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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않도록 조심했는데도, 나는 윤제림의 시집을 보면서 로맨틱한 공상에 빠져 그런 내용이 아닐까 하고 기대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윤제림이라는 이름도 좋고, 굳이 그가, 걸어서, 온다는 말이 제목으로 되어 있는 것도 좋았다. 시집을 읽기 시작할때, 문학과 지성의 시인선을 천천히 읽어야지. 꼭 전부 다 읽겠다는 거창한 포부는 없었어도, 그것부터 읽어야지. 하고 생각했던 바가 있었다. 작년에 문학동네에서 나온 시인선을 읽는 바람에 그것조차 허무한듸,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문학과 지성에서 나온 시인선을 중심으로 시집을 선택했었다. 그런데 윤제림의 이 시집도 그렇고 내 마음에 들 것이리라'생각하며 고르긴 했지만, 문학과 지성에서 나온 시집보다 그 외의 곳에서 나온 것들이 이렇듯 가끔 마음에 더 깊이 파고드는 때가 있는 것은 또 무어람. 횡단보도 흰선만 밟고 건너야지'하고 마음으로 혼자 생각했는데 까만 아스팔트 밟고 가니 훨씬 편하게 느껴지는 이상한 마음처럼.
윤제림의 시집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표제작인 그는 걸어서 온다'도 사실은, 나를 오해하게 만들었던 그라는 존재가 아닌, 죽음을 나타내는 그라고 해야되겠다. 그래서 그는 걸어서 온다'를 읽은 순간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건 기대와 달랐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느끼게 된 실망일 뿐, 시 자체에 대한 실망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들은 대부분 좋았다. 마음에 드는 시나 나로 하여금 다른 것에 생각이 미치게 만드는 시들을 하나씩 꼽아놓다 보니 꽤 많았다. 몇 편이나 되었다. 전문을 옮기지 않겠지만 마음에 들었던 시는 '당숙은 죽어서 새가 되었다'와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와 '친구 하나를 버린다'와 '손목'과 '입국과 출국'과 '봄 산행'이었다. 언젠가 누군가 이 시집을 보게 된다면 이 중 하나를 읽어보기를 혹은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다. 아니 모르겠다. 이 시마다 다 나만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나와 같이 이 시들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당숙은 죽어서 새가 되었다'가 왜 좋은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냥,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한다는 말이 아버지를 떠오르게 만든다. 그래서 그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면서 짧고도 인상이 깊게 남았다.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는 전문을 옮길 것.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
강을 건너느라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섰을 때 말없이 앉아 있던 아줌마 하나가 동행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한다 눈 온다 옆자리의 노인이 반쯤 감은 눈으로 앉아 있던 손자를 흔들며 손가락 마디 하나가 없는 손으로 차창 밖을 가리킨다 눈 온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 있던 젊은 남녀가 얼굴을 마주 본다 눈 온다 만화책을 읽고 앉았던 빨간 머리 계집애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든다 눈 온다
한강에 눈이 내린다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 지하철이 가끔씩 지상으로 올라서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가끔 다른 시집을 읽을 때, 시들이 너무 난해하면 별로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나는 이렇게 그려지는 시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시가 마음에 들어온 이유는 나도 느낄 수 있는 정서가 그려지기 때문인데, 거기다가 특히 손가락 마디 하나가 없는 손의 노인에 대한 부분이 강렬했다.
다른 마음에 드는 시 중 '입국과 출국'을 읽으면서 나도 전쟁이 난 먼 나라로 떠났던 사람을 떠올렸다. 그곳에 그 때, 내가 알던 사람은 아마 그 사람 하나였을것 같다. 그 사람은 나와 선후배사이로 어쩌다 만나면 인사하고 지나가고 언제는 같이 술도 마시고 노천에 앉아서 오후를 보냈던 사람이었다. 자연히 시간이 바빠지면서 서로 안부 물을 일도 없이 '아는 사람'으로 지냈는데 어느 날 핸드폰에 그 사람 이름이 떴었다. 반가운 마음도 반이고 의아한 마음도 반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그 나라로 떠나기 위해 신청했다고, 곧 떠난다고 두서없이 그런 말만 하다가 '간다'고 '잘 다녀오라'고 주고받고 전화를 끊었었다. 후에 만난 동기에게 지나듯 그 얘기를 했는데 그 사람은 나에게 전화를 했었던 것이었다. 그 뒤로 연락을 해본적도, 해온적도 없어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때 그 사람은 나에게 전화를 했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친구 하나를 버린다'가 좋은 이유는, 내가 가끔 가까운 지인의 죽음에 대해 상상해보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상상을 하는지, 다른 사람들도 가끔 그런 상상을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가까운 지인의 죽음에 대해 상상하는 일을 가끔 하는데 그때마다 비슷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감정이라기 보다는 비슷한 느낌의 심리 상태. 그런 생각을 하고 난 뒤에는 그런 좋지 않은 생각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게 좀 미안해질 때가 있는데, 그 상대에 대해 악의적인 감정은 전혀 없고 오히려 가장 아끼는 지인일 경우가 더 많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왜 이런 생각을 하지?'하고 스스로 되묻는데 답은 없었다. 이 시를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자연 떠올라서 꼽아놓았다. '손목'은... 누구든,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길어서 여기에 일부러 옮기진 않겠지만.
마지막으로 '봄 산행'의 전문을 올린다.
봄 산행
구두창에 붙는 진흙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신발이 무겁다
몸이 무겁다 배에 붙은 살이 잘 떨어지지 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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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하면 보통 하는 생각이 '어렵다'인 것 같다. 그림을 보듯 음악을 듣듯 그냥 편히 즐길 수도 있는 시를 어렵게 만든 건 어쩌면 시를 두고 정답을 골라내야 했던 중고등학교의 교육 때문이 아니었을까싶다. 이 시집에는 시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나, 숙달된 독자나 모두 즐길 수 있는 여백과 웃음이 있다. 시를 읽으며 눈을 부릅뜨거나 머리를 굴리지도 말자. 황석영 선생님이 "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고 하셨듯 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으면 된다. 그냥 읽어보자. 그랬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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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이 시집을 추천하는 글을 읽고 나서 '꼭 한번 읽어봐야지!' 하며 인터넷서점 위시리스트에 이 시집을 담아둔 지는 꽤 되었답니다. 그런데 한가한 시간들을 다 놔두고 바쁜 일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는 지금에서야 이 시집을 펼쳐들게 되네요. 뭐... 바쁠수록 쉬어가라고 하잖아요. ^^; 아무튼 저에게는 여태 생소했던 시인의 이름, 윤.제.림.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인 《그는 걸어서 온다》입니다.
기대만큼 참 좋았던 시들.... ^^
윤제림 님의 시 속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독자들을 향해 ‘걸어서 오고’ 있었습니다. 자식의 이름으로 가게이름을 짓는 우리의 어머니들, 고된 일을 마치고 아침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우리의 아버지들, 한 말을 하고 또 하는 누군가의 당숙처럼 친근한 이들도 있었지만, 밀입국을 하다가 붙잡힌 중국동포, 시어머니 학대로 집나온 베트남 여인, 손목이 잘린 스리랑카 소년처럼 먼 곳에서 온 사람들과 그보다 더 먼 곳에서 저승사자까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발걸음처럼 간결한 시어들이 우리 주위에 늘 함께 있었고 자주 보았던 익숙한 풍경들을 이야기해주고 스윽 지나가는데, 자꾸만 마음이 짠-해져서 다 읽고 난 후에도 손에서 쉽사리 시집을 놓지 못했습니다.
시집은 아무래도 다른 분야의 책보다는 서평을 쓰기가 힘든 것 같아요. ^^ 하지만 날씨가 더울수록, 할일이 많아 바쁠수록,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더 외로울수록 이렇게 얇지만 사람냄새 나는 시집 한 권 찾아 읽고 그때 그때 조금이라도 위로 받고 살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간단하게나마 서평을 써봅니다. ^^ 문학동네 퍼냄/ 2008년 4월 21일/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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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왜소해진 시기를 잘 살펴보면 인간의 정신이 빈약해지기 시작한 때를 가늠할 수 있다. 유렵이나 미국에서 시가 사라진 것은 꽤 오래된 일이고 그래서 시인이 퓰리처상 같은 걸 받는 걸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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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희귀하게도, 아직 시가 유효하다. 하지만 그 속내를 잘 살펴보면 사정은 좀 다르다. 시어와 시문은 얇아지고 연약헤서 거의 지워질 지경이다. 오늘 인기를 얻고 있는 시집의 시들은 아무리 들으려해도 들리지 않는 중얼거림이거나 해가 뜨면 시꺼멓게 녹아내리는 눈사람 같다. 영혼을 아프게 긁어내는, 그래서 영혼을 맑게 하는 진짜 시들은, 서구의 경우처럼, 사람들의 눈과 코와 귀 바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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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 자전거>에서 처음 맡았던 그 구수한 '냄새'는 온갖 얇고 반지르르한 언어에 가려져 버린 진짜 우리가 어딘가에 아직 살아 있음을 가르켜준다. 가르쳐주었으니 찾아야 할 텐데, 우리의 발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어쩌면, 그래서, 시인은, 그가 걸어오고 있다고, 안타깝게 소식을 알려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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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로 쓴 책을 읽고 다시 시인으로서의 작가와 글이 궁금해 이 시집을 구했다. 앞 시집<사랑을 놓치다>에 대한 기억에 좋게 남아 있었던 덕분이기도 하고.
작가가 카피라이터라는 것이 시집을 읽는 데 절반의 도움, 절반의 방해로 작용했다. 자꾸만 카피와 같은 글귀를 발견하고자 애쓰는 나, 그런데 정작 그런 구절은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그윽하고 따스한 시선만이 잡히고 있었으니. 따뜻하였다,
작가에게는 죽는다는 것도 그러한 모양이다. 무섭거나 차갑거나 무시하고 싶은 게 아니라 사는 일의 하나로, 살면서 어깨동무하고 같이 걸어가는 친구 모양으로, 어디 그게 예사로운 경지이랴. 오늘 이 순간이 억울하지 않고 서럽지 않고 부족하지 않아야만 도달할 수 있을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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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하루를 살다보면, 그냥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한달이 가고, 그렇게 세월이 물같이 흘러간다. 감성적 글읽기와 멀어진 지 오래, 어느새 나는 육아서적과 어린이책과 또 정보와 지식을 담은 책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모처럼 시집을 읽어본다.
시집을 읽는 것은, 나에게는 크나큰 도전이다. 그래서 100여권의 책을 읽어도 한권의 시집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러다, 동시집을 읽으면서 실실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또다시 모험을 강행하고자 윤제림의 시집을 손에 들었다.
그런데, 이 시집은, 뭐랄까? 한 박자 쉬어가라고 나에게 말하는 듯하다. 어려운 시도 없다. 그저 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을 시어로 풀어내 놓았다. 나는 비평가가 아니니 그저 시에서 삶을 읽는 것으로 족하다. 시인이 풀어놓은 '죽음'도 무섭고 만나기 싫은 존재가 아니다. 먼저 간 이들에 대한 시인의 그리움과 앞으로 그곳으로 갈 우리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다 읽은 시집을 또 펼쳐들고 곱씹고 곱씹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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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시를 소리 내어 읊었다. 동생 왈 “공부에 시달리는 학생들에 대한 시 같다.” “어? 이 시가? 엄마들의 애환 같은데...” 내가 말했더니 다시 동생이 말하길, “그래? 난 공부하라는 마지막 말 때문인지 고3들이 받는 압박이 느껴지는데...” 하나의 시가 이토록 다른 느낌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게, 역시 시의 매력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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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 시인은 시 <詩>에서 이미 고백한 바 있다.
나는 결국, 죽을 때까지 失業이 못된다. 烈婦 춘향이처럼, 남산 소낭구처럼.
..... 그만두겠노라고 흰소리하다가는, 눈 뜨면 또 이렇게 일 나오느니! 평생 직장, 시.
라고...
윤제림 시인이 평생 직장 삼은 시를 담은 시집이 한 권 나왔다. 7년 만이다. 전에 시집 <사랑을 놓치다>를 읽고는 시행 한 줄 한 줄마다 꾸민 흔적 없는 솔직한 시어들이 묻어나는 걸 보고는 매운탕 먹은 듯 속이 후련하면서도 뜨뜻해짐을 느꼈더랬다.
이번에 낸 시집 <그는 걸어서 온다>에 담긴 시들에도 기교는 없다. 요령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이 요령껏 살지 않을 때는 굳은 결심이 필요하듯이 시를 평생 직장 삼는다는 그가 시어에서 멋을 부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싶기도 하다. "난 천성이 요령 피울 줄 모르게 태어났어." 라고 한다면야 할 말 없지만. 그의 시들은 얼핏 맛보면 싱겁게 느껴질 정도로 조미료 전혀 안 들어간 음식 같다. 그런데 자꾸자꾸 곱씹을 수록 새 맛이 돋아난다. 씹어 삼켜 내 것이 되면 이렇게 정성껏 밥상을 차려준 손길이 고마워진다.
이번 시집에서 윤제림 시인은마치 뒷동네 박 노인이 어찌어찌했대. 라는 듯한 말투로 저승사자 이야기를 하고, 마치 그 절망 안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마냥 손목 잃은 외국인 노동자가 되어 이야기하기도 하고, 의뭉스럽게 현대판 심청이가 되기도 한다. 느닷없이 화장을 하고 베트남 처녀로 둔갑하기도 한다. 그의 말투에는 강렬함이 없어도 그 말 속에는 가슴을 치는 메시지가 있다. 저번 시집에서 생에 대한 관능이 느껴졌다면, 이번에는 초탈이 느껴진다.
옆에 두고 짬짬이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은 시들이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처럼. 배불러서 뒤돌아섰다가도 때 되면 다시 생각나는 밥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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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얼굴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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