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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 살 수가 없었던 시절을 겪는 피붙이 영화! <산쇼다유>(집사 산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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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쇼다유 Sansho the Bailiff> 미조구치 겐지 감독이 1954년에 만들어 사람이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살았던 시절의 아픔을 그린 흑백 영화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받았다.   영화를 보면서 요즈음 살고 있다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힘 있고 돈 있는 이들이 주름을 잡으며 살고 있지만, 그래도 벼슬아치들이 잘못 하거나 억울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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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쇼다유 Sansho the Bailiff> 미조구치 겐지 감독이 1954년에 만들어 사람이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살았던 시절의 아픔을 그린 흑백 영화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받았다.

 

영화를 보면서 요즈음 살고 있다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힘 있고 돈 있는 이들이 주름을 잡으며 살고 있지만,

그래도 벼슬아치들이 잘못 하거나 억울한 일을 겪을 때도 법에 따라 따질 수가 있고,

아무나 사람을 함부로 하지 못 하도록 세상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일본 헤이안 시대인 11세기에도 사람은 살았고, 힘 있는 이들은 떵떵거리며 살았지만,

없는 이들은 목숨을 이어가려고 밥 먹고 살기에도 빠듯했다.

그러니 벼슬아치들이 내리 누르면 무지렁이들은 그냥 눌린채 살거나

도저히 참을 수 없으면 들고 일어나 싸울 수밖에 없었다.

 

2.

영화는 먼저 백성들을 생각하는 깨끗한 벼슬아치였지만 윗사람의 미움을 사서 귀양을 떠난

타이라 마사우지(시미즈 마사오)를 찾아가는 피붙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내인 타마끼(다나까 키누요)와 아들 즈시오, 딸 안주와 찬모가 길을 떠나는데,

길에서 자야 하는 날 그 고을의 무당이 제 집에서 자라고 이끈다. 

따뜻한 곳에서 잠을 자고 다시 길을 떠나려 할 때, 무당은 말한다.

"산에는 강도들이 많으니, 배를 타고 가세요...내가 잘 아는 뱃사공이 있어요."

 

이렇게 고마울 데가...타마끼는 허리를 굽혀 절한다. 

그런데 타마끼와 찬모가 배에 올라타자 뱃사공 둘은 배를 몰고 간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알고 보니 이들이 노예 장사꾼이었다.

겉으로는 잘 해주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돈을 벌려는 이들이다. 이들을 보면 세상이 참 두렵다.

 

타마끼는 사도섬에 있는 갈보집에 팔아넘기고, 아이들은 탕고 지방의 '집사 산쇼'한테 팔아 버린다.

피붙이가 하루 아침에 구렁텅이에 빠져 버렸다. 누가 이들을 구해줄까? 아무도 없다.

 

3.

달아나다가 걸리면 얼굴에 달군 쇠로 새기기까지 하면서 종살이를 시키는 집사 산쇼의 농장에서

10년을 보낸 즈시오(하나야기 요시야끼)는 스물셋이 되었고, 안주(카가와 쿄쿄)는 열여덟이 되었다. 

 

짐승같이 살면서도 아버지한테 늘 듣던 말이 생각난다.

"동정심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

 

늙거나 병들어 죽을 때가 아니면 이 곳을 벗어날 수가 없는 곳.

그렇다고 짐승처럼 살 수는 없는 법. 안주의 도움으로 즈시오는 달아난다.

 

산쇼(신도 에이타로)의 아들이지만 아버지처럼 살기가 싫어 중이 된 타로(쿄노 아키타케)의 도움으로

서울인 교토에 가서 간바쿠 후지와라를 만나 억울하게 귀양간 아버지 이야기를 아뢴다.

즈시오는 죽은 아버지 덕분에 우리로 치면 군수쯤 되는 탕고 지방의 행정관 자리를 얻어 내려온다.

 

4.

그런데 좋은 끝맺음이 아니다.

즈시오가 탕고 지방에서는 사람을 사고 팔지 못하게 하려 했지만,

그 때 일본의 수상인 간바쿠의 재산을 관리해주던 마름인 산쇼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즈시오가 달아나도록 도와준 누이 안주를 산쇼가 그냥 놔두었을까?

사도섬으로 팔려갔던 어머니 타마끼는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으니 제대로일 리가 없다.

 

타마끼가 부른 가슴 아린 노래가 사도섬을 넘어 입으로 입으로 타로 지방까지 흘러 들어온다.

"주시오 얼마나 보고싶은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안주 얼마나 보고싶은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를 노예 시장으로 데려왔어요..."

 

사람답게 산 이는 조금 밖에 없던 시절에 태어난 힘없는 이들한테 삶은 아픔일 뿐이다.

그런 시절에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만 생각하기에는 너무 안쓰럽다.

즈시오와 어머니 타마끼가 만나는 모습은 눈물 없이 보기가 어렵다. 가슴이 아린다.

 

미조구치 감독은 어지러운 시절 탓에 갈갈이 찢어지는 피붙이의 삶을 보여주면서

이들한테 아픔을 준 짐승같은 이들의 삶도 즐겁지 않은 삶이라는 걸 깨우쳐 준다.

 

<신 헤이케 이야기>와는 달리 흑백이고 디브이디의 화질이나 소리는 그리 좋지 못하다.

이런 영화 디브이디에 보너스가 있을 리 없다.

b******g 2008.08.22. 신고 공감 2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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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구치 겐지는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감독이다
"미조구치 겐지는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감독이다" 내용보기
여행 중 인신매매범의 손에 걸려 모친가 헤어지게 된 주시오와 안주의 오누이는 호족 산쇼다유에게 팔리게 된다. 노예나 다름없게 된 이 두 사람은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모친과의 재회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로부터 십년 후 여전히 산쇼다유의 수용소에 갇혀있는 이들은 어느 날 새로 들어온 젊은 여인이 부르는 노래에 자신들의 이름이 들어있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란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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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인신매매범의 손에 걸려 모친가 헤어지게 된 주시오와 안주의 오누이는 호족 산쇼다유에게 팔리게 된다. 노예나 다름없게 된 이 두 사람은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모친과의 재회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로부터 십년 후 여전히 산쇼다유의 수용소에 갇혀있는 이들은 어느 날 새로 들어온 젊은 여인이 부르는 노래에 자신들의 이름이 들어있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란다. 인신매매가 횡행하는 헤이안 시대를 배경으로 부모 자식 간의 애정 그리고 인신매매 등의 인권 문제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단순한 이슈로서의 사회성을 인간 조건의 비극성에까지 끌고 간 걸작이다.


 

나는 이 시대의 영화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50년대~60년대. 일본 영화로 이야기하자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 미조구치 겐지의 <적선지대>, 오즈 야스지로의 <꽁치의 맛> 등 일본 대표 감독들이 만든 영화들은 하나같이 재미있고 본 뒤에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전의 <적선지대>에서는 홍등가 여인들의 이야기로 가족과 인생, 그리고 발전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더니, 이번엔 인간 그 자체의 존엄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은 정말 평등한 것일까?

 

정부 고위 관리였던 아버지는 몇 년간 흉년으로 백성들이 먹을 것도 먹지 못하는 것을 딱하게 여겨 세금을 거두지 않아 정부에 미움을 사고 귀양을 떠난다. 이렇게 가족은 헤어지게 되는데,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 말을 한다.

"인간은 모두 행복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동정심이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너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용을 베풀어라."

 

이 시대에는 이런 생각 자체가 파격적이었을 것이다. 아니, 감히 이런 생각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아주 당연하게 명문가와 평민의 인생은 달랐다. 평민은 세금을 내기 위한 '노동력'일 뿐,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 만큼 정말 평등할까?

 

아니, 우리는 아직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주인-노예, 영주-소작농. 지금은? 자본가-노동자가 아닐까.

 

영화는 꾸준히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계속 되뇌이다보면 굉장히 슬픈 이야기이다. 2010년을 사는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할 수가 없다. 산쇼다유 수용소에 갇힌 노예나 다름없이 먹고살기위해 치열하게 산다.

 

보이지 않는 인권의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

 

도망치는 노예의 얼굴을 인두로 지지는 장면을 보고난 뒤, 안주는 말한다. "어떻게 이런 곳을 세상이 모를 수가 있어!"

 

멀리 보면 내전이 진행되고 있는 나라의 소년병들, 어린 나이에 대기업의 배를 불려주기위해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는 아이들.

가까이만 봐도 현대판 노예로 살고 있는 노인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폭력과 노동을 착취당하는 장애인들, 폭력에 저항하기에는 너무 어린 아이들.

 

기타 남자, 여자, 노인, 어린이 등등. "어떻게 이런 곳을 세상이 모를 수 있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곳이 너무 많다.

 

50년대에는 그 외침이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0년대인 지금, 그들의 외침은 미디어에서 자극적으로 보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면서 모른척, 잘 알지 못하는 척하며 등을 돌려버린다. 정말 그 남매의 이야기 못지 않게 절박한 사람이 많은데.

 

 

50년대, 60년대 영화가 왜 재미있을까? 나는 이제야 그 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를 알았다. 전혀 촌스럽지 않은, 지금과 다르지 않은 이야기라서. 그것이다.

이제 좀 달라질 때도 됐는데.

d****8 2010.02.10. 신고 공감 1 댓글 0