동백꽃 심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운명의 흐름을 바꾸는 건, 그리고 누군가나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건 뜻밖에 대단한 사건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말을 알아듣고 전류가 통하는 순간이 바로 그 시작점인 것이다 

이달의 사락 s********d 2018.01.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