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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옷에 묻히는 것이 더 많은 엄마, 말없이 탭댄스에 몰두하는 아빠, 할머니, 그리고 주인공 라킨. 이 네 가족이 사는 집에는 말이 없고 다만 어떤 몸짓들만 존재한다. 이 집에 아기 바구니가 들어온다. 소피라는 아기가 이 가족에게 맡겨진다. 모두가 아기의 출현에 기뻐하기보다는 두려워한다. 소피를 사랑하게 될까봐 두려운 가족들. 주인공 라킨도 귀여운 소피를 보며 자신의 감정의 변화에 혼돈스러워하고 가족들의 변화에 분노를 느낀다. 사실 이 가족이 ‘아기’를 잃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라킨의 남동생이 태어나서 하루만에 죽은 것이다. 이름도 없이 죽은 남동생에 대한 상처. 그러나 누구도 그 ‘아기’에 대해서 언급조차도 꺼린다는 사실이 라킨에게는 분노를 일으킨다. 모두가 가슴속에 묻어둔 채 응어리를 안고 살고있다. 서로에게 들키지 않기를 바라면서. 서로에게 더 큰 슬픔을 불러일으킬까봐 두려워 하면서. 그들앞에 나타난 또다른 아기 소피는 그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나 아기가 말을 배우듯이 그들도 서서히 말을 배워간다. 소피가 가위바위보를 배우고 말을 배우면서 서서히 자신들의 ‘아기’에 대해 생각들 정리한다. 소피가 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서 떠나게 되었을 때, 그때서야 가족들은 소피가 자신들을 치유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소피에게 사랑을 주면서 모두가 ‘떠나버린 아기’를 떠나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피가 떠난 후 그제서야 그들은 ‘아기’의 이름을 윌리엄이라고 짓고 모든 마을사람들과 함께 장례식을 치른다. 소피는 그들의 사랑을 가져간 동시에 그들에게 사랑으로 인한 치유의 힘과 다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남겨 주었다. 이 책에서는 ‘말의 힘’을 강조한다. 라킨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서 시를 배우며 ‘말의 힘’에 대해서 배운다. 사랑의 말, 관심의 말, 영혼을 치유하는 말. 라킨이 부모님에게 느낀 분노는 바로 그들이 ‘아기’에 대해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서로의 기쁨에 대해서 서로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서로의 슬픔에 대해서도 서로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라킨이 분노한 것은 부모님이 자신의 남동생 ‘아기’보다고 소피를 사랑할 수도 있다는 오해때문이었다. ‘아기’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곧 아기를 잊고자하는 의미로, 또 자신과 슬픔을 나누지않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을 꺼낼 수 있는 용기도 결국은 사랑이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말의 힘과 사랑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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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기를 한 번도 못 봤어요! 엄마랑 아빤 아기한테 이름도 지어 주지 않았고요!"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단 한 번도 저한테 아기에 대해 이야기해 주신 적이 없어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엄마가 나를 끌어안았다. 책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오, 라킨, 라킨, 난 몰랐단다. 모르고 있었어......" "아셨어야죠, 엄마잖아요." - 123page
아이세움 익사이팅북스 [가위 바위 보]의 한 부분입니다. 라킨네 가족에겐 함부로 꺼내지 못한 아픔이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아기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라킨은 태어난 동생이 있었다는 사실만 알뿐 동생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본적도 없고 이름을 알지도 못 합니다. 동생에 대한 추억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추억이 없다고 아픔을 못 느끼진 않습니다. 가족 모두는 말로 할 수 없는 아픔에 아기에 대한 이야기는 꺼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아기에 대해 떠올리는 것조차 고통스럽고 서로에게 못할 짓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커다란 변화가 시작됩니다.
여름이 끝날 무렵, 누군가 바구니에 아기를 담아 집 앞에 두고 갑니다. 꼭 데리고 올 거라는 말과 함께, 행복한 가족이라 잘 키워줄 것 같다면서 부탁한다는 쪽지가 남겨있습니다. 아빠는 비밀스러운 아픔이 떠올라 아기에게 사랑을 주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아기에게 '가위 바위 보'를 가르쳐주며 자신도 모르게 아빠처럼 대합니다. 엄마는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난 아이를 그리워하며 가족에게 드러내지 못한 아픔을 이 아기에게 애정으로 쏟아냅니다. 비록 언제 엄마가 찾아와 떠날지 모르는 아기를 통해 가족은 그동안 가슴속 깊이 그리움으로만 묻어두던 세상을 떠난 동생에 대한 마음을 그제야 드러내게 됩니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아픔을 치유하고 서로를 보듬게 된다는 가슴 뭉클하고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아기를 떠나보내는 장면에서 아기가 그동안 자기와 놀아주던 아빠를 향해 팔을 뻗어 자그마한 주먹을 내밀고, 아빠는 거기에 손을 들어 '가위 바위 보'로 인사하는 장면에서는 왈칵 눈물이 납니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 기른 정이라는 것에 대해 느낄 수 있었어요.
세상에 둘도 없는 내 아이. 아이와 함께 한 순간들을 떠올리면 저도 모르게 뭉클해집니다. 불의의 사고로 아이를 떠나보낸 부모들을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건들, 누군가 책임을 진다고 떠나간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들. 한숨만 푹 쉬어지고 마는데요.
차마 떠올리기도 힘들어서 버거운 일들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두 손 두 발 놓게 돼버리는데요. 이 책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고통스럽다고 아이들과의 기억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계속 떠올리며 그 아이들과의 행복했던 일들을 추억해야 한다고 말이죠. 아이들을 기억하고 떠올리면 아이들은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있다고...... 안타깝게도 하루 종일 뉴스의 실시간을 오르내리며 거론되던 사건들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잠잠합니다. 점점 잊혀갑니다. 생각할수록 고통스럽고 마음이 무너집니다. 그렇다고 외면하고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고통받는 부모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게 그들과 함께 아이들을 떠올리고 오롯이 그리워하는 일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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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동생이 먼 데로 갔다. 그 시절엔 어린 아이가 죽는 일이 흔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 또래의 사람들은 기억도 나지 않는 형제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 꽤 있는 것으로 안다. 내 경우는 그래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으로 보아 아주 어리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엄마가 울자 앞집 아주머니가 오셔서 방에서 함께 있었던 것뿐이다. 동생과 함께 길을 걸어가고 돌계단에 앉아 있던 것이 기억나는데 이상하게 슬펐던 기억은 없다. 그 후로 우리집에서 그 아이의 일은 아주 가끔, 그것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엄마가 이야기할 뿐이었다. 솔직히 난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 라킨네 가족이 잃어버린 동생에 대한 아픔을 그대로 봉합한 채 억지로 웃으며 살아가려고 하지만 결국 그것을 드러내서 풀어야만 진짜 해결된 것이라는 걸 보여준다. 라킨은 모든 것을 인지하고 기억하는 나이(열두 살이다.)라 그런지 얼굴도 보지 못한 동생의 죽음에 매우 슬퍼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어쩜 그리 나와 다른가 의아하기도 했고 내가 너무 냉정한 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나이라는 변수도 큰 몫을 차지하리라 본다. 대여섯 살의 기억과 열두 살의 기억은 현저히 차이가 날 테니까. 어디 기억 뿐일까. 사물을 받아들이고 추론하는 능력도 확연히 다르니 기억과 느낌도 당연히 다를 것이다.
식구들이 단 하루만 머물고 떠난, 이름도 없는 아기를 그리워하는 방법은 각자 다르다. 엄마는 말없이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리고 아빠는 일하고 돌아와서 탭댄스를 춘다. 그들을 말없이 바라보는 할머니는 선뜻 상처를 들추지 못한다. 그러나 가장 힘들어하는 건 라킨이다. 본인은 아기를 본 적도 없지만 그 보다는 아무도 라킨에게 어떻게 되었는지 왜 그랬는지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그저 부모의 눈치만 살필 수밖에 없다. 아기를 잃은 슬픔에 빠져 있는 부모를 보며 자신은 버려졌다는 생각을 했겠지.
그러다 우연히 집 앞에 버려진, 아니 잠시 맡겨진 소피라는 아기를 돌보면서 금기였던 죽은 아기에 대한 문제를 해결한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고,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게 바로 이 책의 주된 줄거리다. 그리고 나중에 소피를 통해 그들이 아픔을 이겨내고 세상으로 나오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라킨과 할머니, 아빠는 만나자마자 헤어질 게 두려워 소피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 하지만 어디 그게 이성으로 되는 일인가. 작은 섬에서 온통 관심의 대상이 된 소피를 세 사람만 피할 수는 없다. 아니, 더 사랑하면 사랑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소피를 엄마에게 행복하게 떠나보내고 십 년이 흐른 후에 소피가 섬으로 라킨의 가족을 만나러 온다. 할머니를 떠나보내기 위해. 그들은 처음에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다른 누군가를 맞이했는데 마지막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정확하게 아귀가 맞는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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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서정성'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처음 책 표지의 느낌도 그렇고 문장 하나 하나가 다 시처럼 아름다운 느낌이에요. 작은 섬에 사는 한 가족앞에 누군가가 아기를 버려놓고 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입니다. 언젠가 다시 데려갈 아기이기에 절대로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작고 순수한 한살배기 아기가 미소를 지을때마다 결심은 무너지고 말죠. 결국 가족은 진심으로 아기를 사랑하게 되고, 또 그 사랑을 통해 자신들이 묻어두었던 아픔을 치유하게 됩니다. 슬프지만 아름답고 위대한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아기-소피는 자라서도 그토록 사랑받고 행복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겠죠 모든게 하나하나 선명히 기억나지 않지만 따뜻했던 두 손, 반짝이는 붉은 빛의 행복한 느낌 하얀 모래알갱이들처럼 두 뺨을 간지럽히는 따스한 기억으로 아마 그렇게 행복하고 따스한 느낌으로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을 거에요. 이 책은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읽기 보다는 고학년이나 중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이야기 이네요. 물론 어른들이 읽어도 전혀 손색없구요. 하지만 저학년이라도, 엄마가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참 좋을것 같아요. 노래가사 같고 시같은 느낌이라 편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을것 같아요. 아직 끝까지 읽어주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네요.
한편으로는 우리가 아기였을때 얼마나 사랑받았었는지를 느끼게 해주네요. 저도 꿈결처럼 흐릿하지만 따뜻했던 누군가의 손과 말의 울림으로 아주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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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바위 보.... 한편의 아름다운 시를 읽은 것 같다. 갈매기가 떠다니며 멀리 등대가 보이는 해변에서의 아가와 손잡은 어느 남자의 모습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마지막 장면이 특별하게 나를 붙들고 한동안 그 여운을 느끼게 한다. 한해 잠깐 동안이지만 자신을 진심어린 사랑으로 보살펴준 가족을 다시 알아 볼 수 있을지 설레는 소피의 마음 그대로 나에게 전해진다. 아물거리는 기억 속에 남겨져 소피를 그리움 속으로 불러 들였던 아빠를, 십년 뒤 여름에 소피가 내미는 가위바위보로 기억 밖에서 만나게 된다. 어느 섬의 휴가 막바지인 여름의 끝에 맡겨진 소피를 통해 아기를 잃은 한 가족의 침묵으로 잊고자 했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아기인 소피를 통해 서로가 소통되었다. 서로의 아픔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만들었다. 말의 힘이 침묵을 이겼고 그 도움은 아기인 소피에게서 왔다. 여름의 끝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겨울을 지나 소피의 친 엄마에게 받은 사정이 나아지고 있다는 편지의 내용이 그들의 머리 위로 먹구름같이 함께 하였다. 새로운 봄이 시작되며 소피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버드 할머니의 말처럼 생활에 자극이 될 만한 활력이 되었던 소피가 맡겨진 이래 엄마 아빠는 소피를 사랑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들은 또 다른 아픔을 겪기가 힘에 겨웠을 것이다. 소피의 미소를 보며 가슴에 통증을 느낀 라킨에게 보였던 아빠의 표정은 두려움을 넘어 선 라킨에 대한 애정이었을 거다.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라킨이 느끼지 않게 되길 바랐던 진심어린 부정이 아니었을까? 소피를 가족 모두가 받아들이며 인생은 돌고 도는 원이었듯 다시 소피의 부재 속에 서로의 힘든 과정을 어떻게 겪어내었을지 상상하게 된다. 가슴 따스한 사랑이 모두에게 서로를 더욱 깊이 사랑하게 만들었으며 소피의 부재 속에 그들의 의지가 되었으리라. 잔잔한 물결 위에 파도치는 물결을 바라보며 그것이 주는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느끼듯 그러한 잔잔한 감동이 내 마음 속 깊이 전달되어진다. 애잔한 슬픔과 애틋함이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 깊이 남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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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문장들과 가슴 저미는 표현 때문에 번역일을 손에서 놓기가 싫어질 정도라는 역자의 말처럼, 감성적이고 유려한 문장들이 마음을 저 멀리 바닷가로 실어 나른다. 때로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바닷가의 모습이, 어느 때는 모두 떠난 자리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섬마을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12세 소녀 라킨의 가정은 평범하고 평온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 그러나, 탭댄스를 즐겨 추시는 아빠의 몸짓과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는 엄마의 마음 속엔 내밀한 아픔이 자리잡고 있었다. 라킨의 남동생이 세상에 태어나 딱 하루만 살고 하늘로 가버린 이후, 이름조차 없는 작은 무덤의 형체보다 더 큰 슬픔이 말없이 가족들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 이야기를 불문율처럼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안으로 삭히며 살아간다.
어느 날, 아기 소피가 편지 한 장과 함께 바구니 속에서 발견된 이후 할머니와 엄마는 즉은 아기가 다시 돌아온 것처럼 소피를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오로지 아빠만이 언젠가 다시 친엄마의 품으로 돌아가게 될 미래를 암시하며 정을 주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는 천진무구한 아기 소피의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아빠 역시 사랑이란 감정 앞에 무력하게 허물어진다. 가위 바위 보는 바로 아빠가 소피에게 가르쳐 준 손동작이다.
학교의 미니프리드 선생님은 사람을 바꾸는 '말의 힘'에 대해 말씀하신다. 말은 생각 속에 머무르던 형체를 밖으로 표현해 낸다. 별 의미없는 말들, 간단한 의미 전달에 그치는 말들도 많지만, 라킨의 식구들에게 있어서 '말'이란 가슴 속의 응어리를 토해내는 작업이었다. 언젠간 오리라고 생각했던 순간, 즉 소피가 친엄마에게 안겨 배를 타고 떠난 그날, 식구들은 모처럼 둘러앉아 이름도 없이 떠났던 '아기'의 얘기를 꺼낸다. 아기에게 윌리엄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늦었지만 장례식도 치른다. 이제 하늘로 간 윌리엄은 꺼내선 안되는 얘기가 아니라, 말의 힘을 빌어 언제나 식구들의 곁에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소피에게 있어 라킨의 식구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책의 소단원이 끝날 때마다 따로 떨어져 있던 짧은 글들이 처음엔 무엇인지 몰랐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그 문장들이 소피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의 기억에 그 누구보다도 뚜렷이 남아 있는 사람은 한 남자였다. 검게 그을린 강한 손. 그가 그녀를 안아 올리면 그녀는 쿵쿵 뛰는 그의 심장을 느낄 수 있었고,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휘감겨 입가에 미소를 짓곤 했다. (p 50)-- --그녀는 목소리들을 기억했다. 그리고 귓가에서 속살대던 말들도. 그녀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는, 잔잔한 산들바람 같던, 말.(p108)-- 10년이 지나 가족과 소피는 할머니의 장례식을 맞아 다시 재회한다. 구름 뒤에 가려져 있던 그리움의 얼굴들이 소피의 눈에 보인다. 그녀가 아빠를 보고 취했던 동작, 가위 바위 보.
친 자식을 버리고 방치하는 일들이 가끔씩 뉴스거리로 보도될 때마다 힘없이 작은 생명이 부모로부터 버려지고 최소한의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이런 사례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주소를 말해준다고 생각했었다. 그에 비해 책 속의 세상은 진실로 사람사는 세상인 것 같다. 피붙이가 아닌 아기 소피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라킨의 식구들은 아름다웠다. 라킨의 식구들이 윌리엄의 죽음으로 받은 상처를 소피를 돌보며 치유했듯이, 때때로 벌어지는 상식 이하의 일들로 놀란 가슴은 이 책으로 촉촉히 적실 수 있다. 마음을 정화시키고 싶다면, 12세 소녀 라킨의 집을 방문해 보시길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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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살아가면서 한 가지 쯤은 가슴에 묻어 두고 있는 게 있으리라. 처음 부터 이 책은 뭔지 모를 가슴 저려옴을 느끼게 했고 라킨의 시선으로 라킨 가족들의 가슴 속에 묻어 둔 이야기들이 서서히 들어나게 된다.
여름이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어느 섬마을에 살고 있는 라킨의 가족에게 그 여름의 끝 무렵 형편이 나아지면 데리러 오겠다는 편지 한 장과 함게 바구니에 담겨져 소피가 찾아온다. 갑작스레 찾아온 소피로 인해 라킨의 가족은 처음엔 소피를 거부하기도 하지만 소피로 인해 그동안 묻어 두었던 '그 아픔'에 대해서 가족들의 갈등을 해소하기도 한다. '그 아픔'이란 바로 하루 밖에 살지 못하고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라킨의 남동생이었다.
처음 이 글을 읽으면서 알 수 없는 소피를 대하는 라킨 가족들의 행동들이 어딘지 부자연 스러워 궁금증을 자아냈지만, 가족들의 갈등에 대해 궁금해 하도록 글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작가 특유의 전개 방식과 섬 마을의 풍경이나 인물들의 세밀한 행동 묘사로 심리상태를 표현한 것만 보더라도 이 글을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또한 책 중간 마다 소개된 한 소녀의 기억과 함께 스케치 하듯이 그려진 그림은 책을 다 읽은 후에 다시 한 번 기억하듯 되짚여보며 읽어보는 재미도 그만이다. 후에 그 소녀가 소피일거라는 생각을 하니 작가의 위트가 느껴지기도 했다.
책을 읽어내릴 때 작가가 글을 이어가는 표현 방식에 주목해서 읽는 다면 문학 작품을 읽는 다는 게 어떤 유익함을 줄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책이 될 거라 자부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읽어도 읽어도 마음에 남는 책, 읽을 때마다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는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오랫동안 마음 속 깊이 남을 만한, 내 마음을 살 찌울 수 있는 그런 책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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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한 새라 아줌마>의 작가가 쓴 책이라니 관심이 갔다. 나직나직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작가의 문체를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역시나 무심하지도 냉정하지도 않은 담담한 톤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와 아름다운 섬의 풍광 묘사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감상한 듯한 느낌이었다.
책 속에는 두가지 이야기가 날실과 씨실을 이루고 있다. 아이를 낳자 마자 잃은 부부와 그 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딸의 이야기, 아픈 남편을 간호하기 위해 잠시 자신의 딸을 다른 집에 맡기게 된 엄마의 이야기. 두 이야기를 이어주는 것은 소피라는 아기이다. 아이를 잃고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부모와 그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며 동생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는 딸이 있다. 여름 휴가가 지나고 난 후 그 집 앞에는 아기 바구니가 놓이고, 아기의 등장으로 가족들은 지난 상처를 돌이키게 된다. 다시 떠날 아기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려는 아빠와 아기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는 엄마. 아기는 가족 모두에게 잃었던 사랑을 되찾아 준다. 하지만 예고된 이별이 다가온다. 형편이 나아진 아기의 엄마가 아기를 찾으러 오고, 아기가 떠나면서 묻어 두었던 가족들의 상처가 드러난다. 버드 할머니의 주재로 가족들은 서로 피했던 이야기, 죽은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름조차 없이 땅에 묻힌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상처에서 회복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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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가족이 자기들의 집에 버려진 아이 소피를 키우는 과정에서 가족의 아픔(태어난 지 하루만에 죽은 막내동생)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이 소설의 장점은 아름답고 힘이 느껴지는 문장체 인 것 같았습니다. 중간 중간에 가슴을 적시는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다시 사춘기 소녀로 돌아간 듯한 느낌으로 이책을 읽었습니다. 읽었던 부분을 다시 한 번 되세기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의 시작은 어느 섬마을의 열두살 소녀 라킨의 집안에 한 장에 편지와 함께 버려진 소피를 키우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태어난 지 하루만에 죽은 라킨의 남동생의 존재에 대하여 가족 모두가 말을 하지 않고 가슴에 묻고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소피를 받아 들이는데 있어서 아빠는 반대를 합니다. 그러나 할머니 엄마,라킨의 희망대로 소피는 라킨의 집에서 걸음마를 배우고 말도 배우며 커 갑니다. 처음에는 소피를 사랑하면 안 된다고 되뇌이지만 소피가 커 갈수록 소피에 대한 가족의 사랑은 커져만 갔습니다. 특히 아빠는 소피에게 춤을 가르쳐 주고 "가위 바위 보"를 가르쳐 주면서 애정을 갖게 됩니다. 소피는 "가위 바위 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손가락으로 모양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다음해 봄에 라킨 가족들의 걱정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소피의 엄마가 와서 소피를 데리고 가 버린 것이었습니다.
소피는 떠났지만 그로 인해 라킨의 가족들은 "아기"라고만 불리웠던 라킨의 죽은 남동생에 대해 말로써 추억을 합니다. 눈동자, 손가락, 표정, 그리고 없었던 이름도 윌리엄으로 지어 줍니다. 동생의 장례식도 치러 주게 되면서 가족간의 대화를 다시 찾게 됩니다.
10년 지난 후 할머니의 장례식에 소피가 찾아 옵니다. 소피는 배 안에서 섬을 바라보며 아빠와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들이 기억을 할까 ,,,,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장례식장에서 소피가 아빠를 보자 마자 한 행동은 "가위 바위 보" 였습니다. 이 장면을 읽는 순간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아직도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세삼 생각하게 되었고 가족의 사랑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아빠는 소피를 보지 못했다. 목사님의 추도사가 막 시작되려는 순간 소피가 내 손을 놓더니 아빠에게 다가갔다. 아빠가 고개를 돌렸다. 두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소피가 환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가위. 바위. 보" 너무 감동적인 순간이어서 한 번 적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