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멜 표류기. 과연 이 책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나 역시 하멜도 알고 하멜 표류기도 알지만 이 사람이 언제 우리 나라에 왔었는지 언제 갔는지 죽었는지 그 뒤의 얘기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리 나라의 역사를 보면 많은 재미를 찾을수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안타까움이 너무나 많다. 이 책을 읽고 정말 안타까웠던것은 우리나라가 그때 하멜이 왔었던 시점에 문호를 개방하고 네덜란드나, 포르투갈 등의 나라와 무역, 교류를 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안타깝던지...) 얄미운 일본은 그때도 얄미운 나라였었다. 1653년에 배의 좌초로 인해 제주도에 오게된 하멜 일행이 처음에 36명이나 되었을 줄이야. 그리고 벨테브레(박연이라고 알고 있는)가 훨씬전에 조선에 들어와 살고 있었고(그 역시 강제로 살고 있었던...) 이 책의 앞쪽에는 하멜표류기에 대한 내용과 그에 관련된 설명이 나오고 뒷부분에는 하멜표류기와 조선왕국기 완역본이 담겨 있다. 책 자체가 흥미롭고 재미있는 내용이지만 나에게 나름대로의 몇가지 새롭고 재미있는 내용을 볼수 있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김치의 역사가 좀더 오래되었을수도 있다는 내용, 대마도가 조선땅이고 제주도가 일본땅인데 바꿨다는 내용(근거가 있는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네덜란드가 우리나라와 교역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고 일본은 중간에서 방해를 ... 앞에서도 얘기한 것 처럼 이 책을 읽고난후에 가장 크게 와닿는 느낌은 안타까움 그 차제였다. 청나라 문물을 많이 배웠던 소현세자가 죽지 않고 왕이 되었더라면 효종, 현종이 당쟁에 휘말리지 않고.. 청나라, 네덜란드 등과 교역을 했더라면 이런 부질없는 아쉬움에 가슴이 아팠다. 하멜표류기...꽤나 객관적인 느낌으로 우리나라의 그시절에 관련된 내용이 담고 있는것 같았다. |
| 난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난 하멜표류기 자체는 인터넷을 통해 읽어보았다. 그러나 그역시 하멜표류기 자체만 완역이 되어있을 뿐 어떠한 해석이나 안내가 없어 안타까웠고, 우리측 사료에는 어떠한 내용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싶었다. 이 책을 통하여 이러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저자에 감사드리는 바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특징은 하멜의 눈, 그리고 조선측의 눈, 나중에는 일본측의 눈까지, 여러 대상의 시각에서 어떻게 파악했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들면 하멜표류기에서는 단순히 제주의 목사가 식량을 줄였다는 글만 나오며, 그에대한 원망만을 알수 있지만, 조선측 사료에 의하면 그 이유엔 심각한 기근이 있었던 당시 제주도의 상황이 근본적인 원인임을 깨닫게된다... 그리고 하멜표류기에서는 자세히 알 수 없었던 조선과 일본간의 외교적인 문제 역시 흥미로웠다. 무엇보다도, 조선측 사료는 우리에게 그 당시의 상황을 좀더 생생하고 재밌게 알 수 있게한다. 일본어로 크리스찬이냐고 묻자 그들이 기뻐하며 "야, 야(Ja, ja)라고 답했고, 이는 남만어로 "네, 네" 라는 뜻과 같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화란인들과 조선인들의 만남이 실제로 눈앞에서 보는 듯하다. 조선측에서 그들의 화물을 사용하는 대신 그들에게 화물에 대한 댓가를 지불했음은 당시에도 그들의 화물임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음도 알 수 있다... 당시의 상황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그들이 네덜란드로 돌아가서 남긴 기록을 통해 그당시에 우리 조상들이 떡을 "ㅼㅓㄱ" 이라고 썼으며 읽기도 "ttock"이라고 읽지 않고 "stock"이라고 썼음을 알게 하는 대목은 우리 말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책의 소중함은 그런 역사적인 사실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네덜란드는 그 시절, 세계를 누비던 해양 최강국이었다. 또 그당시의 일본은 제한적이나마 서양과의 관계를 유지해왔고 이를 바탕으로 후일 근대화를 수월히 해냈다. 반면 조선은 소현세자가 인조에게 독살당한 뒤 단지 북벌만을 생각하며 소중화사상에 빠져 쇄국으로 일관하던 때였다. 이런 정책이 후일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누구나 다 알것이다... 이 당시의 두 개방적인 국가와 조선을 비교한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한국의 발전방향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않을까? |
|
1668년 네델란드에서 간행돼 인기를 끌고 프랑스, 독일, 영어로 번역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책이 있었다. 우리에게 '하멜 표류기'라고 알려진 책이다. 상선인 '스페르 베르호'를 타고 대만에서 일본으로 가다 실종돼 죽은 줄 알았던 하멜이 고국 네델란드로 생존해 화제가 됐다. 그리고 교역으로 부를 축적하던 유럽사회에 베일에 가려져있던 조선을 알려줌으로써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 '하멜 표류기'였다.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한 것이 1653년, 효종왕 때였다. 문헌에 따르면 조선에 발을 디딘 서양인이 처음 등장한 것은 1582년(선조 15년)이라고 기록돼 있다.당시 조선은 중국과 일본 외에는 정식적으로 교류나 외교 채널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서양인들이 조선에 들어올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뒤 임진왜란 때 종군신부로 들어왔던 포르투갈 신부나 한국에 영원히 정착했던 네델란드인 벨테프레(한국명 박연)에 이어 등장한 서양인이 하멜이었다. 하멜이 타고 온 '스페르 베르호'에는 64명이 승선했지만, 하멜을 비롯한 36명만이 생존해 제주도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
하멜이 조선에 지내게 된 것은 자의가 아니었다. 표류자인 하멜 일행은 원래 목적지인 나가사키로 보내 달라고 조선에 요청했지만 조선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무려 무려 13년이나 조선에서 억류돼있다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하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들에게 13년은 참으로 길고 긴 세월이었을 것이다. 제주도에서 몇 달 지내다 서울로 올라가게 됐지만 이들의 생활은 안정되지 못했다. 식량부터 배급을 해줬다 끊었다 일관성이 없었고, 주거지도 제대로 마련해주지 않았다. 거기에 이들은 호기심의 대상이 돼 고관대작 집 여기저기 불려다니거나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시달려야 했으니.
이들은 모두 세차례에 걸쳐 탈출을 감행했다 결국 세 번째에 이르서야 나가사키로 가게 된 것이었다. 한번은 배로 탈출하려다, 한번은 청나라 사신에게 본국으로 돌려 보내달라고 호소했지만, 실패했다. 그 여파로 조정은 이들의 관리가 어렵다며 죽일 것을 의논하기도 했다는데, 결국 이들 일행을 분산배치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생존해있던 22명을 전라 좌수영과 순천, 남원 등으로 보냈다. 이중 순천에 있던 하멜 일행과 합세한 일행까지 모두 여덟 명이 미리 사둔 배를 타고 몰래 일본으로 출항했고, 마침내 조선 땅을 떠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본에 억류됐고, 거기에서 고국으로 돌아가기까지 2년이 걸렸다. 그 기간동안 일본과 네델란드는 외교 채널을 통해 하멜 일행의 석방과 조선에 남아있던 나머지 네델란드 인을 귀환하는 문제와 네델란드와 조선의 교역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하멜 일행이 기리시탄(기독교인)인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기리시탄이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결국 시대를 막론하고 인도주의가 완벽하게 지켜지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
우리가 배운 국사에서는 '하멜 표류기'가 유럽에 소개됐다는 선에서 끝나고, 조선에서 하멜이 어떻게 지냈는지, 또 조선을 떠난 뒤의 하멜은 어떻게 됐는지 그 후일담에 대해선 전해주지 않는데,'다시 읽는 하멜 표류기'는 이 부분에 대해서 상세하게 전해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선에 정착한 네델란드인 벨테프레(한국명 박연)의 존재 또한 흥미로웠다. 그는 조선에서 처자식을 두고 살았고, 하멜을 만난 뒤 한 달 뒤에는 다시 모국어 구사 능력을 회복했다지만 처음 만났을 때는 하멜 일행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모국어인 네달란드어를 잊어버리고 있었다고 한다.
자고로 알려진 사실보다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사실에 더 관심이 가듯이 탈출 후 하멜의 행적에 눈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히 하멜은 교역에 눈을 뜬 서구인다운 행보를 보였다. 그들은 자신이 탄 배 회사인 동인도 회사를 상대로 밀린 급료를 청구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이들이 나가사키로 돌아온 시점부터 급료를 다시 계산해주려고 했고, 이들은 실종된 당시부터 계산해 줄 것을 요구했다. 회사로선 당연히 거액을 지급하기 거부하고 나가사키로 귀환한 이후부터 계산하고 격려금 형식으로 더 지급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지만 결국 하멜의 주장대로 급료를 지급하게 되고 만다. 그 이유가 바로 하멜이 고국에서 낸 책 때문이었다. 하멜의 책이 폭발적인 인기를 보 전 유럽으로 번역돼 출간되자, 부담을 느끼고 다 지급하게 된 것이었다. 하멜로서도 이 책이 그렇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을 못했을텐데, 책으로 인한 수입에 급료까지 제대로 정산받았으니 책의 위력을 톡톡히 본 셈이랄까.
그런데 더 눈길을 끈 것은 네델란드 정부의 반응이었다. 일본을 제외하고 조선과 직접 교역을 시도하려 했다는 점이다.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두 차례에 걸쳐 원정대를 보낼 정도였으니. 이렇게 하멜의 조선 탈출 이후 네델란드 정부는 조선에 남은 네델란드인 송환과 직접 교역이라는 현안을 해결하는데 나섰던 것이다.
'다시 읽는 하멜표류기'에는 부록으로 하멜이 쓴 '하멜 표류기'와 '조선왕국기'완역본이 실려 있다. 조선에 표류하기까지 그리고 표류후 조선에서 보낸 13년간의 일들을 연도 별로 중요한 일들만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마치 '로빈손 크로우소'를 읽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럴만도 한 것이 그들에겐 조선은 거주지가 아니라 표류지, 억류지였던 것이다.
'조선 왕국기'는 조선 내부 사정을 하멜의 시각으로 즉 서구인의 눈에 비친 조선의 경제나 종교, 생활 방식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그가 본 조선인은 훔치고, 거짓말 잘하고 속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착하고 남의 말을 곧이듣기를 잘하고 나약한 백성이라고 평하고 있다. 조선이 청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있다는 정치상황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우리 입장에선 이 책이 썩 달갑지가 않은 것이 조선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 책이 19세기말까지 유렵에 조선의 내부 정부를 알려준 유일한 책이 되다시피 했다는 점이 아쉽기만 하다. 그렇기에 '하멜 표류기'가 서구인에게 야만적으로 보이는 조선의 원형적 이미지를 제공해줬다는 말이 과장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읽는 하멜 표류기'를 읽으면서 벨테프레도 그렇지만, 남은 하멜 일행은 모두 일본으로 돌아간 가운데, 돌아가지 않고 조선 여인과 결혼하고 조선에서 정착하는 삶을 택한 한 명의 삶에 대해서 궁금해 졌다. 그리고 그 선택 이후의 삶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았을런지. 조선에서 서구인이라면 눈에 띄고, 호기심의 대상이 됐을텐데..영원히 이방인 취급을 받았을까.
|
| 일단 작가의 노력에 감사드리며 정말 내용이 좋은 책이다. 나는 그동안 하멜표류기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내용은 몰랐다.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에서도 짤막한 내용 한 줄 없었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네덜란드와 많이 친해졌지만 정작 우리는 옛날의 인연을 전혀 모르고 살았다. 우리나라 교수들은 연구도 안하고 있나 보다. 어떻게 여태까지 한국학의 보고인 하멜표류기를 제대로 연구한 사람이 없었나?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이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책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의 치열한 노력에도 존경을 표한다. 정말 한번 읽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
| 하멜표루기는 서양인의 입장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최초로 쓰여진 역사적 서술이라고 한다.특히 히딩크를 통해서 우리와 친숙해진 국가 네덜란드인에 의해 씌여졌다는 점에서 더욱더 흥미가 유발되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다시 읽는 하멜 표류기’를 읽고 난 후 ‘하멜표류기’에 대한 자료를 조금 찾아보았다. 그 결과 ‘하멜 표류기’가 밀린 임금 때문에 쓴 보고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멜과 그 일행들은 자신이 소속된 네델란드 동인도회사에 조선에 억류되었던 기간 동안의 밀린 인금을 달라고 요청 했지만 거절당해, 밀린 임금을 청구하기 위해서 조선에서의 체류 일지와 조선 왕국에 대한 정보를 문서로 작성하여 보고서 형태로 작성했고, 그 일지와 보고서를 책으로 묶은 것이 ‘하멜표류기’라는 것이다. ‘다시 읽는 하멜 표류기’는 ‘하멜표류기’와 ‘조선왕국기’를 바탕으로 조선 왕조실록, 승정원 일기 등 국내 사료와 국내외의 연구 결과를 검토하여 다큐멘터리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책의 앞 부분에서는 시간의 스름에 따라 하멜 일행들의 행적을 세밀히 추적하는 와중에 하멜이 쓴 글과 당시 조선의 각종 문헌들을 꼼꼼하게 비교해서 하멜표류기가 얼마나 객관적인지를 잘 나타내어 주었다. 이를 계기로 조선이 서구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살리지 못했던것이 참으로 아쉬웠다. 만약 그때를 잘 활용했다면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에서는 답답하게도 느껴지고, 안타깝기도 하였다. 눈과 귀를 막은 채 다른 세계에 대해서는 애써 배척하고 무시하려는 모습이라니... 그리고 또한가지 알게된 점이 있다. 그것은 하멜 일행이 고향을 그리워 해 왕에게 애원했으나, 무시당하고 술자리 같은 곳에 불려 나가 광대 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나같으면 모르는 나라에서 그런 일이나 시켰다면 정말 화가 났을것 같은데.. 얼마나 고향이 그리웠을까? 난 몇일만 다른 곳에 나가 있어도 집이 그립고 한데.. 몇 년동안이나 이렇게 조선이라는 한 나라에 같혀있듯 지내려니 얼마나 괴로웟웠을까? 결국 어쩌다가 전라 좌수영에 있는 여수로 유배를 보내지는 하멜 일행.. 그곳에서의 생활이 안정되자 어떠한 이유로 배를 한 척 마련하게 되고, 이 배를 타고 하멜 일행은 일본으로 탈출을 성공한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곳이었는데 그런 곳에서 13년 동안이나 억류생활을 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탈출하는 그를 보면서 참으로 인간의 정신력이 그 무엇보다도 강인한 것이구나 하는걸 느꼈다. 그리고 '코레아'는 유럽의 무대에 알려지게 된다. 남의 눈에 비친 코레아는 어떤 나라였을까? 또만약 현대 한국을 경험한 히딩크가 글을 쓴다면 어떨까? 뭐가 많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동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곳에서 역경을 참아내고 결국 고국으로 되돌아가 조선이라는 나라를 유럽 곳곳에 알린 그의 끈기와 노고는 정말 하멜 일행들에게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본다... |
| 어린 시절 역사 교육을 통해 들은 하멜 표류기는 우리에게 참 친숙한 여행기이다. 월드컵의 신화를 이루어 내는데 큰 역할을 한 히딩크 감독과 동향이라는 이유로 한때 새로운 모습으로 여기저기에 모습을 드러냈었다. 귀에는 익숙하지만 실제 하멜 표류기가 어떤 내용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드물지 않을까?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으며, 배가 난파하여 조선에 잠시 머물다 탈출한 화란인 정도가 내가 기억하는 하멜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부족한 역사교육과정에서 누락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이 책을 구입했다. 사실 책 전체를읽고 나서의 느낌이나, 다른 관련 역사학자들의 평에 따를 때 하멜 표류기는 역사 연구를 위한 사료의 입장에서 볼 때 하멜 표류기는 그렇게 대단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멜 자신이 실제로 조선을 탐사하고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체류한 기간이 아니라 이교도의 땅에 억류되어 호시탐탐 탈출을 꿈꾸는 위치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열의를 가지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뒷 부분에 있는 하멜 표류기 및 조선 왕국기의 완역본을 먼저 읽어본다 하더라도, 체불된 임금 협정을 위해 작성된 보고서 정도의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않으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나 현장이 저술한 ‘대당서역기’등의 전문 기행문과 비교해 볼 때는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하멜 표류기의 텍스트에만 근거하지 않고, 조선실록 및 비변사등록 등 조선시대 다른 문헌과 서양인의 하멜 표류기에 대한 연구결과, 그리고 일본의 서적까지 대조해가며 하멜 표류기를 새로운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어서 하멜의 저작만으로는 읽어낼 수 없는 흥미로운 정보들을 제공한다. 하멜이 제주도에 표착한 17세기 조선은 단순히 문을 걸어닫고 있는 쇄국의 시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너지는 명나라의 새롭게 부상한 청나라 사이에서 명을 도와 청을 치려는 북벌을 계획하고 있던 야심찬 효종의 시대였다. 북벌을 계획하며 비밀리에 군사를 양성, 조련하고 있던 조선의 입장에서는 외국인이 조선을 떠나 정보를 유출시키는 것을 꺼려하였기 때문에 외국인의 내방이나 퇴출을 가급적 억제하였으며, 비슷한 이유로 하멜과 그 선원들도 억류되었다. 비록 억류생활임에도 불구하고 두명의 선원이 청나라 사신에게 직접 면회를 청하기 위해 무단 이탈한 사고를 일으키기 전에는 훈련도감에 배속하여 호패를 발급하고 급여를 주어 그 생활을 돌봐주고, 이국땅에 살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동정심 가득한 효종과 조정관리들의 모습이 실록 및 비변사의 기록을 통해 보여진다. 또한 하멜 이전에 화란 선원으로 국내에 난파하여, 병자호란 때에 전쟁에 나가 부역하고, 이후 하멜과 선원들이 표류하였을 때 등장하여 통역 등의 역할을 하는 박연의 모습도 흥미롭다. 하멜을 만나 분명 본국으로 돌아갈 기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멜이 작성한 보고서에서 벨테프레, 즉 박연에 대한 언급은 현재 존사를 모르겠다는 투로 마감된다. 이미 아내와 자식을 얻어 코레시안이라 불리던 박연에게 아마 조선은 화란 이상의 조국이었을 것이다. 그 후손에 대한 기록 등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큰 아쉬움이라 하겠다. 하멜과 선원들은 체류하는 동안, 처음에는 훈련도감에 나중에는 전라 좌수영으로 옮겨져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하였던 것 같다. 그들이 배웠던 조선어 기록에 근거해 볼 때 일반 서민들과의 접촉이 활발하였던 것 같으며, 기록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아마 새롭게 가정을 얻어 뿌리를 내렸던 선원들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당시에 나타난 큰 코와 흰 피부, 파란 눈의 외국인은, 일반 민중들에게는 지금 우리들이 외계인을 만나는 듯한 기분을 안겨줬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선원들이 별다르게 특별한 기술은 가지고 있지 못했는 듯,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 활용된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멜의 일지에 따르면, 마을에 부임하는 관리의 성향에 따라 그들의 생활이 편하거나, 구속되거나 하는 등의 차이를 보일 뿐, 나머지 시간은 별다른 행동의 기록이 없다. 하멜의 조선왕국기에는 일지가 아닌 당시 조선국에 대한 여러 정보가 들어 있는데, 쓰시마가 원래 코레아 땅이었다는 문구도 눈에 띈다. 특히 형벌 및 종교에 대한 하멜의 기술이 재미있다. 또한 조선의 승들은 예전에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였는데, 하늘에 닿기 위해 탑을 쌓다가 하늘의 분노로 인해 여러 개의 언어가 생겨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하멜이 적어 놓았는데, 이러한 바벨탑 전승과 유사한 내용이 당시 조선의 승려들 사이에서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하멜이 윤색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 우리에게는 없는 고대 한민족의 역사서에는 이러한 내용의 기술이 있었던 것인지 의구심만 자아낸다. 또한 조선 왕국기에는 하멜이 보고 간 조선이 고급 관리들의 사회가 아닌 생생히 살아있는 민중의 조선사회였다는 내용을 느끼게 할만한 구절들이 많아 흥미로움을 더해준다. 저자는 하멜이 표류했던 시절, 유럽의 열강등이 이익을 위해 새로운 식민지를 찾아 헤매는데에 혈안이 되어 있던 당시 상황과, 일본의 반 기독교적인 사회체계, 그리고 나가사키의 인공섬 데지마를 기점으로 하는 대유럽 무역 등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17세기에만 해도 조선은 도달하기 힘든 하나의 섬국가로 알려져 있었으며, 동물도 보석을 치장하고 다닐 만큼 부가 가득한 나라로 알려졌다고 한다. 코레아 원정함대 중에는 공식명칭이 ‘보물섬 원정대’였었던 적도 있다고 하니, 당시 하멜 표류기가 유럽 사회에 일으킨 반향은 가히 짐작할 만 하다. 대마도를 통해 조선과의 교류가 여의치 않자, 직접 조선 반도에 기착하여 무역을 성사시키기 위해 코레아를 찾기 위한 노력, 또한 공식적인 루트로 무역의 성립이 어렵자, 정복해서라도 이득을 차지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당시 유럽인의 모습은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대륙의 자원을 오직 유럽인의 부를 위해서만 착취하였던 약탈자적 성향을 여실히 드러내어 준다. 이 책은 하멜의 글을 단순히 번역함에 그치지 않고, 말 그대로 하멜 표류기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다시 정리하면 하멜 표류기 내용 자체는 그다지 큰 흥미를 유발하는 내용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이교도의 땅에 유배된 기독교인의 눈으로 보여진 조선의 모습을 기초로 하여 당시 조선에 대한 생생한 장면들을 눈앞에 그려주고 있기 때문에, 비단 하멜 표류기의 내용을 습득하는 것 이상의 유익함을 제공한다. |
| 월드컵으로 가까운 우리네 친척같아진 먼 이국, 네덜란드! 하멜과 그 일행이 우리나라 제주도에 풍랑으로 인해 표류하다 들어온게 벌써 350년이나 되었다한다. 이국이라고는 중국과 일본정도의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만 알고 있었는데 얼마나 놀랐을까? 아주 재미있는 책은 아니지만, 그당시 조선의 모습이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보면 참 흥미로울수 있다 싶다. 하멜의 끈질긴 기록의 과정이 이렇게 350년후에 우리가 생생히 바라볼수 있다는게 역사의 힘 아니겠는가? 지금도 그때도 마찬가지로 인간사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아니하며 단지 문화만 다를뿐이다. 저자의 충실한 주석이 돋보이며 방대한 자료의 인용이 책읽기뿐아니라 당시상황의 이해에 도움을 준다. |
|
하멜표류기가 이렇게 재밌고 흥미진진할 줄 몰랐다. 아직까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의외다. 하멜이 직접 저술한 분량은 매우 짧다. 하기에 다양한 문헌에 나타나있는 당대의 기록을 교차로 비교해보는 전문가의 해설이 필수적이다. 이 책이 바로 그러하다. 책과 관계없이 아쉬운 점이 많다. 먼저 하멜이 기행문을 길게 남겼으면 하는 점이다. 13년의 시간동안 느끼고 경험했던 조선의 삶을 충실히 기록해 주었으면 매우 소중한 자산이 되었을 터인데 안타깝다. 좀 더 본질적으로 당시 조선 사회가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세계에 대한 눈을 뜨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극은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것일까? |
| '다시 읽는'이란 말이 붙었지만, 난 생전 처음으로 읽어보는 하멜표류기였다. 국사 교과서에 한두줄로만 표현되어 하멜이란 이름만 익숙할 뿐. 그리고 3년 전 온 국민을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게 했던 '히딩크'의 고향과 '하멜'의 고향이 같다는 사실 때문에 그저 반가웠던 최근의 기억 뿐. 저자는 하멜이 쓴 원본 글과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된 번역본, 하멜이 표류해왔던 우리나라 당시의 실록과 서적 등을 참고하여 성의있고 자세하게 하멜표류기를 소개하고 있다. 좀 건방진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저자의 성실함이 돋보인다고 해야할까? 외국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의 모습을 소개한 것으론 최초라는 의의는 둘째치고라도 의외로(!) 이 책은 재밌었다. 국사시간을 통해서는 배울 수 없었던 당시의 사회상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멜의 시각이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관점이기 때문에 서민들의 삶의 모습도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하멜표류기에 부록으로 딸려있는 '조선왕국기'를 보면 참 흥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조리돌리기' 등의 형벌제도에 대해선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아마도 그가 13년동안 '조선'에 머물면서 왕의 호위부대에서 일하는 병사였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형벌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역사를 통한 여러나라의 부침을 겪으면서 '쇄국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당시 조선의 상황이 안타깝고 한편으론 이해가 되면서도 당시 일본과 비교해봤을 때 너무나 '우물 안 개구리'였던 조선이 너무 답답하기만 했다. 표류해 온 하멜 일행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세계를 파악하는데 썼더라면 아마도 조선의 역사가 좋은 쪽으로 더 많이 더 빨리 발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 우리나라 국가대표 팀을 월드컵 4강에 올려놓음으로 서 한국을 세계 널리 알린 네덜란드 감독,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우리가 지금도 원하고 있는 히딩크이기에 그의 나라 네덜란드는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이다. 그런데 아마도 네덜란드는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한 특별한 존재인 듯싶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앞에서 말했듯이 월드컵 4강 신화로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려서 지금 한국을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알 것이다. 그리고 조선시대 우리나라에 표류해 온 네덜란드 사람, 하멜 역시 조선을 서방 세계에 알려 많은 관심을 일으켰다. 이것들을 보면 정말 네덜란드가 우리나라에게는 특별한 존재인 듯싶다. 하멜이 쓴 하멜 표류기는 처음 발간된 시기부터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수 없이 많은 판본 등을 만들어 내었는데 워낙 옛날 책이다 보니 그 긴 세월 동안 조금씩은 아이러니한 부분들이 새롭게 생겨났다. 물론 하멜이 전문적으로 책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표류기를 쓰면서 이상하게 넘어간 부분들이 있지만 말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 당시 네덜란드는 물론 유럽에 몰아친 항해열풍 속에 합류하여 거친 바다로 나가게 된 하멜. 하멜은 포수 계급으로 동남아시아의 동인도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서기로 승진한(하멜이 글을 쓸 수 있었기에 선원들 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서기가 될 수 있었다.)하멜은 스페르웨르 호를 타고 일본으로 항해를 나섰다. 그런데 타이완을 거친 뒤 일본으로 가던 배가 폭풍우에 휘말리면서 불행하게도 제주도 남쪽 해안가에 난파당하고 말았다. 도대체 이곳이 어딘지 황당해 하던 하멜 일행은 많은 지식과 항해경력을 가지고 있는 일등 항해사의 도움으로 이곳이 제주도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러나 하멜 일행은 곧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이원진 제주 목사 휘하의 군사들에게 붙잡히게 된다. 조선인들에게 코가 크고 금발이고 몸집이 큰 서양인들은 괴기한 사람들로 보였다. 그래서 제주 목사 이원진은 하멜 일행을 일단 가두고 조정으로 장계를 보내게 된다. 조정 대신들은 이 장계를 보고 꽤 놀라고 당황해 했지만 이미 몇 년 전에 표류 해와 훈련도감에서 일하던 서양인이 있었음으로 이 서양인을 보내게 된다. 서양인이 제주도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하멜 일행은 제주 목사 이원진의 따뜻한 환대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또한 조정에서 내려 보낸 서양인이 우연찮게도 같은 네덜란드 인이어서 이들은 정말 많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껴안았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운이 좋았던 하멜 일행이었는데 곧 시련이 닥친다. 조정 대신들이 하멜 일행을 잘 보내줄 생각은 젖혀놓고 하멜 일행이 가지고 온 여러 물품을 가로챌 궁리만 한 것이다. 결국 중국에 보낼 상품들 중 부족한 것이 하멜 일행에게 있자 모두 가로채 버렸다. 하멜 일행은 조금 남은 물품만 팔아서 적은 돈만 얻을 수 있었고 곧 도성까지의 긴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제주도에서 전라도로 배를 탄 뒤 다시 서울까지 육로로 간 하멜 일행은 북벌에 힘쓰고 있는 효종을 만나 환대를 샀고 곧 효종의 호위대가 된다. 호위대가 된 것에 큰 불만이 없었던 이들은 청나라의 사신만 오지 않았더라면 임금의 호위대로 넉넉한 살림을 차린 채 조선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청나라의 사신이 조선에 오자 성급한 2명이 청나라 사신에게 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에 조선은 이 일이 크게 번질 것을 우려하여 사신에게 많은 뇌물을 주었고 일을 일으킨 2명은 감옥에 가두었는데 곧 이 2명은 옥사하게 된다. 그리고 남은 하멜 일행은 전라도 병사와 전라 좌수영, 남원에 각각 흩어져 살게 되었다. 자신들이 속한 관청에서 일을 한 하멜 일행은 새로 부임해 오는 사령관들을 ‘좋은 사령관’, ‘나쁜 사령관’으로 나눠서 불렀다. 진짜로 ‘나쁜 사령관’은 하멜 일행을 못 살게 굴었다. 그런데 점점 ‘나쁜 사령관’만 부임해 오자 하멜 일행은 참을 수 없었다. 탈출을 결심한 하멜과 다른 6명은 작은 배로 주변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아내었다. 그런 뒤 그동안 모아온 돈으로 일본까지 갈 수 있는 배를 사게 된다. 물론 주변 지역에서 솜을 사서 실어 온다는 목적이라고 말했지만 말이다. 준비가 끝난 하멜 일행은 일본으로 필사의 도주를 실시했고 성공했다. 일본에서 두 차례의 조사를 받았고 곧 일본과의 조선의 외교 뒤 동인도 회사로 귀항할 수 있었다. 조선에 남은 다른 일행 역시 무사히 동인도 회사로 돌아왔다. 그런데 동인도 회사가 조선에 있는 동안의 월급을 주지 않고 1년 월급만 주기로 하자 몇 몇 일행은 네덜란드로 서둘러 돌아간 뒤 이사들에게 따져서 2년 월급을 받게 된다. 1년 월급을 받은 하멜과 다른 사람들은 네덜란드에 돌아온 뒤 자신의 표류기를 출판하는데 이는 엄청난 효과를 얻었게 만든다. 이 표류기의 성과로 동인도 회사 이사들이 하멜과 남은 일행에게 그동안의 월급을 모두 주겠다고 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하멜은 유명해지고 돈도 모두 받게 되었으며 조선은 서양 세계에 알려졌으니 서로 손해 볼 것은 없는 듯싶다. //김만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